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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가 고대 그리스에서 떠돌이 유랑시인들에 의해 노래로 불리기 시작했을 때, 사실은 아무도 오디세이의 저자를 알지 못했다.
시인 없이 어떻게 시(詩)가 나올 수 있을까?
하지만, 어디에도 아킬레스와 오디세이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은 없었다. 시인이 없음에도 시가 전해졌고 그 시를 유랑시인들이 세상을 떠돌면서 노래로 불렀던 것이다.
그 시의 분량만 해도 실로 엄청났다.
<오디세우스의 노래> 전곡을 들어보자면, 시를 노래하는 가수가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죽어라 시를 노래하기만 했다고 해도 적어도 스무 시간에서 서른 시간 정도가 소요될 정도로 장문의 시였으니, 말 그대로 대서사시인 것이다. 시를 노래하는 가수에 따라서 전개 방식과 이야기의 가감과 전달 방식이 조금씩 달랐기에 어쩌면 더 길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를 기록한 책이 없었음에도, 유랑시인들은 앞선 선배 시인의 노래를 들으면서 웅대한 서사시를 배워 외웠으며, 또 자신의 노래를 통해서 후배 유랑시인에게 서사시를 전달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흘러가면서 당연하게 하나의 서사시는 같은 이야기인 듯, 또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 갈래를 조금씩 달리하게 되었다.
장문의 서사시가 글자로 정형화되어 단락 단락의 연결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 기승전결의 줄거리 요지만 전달되고 나머지 부분은 그 요지를 전수 받아 지금 당장 노래를 하고 있는 유랑시인의 기억력과 분별력과 가치관에 따라 재해석하고 때론 첨가나 삭제를 통해 자기 방식으로 재창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절대다수의 유랑시인들은 글씨를 전혀 몰랐다. 글씨를 전혀 모르는 시인들이 시를 노래하고 더하여 새롭게 변형하거나 덧붙여서 시를 써나갔다.
과연 이런 방식이 어떻게 통할 수 있느냐는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고대 시인들은 서사시를 1막 2막 3막에서 12막까지로 나누고, 그 한 단락의 이야기를 기승전결의 전개 방식에 있어서 운율에 따른 리듬과 장단에 따른 나름의 공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공식은 전체이야기의 모든 전개에 있어 하나의 원칙으로 적용되었다. 그 공식을 이해하고 습득하게 되면 한없이 긴 서사시라 할지라도 전체적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되는지만 알게 된다면 공식에 따라 개인적 성향과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혹은 어떤 이야기든지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유랑시인들 중의 상당수가 실제 장님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지금 이들 유랑시인들이 노래하고 있는 ‘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가 등장하는 이야기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200년 전인 고대그리스에서 있었다고 전해지는 전쟁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이 시점에서부터 바야흐로 인류의 역사는 (신화의 시대)에서 점차 벗어나 (역사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딱 언제까지가 신화이고 언제부터가 확실한 역사(사실과 기록)라고 구분 짓지는 못한다.
하여 영화 <오디세이>의 시작에서 자막을 통해 사전에 미리 분명하게 전제하였듯이, 이 트로이 전쟁을 포함하는 기원전 12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의 시기를 (신화와 역사가 혼재하던 시기)라고 특별하게 별도로 규정짓고 나서 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신화의 시대가 점차 사라지고 역사의 시대가 도래하던 기원전7세기 경부터 고대그리스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고대 도시국가인 폴리스가 정착하였고, 그리스 민주주의가 정착되었고, 지중해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올림피아 제전이 벌어졌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집권한 아테네의 폭군 지배자인 피시스타라토스는 아테나 여신을 기념하는 축제에서‘아킬레스’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공연을 국가 차원의 행사로 정례 의무화 시켰다.
