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감과 대접감
<수필> -文霞 鄭永仁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을 정취를 자아내는 과일나무는 아마 까치밥을 남기는 감나무와 앞산 뒷산의 밤나무가 아닌가 한다. 감은 색깔로 가을을 대표하고, 밤은 소리로 가을을 전한다..
감나무는 시골 어느 마을이나 누구네 집에도 한두 그루쯤은 우리와 같이하는 가을나무다. 밤나무는 앞뒷산 곳곳에서 가을을 툭툭 떨구는 나무다. 그래서인지 제사상에는 꼭 오르는 과일 중에 하나다. 대추 · 밤 · 배 · 감의 순서로…….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은 ‘작은 밤바위’라는 동네다. 밤과 바위가 많아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우리 집, 넓은 뒤란 둔덕에는 감나무 세 그루가 뒷짐 지고 있었다. 한 나무는 뾰족감나무, 다른 감나무는 대접감나무, 다른 것은 감꽃만 그리도 피고 감은 잘 열리지 않는 감나무였다. 감꽃만 피우던 감나무는 큰 밤톨만한 감 몇 개만 열리고 숫제 감꽃은 지천으로 피었다. 그 당시는 달착지근한 감꽃도 우리들의 유일한 주전부리였다. 이 감나무에 감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이면 그 감나무 밑에 멍석을 깔았다. 새벽에 나가보면 그 멍석 위에는 싸라기눈처럼 감꽃이 떨어져 있었다. 이빨에 떫은 감물이 들 정도로…….
뾰족감은 주로 연시용軟柹用이었고, 대접감은 침시용沈柿用이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뾰족감이 서리 맞아 다 익으면 바지랑대로 조심해서 따 커다란 독에다 연시를 앉혔다. 독 맨 밑에 감잎을 한 켜 깔고 그 위에 뾰족감을 앉히고 그 위에 감잎을 깔고, 그렇게 켜켜이 앉혔다. 그리고 맨 위에는 반드시 감잎으로 덮어 마무리하셨다. 그 연시 독은 굴뚝 뒤에서 시난고난 겨울이 가면서 연시가 되어 갔다. 음력 정월달이 되면 어머니는 살짝 언 연시를 밤참으로 가져다 주셨다. 살얼음 진 연시의 맛은 지금처럼 카바이트 연기를 쬐어서 생으로 익히는 연시와는 비교도 안 되었다.
대접감은 참으로 떫었다. 지금의 단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대접감으로 침시는 어머니가 담그셨다. 우선 바지랑대로 상처가 나지 않게 따야 했다. 상처가 나면 떫은맛이 잘 가시지 않았다. 물을 끓여 항아리에 부었다. 이때 너무 뜨거운 물을 넣으면 감이 화상을 입으나 적당히 식혀서 부었다. 이때 온도계는 어머니 손이었다. 소금을 풀고 어머니는 약간의 된장을 그 물에 풀었다. 된장을 푸는 것은 어머니만의 노하우였다. 그러면 감이 달디 달고 구수한 맛이 돌았다. 감을 담근 다음 그 위에는 꼭 수숫잎을 덮었다. 그래야 떫은 탄신성분이 잘 우려졌다. 감항아리는 따뜻한 아랫목에 헌 담요를 덮었다. 그러면 감의 떫 맛이 시나브로 빠지고 아주 달고 된장 내가 구수한 침시가 되었다. 침시를 담글 때 수숫잎을 덮는 까닭은 감과 수수는 상극이다. 마치 돼지고기에 체하면 새우젓을 먹듯이, 감 먹고 체한 데는 수숫물을 먹듯이….
나는 가을 과일 중에 감을 제일 좋아한다. 그것도 단감, 연시, 곶감보다는 침시를 아주 좋아한다. 하기야 어렸을 가을 소풍을 가면 으레 도시락 보자기에 싸 가는 것이 삶은 밤과 침을 담근 감이었다.
이젠 세월이 변하다 보니 침시를 먹어본지가 아득하다. 지금 여간해서는 침시는 담그지 않고, 연시, 반시, 곶감, 단감 등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결혼한 딸아이가 제 애비가 침시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어렵사리 구한 침시를 먹어 본 것이 고작이다.
지금은 여자들의 젖 크기를 A컵, B컵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대접젖, 사발젖이라 했다. 대접젖은 대접감처럼 생겼고, 사발젖은 뾰족감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와 누나는 대접젖이었다. 어머닌 그 젖으로 우리 육남매를 깔축없이 키우셨다. 하기야 그 당시는 우유가 없었으니……. 터울이 적었던 둘째 형은 젖곯이를 그리도 하여 지금도 시장기를 조금도 참지 못한다.
그런데 사발젖인 집사람과 딸은 젖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집사람은 젖몸살과 유방염으로 수술까지 하고, 딸아이는 응급실에 두 번이나 가고 결국 일주일 입원하여 젖을 다스렸다. 대접젖이 아니어서 그런가? 하기야 젖이란 신(神)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보물 중에 하나란다.
긴 바지랑대에 자그만 헝겊 주머니 달아서 생감을 따던 시절, 뒷동산에서는 밤나무 잎들이 서걱이고, 알밤이 데구르르 구루는 소리가 새벽이면 들리던 시절. 어느 시인은 ‘함석지붕에 밤 구르는 소리가 가장 아름답다’ 라고 했다.
한 겨울밤에 먹던 달디 단 살얼음진 뾰족감 연시, 회롯불에 토닥토닥 구운 구수한 밤 먹던 내 고향 ‘작은 밤바위의 전설’은 그렇게 익어 갔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