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 토요일 날씨가 더웠다. (전형적인 여름 날씨)
이번에는 경주지역에 가기로 했다. 만날사람이 있어서..
어느덧 6월16일 저녁시간..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한성여객소속 서울720번(상계1동-성북역-청량리-종로-여의도)을 타고
종로1가로 갔다.
마침 종로3,4가에서 시위가 있군.. 차 졀라 막힌다.
종로1가에 겨우겨우 도착하여 아는사람들 만나서 좀 놀다가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22:00정도.. 열차탈시간까지는 1:55분 남았다.
남는시간에 할것도 없구 해서 서울역정류장으로 가서
신성교통소속 서울907번(서울역-신원당-화정-일산신도시-송산동) super aerocity를 탔다.
광화문,독립문,무악재,박석고개,구파발,창릉동,성사동을 지나
신원당(고양시 원당)에서 내렸다. 그때시간 22:40분정도..
길건너로 가서 다시 신성교통소속 서울907번(일산송산동-정발산역-화정역-
원당역-서울역)super aerocity를 타고 서울역으로 오니 23:30분이군.
서울역사(驛舍)로 들어가서 예약한 표를 구입하고 좀 기다리고 있으니
23:40분에 개표를 시작..
개표를 받구 열차타는곳으로 내려간다.
<font color=red size=4> 2. 서울역->동대구역.. </font>
타는곳으로 내려가니 열차가 대기하고 있군..
휴일인지라 사람들이 졀라 많다.
이번에 탄 열차는 서울역을 23:55분에 출발하여 부산역에 5:26분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제271열차. 동대구역에는 3:56분에 도착한다.
일반실 9호차 33석이며, 운임은 할인하여 12400원..
23:55분이 되자 열차는 출발하고..
한강을 건너 영등포역과 수원역에서 수백명의 승객을 태우고 남쪽으로
달린다.
나는 피곤한지라 잠이 들고...(역시 밤에는 자야된다.)
깨보니 왜관역이군..
어느덧 열차는 대구광역시에 진입하고
3:56분에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font color=red size=4> 3. 동대구역. </font>
동대구역은 6월3일에 온적이 있다.
14일만에 와보는군..
열차에서 내려서 개표구로 나간다.
열차표는 역시 기념품으로 가져오고..
화장실에서 세수좀 하고 밖으로 나온다.
아직 밖은 어둡다.
동대구역사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과 내리는 승객.
그리고 노숙자들로 좀 혼잡하다.
동대구역옆에 있는 홍익회식당에 가서 우동을 먹었다.
여기는 3번째 와본다. 우동은 2500원이다.
우동을 먹고 부근을 서성이다가 다시 역사로 들어간다.
동대구역에 온 이유는 경주로 가기위해서이다.
동대구역에서 5:15분에 경주경유 포항행 통일호열차가 출발한다.
5시가 되자 동대구->포항행 통일호열차 승차권을 팔기 시작하는군..
경주까지 표를 구입할까 하다가 그냥 포항까지 구입했다.
아무래도 경주에서 만나기로 한사람이 늦게나올거 같아서
그리고 동해남부선(포항-부산)도 완승할겸해서..
열차표를 구입하고 열차타는곳으로 나간다.
타는곳(승강장)으로 나가니 열차가 대기하고 있군..
이번에 타는열차는 동대구역을 출발하여 반야월,하양,금호,영천,건천,
경주,안강,효자를 경유하여 포항역까지 가는 통일호 열차이다.
이 열차는 모든역을 다 정차한다. (2:40분정도 소요)
동대구역에서 포항가는 통일호는 1일 9회정도 운행하며
새마을호(서울발 동대구경유 포항행)도 1일 2회정도 운행한다.
열차안에 승객은 별로 없군..
5:15분이 되자 열차는 출발한다.
금호강(낙동강의 지류)을 건너 동촌역에 정차하고.
몇분뒤 반야월역에 정차한다.
이때쯤 피곤해서 잠이 들고..
깨보니 경주역이군..
경주역에서는 10여분간 정차했는데 여기서부터 포항까지는 반대방향으로
가기때문에 기관차연결하고 등등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서 승객들이 제법 타는군.. 그들 상당수는 할머니들..
