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0:1-7
아브라함의 거짓과 아비멜렉의 의로움 속에서 드러난 생명의 보호
: 정당함의 무력함과 하나님 은혜의 절대 주권
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0: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20: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20: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20: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20: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Ⅰ. 서론: 이해할 수 없는 인물, 그러나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포장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포장하지 않는 놀라운 책입니다.
이것은 흔히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인물의 부끄럽고 깨어진 실상을 낱낱이 공개하며, 그 실상을 통해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아브라함이, 그것도 독자 이삭에 대한 언약의 성취를 바로 목전에 두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 과거 애굽에서 저질렀던 같은 실수를 또다시 반복합니다.
그는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고, 그 결과 이방인의 왕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빼앗기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2절).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질문에 봉착합니다.
첫째, 거짓을 말한 아브라함이 아닌, 왜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가? 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행위를 ‘온전한 마음’이었다고 인정하시는데(6절), 과연 이 이방인의 정당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입니다.
이 질문 속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도덕 기준을 뛰어넘어, 생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은혜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도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Ⅱ. 본론: 죄를 따지는 하나님이 아닌, 생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1. 반복되는 실수: 믿음의 사람에게서 드러난 '정당함 속의 불의' (창 20:1-2)
아브라함은 과거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을 때도(창 12장) 생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라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이라는 지역에 거류하며(1절) 똑같은 거짓을 반복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믿음의 사람도 넘어질 수 있고, 심지어 같은 죄를 반복해서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삶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신실함만이 언약을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내 '사라'의 히브리어 이름 사르는 '공주', '고귀한 여인'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으로써, 생명을 위한 '정당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보호를 불신하고 자기 목숨을 구걸하는 불의를 행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인의 삶에서 '정당한 이유'라고 포장하는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부정하는 불신앙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우리는 직장, 재정, 자녀 문제 앞에서 아브라함처럼 행동합니다.
기도하고 예배드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기보다 나의 '경험', '인맥', '요령'이라는 거짓말(혹은 핑계)을 선택합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자기 보존의 본능'은 믿음의 조상에게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연약한 육신의 실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과 하나님의 예방적 은혜 (창 20:3-6)
아비멜렉은 사라를 가까이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 꿈을 통해 경고를 받습니다.
아비멜렉의 항변은 강력합니다(4-5절).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행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온전함은 '순전함', '성실함', '흠 없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6절에서 놀랍게도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라며 이방인의 의로움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아비멜렉의 무죄함을 인정하셨을까요?
이는 그의 행위가 율법 앞에서 완전히 깨끗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아브라함의 생명(언약의 씨)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방적 은혜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심판하기보다,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막으시는 놀라운 방식으로 역사하셨습니다.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6절).
많은 현대인이 아비멜렉과 같이 자신의 양심과 도덕을 기준으로 "나는 의롭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자기 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온전한 마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함 앞에서는 무력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정당함을 증명하시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도 결국 사망의 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본질적인 죄악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죄를 따지기 전에, 먼저 생명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은혜의 통로: 중보자 선지자의 역할 (창 20:7)
본문 7절은 가장 아이러니한 구절입니다.
거짓말쟁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는 선지자라"라고 말씀하시며,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의 정당함으로 살지 못하고, 거짓을 행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라는 외적인 요소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장면은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신학적 원리를 확증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나의 의(아비멜렉의 의로움)나 나의 열심(아브라함의 행위)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신 중보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아브라함의 기도로 이방인이 살게 된 이 사건은, 결국 완전한 의를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통해서만 생명을 얻고 평안을 누리며, 죄의 사망에서 구원받습니다.
아비멜렉이 자신의 '온전한 마음'을 내려놓고 선지자의 중보를 받아들였듯이, 우리도 나의 '정당함'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굴복할 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Ⅲ. 결론 및 삶의 적용: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길
우리가 죄를 짓기 전에 미리 개입하셔서 막으시고(예방적 은혜), 죄를 지은 후에는 택한 자를 중보의 통로로 사용하여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절대 주권의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2. 삶의 적용
우리는 아브라함의 불신앙과 아비멜렉의 자기 의라는 두 가지 죄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의 삶에서 회개해야 할 핵심은 '나의 정당함'을 내세우는 죄입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 회개: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얄팍한 거짓말이나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나의 반복되는 불신앙을 회개합시다. (예: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려 했던 순간들).
아비멜렉의 자기의 회개: "나는 양심적으로 살았다", "내 기준으로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며, 타인을 정죄하고 나의 '깨끗한 손'을 의지했던 교만한 마음을 회개합시다. 나의 의로움으로는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나를 깨끗하게 합니다.
3. 신앙의 본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내가 잘했을 때' 확실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서 있는 자리는 나의 성실함(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에 근거하지 않으며, 나의 믿음의 연약함(아브라함의 반복된 거짓)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에 근거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나의 연약함과 죄악을 인정하고, 그 모든 불의를 덮으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정당함의 무력함을 깨닫고, 은혜의 절대 주권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주님 앞에 이렇게 고백하며 하루를 살아갑시다.
"주님, 나는 연약하고 의롭지 않으나,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삽니다."
이 은혜에 근거하여 생명의 평안을 누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