시인이 무대에 올라 죽어라 책을 읽듯이 읽어내려가기만 하는데도 20시간 이상이 걸리는 이야기를 두 개씩이나 한꺼번에 혼자서 한다는 것은 절대로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이 불가능한 공식 공연을 해결하기 위하여 결국, 축제를 며칠에 걸쳐 열면서 무대 공연 시간을 늘려 할애하였고, 노래하는 가수를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참가하여 분담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오늘날 연극이나 뮤지컬의 주인공은 두 명씩 캐스팅하여 혹시나 모를 사고나 위험을 방지하고, 또 개성이 다른 주연 배우를 통해 조금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작이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미 착안 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2.600년 이전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확실한 전달과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노래만 전담하는 가수와 연기자와 무용수들이 무대에 올려졌고, 새로운 무대장치와 배경 음악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니, 바로 오늘날의 뮤지컬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그 시대에 공식 무대에 이미 올려졌었다는 기념비적인 사건인 셈이다.
(신화와 역사가 혼재하던 시기) 600년 동안 그리스의 도처에서 마을이나 도시의 축제나 결혼식이나 왕이나 귀족의 만찬장에 초청받은 유랑시인들이 아킬레스와 오디세이의 위대한 이야기와 그리스의 희극과 비극을 대중들의 앞에서 극히 일부만을 끄집어내서 하루 저녁 만찬 시간 동안에 노래로 불러주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대충의 전체 스토리를 알거나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신인의 노래를 통해 아킬레스나 오디세이 이야기 전체를 들어 알고 있는 사람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왕이나 귀족이라 해도 그 이야기 전체를 들으려면, 한 달 내내 파티를 벌여도 다 들을까 말까가 아니었을까? 거기다가 초대받은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가수가 선택해 끄집어내는 이야기도 다 달랐을 것이다. 메넬라우스 가문의 초대에 가서 메넬라우스가 칼침 받고 죽는 장면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부산에 초대받아 가서 역대 최고의 투수가 선동렬이라 하고, 광주 가서 최동원이라 노래했다가는 밥줄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꼴까닥 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국가가 주관하는 공식 축제에서 몇 날씩 장기 공연을 하면서 전 스토리를 반복 공연하다보니, 관객들이 먼저 오류를 발견해 찾아내기 시작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A급 B급 C급으로 시인의 무대 공연을 등급을 먹여 규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때 등장하는 슈퍼스타 시인이 바로 호머(Homer)인 것이다.
호머는 축제에 매번 참여하는 관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줄거리로 하나의 완벽한 시를 완성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옮겨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서사시를 희곡 대본으로 남겼으니 바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탄생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서사시의 원래 창조자가 아니라, 흘러 떠다니는 이야기를 모으고 또 모아서 추리고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해서 발표한 사람이 바로 호머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나라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대구화상의 삼대목(三代目)에 등장하는 향가를 모두 대구화상이 썼다는 것이 아니고, 대구화상이 진성여왕의 명으로 신라 전역에 떠돌아다니는 향가를 수집하여 한 권의 책에 담았다는 것과 같게 생각하면 되겠다.
위 캐리커처는 트로이 전쟁(Trojan War)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일곱 영웅을 그린 그림이다. 개인의 주관에 따라 뺄 사람과 반드시 넣어야 할 사람이 달리 있을 수도 있겠으나, 장대한 하나의 전쟁을 폭넓게 그려내기에 꼭 필요한 영웅을 일곱만 골라야 한다는 전제하에 뽑힌 인물들인 것이다. 아킬레우스를 뺄 수 없다면 헥토르 또한 결코 빼어놓을 수 없겠지만 이번 선정에서 헥토르는 선택되지 않았기에 아쉬웠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일곱 영웅’을 이야기하기 전에 필히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전제가 있는데, 여기서는 대략 세 가지 정도만 우선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가장 먼저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먼저 하고 싶다. ‘트로이 전쟁(Trojan War)의 이해 당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대답은 맞는 대답일 수는 있겠지만 정답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리스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연합군이며, 상대인 트로이 역시 그리스 연합군 중의 하나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만나 꼬득이는 장소가 바로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 만찬장이었고 트로이가 연합군의 일원 자격으로 참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리스 연합군 내에서 벌어진 내전’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가장 정확할 것이다.
