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장편전기소설
5성장군 김홍일
개정판 출간, 그 뒷이야기
1983년 정부는 한국전쟁 4대영웅을 선정, 그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군측 영웅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의 전기소설을 출간하고 KBS 1TV 3부작으로 국군의 날을 기해 3일간 방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김홍일 장군 전기소설은 본인 박경석으로 지정됐고 김종오 장군 전기소설은 유현종 작가가 지정되었다.
위 사진의 5성장군 김홍일은 당시 검토과정에서 너무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다 하여 개작을 요청해와 전웅실록소설 五星將軍으로 개작하여 1984년 서문당에서 출간해 그 작품을 1985년 10월 1일 ~ 3일, KBS 1TV에서 방영하였다. 그러다가 37년이 지난 뒤 최초 작품이 김홍일 장군의 진수를 알릴수 있는 내용임을 확인한 나는 서문당 최석로 회장과 상의 합의하여 개작본을 내기로했다. 그 원본작에 더하여 김홍일 장군이 서거하기 몇달 전 본인 박경석에게 건낸 김홍일 장군의 친필 기록을 인용한 더 민감한 부분을 추가하였다. 바로 위 사진의 작품집은 김홍일 장군에 대한 최종 작품임을 밝혀 둔다.
본인의 작품이 1985년 국군의 날에 방영된 후, 다음 해에 유현종 작가의 김종오 장군 전기인 白馬高地가 KBS 1TV 3부작이 방영되었다.
한국전쟁 4대영웅 가운데 미군측 전쟁영웅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과 낙동강 방어작전의 워커 장군은 전기소설을 출간하지 않고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영하였다.
아래 사진은 1984년 출간한 작품집이다.
2013년 무렵부터 한국전쟁 4대영웅에 혼선이 생겼다. 김홍일 김종오 대신 엉뚱하게 백선엽과 김동석이 등장한 것이다. 내막을 확인한 결과 전쟁기념관 4층의 백선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 사무실의 책사들의 건의에 의해 미군당국에 로비해 일어난 해프닝이었음이 밝혀졌다.
백선엽은 약 30여 년 전부터 국방장관에게 자청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직을 맡아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국전쟁사를 개작해 6.25전쟁사 11권을 출간, 軍史 개조 작업에 집중하였다. 스스로 영웅이 되기 위한 불법행위였으나 당시의 국방장관들은 백선엽의 가식된 위세에 눌려 그 개작 작업을 지원 방관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으로 1.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2. 백선엽상 제정. 3. 백선엽 장군 공간사 출간을 결정하였으나 나를 위시한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등 6.25참전 예비역 장성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쳐 그 계획을 이명박 스스로 철회하였다.
자칫 세계 군사학계 희대의 조롱거리가 될뻔했다. 백선엽은 만주군 장교시절 독립군 소탕작전을 지휘했을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전공이 자신에 의해 과장되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당국은 6.25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일본군 장교가 지휘부 주력인 한국군으로부터 해방시켜야 된다는 논리였다. 만일 일본국 괴뢰국인 만주군 출신 장교 백선엽을 원수로 추대한다면 그 논리에 함몰되고 만다. 백선엽이 민족의 독립을 방해한 주체세력이기 때문이다.
내 투쟁에 호응한 정의감에 불탄 예비역 장군들의 참여는 마침내 이명박 대통령에게 뜻밖의 결정적인 '한 방'이 되었다.
백선엽이 30여 년 동안 공들인 전쟁 공적 날조 세탁물이 그 '한 방'에 무너졌다.
특히 2020년 8월 7일자 한겨레신문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되었다. "백선엽 '셀프 영웅화'연구자들이 비판없이 받아적었다"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서상문 전 책임연구원 고백 기사가 게재되었다. 서상문 박사는 무려 13년 동안 백선엽의 개작 현장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근무한 확실한 증인이었다. 이 증언으로 내가 홀로 주장했던 고독한 투쟁의 원군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이어서 그 내막을 더 구체적으로 밝히기로 하였다.
첫댓글 백선엽 장군.
軍史를 변조하면서까지 '셀프 영웅화'에 광분, 무려 30년 동안 전쟁기념관 4층에서 역대 국방장관 묵인하에 변조작업이 진행했다는 사실은 우리 국군사에 최대 치욕이었다.
그는 고인이 됐지만 그의 죄과는 더 명징하게 軍史에 각인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