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 느즈막한 오후 우리 집 삐걱대문 슬그머니 밀리더니 순덕이 얼굴 쏘옥 들어온다. "울 엄마가 니하고 자갈치 시장에 같이 쫌 갔다 오라 카는데...!" 순덕이 혼자 심부름 보내는 게 내심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이게 웬 떡이냐 싶지만 체면상 그럴 수는 없는 이치 "내 숙제하는 중인데...!" "그라몬 할 수 없고...야아! 그런데 니 고래고기 묵어봤나?" "어 묵어봤다." "울 엄마가 자갈치 시장에 가서 고래고기 쫌 사 오라 카는데 내 혼자 갈라 카니까 좀 무서바서...!" "무섭다꼬? 그라몬 같이 가야제! 자갈치 시장이 열 개라도 같이 가야 하능기라!"
우리 동네서 자갈치 시장까지 오릿길 남짓 늦여름 햇살 서산에 기울어 순덕이랑 집을 나선다. 골목어귀서 어슬렁거리던 빡빡머리 녀석 몇 놈 의아한 눈길로 우릴 바라보네. "녀석들 감히...?" 우쭐해진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종종걸음 재촉한다. 얼마나 왔을까? 아무 말 없이 걷는 순덕이 콧등엔 송글송글 땀방울 맺히고 순덕이 손 잡아볼까 말까 가슴 조이는 동안 어느새 동광동 사창가 길 입구에 다다른다. "순덕아! 근데 느그 엄마는 와 내캉 같이 갔다 오라 카시드노?" "어 그래! 우리 동네서 공부 잘 하고 착실한 게 믿을 놈 오로지 니 하나 뿐이다 카시더라!" "진짜가? 하기사 뭐...!" 내 인생에 지금같이 가슴 뿌듯한 순간이 언제 한번이라도 있었다더냐? "내도 사실은 탁구쟁이 야구쟁이 별로 안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니가 젤 맘에 든다 아이가!" "공부는 무슨...? 사실은 내도 순덕이 니가 젤로 이쁘고 맘에 드능기라!" 순덕이가 날 제일 좋아한다니 나 또한 순덕이를 제일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하다니 양쪽 어깨에서 날개가 돋아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우리 동네에는 빡빡머리 녀석들 많기도 하지만 사실 공부는 내가 제일로 소문나 있는 게 사실이니까. 어찌 이 좋은 기회를 놓칠소냐! 순덕이 손을 슬그머니 잡으니 조그마한 손이 무척 아담하게 느껴진다. 한참을 망설이던 손이라 그런지 내 손은 땀으로 촉촉하다. 순덕이도 내치지 않고 내 손을 가만히 쥐어오네. 멀리 하늘엔 갈매기 떼 무리지어 날고 어떤 놈은 하늘 높게 떠 우리를 근심스러이 내려다 보고있다. 누가 저 놈을 일러 죠나단 리빙스턴이라 이름했나?
그 무렵 자갈치 시장 포경선이 한참 드나들 때인지라 산더미 만한 고래들이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고 "열 두 가지 맛 난다는 바로 고래고기다!" 하시며 푸줏간 아줌마 커다란 고래 몸뚱이 한 쪽을 뚝 떼어 내더니 회포대 종이로 차곡이 싸주신다. 해 떨어진 부둣가 좌판에는 삶은 고래고기 연탄불에 꼼장어 타는 연기 바다에서 갓 올라 온 알 듯 말 듯한 온갖 해산물에다가 이리 저리 몰려든 사람들로 끝없이 이어져 왁자지껄하다. 나는 순덕이랑 나란히 좌판에 앉아 비장하게 아껴오던 용돈으로 삶은 고래고기 한 접시 주문한다. "아이고마! 우찌그리 이쁘게들 생겼노! 니가 누나가?" 좌판 아줌마는 순덕이를 누나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라예! 우리 친굽니더." 잽싸게 내가 대답한다. "아이고 마...! 천생연분이구마. 하기사 우리 혼인할 시절에도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한 두 살 정도 많았었제...자 고래고기 마이 묵고 난중에 결혼까지 하그라 잉!" 하면서 고래고기 한 웅큼 집어 접시에 덤으로 얹는 표정이 무척 다정하다. 아줌마는 순덕이를 나보다 한 두 살 위로 보시는 게다. 결혼까지 하라는 말에 좀 멋쩍어졌지만 기분이 무척 새롭다. 얼굴이 빨개진 순덕이 수줍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니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아줌마의 눈빛 또한 더욱더 다정다감하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다 캐도 느그덜 같은 학생들 보머는 힘이 절로 난다 안카나? 어서들 마이 묵그라!"
어슴푸레 어두워진 자갈치 시장을 뒤로하고 전차 길 따라 발길을 재촉하니 이미 남포동 광복동 카바레 네온사인들이 휘황찬란하다. 자연스레 잡은 손 하마 놓칠세라 발 맞춰 뛰고 건너 동광동 사창가 길을 지난다. 한 쪽 귀퉁이에서 입술 빨간 아가씨들 몇이 지나가던 한 아저씨를 에워싸고 마구 끌어당긴다. 괜히 죄인된 심정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그 길을 지나며 우린 숨이 막힐 지경이다. "수 순덕아! 저 여자들 와그라노?" 하고 묻는다. "야아! 와그라기는...?"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멀게 느껴지는 사창가 길 "그런데 니 저번에 배가 마이 아픈 모양이던데 요새는 괘안나?" "니는 별거를 다물어 본다. 인자 고마해라. 참말로 얄궂데이!"
