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릴레이, 고향 친구 자랑] (13번째)
임명희 친구에 대한 추억
- 가을을 사랑하는 철학자 -
윤승원 청양 장평 출신, 수필문학인,『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저자
임명희 친구가 카톡방에 모처럼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단체 카톡방에 게시물을 올리는 일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적조했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한 ‘안녕!’정도의 반가운 인사로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임명희 친구가 올린 오늘의 게시물은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안부 차원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손짓’이 느껴집니다. 남자의 손짓이든, 여성의 손짓이든, 상관없습니다. 가을의 손짓은 ‘부름(여보세요)’입니다. ‘부름’은 그리움의 구체적인 몸짓이지요. ‘부름’이 있으면 마땅히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댓글 형식으로 이렇게 응답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침묵해도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댓글에 유독 인색한 게 이곳 초등학교 동기생 단체 카톡방이지만, 저는 그래서 더욱 적극적인 댓글 ‘응수’를 하고 싶어집니다. ‘댓글 응수’는 부름에 대한 정직한 학생의 응답과도 같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임명희 친구가 소개한 오늘의 시는 김희정 시인의『가을은 바람둥이에요』입니다.
가을은 바람둥이에요
김희정
가을은 흔들흔들
가을 벌판에 가서
흔들흔들 벼들과
같이 춤추고
살랑살랑
단풍잎 은행잎과
함께 뛰어 놀지요.
그리고 한들한들
코스모스 아가씨와
몰래몰래
사랑 나누는
가을은 바람둥이에요.
깊어 가는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시입니다. 어려울 것 없는, 즐겁게 읽히는 시입니다. 가을의 서정(抒情)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자연이 내 가슴에 안기면 시어는 저절로 샘솟듯 만들어집니다.
그 시어는 가슴에만 묻어 두지 말고 밖으로 표출해야 합니다. 입으로 웅얼거려 봐야 제 맛이 납니다. 가을의 마력(魔力)이지요. 임명희 친구가 올린 이 시를 저도 세 번쯤 거듭 웅얼거려 봤습니다.
이 계절에 이런 시를 임명희 친구가 친구들에게 읊조리게 만드는 까닭이 무엇인가요? 인생의 ‘맛’과 ‘멋’을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을 통해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전파하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임명희 친구는 ‘사랑의 전령사(傳令使)’가 아닐는지요. 가을을 남달리 사랑하는 전령사 말입니다. 들판에서 흔들거리는 벼[禾]들과 이 계절에 어딜 가든 만날 수 있는 단풍잎과 은행잎, 그리고 코스모스를 통하여 전하고 싶은 진정한 밀어는 무엇일까요?
답은 시의 맨 끝 연에 있습니다. <몰래몰래 사랑 나누는>에 있습니다. 바람둥이가 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가을 탓입니다. ‘탓’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바람둥이 선물’을 받은 친구들은 이 시를 노래처럼 불러도 좋습니다. 자작(自作) 곡만 붙이면 됩니다. 운율(韻律)도 동요처럼 잘 들어맞는군요.
임명희 친구는 철학을 전공한 여성입니다. 제가 아는 임명희 친구는 인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한 지식인입니다.
임명희 친구는 충남 청양의 명문가로 잘 알려진 장평면 임(任)씨 가문의 자손입니다. 민속학계의 거목이었던 고 임동권 박사와 임 박사의 백씨(伯氏) 되시는 임동선 선생(장평면장을 지내시고, '기부문화'를 선도하시는 등 장평면 발전에 헌신하심)이 집안 어르신입니다.
임명희 친구는 성명학(姓名學)에도 능통한 철학가입니다. 지난 해 동창생 모임에서 임명희 친구가 저의 이름을 풀이해 주었습니다.
한문 이름이 아니라 한글 이름 풀이에 능한 철학자입니다. 저의 한글 이름 석 자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게 풀이해 주었습니다.
놀랐습니다. 신통했습니다. 해석이 절묘했습니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평소 저명 역술인에게 사주풀이를 더러 해 본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 지을 때, 자식 혼사 때, 사주풀이는 누구나 흔히 해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임명희 친구는 한글 이름 석 자만으로도 한 사람의 살아온 지난날과 현재의 모습, 앞으로 맞이하게 될 미래의 운수까지 해박한 철학관(哲學觀)과 지식으로 분석해 주는 겁니다.