몇분뒤 경주역을 출발한다.
나는 앞좌석을 내쪽으로 돌린다음 다리를 뻗고 잠을 청한다.
슬슬 잠이 오고..
나원역(나원리5층석탑이 근처에 있음)을 지날쯤해서 전화가 온다.
경주에서 만나기로 한 c님이다.
지금 나간다고.. 그때시간 7:40분경..
그래서 양동마을입구에 있는 양자동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열차는 잠시뒤 사방역에 도착하고..
안강역을 지나 강을 건너 양자동역에 이른다.
여기서 멀리 양동마을이 보이는군..
그러나 나는 포항까지 표를 구입했고. 동해남부선을 완승하고 싶어서
그냥 포항까지 간다.
부조역을 지나니 옆으로 형산강과 7번국도가 보인다.
잠시뒤 효자역(포항공대가 근처에 있음)에 정차하고..
어느덧 포항시내에 진입..
8:00경에 종착역인 포항역에 도착했다.
이로써 동해남부선(부산-포항)구간중 유일하게 안타본구간인
나원-포항구간을 시승함으로써 동해남부선 147km 전구간을 완승했다.
<font color=red size=4> 5. 포항->양자동 </font>
포항역에 도착하여 내린다. 많이 내리는군..
포항역사(驛舍)는 작군.. 시골역 같다.
포항시는 포항제철로 유명한 도시이다.
인구는 50-60만정도에 이르며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공업도시이다.
포항시와 영일군이 합쳐진 동네이다.
포항시에 관광지는 송도해수욕장,보경사,내연산,등대박물관,구룡포항,
포항제철등이 있다.
그리고 울릉도에 갈때는 대부분 포항을 거쳐서 간다.
역사를 나와서 역전광장으로 나갔다.
무슨 공사를 하고 있군..
역전(驛前)을 대충 둘러보고 역사로 들어가서 양자동까지 표를 구입했다.
역사에는 동대구방면으로 가려는 승객들로 혼잡하다.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동대구,경주,부산,부산진,서울역,괴동
(포항제철內)으로 운행하고 있다.
양자동역까지는 통일호 기본요금인 1100원이군..
표를 구입하고 열차타는곳으로 나간다.
이번에 탄 열차는 아까전에 동대구역에서 타고오던 그 열차이다.
포항발(8:25분발) 동대구행 도시통근형 통일호이다.
모든역을 다 정차한다.
열차안에 승객들은 아까전보다 많군..
승객상당수는 노인들이다.
나는 출입문쪽 좌석에 앉았다.
8:25분이 되자 열차는 출발한다.
출발한지 얼마안되서 뒤쪽에 앉아있는 할머니들이(20여명정도)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놀다가 뭐가 흥겨운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
처음에는 1-2명의 할머니들이 부르더니만 몇분뒤 20여명의 할머니들이
단체합창하듯 노래를 부른다. (옛날가요같은것을 부르시던데.. 눈물젖은 두만강,
돌아와요 부산항에..)
열차안은 완전 이들의 독무대가 되버리고..
승무원이 와서 몇번 주의를 주지만 할머니들은 거의 씹고 노래를 부른다..
이런상황에서도 열차는 부지런히 달려서
효자,부조를 지나서 8:40분경에 양자동역에 도착한다.
6. c님을 만나다.
양자동역은 동해남부선의 역중 한곳으로 무인간이역이다.
여기서 c님을 만나기로 했다.
양자동역에 도착하니 승강장에 할머니 1명과 젊은여자1명이 서있군.
열차에서 내리니 젊은 여자가 나를 쳐다보는데.
(양자동역에서 내린 승객은 나 혼자였다.. 헉~~)
그 여자는 c님이다.
77년생 여자이다. 경주에 살고 있다고...(자세한건 생략..)
c님을 만나고 근처에 있는 양동마을로 걸어갔다.
굴다리를 건너 왼편에 하천 오른편에 산이 있는 길을 좀 걸으니
가까이에 양동마을이 보이고..
어느덧 양동마을내에 진입했다.
7. 양동마을
양동민속마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마을이다.
이들 민속마을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던곳으로 그당시 가옥과 유물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민속마을은 제주도성읍에 성읍민속마을,충남아산에 외암리마을,
경주에 양동마을,전남순천에 낙안마을등이 있다.
