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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범학교 출신으로 선생으로 사는 삶에 대해 항상 자랑으로 생각하고 보람을 느낀다. 19일(수) fm99.1mh로 방송되는 국악방송을 9시-11시까지 생방송하고 녹음을 하나 한 다음12시에 부산으로 향했다. 20만원에 수고할 사람을 구하여 부산국립국악원까지 갔는데 5시반에야 도착하였다. 7시반에서9시까지 춤공연을 사회했는데 워낙 춤을 좋아하는 부산사람들이라 내 얘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경청하였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공감을 표해 주었다. 나는 내일 진주에서 강의하게 되어있었으므로 마산에 가서 잘 생각을 하고 차를 몰아 낙동강을 건너 마산으로 향했다. 헌대 밤길이라 차가 많고 공사구간이 많아 마산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진주까지 가게 되었다.
20일(목)은 축제 전날이다. 진주 강의를 마치고 하동을 거쳐 불락사에 가서 쌍계사주지를 했던 상훈스님을 만나고 혼자 천천히 차를 몰며 한가한 섬진강변 길로 구례에 갔다. 강변 마을의 집집마다 감나무에 먹음직스러운 감이 주렁 주렁 열렸고 밭에도 감이 다른 과일이야 정말 풍요로운 농촌의 모습이 절로 느껴졌다. 헌데 저런 농작물 처리를 위해 일손이 얼마나 필요할까하고 생각하니 또 좀 답답하기는 했다. 나는 우선 공연장에 가서 무대설치하는 것 보면서 고칠 것 고치게 하고 사무실 직원들 격려하면서 내일 행사준비를 마무리 하였다.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구례장어구이를 쌈과 함께 실컷 먹었고 저녁은 일식집에 갔는데 회보다 전어구이가 맛 있었고 산새우 오도리 또한 물건이 좋았다. 인간문화재 이철호 상훈스님 군청 직원과 함께 저녁을 배터지게 먹고 숙소에 와서 잘 자면서 내일 구상을 했다.
21일(금)은 축제날이다. 아침 8시 한복으로 갈아입고 군수와 함께 섬진강으로 나가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잔수농악단이 먼저 강가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농악이 울리고 집사역할하는 사람들이 물동이에 한지를 덥고 새끼로 두른다음 강가로 인도했다. 위원장인 내가 먼저 바가지로 물을 세번 떠 담고 이어 군수가 세번 바가지로 물을 떠 담은 후 다시 한지를 덥고 동여맨 다음 정성껏 모시고 차에 올랐다. 화엄사입구에 있는 지리산의 소나무를 자르러 간 것이다. 이것은 섬진강과 지리산이 만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하는 의례인데 그런대로 엄숙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먼저 소나무 가지를 하나 자르고 이어서 군수가 하나 잘랐다. 그리고는 행사장에 도착했다.
오후1시부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구례향제줄풍류 공연이 있었다. 첫 공연이라 자리가 꽉 차지는 안았지만 객석의 분위기는 아주 조용하고 몰입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풍류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하나 하나 설명하니까 청성곡이 왜 아름답고 어떤 특징을 가진 것인지도 알아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연주한 김정승은 3천석했던 구례절골의 김무규 손자이고 국립국악원에서도 대금이나 단소를 가장 잘 연주하는 연주자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음악을 자주 방송으로 틀어 줄 정도로 연주를 잘 하는 연주자이다. 역시 서울에서 활동하는 신현석의 해금병창도 들어보기 어려운 좋은 연주였다. 공연은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특별무대에서 진행되고 밖에서는 잔디공간에서 학생들의 기마전이 있었는데 어린시절을 떠울릴수 있는 재미있는 경기였다.
