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 꽃 소식 들려오던 어느 날, 스님을 만나러 간다는 지인을 따라 집을 나섰다. 암자에서 혼자 지내는 스님께 공양을 올릴 생각이라는 지인은 집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 눈에 띄는 나물 몇 가지를 챙겨왔다고 했다. 그 날 저녁 지인은 손을 걷어붙이고 나서 스님께 드릴 음식을 만들었고 잠시 후, 잡곡밥과 새봄에 나온 나물무침 몇 가지, 그리고 기름 둘러 부쳐낸 부침개 한 접시를 올린 상이 차려졌다. 그런데 접시에 올려진 부침개를 보는 순간 낭패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침개 속에 들어있는 색깔 푸른 풀이 다름아닌 정구지, 즉 부추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신채도 모르고 있었느냐고 밥상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고 스님은 암자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생긴 일이 자칫 어색해질 수 있었던 분위기를 다시 유쾌한 쪽으로 돌려놓았다. 스님이 우리보다 먼저 부침개를 집어 입 속에 넣고 씹기 시작하더니 과장 되게 눈을 크게 뜨면서 맛있다는 표정을 지인에게 지어 보였고 우리는 그때서야 젓가락을 들어 부침개를 집어다 입에 넣기 시작했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고 혹시라도 하는 생각으로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진심을 가진 사람은 진심을 느낄 줄도 아는 법이고 진심을 가진 사람은 그런 사람에게 진심을 전할 줄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알았다. 대승적 보살행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위해 이로울 것을 바탕으로 삼는다는 것, ‘소탈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스님의 그날 행위로 나는 비로소 보살의 행위를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가 윤리적 행위를 권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는 윤리라는 틀에 머물거나 매이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사람의 관계에서 사람다움을 정의하는 윤리의 틀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든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규범이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불교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계율戒律은 다른 여타 종교의 규범과 달리 특정하고 우월한 능력의 소유자로부터 계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율장律藏에 실린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조목들은 수범수제隨犯隨制, 구체적으로 잘못한 일이 생겼을 때 비로소 그것을 제한하기 위해 생겨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장의 조목들은 일률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통합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불교 계율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른바 지범개차持犯開遮라고 하는 것인데 말 그대로 ‘지니고 범하고 열고 닫고’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말하자면 계율의 각 조항들이 문자적으로 완고하지 않다는, 아니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보다 큰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사 모든 것이 그러하듯 융통의 간극을 주게 되면 병통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고 문자적 해석과 적용만을 허락하면 자율을 상실한 고집덩어리가 되고 마는 폐단이 생기고 만다.
***** 한국불교가 불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혜명이 단축되는 사건들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 계율이 무너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먹물 옷 입은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참회하는 길밖에 없다. 또한 이럴 때 불자들이 신심 잃지 말고 불교가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준다면 청정승가•화합승가의 모습으로 불교는 더욱 그 종교적 역할을 잘 해내리라 믿는다. - 「부디 함께 비추어 안온하게 삽시다」 중에서
노루 때린 몽둥이 십 년 우려 먹는다는 말이나 듣기 좋은 노래도 여러 번 들으면 질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좋은 것도 그런 판에 하물며 나쁜 것에 대해서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꾸중이 도를 넘으면 기대했던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버리다, 얻다, 다시 버리다로 나눠지는 이야기를 통해 출가와 수행, 안거, 소임, 법랍, 토론 등 승가공동체의 생활과 규범들을 이야기하고 사찰, 불사, 공양, 정법, 정인 등의 문화적인 면들을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역사를 때로는 문화를 또 때로는 특정한 계율이 생겨난 배경을 이야기하는데 왕따, 음주, 육식, 식목, 정치참여 등 불교가 이 시대에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계율의 적용을 포함하여 불교가 이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그러나 희망과 기대를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부처님은 반열반에 앞서 제자들에게 사권師拳을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제자들에게 말하지 않고 감춰둔 것이 없다는, 당신께서 깨달으신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전했다고 하면서 빈 주먹을 보여주셨다. 그러고도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법의 등불을 밝히고 스스로의 등불을 밝히고 법에 기대고 자신에게 기대어 부지런히 나아가라고 말씀하셨다.
불교의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중에 계戒는 수행의 시작이자 든든한 토대이다. 딛고 있는 바탕이 무르면 힘껏 도약할 힘을 얻을 수 없고 수행의 향기와 수행의 즐거움과 수행의 향기가 모두 계율의 수지에서 비롯된다.
저자의 걱정과 기대와 희망이 무엇인지 잘 알겠다.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을 이 시대에 밝고 맑고 향기롭게 회복해내는 것이다. 출가와 재가를 가릴 것 없이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살겠다는 뜻을 새롭게 하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면서 무너지거나 깨지지 않는 강단을 함께 갖춰야만 해낼 수 있고 제목에서 말하듯 '꽃이면서 가시'인 계율로 그 토대를 단단히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저자는 이전에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곧 계를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해야 한다고 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가 불자들의 그러한 실천적 삶을 통해 구현될 수 있기를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가 저자 혼자서 꾸는 꿈이 아니기를, 그보다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불자들의 한결 같은 꿈과 바람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우선은 책을 한 권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제목: 계율, 꽃과 가시 저자: 원영 출판: 담앤북스 가격: 인터넷 판매가 12,4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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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국불교가 불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혜명이 단축되는 사건들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 계율이 무너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먹물 옷 입은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참회하는 길밖에 없다. 또한 이럴 때 불자들이 신심 잃지 말고 불교가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준다면 청정승가?화합승가의 모습으로 불교는 더욱 그 종교적 역할을 잘 해내리라 믿는다.
- 「부디 함께 비추어 안온하게 삽시다」 중에서
붓다의 길따라...나무석가모니불
어렵거나 힘이들 때 관세음보살
번뇌와 고민으로 괴로울 때 관세음보살
실직으로 춥고 배고플 때 관세음보살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
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