이곳 양동마을은 부근에 있는 옥산서원(사적154호)에 모셔진 회재 이언적
선생과 관련이 깊은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1400년대부터 조성된 마을로써 한때 가옥(家屋)들이 300여채에
이르렀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50-60채정도 남아있다.
양동마을은 중요민속자료 189호로 지정되있다.
이곳에는 보물3점과 중요민속자료10여점 지방문화재 3-4점이 있다.
지금부터 이곳을 살펴본다.
8. 양동민속마을 관람.. 그러나 실망..
양동마을은 신라시대문화재들이 판치는 경주에 몇안되는 조선시대
문화재이다.
마을왼편에는 하천이 흐르며 북,동쪽에는 산이 있다.
마을내로 진입했으나 인적도 별로 없고 썰렁하다.
마을안에 교회도 있군.. 별로 안어울린다.
마을가운데에 양동마을안내판이 있다.
옆쪽에는 화장실도 있고..
안내판을 보고 마을을 한바퀴 둘러본다.
그러나 안내문같은것도 없고 관리인도 없고 관리가 좀 엉망인것 같다.
어느가옥이 중요민속자료인지 지방문화재인지 알수가 없다.
가옥들은 대부분 초가들과 기와집들이다. 현대식집들도 몇채 있군..
가옥들 상당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양동마을에 동북지역을 보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온다.
가옥들 일부는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지 문이 뜯어져있군..
안쪽으로 들어와서 관가정이란 기와집쪽으로 간다.
관가정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인지라 안내판이 있군.
관가정은 보물44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여기서 회재이언적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 이후 이집은 손씨들한테 넘어가고 지금에 이른다.
관가정안에 들어갔으나 집은 아무도 안사는지라 완전 폐가처럼 되버렸다.
곳곳에 거미줄이 판치고 있고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1마리 잡아갈까 홍홍~~)
관가정구석에 이르니 후손들이 사는 집이 보인다.
그러나 이집주인이 우리를 보더니 나가라고 소리친다.
할수없이 관가정을 나간다.
관가정을 보고 부근 무첨당이란 기와집으로 갔다.
이집은 보물411호로 회재이언적의 부친이 만든 건물이라 한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기와집이나 관리는 엉망이다.
무첨당부근에 향단이란 건물이 있다.
이곳은 보물412호로 회재이언적이 그의 동생을 위해서 만든 집이라 한다.
양동마을을 보면서 느낀거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상당수 가옥은 방치되있으며 일부 가옥은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상당수집은 폐가처럼 방치되고 있었다.
이곳을 잘 가꾸고 보존하면 좋을텐데.. 아쉽다.
우리나라 문화재관리의 현주소를 알수가 있었다.
양동마을을 더 둘러볼까 하다가 너무 기대밖이라서 그냥 가기로 했다.
양동마을을 나오면서 저쪽에 비각이 하나 있군.
가서 보니 '손종로충신비각'이군.
이것은 경북지방문화재자료 261호이다.
그것을 보고 나오다가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먹구 밖으로 나온다
9. 양동->경주시내
양자동역,28번국도쪽으로 걸어간다.
양동초등학교를 지나니 오른편에 내(川)가 흐르고 논이 펼쳐져 있구
왼편에 산이 있군.. 전형적인 시골동네이다.
굴다리를 지나 양자동역을 지나니 대구-포항간 국도인 28번국도가 나온다.
길을 건너서 경주,포항방면 버스타는곳으로 간다.
버스정류장뒷쪽에는 형산강이 흐르고 있다.
강가에는 몇명의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고 있군... 부럽당..
몇분뒤 포항가는 성원여객소속 포항좌석600번(안강,우방단지-포항역?
배차간격 40-50분)이 오는군.. 우리는 경주로 가기 때문에 안탔다.
기다린지 20여분뒤 경주시내로 가는 버스가 1대 온다.
이번에 탄 버스는 제일교통소속 경주좌석버스207번(강교-안강-경주터미널)
ac540sl이다.
경주까지 요금이 1인당 1400원 커헉~~
경주좌석버스는 기본요금(1050원)외에 구간요금을 받아먹는다.
