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화창한 날씨임에도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꽤 세고 차갑습니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일 정도로 대기는 맑으나 아직 봄은 봄입니다. 섬지역 특유의 맑음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곳이라 비슷한 위도의 뉴질랜드나 영국에 와있는 것 같습니다. 섬지역은 크게 덥거나 춥지는 않지만 서늘함이 4계절 내내 뼈를 으슬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내내 초록 빛이 주변을 밝히니 겨울에도 초록식물들을 접하는 건 분명 이국적 요소입니다.
주방 창 쪽이나 안방 창문 쪽으로 보이는 풍경도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라 더욱 그런 기분이 듭니다. 주방 창쪽으로 보이는 독채펜션들에서 벌어지는 움직임들을 주방일하면서 하는 수 없이 지켜보게 되는데요, 우리가 있는 5일간 손님이 몇 번 바뀌었습니다.
아침 먹는 시간이 점점 빨라져서 녀석들 진탕 먹고 보충제 다 챙겨주고, 태균이는 커피까지 다 마셨는데 8시반도 안 되었습니다. 오늘이 일요일인데도 저만 보면 제 얼굴이 밥으로 여겨지는 완이와 리틀준이는 저만 봐도 침을 꼴딱 삼킵니다. 그 기쁨을 배신할새라 잽싸게 밥차려주면 사방에서 들리는 얌얌쩝쩝 소리가 요리해준 사람 기분좋게 만들어줍니다.
주말은 어디든 관광객이 평일보다는 많을 것 같아 오늘은 주변 산책으로 대신해 볼까 합니다. 도로에서 거의 2~3km를 들어와서 앉아있는 소규모 독채펜션 단지라서 그야말로 한적함 그 자체인데 차몰고 자주 오다가다 보니 멋진 풍경이 펼쳐져서 산책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고사리 꺾는 시기라서 길 가에서 고사리 찾느라 분주한 주민들의 모습이 꽤 보입니다.
어제는 산굼부리를 갔었습니다. 아직 운동화신기에 거부감이 있는 완이는 좀더 운동화신기 연습이 필요합니다. 산굼부리에 들어서자 바이크레일에서 보여주었던 불안감이 엄습하는지 제 팔을 부여잡고 거의 밀착해서 올라갑니다. 불안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지만 그래도 밀폐되어 보이는 공간이 없어서인지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주변환경에 눈을 맞추고나니 바로 돌변, 산만하기 짝이 없는 아이로 변합니다. 뛰어가고, 운동화 벗어버리고, 위험한 곳 올라가려 하고, 분화구 경계 넘어가버리고, 마른 이파리 억세풀 입에 넣고 씹어대고, 아이고 정말 혼을 다 빼놓습니다.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완이의 산만함이 가장 곤란할 때는 아무나에게 안기려하거나 타인의 공간 침범을 수시로 한다는 것일 겁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죠. 산굼부리 기념팻말에서 사진을 찍던 33주년 결혼기념일 여행온 중년 부부가 완이의 침범에 깜짝 놀랐지만 웃어넘기고 맙니다. 다행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유수용 감각처리의 어려움으로 인한 촉각자극 추구 아이들을 너무 자주 안아주거나 신체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다 받아주는 것을 지양하라고 권하는 편인데요, 고유수용 감각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전체적으로 신체균형이 안맞고 안구실행증으로 인해 동작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기에 나이가 들어도 자꾸 의존하려고 합니다. 야외나가면 업히거나 안기거나 하는 것을 당연시하기도 합니다.
안구실행증 부작용 중에 하나가 안면인식장애이니, 안면인식장애는 지인과 타인의 구분을 못하게 해서 신체적인 의존행태가 상습화된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안기려하거나 타인의 공간에 아무렇지않게 침범하곤 합니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조치가 꼭 필요해서 아이가 약하다고 오해해서 매번 신체적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을 수정해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약하지 않습니다. 감각문제로 인해 균형을 못 맞추는 것 뿐입니다.
익숙한 환경이 되면 행동도 너무 빠르고 아무에게나 다가가게 되니 말리고 뒷처리하는 것도 참으로 힘이 듭니다. 자꾸 목소리를 높이게 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무 미안합니다. 안되겠다싶어 인적이 드문 넓다란 산굼구리 묘지보호 공간에 마음껏 뛰게 풀어놓았더니 엄청 산만하게 뛰어다니고 묘지경계담에 기어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며 싫컷 풀어댑니다.
리틀준이가 가끔 놀라운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완이챙기기, 태균이형이랑 손잡고 오기 등 멀리 보지는 못해도 가까운 사람의 역할은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곤 해서 기특합니다. 참 신기한 녀석입니다. 상황인지는 아주 떨어지는데 이런 놀라운 사회인지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태균이가 순식간의 셧터누름으로 빠르게 찍어놓은 사진 속에 저와 리틀준이의 동작은 거의 변화가 없는데 완이의 동작은 한번도 같은 게 없네요. 전정감각의 fidgeting조절 능력은 언제 생길까요?
첫댓글 대표님, 글 한 줄 한 줄 사진 컷마다 꼼꼼 읽고 바라봅니다. 저라도 가서 보조라도 하고픈 마음 굴뚝 같은데 사실 저도 짐짝인걸요.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피곤함 속에서 식사 챙기시고, 그 신실하심 흉내도 못 내네요. 곧 뵙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