하여 일부 학자들은 가장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 ‘트로이 전쟁(Trojan War)은 아카이아 연합군과 트로이 도시국가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분명하게 표현하기를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지역 사람들은 그리스 반도 끝자락 코린트만 연안에 접한 남쪽 해안 지역, 그러니까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북서부를 가리켜 아카이아(Akhaia)라고 불렀다. 이 지역에 해당하는 도시국가(Polis)들이 모여서 연합군을 편성하여 트로이 도시국가와 전쟁을 벌인 것이 바로 트로이 전쟁인 것이다. 더 넓은 의미로 그리스 반도의 모든 도시국가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연합국의 의미로 뭉쳤다면 그것은 그리스(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가 되겠지만, 펠로폰네소스 지역을 벗어난 테베를 위시하여 터키 반도 지역(아나톨리아 지역)의 트로이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국가들이 빠진 상황에서 그리스 연합이라 부를 수는 없지않겠는가. 아직은 반도 전체의 모든 도시국가들을 포함시키지 못한 아카이아지역의 연합군과 아나톨리아 지역의 트로이란 도시국가 사이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후에 페르시아의 침공에 맞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필두로 반도 전체의 모든 도시국가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대적하였을 때, 그때 비로소 그리스(그리스 연맹)란 국가 형태의 의미를 가진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야만 하는 지중해의 패권국 그리스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분명하게 사전에 이렇게 밝혀두었기에, 이제부터 풀어나가는 이야기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가져가기 위해서 굳이 '아카이야 연합'을 구분하기 보다, 그냥 보편타당하게 여겨지는 선에서 '그리스 연합'으로 쉽게 불러나가려고 한다. 언제든 필요해지면 다시 아카이야를 구분해 불러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여전히 난해한 명제로 남아있는 호머(Homer)란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 세기에 벌어졌다고 추정되는 전쟁이다. 그런데 호머는 기원전 6세기에서 8세기 중간의 어디쯤에 살았던 사람으로 역시나 추정되고 있다. 얼추 두 개의 사건 사이에는 600년이라는 시간차가 생긴다. 1년~2년, 10년~20년이 아니라 600년이라는 시공의 차이가 엄연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하에서 600년 전에 벌어진 트로이 전쟁(Trojan War)을 배경으로 1부격인 <일리아드>와 2부격인 <오디세이>가 누군가의 시로 등장했고, 세상을 떠도는 유랑시인들의 입을 통해 노래로 불려지지면서 600년을 전해내려갔다. 그런 600년 후에 등장하는 호머(Homer)에 의해 재수집되고 정리되고 편집되어서 비로소 처음으로 책으로 기록된 것이 바로 지금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는 서사시 원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호머(Homer)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원작자로 볼 수 있는 것일까?
더해서는........ 그래 좋다!!!! 그래서 <일리아드>는 호머가 썼다고 한다고 쳐도, <오디세이>까지 호머가 썼다고 하는 것은 좀 심한 억지가 아니냐 하는 문제가 등장하게되는 것이다.
다음 세 번 째로는 ‘트로이 전쟁(Trōia War)’은 한 차례로 그친 사건이나 전쟁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트로이 1차 전쟁은 ‘신화의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벌어졌으며, 그로부터 한 세대 혹은 두 세대가 지난 시점인 '역사의 시대'에서 벌어진 2차 트로이 전쟁이 바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전쟁이 된다. 두 개의 전쟁이 그럼 아무런 상관이 없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1차 전쟁의 이해 당사자와 2차 전쟁의 이해 당사자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1차 전쟁의 여파가 2차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다분히 전쟁의 배경으로 나름 작용을 한 것은 결코 부인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하나가 아니라 두 번의 전쟁이었다는 전제는 다음에 트로이 전쟁이 허구의 신화이냐 실재한 역사이냐를 논함에 있어서 나름 중요하게 작용할 수가 있어서 반듯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럼이쯤에서 다시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들을 만나러 가보기로 하자.