버스는 인동에서 유턴하여 형산강을 건너 경주시내로 달린다.
호명리,모서리,모아리,신당리,황성동,경주역을 지나 경주우체국에서 내렸다.
그때시간 12:00
10. 점심먹고 헤어지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어야지.. 쩝.
마침 c님이 개인사정이 있어서 먼저 가야된다고...
그래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는 대개 한산하군. 점심시간대라 그런가..
시내를 이곳저곳 구경하고(뭐 구경할것도 없다.)
한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부근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서 후식을 먹고 밖으로 나온다.
이제 c님과 헤어질 시간이군..
다시 경주우체국부근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여기서 나는 낭산(불국사방면)쪽으로 c님은 다른곳으로 가야 된다.
c님은 나와 헤어지는것이 섭섭했던지 내가 가는것을 보고
가겠다고 기다리고..
기다린지 20여분뒤에 신화운수소속 경주시내버스11번(경주터미널-불국사)
bs106무냉방차가 왔다.
나는 그버스에 탑승했고 c님과 작별을 했다.
경주시내버스요금은 700원이다. 좌석버스는 1050원이다.(구간요금 받아먹음)
버스는 경주역을 지나 황오동고분군(사적41호)을 지나고
안압지(사적18호)와 반월성(사적16호),국립경주박물관지나니
왼편에 낭산(사적163호)이란 낮은 산이 보이고 얼마뒤 왼편으로
능지탑이 보인다.
능지탑이 보이는 내리마을에서 하차했다.
11. 능지탑(陵旨塔)과 문무왕
내리마을에서 하차하여 경주-울산간 7번국도를 건너서
다시 동해남부선(포항-부산 147km)을 건너 마을을 지나니 능지탑에
이른다.
능지탑(陵旨塔)은 일명 능시탑(陵示塔),연화탑(蓮花塔)이라고 부른다.
주변에서 문무왕릉비(신라30대왕)의 일부가 발견되었고
삼국사기(고려 인종때 김부식이 편찬)에서 문무왕이 유언하기를 "짐(朕)이
죽거든 고문(庫門)밖에서 화장하라","장례를 간소하게 하라"하였다는
기록과 부근에 선덕여왕릉과 문무왕이 세운 사천왕사가 있는 점에서
이곳은 문무왕의 화장지(火葬地)가 틀림없을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능지탑은 그동안 파괴되고 매몰된 상태에 있던것을 1979년에 부분복원했다.
발굴된 엄청난 석재로 보아서 5층석탑이 아닐까 추정되며 당초에 탑 사방에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안치했을 가능성도 있다.
탑의 기단 각 면에는 12지신상이 조각되있다.
능지탑은 경북지방기념물34호이다.
능지탑을 멀리서 보면 무슨 능묘같다.
능지탑의 주인공인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이다.
그는 태종무열왕(신라 29대왕 재위654-661)김춘추와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문명황후(김문희)사이에서 태어났다.
무열왕의 장자로써 661년에 무열왕이 붕어하자 신라 30대왕으로 즉위한다.
그는 668년에 27만대군으로 당나라군과 연합하여 동아시아의 대제국인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구려의 국도(國都)인 평양성을 점령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킨다.
고구려가 망하고 이제 삼국통일을 한것 같으나. 그렇지가 않았다.
당나라는 신라를 이용하여 백제,고구려를 멸하고 이제는 신라까지 먹을
생각으로 신라를 침공하기 시작하는데..
당나라왕 고종은 신라국 문무왕에게 계림도독이란 관직을 주면서
본격적으로 신라를 먹기 시작한다.
이에 열받은 신라는 당나라와 맞짱뜰것을 선언하고 당나라군과 치열한
맞짱을 전개한다.
신라는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자 백제,고구려의 유민들을 끌어들이면서
당나라와 패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신라군이 유리해지기 시작
매소성(경기도 양주군)과 적성(경기도 파주시),회양(강원도 회양군)
문경(경북 문경시)등지에서 당나라군을 크게 격파한다.
이러는 사이 신라국의 명장인 김유신이 673년에 죽는다.
당나라는 계속 군대를 보내 신라와 맞짱뜨지만
결국 신라를 먹지 못하고 676년에 철수한다.