저녁7시부터 거행된 개막식과 개막공연이 기막힌 걸작이었다. 개막식 사회는 고대출신의 한덕택에게 맡겼는데 그런대로 깔끔하게 잘 진행하였다. 내가 군수와 아침에 섬진강 물 뜨는 장면과 소나무 자르는 영상을 보고 나서 무대에서 소나무가지를 물 항아리에 꽃는 의식을 하고 내가 만든 구례동편제소리축제 송가를 구례출신의 조선하와 김형석이 가사 자막을 배경으로 멋지게 불렀는데 정말 모두를 감동시키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위원장인 내가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송가가 끝나고 내가 무대에 올라가 "지금으로부터 2011구례동편제소리축제 개막을 선언합니다!"하고 외치자 팡파례가 울려퍼지고 뻐버벙펑 축포효과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내가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동편제 소리축제의 의의와 방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연을 이끌어갔는데 구례출신 젊은 아가씨들로 구성된 4명의 소리꾼이 '보렴'을 불렀는데 서울의 어떤 팀의 공연보다 보렴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정말 멋진 노래였다. 모두 내가 남원국악고등학교 교장할 때 그 곳에서 공부했던 제자들이라 더욱 자랑스럽고 기분 좋았다. 나는 이들을 스타로 만드는 것이 구례의 장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러자면 구례군민 여러분들이 저들을 사랑하고 이런 음악을 높이 평가하는 안목을 가져야 된다고 얘기 하니까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어서 경상대학 무용과 학생들 5명의 태평무와 박봉술명창의 손자 박명언의 판소리와 이난초명창의 판소리가 있었고 이승희의 품격있는 살풀이 춤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준문화재 김일구와 김영자의 판소리를 들은 다음 다시 구례출신 4명과 이난초가 나와 전라도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육자백이 자진육자백이 삼산을 반락 개고리타령까지 잡가 한 바탕을 불렀는데 정말 인기절정이었다. 내가 그들의 실력과 그들에게 거는 기대와 장래 대해 얘기 했기 때문에 모두들 그 젊은이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듯 하는 눈치였다.
첫날 행사를 이렇게 끝내고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내 손을 잡으며 늘 매스컴으로 만났던 최종민교수님을 이렇게 위원장으로 만나니 너무나 감격스럽고 기쁘다고 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22일(금)아침 일찍 전국문화원연합회 회장인 최종수씨가 전화를 하여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꼭 만나자고 한다. 화엄사 앞에 있는 레스토랑 지리산옛이야기에서 구례문화원장과 셋이 회동했다. 본래 잘 아는 사이인데 아주 정색을 하면서 꼭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한다. 엊 저녁 동편제소리축제 송가를 보고 들으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과천에 추사기념관을 짓고 행사를 계속해 나갈 것인데 그 때 부를 노래도 엊 저녁과 같은 식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나야 그런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더욱 재미있는 일이니 그렇게 하마고 답변하고 담소를 하다가 행사장으로 향했다. 1시부터 옛날 동편제 명창 송만갑, 유성준, 장판개, 이선유 명창의 소리를 복원하여 발표하는 공연이 있을 예정이었다. 대학원생들로 팀을 짜서 시도하는 것이라 내가 직접 연습을 시켜야 된다. 모두 학부모들과 함께 와서 식구도 많은 앞에서 연습을 시켰다. 한양대출신 유지수가 장판개의 진국명산과 제비노정기를 부르고 서울대 출신 왕서은이 이선유명창의 수궁가를 불렀다. 목원대출신의 김형석이 유성준명창의 적벽가를 불렀고 중대출신으로 내게 공부하는 김주영이 송만갑소리를 재현했다. 연습을 시키느라 나는 점심을 대충 먹고 공연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젊은이들의 소리가 청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전남대 전인삼교수의 박봉술제 춘향가 복원발표를 한 시간 들었다.
4시부터는 구례 출신의 명인 서공철의 제자 강정숙인간문화재가 서공철류의 가야금산조를 연주하는데 내가 서공철에 대해 얘기하면서 구례는 대단한 명창 송만갑, 유성준, 박봉술이 이곳 출신이고 산조를 남긴 서공철 명인이 이 곳 출신이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큰 자산을 가진 것이냐 하면서 그들 음악가가 미래 구례의 위상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존재들인가를 인식시켰다. 무엇보다 서공철명인이 1911년~1982년이어서 금년이 탄신100주년이니 반드시 기념공연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했더니 모두들 동감하여 그렇게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매천야록을 쓴 매천도 구례출신이니 구례야말로 유명인사가 많이 나온 곳이다. 강정숙 일행의 가야금병창을 잘 들은 다음 김일구 김영자가 벌이는 토막 창극 '어사와 나뭇꾼'을 6시까지 보았다. 그리고 잠깐 리허설을 한 다음 피아노고수 임동창과 함께 하는 동편제 판소리 공연으로 들어갔다.