캐리커쳐 맨 왼쪽에 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Menelaus)다. 전쟁의 발단이 되는 미녀 헬레네의 남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피렌체 란치 화랑에 가면 아주 멋진 그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어떤면에서 생각해 보자면 영화 <오디세이>의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이 야심 차게 새롭게 부활시킨 인물 중의 하나라 해도 그리 틀린 주장은 아닐 것이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모르는 성인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툭하면 세계사와 시사상식 문제에도 곧 잘 나올 정도니까 말이다. 여러 번 같은 소재로 리바이벌되는 영화와 연극과 심지어 뮤지컬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을뿐더러,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영원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아닌가 말이다. 책으로 모두 읽은 사람은 극히 드물지 몰라도 다른 매개체를 통하여 ‘트로이 전쟁 스토리’는 이제 어느정도 상당히 익숙해 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두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는는 물론이거니와 아킬레우스의 상대인 헥토르까지도 친숙해졌다 할 수 있겠고, 이 전쟁 발단의 당사자인 헬레네와 파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가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공전의 히트를 통해서 흥행 성적은 물론 수많은 가십거리와 의문과 반론들을 야기 시키면서, 예기치 못한 호머 이야기의 열풍과 연구가 이어지고 마는 진풍경을 한동안 연출해 냈다.
그런 화제와 논쟁의 결과로서 메넬라오스를 필두로 아가멤논이며 레오니다스 왕은 물론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까지 이제껏 아예 몰랐거나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던 인물들까지 대거 논쟁과 연구의 대상으로 급부상하는 실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펼쳐졌다.
놀란 감독이 특별 선발한 시논(Sinon)의 경우는 호머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임에도 반드시 필요한 비중있는역활이 맡겨졌고, 덕분에 호머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덧붙여 등장하는 요정과 마녀에 이르기까지 21세기 중반에서 뜻밖의 <호머 이야기> 광풍이 한바탕 요란하게 온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익숙한 영웅으로 친숙해진 메날라오스를 지나면, 다음 인물이 ‘애플 게임’의 주인공인 파리스(Paris)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내가 따로 해줄 이야기는 없는데, 그럼에도 한 가지 충고는 해줄 수 있다. 한창 피가 뜨거운 젊을 때야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한테 끌리겠지만 그거야말로 다 개뿔인거야.’ ‘제시받은 세 개의 조건 중에서 가장 하급이 예쁜 여자인 거야. 그보다 조금 나은 것이 아테네의 지혜와 명성이고, 완빵은 당연히 헤라의 권력인게야. 인생 경험이 미천하니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말이야. 조금만 생각해 봐. 세상에서 두 번째로 지엄하신 왕비마마 헤라 여신의 손을 높이 들어 올려주고 보상으로 세 번째로 높은 절대 권력을 하사 받았다고 쳐봐, 언제든 지혜는 옆에서 빌려 쓰면 되고, 예쁜 여자는 언제든 또 권력 앞에 무릎 끓고 제발로 기어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 세상사인 것을 모르고 가장 하급 선택을 하다니. 개뿔. 멍청한 파리스가 아닌가.’ 그렇고 그런 막장드라마 완결편이 그리스 신화이건만, 파리스야 넌 도대체 신화에서 무엇을 배웠니?
헤라 여신에게 파리스의 사과가 건네 졌다면 트로이 전쟁은 절대로 없었으며, 파리스는 아킬레우스 보다 멋지게 살았을 것이다.
그다음의 영웅이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독화살에 죽은 후에 실질적으로 그리스 연합군을 지휘한 정말 인간적인 영웅 디오메데스(Diomedes)다. 그리고 그다음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 돌아온 그리스 연합군의 꾀주머니 오디세우스(Odyseús)이고, 이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 연합군의 장군 중 가장 연로하고 또 가장 지혜로웠던 네스토르(Nestor)이고, 마침내 그리스 최고의 전쟁 영웅인 슈퍼스타 아킬레우스(Achilles)이며, 마지막으로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Agamemnon)이 등장한다. 영화에는 주로 뒷모습만 보여주고, 등장하는 시간과 장면도 지극히 적고 짧았지만 강렬한 인상과 임펙트는 당연 톱이었다.
참고로 지금 나는 ‘오디세우스의 노래’인 오디세이아(Odysseia)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속으로 사실은, 오디세이 이야기를 통해 디오메데스(Diomedes)와 네스토르(Nestor)는 물론 아킬레스 다음으로 추앙받았던 용맹한 영웅 대 아이아스(Ajax the Great)가 누구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비극과 다른 시인의 이야기에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필록테테스(Philoctetes)와 트로이 왕자에서 로마 신화의 연결고리가 되는 새 시대의 영웅 아이네이스(Aeneas)를 좀 더 새롭게 조명 해고픈 마음이 솔직한 지금 나의 심정이다. 그런데 그러자니 분량이 엄청나다. 엄두가 안날만큼.