▲ 나의 이름 풀이를 해주는 임명희 친구 모습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의 인생행로까지 예언 분석해 주는 친구. “면전이라고 해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게 아니야?”라고 했더니, 그가 특유의 넉넉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년(初年)고생은 있었지만 지금은 ‘무화과에서 꽃이 피는 이름’이야. 지달적(智達的)능력을 가졌어.”
그가 볼펜으로 상세하게 나열하면서 저의 성명 3자를 학술적(?)으로 설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좋아, 100점이야!”라는 그의 덕담에 그저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논리력을 갖춘 진지한 분석이 이른바 ‘계룡산 도사(?)’ 수준을 뛰어 넘는 혜안(慧眼)과 통찰력(洞察力)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명학에서 ‘지달적(智達的)능력’이란 13획을 뜻하는데, 친구가 분석하는 성명 풀이를 듣고 보니, 새삼 이름을 지어주신 저의 선친이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제게 이름 풀이를 해 준 임명희 친구에게 ‘복채(卜債)’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걸로 돈벌이 하는 역술인이 아니라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한 철학자이므로, 돈을 드리면 안 받을 터이니, 이번 ‘칭찬의 글’로 ‘복채’를 대신(?)해볼까 합니다.(그대도 웃네요!)
이런 사실을 대전의 한 문학 모임에서 문인들과 나누었더니, 한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윤 선생님, 저도 그 분을 좀 만나게 해주세요."
이 글의 제목이 ‘추억’이니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저는 충남에서 가장 오지로 일컫는 청양군 적곡(장평)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여군 은산중학교에 다녔습니다. 10여리가 넘는 은산중학교에 다닐 때, 임명희 친구와 같은 통학 길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통학 길,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 자갈길에서 단발머리에 하얀 에리(옷깃)가 달린 교복을 단정히 입고 진청색 가방을 든 임명희 친구가 앞서 갑니다.
저는 당시 적곡(장평)면 중추리 가래울에서 같은 동네 1년 선배인 류세영(전 대전고등학교 교사)씨와 1년 후배인 윤갑수(현재 영화배우)가 동행했고,
‘닭우리 고개’를 넘어 한참을 걸어가면 분향리에서 임명희 친구와 마주치고, 좀 더 걸어가면 관현리에서 전형근 친구와 합류합니다. 청양군과 부여군 경계인 구룡리에 이르면 길가 집에 살던 황의민 친구를 만납니다.
이렇게 여러 친구들과 통학 길에서 만나 드디어 은산중학교에 이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무려 9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녔어도 임명희 친구와는 말 한마디 건네 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제가 숫기가 없이 ‘얌전동이(?)’로 자란 탓이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50여년 만에 동기 동창회에서 임명희 친구를 만나 악수(그 여자 친구와 악수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짐)를 하고, 밥과 술을 같이 먹고, 임명희 친구가 저를 옆에 앉혀놓고 이름풀이를 하면서 다정하게 “윤승원 친구는~”이라고 이름 풀이를 이어갈 때 솔직히 황홀지경(?)이었지요.
제가 문단(文壇)에서 이런 저런 글을 써온 지 강산이 세 번 변했습니다. 저는 평소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수필이 됐든,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왔습니다.
살아가면서 따뜻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 인간미 풍기는 소소한 얘깃거리 찾기에 저는 골몰했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할아버지 소릴 듣는데, 무슨 더 큰 욕심이 있겠습니까.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는 자식, 손자에게 맡기고, 저는 ‘추억의 오솔길’을 친구들과 걸어 갈 수밖에 없는 나이입니다.
친구들과 다정하게 옛 추억의 오솔길을 걸으면서 조금 체면(?) 구기는 얘기이면 어떻습니까? 추억 속엔 그런 투박한 스토리, 속에 담아 두었던 가슴 아린 이야기, 자존심 때문에 차마 털어 놓지 못했던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즐겁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임명희 친구야말로 우리 초등학교 단체 채팅방 <칭찬릴레이>에서 앞자리에 모셔야 할 주인공입니다.
『가을은 바람둥이』뜻하지 않은 시를 읊조리게 만든 임명희 친구를 <칭찬 릴레이 13번째 스타>로 모십니다. 감사합니다.
2019. 10. 28. 가을도 깊어갑니다.
윤승원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