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던 인도네시아 여행을 드디어 다녀왔다. 세계 3대 불교 성지의 하나라는 보로부두르도 궁금했고 브로모니 이젠이니 활화산 관광도 궁금했고 과연 발리는 어떤 섬일까도 궁금했지만, 너무 더운 나라라고, 우리가 갈 수 있는 겨울(우리나라 기준)은 우기라서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밀렸던 것.
드디어 가 보니, 과연 더운 나라다. 더워도 너~~~무 덥다. 낮 기온 34도에 돌아다닐 엄두가 안 날 정도, 낮에는 호텔에서 쉰 날이 많았다. 다행히 비는 걱정했던 만큼 많이 내리지 않았다. 자주 오기는 했지만 잠깐씩 내리고 그치거나 주로 밤중에 내린 덕분에, 비 때문에 못 나간 날은 2-3일 정도에 불과했다.
인도네시아는 너무 큰 나라라 (면적이 남한의 20배에 달하기도 하지만, 세계 최다인 1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보니 섬들 사이의 바다까지 합친 영역은 상상 이상으로 넓다. 수마트라 서부에서 파푸아 뉴기니 국경선까지 동서간 거리가 우리나라에서 인도네시아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다 둘러볼 엄두는 내지 못했고, 자카르타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 말루쿠 티모르 파푸아등은 처음부터 포기했고, 자와(자바) 섬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보로부두르 브로모 이젠을 구경한 다음에 발리 섬과 롬복 섬을 거쳐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코모도 섬과 플로레스 섬까지 가보자. 혹시 모르니 예비적으로 숨바 섬까지 정보를 검색해 봐야지. 그러나 실제로는 천천히 천천히 다니다가 롬복 섬에서 여행이 끝내고 자카르타로 돌아왔다.
2023년 12월 19일 낮비행기로 인천을 떠나 자카르타 도착,
자카르타 2박 - 반둥 5박 - 팡안다란 3박 - 푸르워케르토 3박 - 워노소보 3박 - 족자카르타 7박 - 말랑 4박 - 수라바야 3박 -반유왕이 3박 - 로비나 3박 - 우붓 8박 - 길리 트라왕안 4박 - 승기기 3박 - 마타람 5박 - 자카르타 3박
2024년 2월 17일 아침에 인천 도착.
인도네시아의 비자 정책에 맞추어 (도착비자 30일, 1회 연장 가능) 59박 60일 머물렀는데 예년에 비해 날짜는 늘고 숙박한 도시는 줄었다. 작년까지는 하루 이틀만 자고 열심히 이동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최소 3박의 원칙을 지키며 천천히 이동한 까닭이다. 여행스타일의 변화? 늙어가는 탓이겠지,
더운 날씨라는 핸디켑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대로 족자와 발리에서는 멋진 문화 유산들을 감상할 수 있었고, 곳곳에서 활화산 관광과 바디래프팅 스노클링 같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다만 귀국 5일전부터 내가 병이 나서 (고열과 메쓱거림으로 밥을 먹지 못하고 고생함) 호텔에서만 머물렀던 것이 이번 여행의 오점, 타이레놀로 버티다가 귀국 이틀 후에 병원에 갔는데, 탈수 현상에 간수치가 너무 높다고 해서 일주일간 입원까지 해야 했다.
인도네시아 화폐는 루피아인데 화폐 가치가 낮아서 1,000(인도네시아어로 리부) 루피아가 실질적인 기본 단위다. (마트에서는 200 루피아나 500루피아짜리 동전도 거슬러주지만, 동전은 거의 돈 취급을 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띠가쁠루"는 30이란 뜻인데. 그냥 띠가쁠루라고만 해도 띠가쁠루 "리부" 루삐아 즉 3만 루피아가 된다. 1,000 루피아가 우리나라 돈으로 85원 정도이니 대충 우리나라 돈의 10분의 1로 계산하면 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신용카드가 널리 쓰이고 있고 모바일 페이도 활발하지만, 현금만 받는 곳도 꽤 있었고 카드 수수료를 요구하는 곳도 가끔 있었다. 우리는 작년 이베리아 여행에서 요긴하게 썼던 트래블월렛을 이번에도 잘 썼는데, 유로나 달러 등과는 달리 루피아를 충전할 때는 0.8퍼센트인가 수수료가 붙었다. 그 정도는 뭐 떼가도 되지.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는 출금 수수료가 붙는 ATM들 때문에 신경을 썼지만 이변에는 출금을 시도했던 모든 기계에서 수수료가 나가지 않았다. (물론 월 5,000 달러까지라는 제한은 그대로)
여행 비용
인도네시아 여행을 결정하고 검색해 보니 인천-자카르타 아시아나 직항 티켓이 2인 112만원이다. 비행 시간과 거리에 비해 저렴하다고 생각해서 얼른 구입했다. 잘한 일. 나중에 프로모션이 한 번 있었지만 우리가 구입한 가격보다 내려가지는 않았다.