오디세우스가 아이아스를 시기 질투하여 모함하지 않았고, 오디세우스가 그 총명한 머리를 네스트로처럼만 적당하고 올바르게 쓰고 처신했다면, 아마도 그 쌩고생(?)에 후회와 번민으로 가득 찬 호머의 <오디세이>는 지금같은 서사시로 절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오디세우스 보담은 차라리 디오메데스의 영웅담에 손을 슬쩍 들어주고 싶다.
그렇다면, 호머(Homer)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이야기 하면서 정작 호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가?
몇몇 역사학자들은 트로이 전쟁의 실제 가능성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다. 물론 그에 해당되는 전쟁 자체는 역사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앞선 주장들을 미뤄본다면 트로이 전쟁의 실체는 미케네인들(펠로폰네소스 라는 지역에 한정된 아카이아 연합군)의 약탈이나 소규모 정복 전쟁이 호메로스에 의해서 극적인 드라마로 각색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한 설명일 듯하다. 미케네인의 윌루사 침공은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로 보아 그런 사건이 존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이나 유물 증거들만 놓고 보면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당대의 이름이 알려진 모든 문명권에서 대규모 군대를 파견한 세계대전 급의 규모는 되지 못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청동기 시대 근동의 인구나 문명 기준, 그중에서도 비교적 약소 문명이었던 미케네 문명의 입장에서 보이는 시각으로는 어쩌면 이 전쟁이 굉장히 큰 전투로 기억되었을 수도 충분히 있겠다. 하여 결국에 관건은 평범한 수준의 전쟁이 서사시 덕분에 큰 사건으로 기억된 것인지, 아니면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의 묘사만큼은 아니라도 실제로도 바다 민족의 침공처럼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실제로 그런 큰 전쟁이었는지 여부인 셈이다.
하지만....... 필자와 여러 학자들의 견해로는....... 트로이 전쟁은 실제로 있었다. 한 번이 아니라 아주 여러 차례 고만고만한 전쟁들이 벌어졌다. 트로이 지역이 충분히 빼앗아 차지하고 싶은 중요 길목의 요충지로 항상 분쟁지역이었던 때문이다.
하지만, 호머가 노래했던 그당시에 세계대전에 버금갈만한 전쟁은 절대로 없었다. 역사적 기록과 드러난 증거들이 분쟁은 있었으되, 실로 커다란 전쟁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충분할 정도로 잘 입증해 준다. 당시의 처지나 수준이나 시대 상황으로 볼 때, 그 정도 막대한 군대와 물자를 동원하고 10년이라는 장기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과 경제력과 기술력이 절대 불가능했을뿐더러, 트로이 성이 있었던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호머의 시와 여러 부분에서 치명적으로 잘 들어맞지 않는다.
결국, 호머이거나 아니면 누군지 알 수 없는 최초에 시를 쓴 시인의 입장에서 보아, 600년 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전쟁을 가만가만히 요리조리 생각해 보다가 그것이 충분히 재미있고 훌륭한 실제 있었던 전쟁의 소재라고 판단되어, 거기에 신들의 이야기와 숱한 영웅담을 곁들여서 실제와 전혀 다른 원대하고 장엄한 한 편의 서사시로 완성한 것이라고, 솔직히 부풀렸다기 보담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대한 뻥질(?)의 결과로 탄생한 전설 같은 이야기라고 이해하고 싶다.