박경랑의 굿거리 춤은 mr을 사용하여 추면서 마구 들어차는 객석을 어느 정도 정리하였다. 이어 구례출신 유순자일행의 부포놀음을 했는데 상당히 수준높은 공연이었다. 신나는 농악과 두 사람이 엮어내는 부포춤이 재미 있고 높은 기량을 보여주어 모두들 큰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 다음 내가 악기는 음악하는 도구인데 임동창은 피아노를 가지고 국악을 하기 때문에 임동창은 피아노국악인입니다. 하면서 임동창을 불러내었다. 아쟁연주의 대가 백인영이 자리하고 이내 두 사람의 즉흥연주가 시작되었다. 아쟁이 시나위 가락을 내어 서서히 분위기를 고조시키니까 피아노는 절묘하게 그 사이에 액센트를 주면서 멋진 리듬을 연주하니까 모두들 "야 피아노가 저렇게 멋진 음향을 만들어 내며 국악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구나"하면서 탄복하는 눈치였다. 대단한 음악으로 청중을 휘둥그렇게 하고 엄청 빠른 패시지를 통해 온통 크라막스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다음 한 바탕의 즉흥연주를 끝내니까 모두들 앵콜을 웨쳐대고 박수를 끊이지 않는다. 임동창은 넉살 좋게 다시 피아노에 앉아 칠갑산을 유도하고 백인영도 아쟁으로 칠갑산을 켜기 시작했다. 금방 공연장은 칠갑산 노래로 떠나갈 것 처럼 한 목소리가 되어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노래를 두어곡 더 하고 다시 분위기를 바꾸어 이생강이 악기 세 개를 들고 무대로 나갔다. 처음 소금으로 고음역의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임동창 또한 베토벤의 곡을 거기에 맞게 변주하며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생강의 음악은 악기를 피리로 바꾸고 유장한 정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또 피리로 아! 목동아를 멋지게 연주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피아노는 더 멋지게 그런 음악의 효과를 극대화 하도록 대선율을 만들며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판소리의 전인삼과 채수정 과도 어울리고 나중에는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부르니까 모두들 최고조의 축제 분위기 되어 드디어 진도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임동창이 나를 불러내어 나도 나가서 민요를 부르고 다시 아리랑을 부르는 등 한 껏 분위기가 고조되니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고 무대 앞에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 동안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판이 연출되었다. 나는 마지막 그런 분위기를 주체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이 이 땅에 살면서 추수를 끝내고 영고라는 이름으로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축제를 벌였던 그 축제의 모습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 목소리 만세를 부릅시다. 하면서 구례군민 만세! 하니까 따라 만세 했고 동편제축제 만세 하니까 역시 따라 만세를 불렀다. 마지막은 대한민국 만세를 하여 만세 삼창을 하면서 "여러 분 얼마나 시원하고 좋습니까?" 우리 매일 만세를 부를 수 있도록 무엇인가 성취하고 신나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야!!! 하면서 2일째 축제를 마쳤다. 군수를 비롯하여 많은 군민들이 나를 찾아와 얼싸 안고 좋아한다. 또 고맙다고 한다. 많이 배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선물을 가져와 주기도 한다. 정말 행복한 축제의 날이었다.
마친 다음 서울에서 내려 온 내 합창단 사람들 6명을 내 숙소에 방 배치를 하고 야식집으로 대접하기 위해 갔다. 모두들 내년에는 단원 모두를 데리고 와서 축제 3일동안 계속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긴 이런 맛을 그들 일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까 그럴만도 할 것이다. 내년에는 아마 훨씬 많은 서울 사람들이 몰려 오리라 생각한다. 나와 함께 모임을 하는 이달곤, 류우익, 정종욱, 김달중, 오세정, 배규환, 이영옥, 최인훈, 한상준, 최영명, 윤호미, 안청시 등도 내년에는 꼭 초청해달라고 회장이 말했으니까 올 것이다. 오늘도 대전 거창 남원 창원 등지에서 여러 사람이 왔고 서울과 인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23일(일) 서울 손님들과 아침일찍 화엄사에 갔다. 절구경도 좋았지만 그 맑은 공기와 단풍이 볼만했다. 절을 구경하던 아주 점잖게 잘 생긴 분이 나를 보더니 인사를 한다. 누구냐고 했더니 구례출신으로 인천에 사는데 엊 저녁 축제를 보고 너무나 감격했다고 나를 존경한다고 하면서 구례를 위해 많이 가르쳐 주고 축제를 발전시켜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침식사를 하려거든 전주식당으로 가면 음식이 괜찮다고 한다. 하여 우리 일행이 전주식당에 갔는데 정말 밑반찬과 콩나물국밥과 모주가 맛 있었다.