당나라군이 철수한 이유는
1. 계속되는 전투로 인력,재정,보급품의 과다 소비를 감당하기가 어렵고
(수십만의 당나라군사가 죽고 다치고.. 전쟁에서 지면 그 재정적 손실 엄청나
고 적에게 탈취당하는등 피해가 엄청남..)
2. 당나라와 신라는 너무 먼거리 (당나라장안과 신라국과는 4천리에 가까운
머나먼 길)
3. 요동,한반도북부지역에서 고구려유민들의 대 반격..
(고연무와 대조영등이 이끄는 고구려부흥군들이 곳곳에서 당나라군을
괴롭힘)
4. 당나라 내부문제 발생
(잘모르겠으나 측천무후때문으로 알고 있음)
676년 당나라군을 몰아내고 소위 말하는 3국통일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남한은 통일로 인정하나
북한은 통일로 인정을 않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외세를 이용한 통일이고
고구려,백제땅 일부만 차지했기 때문이다. 나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통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3한통일,한반도중,남부통일(통합)이라
부르것이 더 나을것 같다.
일본에 일부 역사학자는 문무왕이 당나라와 맞짱뜨는것을 무서워한 나머지
일본으로 도망가서 일본 문무왕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놈들은 우리나라역사 왜곡하는데 환장한 놈들이다.
그래서 이런 헛소리를 떠드는것은 그놈들로서는 당연하다.
어쨌든 문무왕은 681년에 붕어하고 감포앞바다에 장사지냈다.
문무왕다음왕은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다.
능지탑을 보고 중생사란 절로 간다.
12. 낭산(狼山)
능지탑과 중생사,선덕여왕릉은 모두 낭산이란 산에 있다.
낭산은 신라시대부터 신성시 해오던 산이다.
신라18대왕인 실성왕12년(413년)8월 어느날 구름이 피어올라 누각처럼 보이고
향기가 짙게 퍼져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으므로 신선들이 노닐고 있기
때문이라 믿었으며, 그때부터 이 산을 신성시하여 나라에서 일채
입산,벌채행위를 금했다고 한다.
낭산은 해발 100m의 조그만 산이지만, 산의 북동쪽에는 황복사지가
그건너에 진평왕릉,서남중턱에 낭산마애3존불과 중생사,아래쪽에는
능지탑이 남봉정상에는 선덕여왕릉이 잇고 산기슭에 효공왕릉,사천왕사지등
이 있어 작은산인데도 신라의 성지(聖地)로서 문무왕이후의 유적이
밀집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낭산지역은 사적163호이다.
낭산은 나무들로 울창하고 기슭에는 밭들이 펼쳐져 있으며
구석구석에는 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능지탑을 보고 중생사란 절로 걸어간다.
좀 들어가니 대나무숲이 보이고 얼마뒤 중생사건물이 보인다.
중생사(衆生寺)는 법당과 요사,삼성각등 건물3-4채밖에 없는 조그만 절이다.
그러나 이절에는 보물이 하나 있으니..
13. 낭산마애3존불(狼山磨崖三尊佛)
중생사 한쪽구석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마애3존불이 새겨져있다.
그 마애3존불이 중생사에 보물이며 국가의 보물이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부처상을 말한다.)
중생사는 신라시대때 사찰로 오랫동안 터만 남아오다가 50여년전에
중창했다. 절경내에는 보물665호로 지정된 마애3존불이 있다.
이 마애3존불은 왼손에 감로(甘露)병을 들고 있으므로 관음보살상임을
알수가 있다.
이 마애불은 높이가 3m, 폭 5m정도로 표면이 고르지 못한 바위에
새겨져있고 파손,훼손이 심해서 가까이서 봐야 겨우 알아볼수 있다.
최근에 이 마애불을 보존하기 위해 보호각을 세웠다.
이 마애불은 후기신라시대 작품이다. 보물665호이다.
마애불앞에는 할머니 1분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한테 "저기에 몇분의 부처님이 있는줄 아는가?"
나 "모르겠는데여"
할머니 "서분이 모셔져 있다."
나"서분이 뭐죠?"
할머니 "서분 세분이다."
가까이에 가서 마애불을 바라본다.
훼손이 심한지라 알아보기가 힘들군..
마애불을 보고 중생사를 나온다.