하여 그 서사시의 배경이 되는 전쟁을 우리는 ‘신화와 역사가 혼재해 있던 아주 특별한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니 그 배경에 대한 이해도 아주 특별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호머(Homer), 당신은 누구야?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야?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사실 호머(그리스어로 호메로스)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에선 매우 특이한 이름이다.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년~ 기원전 323년)시대까지 호머(Homer)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머가 살았다고 하는 시기가 기원전 6세기 경인데 말이다. 호머 사후250년 가까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에 대해 몰랐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활동한 호메리다이(Homeridae)라는 그룹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
호메리다이(Homeridae)는 흡사 발칸 반도의 바드들과 같이 여기저기 유랑하는 전문 가수였다.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 지역에는 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영웅들을 노래하는 바드들이 존재했다. 이 가수들은 책을 악보 삼아서 낭송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글을 전혀 읽거나 쓰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즉흥적으로 서사시를 써내려 갔다. 그들은 전체 이야기를 마음으로 알고 있었지만, 공연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표현과 내용으로 이야기했다. 이런 내륙의 바드들의 이야기 스타일이 바로 반도 끝자락 그리스에서 호메로스와 같은 유랑시인들의 시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발칸반도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시를 노래하던 사람들을 바드(Bard)라 불렀는데, 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유랑시인’이라고 나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바드는 구글이 2023년 2월에 발표한 대화형 생성 AI 서비스의 이름이었으며, 현재는 제미나이(Gemini)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제미나이(혹은 바드)는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수집하여 이해하고 분석해서 보다 새로운 정보를 생성할 수 있는 멀티모달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바로 고대의 그리스와 발칸반도를 떠돌던 바로 그 유랑시인들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인가?
‘트로이 전쟁에 관한 대서사시’는 그렇게 호머(Homer)되었던, 호메리다이(Homeridae) 라는 집단에 의해서였건, 그것도 아니면 바드(Bard)에 의해서였건, 현대의 제미나이(Gemini)를 통했던 그런 먼 과거의 비슷한 방식과 형식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라는 국가 자체가 본래 원주민이었던 크레타인들이 세운 미노스 문명을 바탕으로, 어느날 발칸반도에서 몰려온 이민족 도리아인들과 합쳐지고, 다시 바다를 건너온 이오니아인들이 섞여서 세워진 복합 국가였다. 어쩜 그 과정에서 함께 들어온 바드의 문화가 토착화하여 호메리다이 문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아마도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언어학자 마르셀로 두란테는 호메리다이라는 이름이 제우스 신전의 호마리오스 성소(유니테르 제우스)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간혹 어떤 특정한 전문 집단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신전과 같은 신성한 장소에서 따온 경우가 여럿 있다. 예를 들어본다면, 아스클레피아대는 아스클레피온 신전과 관련된 치유자의 그룹(길드)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학자들은‘호메리다이’라는 단어를‘호메로스의 후예들’혹은‘호메로스의 자녀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호메리다이 그룹(길드)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서 ‘트로이 전쟁에 관한 서사시’가 이들의 노래를 통해 낭송되고 연주되기 시작했다.
차차 그들의 노래는 언제나 최고의 정설로 받아 들여 졌다. 그러면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고대의 호메로스(혹은 호메리다이)에게 귀속된 시(詩)로 받아들여 지게 되었다.
그것이 호머(Homer) 이거나, 아니면 호메리다이(Homeridae) 이거나 말이다. 아니면 바드(Bard)라고 하던가, 더 나아가 제미나이(Gemini) 라고 해도 안될 것은 또 무엇이 있겠는가?
‘호머(Homer)’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헤로도투스(Herodotus)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호머란 인물에 대한 기록이 헤로도투스 외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서 헤로도투스와 바사리에 대해서 이미 약간 부정적 평가를 내린 적이 이미 있었는데, 여전히 호머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헤로도투스가 남긴 기록에 상당한 의지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 지경이 절대 의존까지 되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전제를 또 깔고 시작해야겠다. 만약 헤로도투스 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호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호머를 찾아내기 위한 현상범 포스터라도 만들어 2.500년 전에 붙였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상금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판권 전액을 걸고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일단 헤로도투스의 이력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대화의 장 전면에 그를 불러내서 호머에 관한 그의 증언을 먼저 들어보기로 해야겠다.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호머(Homer)란 존재에 대한 헤로도투스의 증언을 들어보기로 하자.