나는 11시부터 시작되는 구례 네개 부락에서 나온 상여소리, 목도소리, 산아지로구나, 액맥이소리 등을 경연식으로 할 것에 대해 설명하고 토속민요의 중요성과 구례 민요채집했던 과거 경험등을 얘기하면서 경연을 진행했다. 심사는 중대정명호교수 목포대 교수 그리고 문화원원장이 맡아 주었는데 일등은 상여소리에게 돌아갔다. 헌데 우리문화유산 중 토속민요는 엄청난 재산인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전승이 끈겼기 때문에 이들을 재현하면 큰 재산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점을 설득하였더니 내년에 나오겠다는 마을이 몇 곳 있었다. 하여간 축제의 성과는 이런 저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어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어떤 분이 찾아 오더니 자기는 죽염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내 손을 잡는다. 나도 느끼는 바가 있어서 얘기를 좀 했더니 무조건 자기 공장에를 가잔다. 나는 장어를 좀 먹고 가자고 하여 장어를 함께 먹은 다음 그 사람의 공장에 가 봤는데 죽염 작품이랄 수 있는 것이 엄청 많다. 무척 신기한 모양의 죽염 덩어리들인데 모두 그냥 제작과정에서 자연으로 만들어진 것이란다. 헌데 완전히 무슨 조각품 처럼 모양이 아름답고 신기해 보였다. 가격도 엄청 많이 나간다고 했다. 나에게 꼭 줄 것이 있다고 하며 모양이 아주 잘 생겼으면서 덩치가 조그마한 것을 상자에 담긴 그대로 차에 싣더니 내 차에 옮겨 주는 것이었다.
저녁 폐막공연은 요즘 아침마당을 통해 유명해진 내 제자 남상일이 사회를 하고 서울의 컨템포러리국악관현악단과 여러 그룹이 주로 퓨젼국악을 연주했다. 연주는 어느 정도 수준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이 서양식과 대중음악식이 뒤섞인 공연용 프로그램을 연주하니까 객석은 일방적으로 관람만 하고 끝났다. 각 팀의 변화있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을 듣는 것은 괜찮았지만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끝난 다음 좀 더 국악적인 내용이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진행하는 순 국악식 내용을 수준높은 해설과 함께 듣던 청중들이 여러가지 점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것으로 생각한다. 군수부터 내년에는 폐막공연의 내용을 판소리로 하면 좋겠는데요 하면서 내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내가 바라던 대로 된 것이다. 저들의 안목이 이틀 동안에 그 만큼 변했다는 것이 큰 보람이었다.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여간 나는 3일간의 행사 하나 하나 내 손이 안 간 것이 없는데 정말 자랑스럽고 신나고 보람있는 내용들이었다. 내년에는 예산도 더 주겠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생각하고 준비하여 더 멋진 소리축제가 되도록 해야겠다. 폐막공연 후 나는 다시 무대로 나가 구례동편제소리축제의 비젼에 대해 이야기 하고 폐막선언을 하므로서 축제의 모든 순서를 끝내고 내년을 기약하였다.
첫댓글 교수님의 행복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소리축제의 위력이 대단한것 같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서 관람을 하는 경험을 해야겠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소식을 자연학교에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번 정선 갔을 때 많은 도움 받았는데 - - 늘 신세만 지고 오는 처지입니다만 그래고 그곳이 또 하나의 고향 같아 좋습니다. 언제든 그 곳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석선생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답니다.
그 곳 시설 등이 조금씩 발전하는 것 같아 좋고 더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니까 또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