중생사는 비록 작은 절이지만 마애3존불이 있고 경내에는 신라시대
석탑의 일부분이 남아있으며 많은 석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옛날에는 아주 큰 절이였다.
14. 여왕릉으로 가다..
중생사를 나와서 다시 능지탑으로 갔다.
능지탑에 이르니 한때의 학생(중고등학생으로 생각됨)들이 능지탑을
답사하고 있군.. 능지탑을 보고 산뒷길로 간다.
뒷길로 가면 보문벌(경주시 보문동)이 나온다.
뒷길로 좀 가니 3거리가 나온다.
쭉가면 보문벌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가면 낭산에 남쪽봉우리가 나온다.
나는 오른쪽길로 간다. 다 이유가 있지롱..
오른쪽길로 걸어가니 여기저기 밭이 펼쳐져 있다.
아낙네 1명이 밭을 갈고 있군..
밭을 지나니 소나무밭에 이른다.
여기에 누구의 묘가 있는데.. 쩝
좀 걸어가니 큰 무덤이 하나 나오는데...
15.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
그 큰 무덤의 주인공은 바로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재위 632-647)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신라 27대왕으로 진평왕의 장녀이다.
선덕여왕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덕만이다.
진평왕이 붕어하자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선덕여왕은 어진정치를 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자장율사를 당나라에 보내 불법을 들여오고
분황사(芬皇寺)를 창건했으며, 첨성대(국보31호)를 세웠다.
646년에는 황룡사(皇龍寺)가 완성되었다.
황룡사는 553년(진흥왕13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646년(선덕여왕14년)
에 완성된 대사찰이다. 공사기간이 93년에 이른다. 커헉~~
이때 황룡사9층목탑도 완성된다.
황룡사 9층목탑은 높이가 224척(약 74m~80m)이다.
김춘추,김유신과 같은 인재를 거느리고 삼한통합의 기초를 닦았다.
여왕은 미리 죽을 날을 예언하고 "짐이 죽거든 도리천에 묻어달라"
고 하니 신하들이 그곳이 어디인지를 몰라서 물은즉 "낭산 남쪽이다"라
했다. 그날에 이르니 여왕이 붕어했으므로 군신들은 낭산양지(狼山陽地)
에 장사 지냈다. 뒤에 문무왕이 여왕의 능아래에 사천왕사를 창건했는데,
불경에 이르기를 "사천왕사위에 도리천이 있다."했으므로 그제서야
모두 여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그외에도 선덕여왕관련 이야기가 더있으나 생략하고..
선덕여왕릉은 둘레가 73m의 원형봉토분으로 아래쪽은 자연석으로
2단의 보호석을 쌓았다.
여왕은은 달랑 봉분만 있다. 장식물은 없다.
여왕릉 주위에는 수백그루에 소나무들이 여왕릉을 호위?하고 있다.
선덕여왕릉은 사적182호이다.
16. 낭산을 넘어 보문벌로..
선덕여왕릉을 한바퀴 둘러본다.
그냥 평범한 신라시대 고분이다.
여왕릉을 둘러보고 다시 오던길로 갔다.
소나무밭을 지나고 아낙네가 있던 밭을 지나
아까전 갈림길로 왔다.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가면 능지탑,중생사가 나오고 오른편으로 가면
보문벌,보문동이 나온다.
나는 오른편으로 간다.
오른편으로 좀 가니 야트막한 고개가 나오고 그 고개를 넘으니
보문벌이 보인다.
보문벌은 보문동지역의 넓은 평야지역을 말한다.
고개를 넘으니 넓은 논과 밭이 내앞에 펼쳐지고..
좀 가니 3거리가 나오는군.. 나는 왼편으로 간다.
보문벌을 넘어 멀리 진평왕릉이 보인다. 물론 그곳도 갔지롱..
왼편길로 좀 가니 마을이 나온다.
마을이름은 황복마을.. 이곳에 유명한 문화재가 하나 있는데..
능지탑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길은 평범한 시골길이다.
산과 논,밭,마을등 시골풍경을 마음껏 느낄수가 있다.
마을에 이르니 뒤편에 그 유명한 무엇인가가 보인다.
마을을 돌아서 그곳에 갔는데..
