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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합니다.(2014년12월31일) 卯시로 봤으나 辰시가 맞다고 판단되므로 게시글 밑에 추신을 달고 辰시로 수정하였습니다.
※모택동 1893년 양력) 12월 26일 (음력 계사년11월19일) 중국 후난성[湖南省] 샹탄[湘潭] 묘시 혹은 진시
癸 丁 甲 癸 卯 酉 子 巳
경신(36~ ) 기미(46~ ) 무오(56~ ) 정사(66~ ) 병진(76~ )
※ 정유일주는 문창,학당,천을귀인 이다. 모택동은 많은 책을 읽은 독서인이며 지식욕구가 대단했다고 한다. 조혼시키려는 집을 가출하여 학교에 입학하고 수석으로 후난성 공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마가 맑았던 소년 마오.
천수27/ 지수30 선천괘 ; 뇌지예 육2/ 후천괘 ; 산뢰이 상구
월장가시 ; 축가묘 하고 혹한기이지만 중국 후난성은 북위30도 이하이므로 '일출在卯'하여 丑命人. ※ 북위30도 이하의 지방들, 대만, 광동, 호남, 홍콩, 라오스, 배트남 등지는 동지/하지 관계없이 '일출在卯' 입니다. 태양이 좌명하고 명주 토성은 관록궁에 비입하여 권력지향적 명반이다. 癸生人 라후 천록이 관록궁에 비입하니 길상이다. 명궁을 수/금이 협하여 교양이 투철하다. 화성이 복덕궁에 묘왕하니 남성적 힘이 있다. 모택동 대장정의 고난의 시기는 丙辰대한(34~ 49)이다. 토성과 라후가 좌하였고 계도 천형이 충입(沖入)한다.
갑술년42세 1934년~ 1936년 모택동이 장개석 국부군에 쫒겨 대장정을 시작할 때만해도 그는 미약한 존재였다. 대장정을 10만에서 시작했지만 내분이 있었고 살아남은 자가 5천이었다. 대략, 일년半동안 9600킬로미터를 시시때때로 전투하면서 오로지 도보로 행군했다. 다 굶어죽고 얼어죽고 부상당해서 낙오했으니 그 고난의 행군이 얼마나 처절한 것이었나는 알만하다. 아래 지도 대장정의 루트 따뜻한 남쪽지방 병사들이 추운 북쪽으로 들어가니 적응하지 못했다.
(지도 생략)
57세, 1949년 기축년 10월에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선임되었다. 66세, 1958년 무술년에 이른바 철강산업을 위주로한 "대약진운동"의 일환으로, 농사를 축낸다며 참새 씨를 말려버렸다. 아래사진 참조. 소달구지에 잡은 참새가 가득하다. ※ 참새는 丁화로 취상된다.
(사진 생략)
참새가 사라지자 천적이 없어진 해충이 창궐하고 (다른 원인도 겸했겠지만) 바로 그 해, 쌀수확량이 급감했다. 당 해, 172만명이 아사했다. 1958년~ 1962년까지 비공식 집계 5천만명 이상이 아사했다. 시신을 뜯어먹었다고 한다. 외교문제가 생겨서 소련으로부터 비료,석유 지원이 끊긴 이유도 있다고 하는데 역사상 최악의 기근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모택동은 참새잡기 정책의 과오를 시인하고 소련 연해주로부터 20만마리의 참새를 은밀히 들여오려했다고 한다. (실제로 들여왔는가는 모름)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권좌를 물러나야했다. 1959년 기해년67세에 실각하고 연금상태까지 갔다. 공수신퇴(功遂身退)의 진정한 영웅적 행보가 아쉬웠다. 1966년 병오년74세에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등소평같은 정적들을 숙청하고 문화,예술인들을 파괴하고 욕보였다. 1976년 병진년84세 천안문사태가 발발함. 이때의 모택동은 노쇠하고 병이들어 모택동의 후처가 집무함. 당 해, 9월9일 고립된 채로 영면.
※추신하여 생시를 수정합니다. (2014년12월31일) 아래는 진시반. 명주를 卯시로 봤었지만 辰시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게됐으므로 辰시로 고치겠습니다. 계사생인은 未가 진공(眞空)에 떨어지므로 丑命은 고허(孤虛)
(수) 甲 丁 甲 癸 辰 酉 子 巳
경신(36~ ) 기미(46~ ) 무오(56~ ) 정사(66~ ) 병진(76~ )
범위수 음남 회수 1753책
=> 1괘,7괘가 합괘하여 8괘가 되고 5괘,3괘가 합괘하여 8괘가 되므로 癸생인의 천록이 된다.
월장가시 ; 축가진 하여 子命人. 신궁 ; 丑12 (천웅,태양) 癸생인 子祿이 좌명(坐命)하고, 라후 천록이 辰9에서 3합 조기비래(釣起飛來)합니다. 토/금이 3합으로 보면서 호환(互換)되었습니다. 음남 역수逆數하여 대장정으로 모진 고생을 한 시기 => 계유대한(33~ 48) 갑술년42세~ 무인년46세 寅11의 수성은 달, 계도와 정3각을 이룸. 명반이 찌그러지지않았다. 별들이 온전한 힘을 행사하여 명반에 빈틈이 없다는 느낌. =>수성의 정3각과 토/금의 호환에 힘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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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택동의 명조. 묘시로 판단했었으나 진시로 고쳐봐야 할듯합니다. 생시고침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