다다른 집 앞 행길엔 가로등도 하나 없다. 골목 어귀서 우릴 기다리던 순덕이 엄마 은근히 걱정이 되신 모양이다. 이내 순덕이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뿌리치고 내 다른 한 손에 들려있던 고래고기 봉지를 나꿔채더니 엄마한테 쫓아가 불쑥 내민다. "어무이! 다니 왔심더!" "아이고 마! 와이리들 늦었노?" 고래고기 봉지를 냉큼 받아들며 걱정 반 기쁨 반이시다. 이내 내게 다가온 순덕이 엄마 양팔을 벌려 큼지막한 가슴에 얼굴을 꼬옥 껴안더니 "수고 마이했다. 아가 와이리도 이쁠꼬! 내사 마 장래 사위 삼아야갔다!" 벅찬 감동에 다시 한번 목이 꽉 메여온다. "순덕이랑 고래고기도 묵고 왔심더!" "온냐! 참말로 잘했데이!" 하시며 빡빡머리를 쓰다듬는다.
오늘은 순덕이 손잡고 처음 데이트 한 날 순덕이 엄마 꼭 우리 엄마 같은 날 내일 빡빡머리 녀석들에게 자랑해야지. 특히 탁구쟁이 호건이 녀석에게... 일요일인 내일 순덕이랑 어디로 가 볼까 밤 새워 부푼 가슴 잠 못 이루네.
고래고기 정말 맛있죠~~~~먹고싶어지네요.하지만, 넘 많이 드시면,반납하는경우가 생깁니다.포항죽도시장 한귀퉁이에서도 팔고요,감포 방파제입구에 작은 간이식당같은곳에서도 팔아요.겁나게 비싸데요.쇠고기젤 비싼부위의 약 3배정도의 값이지요..여러가지의 맛을 볼수가 있지요.다구님덕분에 고래고기를 또 생각하네요.
첫댓글 참 좋을때네요^^ 얼마나 가슴이 설레일까....
고래고기 울산에서만 나는거 아니었어요? 몰랐네... 자갈치시장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사기꾼 자갈치 아줌마 생각나서 영...
맞아요^^ 저 그때 부산이 싫어졌어요^^
고래고기는 어떤 맛인가요? ^^
결국 사랑의 시작은 고래고기 부터이군요.....첨으로 사라하는 순덕이의 손을 잡고 얼마나 가슴이 콩콩 뛰었겠는가...거기다 순덕이 엄마로 부터 사위삼겠다는 그말은 몇일 잠못들겠네....고래고기 사러 잘갔구많 ㅎㅎㅎ 자갈치시장은 사랑의 시작 인기봅니다....
어머나 .. 엄청 발전 했네요.. ㅋㅋ 순덕이 엄니가 사위 삼는다고 하니 기분 째지는 날 지금 생각해도 좋습니다.ㅎㅎㅎ
녜!~~~~~ 저도 고래고기맛 모릅니다!~~~~~~~~~~언제 꼭 한번 맛 봐야겠어요!~~~~~~
홍다구님 고래고기 경상도말로 돔배기라고 하죠 지금도 엄마가 노릇노릇하게 구워 주시던 그 맛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근데 서울서는 그 맛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순덕님과의 관계발전 기대합니다.
지금 자갈치에서는 삶은 고래고기밖에 맛볼수 없고요...울산방어진인가 포경선 전용항구에 가면 육회도 맛본다죠...지금도 이야기 내용에 푹 빠져있답니다. 음악과 함꼐...정서순화차...
저런 가슴 설레임이 사라진 것이 안타깝습니다. 수고하세요...
울산에서도 고래고기의 오리지날은 장생포 항입니다~~~~~~ 부위마다 열두가지 맛이 난다는거지요
아하 장생포항, 그렇지요. 많은 포경선들이 묶여있을때 함 가봤죠. 그곳도 추억서린곳입니다.
순덕이... ^^
고래고기도 술 안주로 좋은가요? ㅎㅎㅎ
자갈치엔 요즘 고래고기는 없읍니까.......얼마나 맛있을 래나...ㅉㅉ
미소천사님 돔배기는 상어 고기이고 고래고기는 말그대로 고래고기이빈다. 그리고 포항 죽도시장에가면 고래고기 많습니다. 생고기는 없지만 삶은고기는 헐하고 맛있고요.
아~~~~다경님 값이 헐합니까.....거기 어딘지 상호좀 가르켜 주세요....맛좀보게요..
다경님 그런가요 난 고래고기가 돔배기인줄 알았습니다 아이 부끄럽어라...
오리지날 고래고기 육회먹어보면 소고기육회는 도시락들고 따라와야 됩니다..정말맜있어요...
그러시지들 말고 근혜사랑에서 고래고기 시식 모임을 한번 만들어 보심이 어떨까요?
순덕이..?정겨운이름...가슴에쏴...보고싶다
고래고기 정말 맛있죠~~~~먹고싶어지네요.하지만, 넘 많이 드시면,반납하는경우가 생깁니다.포항죽도시장 한귀퉁이에서도 팔고요,감포 방파제입구에 작은 간이식당같은곳에서도 팔아요.겁나게 비싸데요.쇠고기젤 비싼부위의 약 3배정도의 값이지요..여러가지의 맛을 볼수가 있지요.다구님덕분에 고래고기를 또 생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