17. 황복사지(皇福寺址)와 3층석탑..
그곳은 황복사지3층석탑이다.
다른말로는 구황동3층석탑이라고 부른다.
황복사는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화엄종을 만든 의상대사가 머리를 깎은곳으로 유명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53대왕 경명왕을 이절에서 화장했다고 하였고,
삼국사기에는 경명왕을 황복사 북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황복사지 3층석탑은 국보37호로 신라시대 대표적인 석탑이다.
탑의 높이는 7.3m, 기단폭 4.2m로 2중기단위에 세워진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이다.
1943년에 이 탑을 해체 수리할때 2층옥개석에서 값진 유물이 나왔는데
그중 금동여래좌상은 국보79호로 지정되있다. (현재 서울국립박물관에 소장중)
이밖에도 유리구슬,팔찌,금실,은등이 큰 도금청동함 속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사리함뚜껑 내면(內面)에 상세한 내용이 기록되있는데
그 내용은 -> 이 탑(황복사지3층석탑)은 효소왕1년(692년)에
선왕인 신문왕이 붕어(왕이 죽음)하자 왕의 성령을 위해 건립했고
그 후 효소왕이 붕어하자 다시 성덕왕5년(706년)에 신문왕과 효소왕을
위해 사리,불상등을 탑안에 넣고 아울러 신라왕실의 안녕과 태평성세를
기원한 것이다.
이탑은 국보37호이다.
나원리5층석탑(국보39호)과 양식이 조금 비슷한거 같다.
석탑뒤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고 진평왕릉이 멀리 보인다.
18. 보문벌을 가로지르다..
황복사지3층석탑을 둘러보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는 저멀리 보이는 진평왕릉과 보문동마을에 가기로 했다.
농로를 쭉따라 가니 3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편으로 가면 국립경주박물관쪽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가면
진평왕릉이 나온다.
당연히 오른편길로 가지.. 오른편길은 보문벌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10여분정도 걸으니 보문동마을에 서쪽에 이르고
여기서 남쪽으로 진평왕릉이 보인다.
이제 다왔군..
남쪽길로 가니 진평왕릉이 나오고 그주위를 오래된 나무들이 호위?하고 있다.
19. 진평왕릉(晋平王陵)
진평왕은 신라 26대왕이다. 재위기간은 579-632년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거서간(-57~4)다음으로 재위기간이 길다.
진평왕은 진흥왕의 손자이다.
진평왕은 덕만공주,선화공주(백제무왕의 부인),천명부인등 3명의 딸을
두었다. (더 있을수도 있음..)
진평왕릉은 원형봉토분으로 평지에 만들었다.
왕릉주위에는 오래된 나무 10여그루가 왕릉을 호위하듯 서있다.
진평왕릉에서 낭산쪽으로 2km정도(내가 왔던길로 가면 된다.)거리에는
그의 장녀인 선덕여왕릉이 있다.
진평왕릉은 사적180호이다.
심심해서 고분위로 올라갔다.
마치 등산을 하는 기분이군..
고분꼭대기에 이르니 사방이 훤하게 보인다.
서편으로 낭산과 황복사지석탑 남쪽으로 넓은 보문벌평야
동편으로 명활산과 보문동마을 북편으로는 경주시내가 보인다.
고분에서 내려와서 바위같은데에 잠깐 앉아서 쉬었다.
20. 보문동마을..
진평왕릉을 뒤로 하고 보문동마을로 갔다.
마을에 이르니 경주시내로 가는 경주좌석버스가 경주시내로 가는군..
여기도 경주시이다. (경주시 보문동)
마을 길은 1차선포장도로이다.
길을쭉따라 남동쪽으로 간다.
좀 가니 버스회차지로 생각되는 공터가 나오고 부근 가게에 가서
음료수를 사먹으면서 버스가 몇시에 있냐고 물어보니
7시에 있다고 커헉~~ 그때 시간 14시경..
가게주인이 보문동입구로 나가서 버스를 타라고 그러는군..
거기가면 시내로 가는 버스가 많다고..
가게를 나와서 길을 따라 아랫쪽으로 걸어갔다. (물론 지금까지 걸었다.)
좀 가니 꽃으로 둘러싸인 고분이 하나 나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