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주먹(Raging Bull)
최용현(수필가)
‘분노의 주먹(Raging Bull, 1980년)’은 세계 미들급 챔피언을 지낸 미국의 프로 복서 제이크 라마타의 회고록 ‘Raging Bull: My Story’를 원작으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흑백으로 연출한 스포츠 드라마이면서 전기영화이다. 1990년에 미국 의회도서관 국립영화등기부에 등재되었다.
이 영화는 ‘택시 드라이버’(1976년), ‘좋은 친구들’(1990년)과 함께 마틴 스코세이지와 로버트 드 니로 콤비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선수 시절과 중년의 살찐 제이크를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8주 동안 체중을 27kg 증량하여 최고의 연기를 펼쳤고, 그 결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관에서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고, 1990년 SKC에서 ‘성난 황소’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로 출시했다. 1993년에는 ‘분노의 주먹’이라는 제목으로 레이저디스크(LD)로 출시했으며, 2000년에는 MGM 홈비디오에서 같은 제목으로 재출시했다.
1941년 미들급 복서 제이크 라마타(로버트 드 니로 扮)는 지미 리브스를 7번이나 쓰러뜨리지만, 논란 끝에 첫 판정패를 당한다. 제이크의 매니저인 동생 조이 라마타(조 페시 扮)는 자신의 마피아 연줄인 살비를 활용하여 타이틀을 획득해 보려 했지만, 제이크는 실력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겠다고 한다.
제이크는 야외수영장에서 15세 소녀 비키(캐시 모리어티 扮)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제이크는 유부남이지만 조이의 중재로 그녀와 데이트하고 사랑도 나눈다. 1943년, 제이크는 40전 40승을 기록한 슈거 레이 로빈슨과 싸워 이긴다. 3주 후 재대결에서는 로빈슨을 압도하지만 판정패한다. 로빈슨이 다음 주에 입대하기 때문에 봐준 것으로 생각한다.
1945년, 제이크는 이혼하고 비키와 재혼한다. 비키가 다음 상대인 재니로가 잘 생겼다고 말하자, 제이크는 그의 얼굴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역폭력배 두목인 토미는 챔피언 타이틀을 들먹이며 제이크에게 승부조작을 종용한다. 1947년 제이크는 빌리 팍스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잘 싸우다가 나중에 얻어맞기만 하다가 KO패하고 관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난다. 그는 대기실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위원회는 승부조작 혐의로 제이크의 출전정지 처분을 내린다. 1949년 자격이 회복된 제이크는 복귀하여 막셀 세던을 KO 시키고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 4개월 후 막셀은 연인관계인 가수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다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다.
비키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제이크는 동생 조이에게 형수와 바람을 피웠는지 묻자, 격분한 조이는 떠나버린다. 제이크는 비키에게도 바람을 피웠는지 따져 묻는데, 그녀는 조이와 살비, 토미와 진하게 섹스했다고 비꼬듯이 말한다. 격분한 제이크는 동생 집으로 가서 제수와 조카들 앞에서 조이와 비키를 두들겨 팬다.
1950년 로랑 도티를 상대로 힘들게 챔피언을 방어한 제이크는 동생 조이에게 전화를 걸어 화해를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조이와 소원해진 제이크는 1951년 슈거 레이 로빈슨과의 재대결에서 패하여 챔피언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1956년 마이애미로 이주한 제이크는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자, 권투를 그만두고 ‘제이크 라마타’ 클럽을 차려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한다. 제이크가 가정을 팽개치고 클럽 일에만 몰두하자, 비키는 이혼을 통보하고 아이들의 양육권을 가져간다. 제이크는 미성년 소녀를 남자들에게 소개해 줬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제이크는 챔피언 벨트에 박힌 보석을 빼서 뇌물로 주고 죄를 벗어나려 했지만, 실패하여 감옥 벽에 머리를 찧으며 자책한다. 1958년 감옥살이를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온 제이크는 조그만 술집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데,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우연히 조이를 다시 만난 제이크는 사과하지만, 조이는 탐탁잖아한다.
1964년, 제이크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기 전에 무대 뒤에서 섀도복싱을 하면서 ‘워터 프론트’(1954년)의 한 장면처럼 ‘나는 챔피언이야!’를 외친다. 그리고 요한복음 9장 유대인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을 불러서 이르되, ‘우린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이에, 그가 대답하기를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한때는 소경이었지만 이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가 자막으로 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제이크는 역사상 최고의 복서인 슈거 레이 로빈슨과 여섯 번 싸워서 한 번 이기고 다섯 번 진다. 제이크는 결국 챔피언에 오르지만, 매니저인 동생 조이 내외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그의 복싱에서의 실패는 삶에서의 실패와 궤를 같이한다.
제이크는 이후 TV 드라마, 영화, 연극 등에 단역 배우로 출연하거나 술집에서 스탠딩 코미디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이 영화를 계기로 다시 명성을 회복한다. 비키 역시 이 영화로 명성을 얻어 51세(1981년)의 나이에 ‘플레이보이’ 잡지 모델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을 발매한다.
제이크와 비키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두 아들은 1998년에 각각 간암과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비키는 2005년 심장 수술을 받고 이틀 후 75세로 사망한다. 제이크는 2017년 폐렴 합병증으로 95세에 사망하고, 3년 뒤인 2020년 동생 조이도 95세에 세상을 떠난다.
조이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영화 관계자들을 고소하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로버트 드 니로가 ‘조이에게도 감사드린다. 비록 저희를 고소했지만.’이라고 하여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온 관객들을 웃긴다. 알 파치노는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했고,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