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따라잡기] 푸치니의 오페라
유럽 귀족 대신 게이샤와 카우보이를 무대에 올렸죠
입력 : 2024.01.29 03:30 조선일보
푸치니의 오페라
▲ 1910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한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의 한 장면. 극 중에서 교수형을 앞두고 나무 밑동 위로 올라선 엔리코 카루소(딕 존슨 역). 그 오른편으로 순서대로 에미 데스틴(미니 역)과 파스콸레 아마토(잭 랜스 역)예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아카이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4년은 오페라 작곡가 중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자코모 푸치니가 사망한 해였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작품들은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늘 최고의 인기를 자랑합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극적인 스토리, 다채로운 등장인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푸치니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답니다. 희생당하는 여성 주인공이 드러나도록 해 청중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극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독창곡인 아리아가 끝난 뒤에도 음악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도록 하기도 했죠. 푸치니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하다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어요.
동양 향한 서양의 환상을 오페라로
푸치니가 동양의 문화와 풍습을 포함해 이국적 요소들을 오페라로 표현하는 데도 공들였다는 걸 아시나요. 푸치니가 활동하던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에선 이국적인 문화에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푸치니가 만든 오페라 중 유럽을 벗어나 특별한 나라와 지역을 배경으로 삼았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푸치니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오페라 '나비부인' 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1904년 2월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이야기는 20세기 초 나가사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해군 중위 핑커턴에게서 시작합니다. 그는 일본 여성과의 단순한 계약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집안이 몰락해 게이샤가 된 15세의 초초상과 결혼식을 치릅니다. 초초상은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지만, 핑커턴은 복무 기간이 끝나자 미련 없이 초초상을 떠나죠. 초초상은 자신이 낳은 핑커턴의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을 3년 동안 기다리는데, 이윽고 나타난 핑커턴은 미국인 아내와 함께 돌아와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절망한 초초상은 아들과 마지막 이별 인사를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서양이 동양을 식민지로 삼으려 분주하던 당시의 제국주의적 시대상이 이야기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 남성이 동양 여성을 순종적인 존재로 보고 환상을 가졌던 모습이죠. 푸치니는 극 중 등장인물이 일본인의 인사법, 걷는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연기하도록 하려 했지만, 서양 관객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된 부분도 있다고 해요.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떠나간 핑커턴을 그리는 아리아 '어떤 갠 날', 밤을 새우며 설레는 마음을 담은 '허밍 코러스', 마지막을 예감한 핑커턴이 초초상의 집을 떠나며 부르는 아리아 '안녕, 꽃이 피는 집이여' 등이 유명합니다.
아리아 부르는 카우보이
이어 푸치니는 '카우보이' 캐릭터로 대표되는 미국 서부의 개척사도 오페라에 담습니다. 이후 미국 할리우드 영화 스튜디오에서 만든 'OK목장의 결투' 등 서부극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하기 한참 전이죠. 1907년 푸치니는 '나비부인'의 미국 공연을 위해 뉴욕을 방문했는데요, 거기서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황금빛 서부의 아가씨' 라는 연극을 보고 오페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푸치니는 일반적인 오페라처럼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마련하고, 작곡에 들어갔어요. 1910년 '서부의 아가씨' 라는 제목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됩니다.
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 탄광촌이 배경이에요. 술집 주인인 미니는 당차고 생활력 있는 여성이죠. 미니는 '딕 존슨'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도둑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미니를 좋아하는 보안관 랜스가 딕 존슨을 잡으러 찾아오고, 미니는 총에 맞은 딕 존슨을 다락방에 숨깁니다. 숨어있던 존슨은 천장에서 피를 흘리는 바람에 발각되고, 미니는 그를 체포하려는 랜스에게 카드게임을 제안해 자신이 이기면 존슨을 풀어달라는 제안을 하죠. 미니가 재치 있는 속임수로 랜스를 이기는 데 성공하지만, 숲속으로 도망간 존슨은 결국 다시 잡혀 교수형을 앞둔 처지가 됩니다. 미니는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존슨을 놓아달라고 간청하고, 광부들이 이를 받아들여 결국 존슨과 미니가 새 삶을 위해 말을 타고 떠난다는 줄거리입니다.
당시 오페라는 유럽 귀족 문화를 담고 있었던 것에 비해 매우 파격적인 배경과 줄거리였어요.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푸치니의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난해하고 현대적인 화성도 음악에 많이 사용해 극적인 효과를 냈습니다. 1막에서 미니가 부르는 아리아 '옛날 솔레다드에 살 때'와, 3막 존슨의 아리아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등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세계화 낙관, 세계대전으로 무너져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유작이자 미완성작으로도 유명하죠. 푸치니가 작업 중 세상을 떠나 후배인 프랑코 알파노가 1926년 마지막 부분을 완성했습니다. 위대한 작곡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역작으로 부족함이 없는 작품입니다.
중국 황제의 딸 투란도트는 청혼하러 오는 남자들에게 자신이 내놓는 수수께끼 세 가지를 풀지 못하면 처형할 것이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몰락한 타타르 왕국의 왕자 칼라프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수수께끼에 도전해 성공을 이루고, 결국 칼라프의 용기에 감동한 투란도트가 얼음장 같던 마음을 풀고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줄거리입니다. 1990년 월드컵에 앞선 스리 테너 콘서트에서 파바로티가 불러 전 세계인의 명곡이 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포함해 투란도트의 아리아 '이 황궁에서', 류의 아리아 '주인님 들어주세요' 등 투란도트에도 인상적인 명곡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푸치니의 오페라는 이국적인 문화를 낭만적으로 묘사한 사랑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죠. 근대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진행된 세계화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던 당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세계 각국이 저마다 과학기술 문명과 전통 공예를 앞다퉈 내세우면서 무르익은 당시 시대상을 푸치니가 담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고, 밝은 사랑 이야기는 발 디딜 곳을 잃었죠. 전쟁에서 벗어난 20세기 중반, 이국적 소재의 오페라가 다시 유행했을 때는 어두운 멜로디로 세계화로 인한 폐해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어요. 그래도 푸치니의 흔적은 현대 공연 예술 곳곳에 스며들어 있답니다. 예를 들어 미군 병사와 베트남 여인의 사랑을 그린 1989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영향을 받았죠.
▲ 1914년 오페라 '나비부인' 포스터. /위키피디아
▲ 1926년 오페라 '투란도트' 초연 포스터. /위키피디아
▲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 /마음산책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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