숙소는 예상 지출액을 가장 많이 초과한 항목. 태국이나 베트남과 비슷한 수준을 예상했으나 여행 초기에 이용했던 2만원대 숙소가 기대 이하라서 이후에는 4-5만원대의 3성급 호텔에 주로 묵었다. 그러다가 발리에서는 깔끔한 2-3만원대 홈스테이에서 묵으며 평균치를 조금 낮췄다. 총 59박에 225만원, 평균 3.8만원이 들었다. 작년 이베리아 여행에 이어 두번째로 비싸게 잤네. (발리 여행객들이 주로 드나드는 잘란잘란 카페에는 "첫날 잠만 잘 숙소는 돈이 아까우니 50만원짜리 숙소말고 10만원대 저렴이 숙소를 잡으세요"라는 글이 돈 아끼는 팁이라고 올라오는데 ㅎㅎㅎ 우린 너무 거진가?)
교통비와 관광지 입장료도 예산을 초과했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지지 않은 탓에 택시와 렌트카(기사 포함. 인도네시아는 국제면허증 가입국이 아니라서 직접 운전하기는 어렵다.)를 많이 이용하다 보니 비용이 늘어난 것. (그래봤자 5-6만원이면 12시간 렌트를 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 대비해서는 매우 저렴한데...) 투어나 렌트를 중개해주는 플랫폼 중에서는 Traveloka라는 현지(?) 업체가 클룩이라는 글로벌(?) 업체보다 저렴한 편이었다. 한편 시내 가까운 곳을 이동할 때에는 그랩이나 고젝 택시가 매우 저렴했다. 롬복에서 자카르타 국내선 비행기 요금 20만원을 포함해서 교통비와 관광지 입장료로 총 153만원이 들었다.
식비는 예상보다 적게 들어갔다. 숙소 중 한 곳을 빼고는 모두 조식 포함이었고 (호텔이든 홈스테이든 조식이 불만스러운 곳은 하나도 없었다. 화려한 부페든 간단한 빵조각이든 다 맛있게 먹었다.) 저렴한 로컬 식당은 2인분에 만원 안쪽, (나시고렝이 8리부=700원이라고 써붙인 가게들도 많았는데 우리가 먹은 나시고랭은 대체로 20-50리부 정도) 소꼬리나 갈비 구이를 먹으면 2만원 정도, 젤 비싸게 먹은 게 백화점 내 스시집에서 4만원 정도였다.
기대했던 대로 열대 과일도 아주 저렴했다. (태국이나 베트남에서는 겨울에 망고스틴이나 두리안이 귀하고 비싸다.) 망고스틴이 킬로에 15리부 정도, 제일 싼 곳(반유왕이 과일 가게)에서는 6리부에도 샀다. 두리안도 작은 거 20짜리부터 큰 거 100짜리까지 여러번 사 먹었는데, 의외로 망고는 흔치 않은 편이었다. 견과류는 비쌌고, 태국에서 그렇게도 흔하던 말린 망고나 두리안칩 같은 게 안 보인 것 또한 의외였다
. 간식과 음료까지 포함하여 총 식비로 135만원이 들어갔다.
그밖에 비자 비용 17만원, 유심 2.5만원, 약간의 기념품과 생필품 등을 포함하여 총 800만원 조금 넘게 쓰고 돌아왔다. 마지막 5일 동안 병치레를 안 하고 돌아다녔으면 좀 더 썼을텐데.
특이한 감상 하나.
여행 초반에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이 너무 칙칙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히잡을 쓴 것이야 종교적 이유라 하더라도 입은 옷의 디자인이나 원단이나 도대체 예쁜 옷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더 못사는 나라인 라오스나 미얀마에서도 못 느꼈던 것인데? 반면에 화려한 의상을 입은 할머니들이 많이 보인 것도 미스테리.
그런데 놀랄만한 반전이 있었다. 브로모 화산을 가느라 밤 1시 쯤 지프 출발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히잡을 쓴 일단의 아가씨들이 식당 테이블을 차지하더니 주위 시선도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얼굴을 두드리고 바르고 그리고 야단이다. 이 아가씨들도 옷차림은 허름한데 얼굴에는 왜 또 저렇게 열심인 걸까?
그리고
한국 드라마 전용 티비 채널도 있고 어떤 라디오 채널에서는 한 시간 이상 한국 노래만 나오기도 할 정도로 한류 열기가 상당한데 어째서 길에는 일제 자동차만 굴러다닐까 궁금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