성냥팔이 소녀에 대하여
하희경
새벽 세 시, 커피 한 잔을 들고 두리번거린다. 오늘은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을까. 무엇으로 하여금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게 할까. 오늘 내 마음을 건드린 이야기는, 김응숙 작가의 수필집 『몸짓』이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나뉘는 빛과 어둠. 그 경계의 바깥, 창문 아래에 성냥팔이 소녀가 웅크리고 있다. 소녀 손에 줘져 있는 마지막 성냥 한 개비. 나는 그림책을 탁 덮는다. (…)
나는 이야기의 슬픈 결말을 직시하지 못한다. (…)
왕비 계략에 빠졌던 백설 공주도, 계모의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리던 신데렐라도 끝에는 행복을 찾았다. (…)
그런데 성냥팔이 소녀의 서사는 왜 이런가. 그녀가 처해 있는 혹독한 현실과 가혹한 절망이 명치끝을 묵직하게 누른다.”
- 김응숙 작가의 『몸짓』, 「성냥팔이증후군」 중에서
몇 년 전, 김응숙 작가를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난다. 문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문학 강의에 초대작가로 오시는 분이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다며, 잠시 시간을 같이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대전 역에서 얼굴도 모르는 작가를 기다렸다. 저만치 앞에 한 여인이 보인다. 직감적으로 그녀가 맞지 싶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예상대로였다. 문우들과 만나기로 한 시민대학을 향해 같이 걸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시간을 메우려고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다. 글쓰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눈물바람이 일어났다. 어떤 이야기가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두 여인이 손을 맞잡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닦아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우는 것은 나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나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으니까.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한참을 울던 그 날이 어제 일만 같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던 중이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애를 써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만 하는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해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고 싶어 글쓰기 모임에 참석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자전과 공전이 회전하는 그 어느 한 점에서 그녀를 만났다. 굽이진 길 한 모퉁이에서 만난 두 여인은 단박에 알아보았다. 서로의 가슴 깊은 곳에, 세상을 향해 마지막 성냥을 들고 기웃거리는 소녀가 있다는 걸….
「성냥팔이증후군」은 슬픈 결말을 마주하지 못하는 작가가 책장을 덮으면서 시작한다. 그림책의 책장을 덮으며 생각에 잠겼을 작가를 떠올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목련나무 이파리가 겨울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저 창문에 하얀 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성냥팔이 소녀처럼,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아이가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두운 집을 향해 발길을 옮기는 소녀의 그림자가 길다. 벗어나려 할수록 집요하게 달라붙는 가난이라는 굴레에 지친 소녀가 걷는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잇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고 골목을 전전했다’는 작가의 그림자에 내 그림자가 얹힌다.
모든 이야기의 끝이 반드시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픈 결말을 견디지 못하는 그녀와 나는 닮은꼴이다. 하긴 가난으로 인해 짙은 그림자를 가지게 된 이가 어디 작가와 나뿐이겠는가. 세상 어디에나 그늘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하기만 한 존재는 없다. 누구나 지울 수 없는, 절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흉터 하나씩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삶에 치여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날들이 있었다. 보이는 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뿐, 꿈도 희망도 없는 날들이었다. 누군가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죽을 것만 같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던 시간들이 가슴 깊은 곳에 성냥팔이 소녀를 키웠다. 그 소녀가 마지막 성냥에 불을 붙였다. 돌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에게도 필요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손끝을 타고 흘러나왔다. 마침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듯한 햇살이 소녀를 감싼다. 어설프나마 글을 쓰면서 성냥팔이 소녀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드넓었다. 내려앉을듯한 하늘에 짓눌려 숨을 헐떡이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꿈이었길 바라며 부정하던 이야기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흉터가 있다는 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라고 여기던 것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태생이 악한 존재라서 당연히 받는 거라고 생각했던 형벌들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나만 상처 입은 게 아니고, 그 상처 역시 내 실수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날의 해방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작가의 ‘성냥팔이 증후군’은 이미 오래전에 치유되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어둡고 추운 비탈길에서 따듯한 햇살의 길로 들어섰듯이 말이다. 그녀와 나는 여전히 남의 집 담벼락 밑에서 불빛 가득한 창을 기웃거리고 있는 소녀를 가슴에 품고 있지만, 그 소녀를 안아줄 줄도 안다. 처음 만난 날 서로의 손을 통해 위로를 건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