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태백산 삼천 년 주목나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썩어 천년이면 삼천 년이다. 생성에서 소멸까지의 세월이 인생사에 비해 오래임은 물론이려니와, 그 모습이 내내 의젓하고 아름답다. 향기도 있지만, 유난히 속살이 붉어 주목이라고 하는 나무가 그것이다.
또 열매까지도 선홍빛이고, 톱밥을 우려 붉은색 염료로 쓴 이 주목은 3억 년에서 2억 5천만 전의 고생대 마지막 시기인 페름기에 처음 나타난 침엽수이다. 2백만 년 전 우리 한반도에 새 둥지를 틀었고, 십수 번의 빙하기에서 혹독한 추위를 꿋꿋하게 이겨냈다.
그러기에 훌쩍 천년을 넘긴 평양의 낙랑고분, 경주의 금관총, 지린성의 고구려 환문총 등 고분 속 관이 주목나무이다. 그 고분의 주인은 이미 오래전 티끌이 되었지만, 관은 온전히 남아 인간사의 욕망과 권력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가를 말 대신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죽음길에서까지 사랑받은 이 주목은 일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에서 주로 자라기에 한반도 남쪽에서는 설악, 태백, 소백, 덕유, 지리, 한라산 등에서 볼 수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내려온 백두대간이 태백시에서 힘껏 솟구치니 태백산이고,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소백, 속리, 덕유산으로 이어지다 지리산에서 멈춘다. 이곳 태백산은 낙동강, 한강, 삼척 오십천의 발원지이다. 태백시 황지는 낙동강 발원지이고, 거느리는 대덕산에는 한강 발원지 검룡소가 있다. 그리고 태백시 삼수령에서 흘러간 물이 발원지 백병산의 물과 만나 삼척시를 가로지르는 오십천이 된다.
또 이곳 일대는 장성탄광을 비롯한 많은 탄광이 있다.
조선 6대 왕 단종이 여기 태백산 산신령이다. 단종이 죽임을 당하던 날, 어떤 사람이 영월 관아에 갔는데, 단종이 백마를 타고 동쪽 계곡으로 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느냐?’ 하니, ‘태백산으로 간다.’고 했다 한다. 또 단종이 죽은 뒤, 영월 동강 ‘어라연’의 신선이 되려고 했다. 그러자 물고기들이 떼로 나타나 ‘태백산 신령’이 되어야 한다고 간청하였기 때문이다.
또 있다. 단종이 영월에 있을 때 훗날 한성부윤을 지낸 추익한이 태백산 머루를 자주 진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자신은 머루 등 산과일을 챙겨 영월로 가고 곤룡포에 백마를 탄 단종은 태백산으로 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 알아보니, 그날 단종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그런 연유로 산 정상 즈음에 단종을 기리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가 비각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산 위에는 천제단이, 산 아래에는 단군성전이 있다. ‘신라는 태백산을 삼산오악 중의 하나인 북악이라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는 기록처럼 동악 토함, 서악 계룡, 남악 지리, 북악 태백, 중악 팔공산이 신라의 오악이다.
백두산이 태백산이다. 또 묘향산도 태백산이다. 그러니까 수천 년 천제를 올린 민족의 성산 태백산이 셋인 셈이다. 그중 천지가 있는 백두산과 우리 민족의 시원 터인 톈산(천산) 줄기의 보거다산 천지는 같은 이름이다. 파미르 고원의 톈산을 나와 아리랑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온 동이족은 백두산 천지에 이르러 고조선과 청나라를 일으켰다. 하지만 압록강 아래로 내려온 고구려는 묘향산 태백에 머물렀고, 신라는 북악 태백산을 넘지 못했다. 2백만 년 전 한반도에 들어와 대대손손 삶을 이어온 주목나무가 그 역사를 알겠지만, 자꾸만 세월 속에 작아진 듯싶어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태백산 자락에서 이 터를 지켜온 삼천 년 주목나무의 의연한 기개와 기상에, 어찌 움츠리고 있으랴? 눈을 들어 백두산 천지 넘어 톈산 천지까지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