기원전 750년 즈음에 소아시아(터키 지역의 그리스) 지역, 그러니까 현 터키 반도의 서부 이오니아 지역에 있던 고대 그리스 마을 쿠마에 크리테이스(강의 요정이라는 이름) 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고아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서 임신을하게 되자,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질시가 두려워 멀리 떨어진 스미르나(이즈미르)로 달아나 그곳에서 미혼인 처녀의 몸으로 사생아 아들을 낳게 되었다. 엄마가 된 크리테이스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페미우스라는 사설학원 강사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맡아 하였는데, 그만 강사와 사랑에 빠져 정식 결혼을 했다. 덕분에 어린 아들은 문학과 음악을 가르치던 양아버지에게서 일찍부터 시와 음악을 배웠는데 그가 바로 우리가 기억하는 호머(Homer)란 인물이다. 양아버지의 학원에서 호머는 단연 돋보이는 우수한 영재였다. 양아버지와 어머니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차례로 사망하자, 호머가 학교를 상속받아서 운영하였는데, 점차 탁월한 명강의로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호머는 이제 이즈미르(스미르나)의 유명인사 반열에 올랐다.
그러던 중에 그리스반도 서부 레우카디아 섬 출신의 여행가 멘테스가 이즈미르에 들렸다가 우연히 호머와 조우했다. 금새 친해진 멘테스는 자기가 경비 전체를 부담할 테니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한다.
호머와 멘테스는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가게되었는데, 새로운 여행지는 그때마다 호머에겐 호기심 가득한 신천지로 여겨졌다. 그는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질문과 대답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신지식을 습득해 나갔다.
다시 그리스 본토로 건너가 문제의 이타카(Ithaka) 지역에 들렸을 때, 그만 심각한 안질에 걸리고 말았다. 안질 치료의 진척이 없고 많은 시일이 필요해지자 멘테스는 멘토(Mentor)라는 의사에게 호머의 치료를 부탁해 맡긴 후에 가던 여행길을 다시 찾아 떠났다. 이것이 운명이었을까? 이타카에 치료를 위해 장기 거주를 하게 되면서, 지역에 전설로 남아 있는 오디세우스 이야기와 트로이 전쟁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 대부분의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이 바로 의사 선생님 멘토였다. 후에 멘토라는 이름이 <오디세이>에 등장하고, 그 이름의 인물이 어떻게 그려지는 지는 바로 이 시기의 영향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터를 향하면서 오랜 친구 멘토에게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어린 아들의 교육과 안전을 지켜줄 후원자 역할을 맡아줄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
하지만, 그런 멘토도 끝내 호머의 안질을 낫게 하지는 못했다.
상태의 진전이 오래도록 없자 마침내 호머는 일단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귀향하는 과정의 소아시아 콜로폰에 이르러 기어이 눈이 멀고 말았다.
이즈미르(스미르나) 고향으로 돌아 온 호머는 계속 시를 짓는 일에만 몰두했다. 장님이 된 그에게 시와 음악을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없어지자 결국 호머는 다시 유랑 길에 나서게 되었다. 특별한 행사에서 그에게 시와 노래를 청해 듣고자 하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시와 음악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우연히 초청받아 들린 네온 테이코스 마을에서 티키아스라는 무기 제조공을 만나 친구가 되면서 아예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감사하게도 그 지역 사람들이 기꺼이 나서서 호머를 초청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주면서 비로소 유랑생활을 끝내고 정착하여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 호머의 가슴 한쪽에는 어렵게 살다가 훌쩍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고향 쿠마를 방문했다. 쿠마에서도 이미 호머의 시와 음악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여 여기저기서 호머를 초청해 공연 활동이 거듭거듭 반복되면서, 호머는 문득 이대로 어머니의 고향에 정착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여 그는 시의회의 관리를 만나 시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공적 지원(체류 생계비용)을 지원해 주면, 특정 장소에서 시민들을 위해서 정기 공연을 하겠으며, 이를 통해서 주변의 다른 도시에서도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호머의 치솟는 인기를 시기 질투한 한 시의원이 등장하여, 시의회가 한낱 걸인 같은 시인나부랭이를 위해 공적 자금을 들여서 먹여 살려준다고 소문이라도 나게 되면 사방에서 거지와 부랑자들이 떼로 몰려들 것이라고 하면서 다된 성사를 가로막아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 소요와 분쟁은 역으로 ‘호머’라는 이름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좀 떨어진 키오스 섬의 포코라는 마을에 초청을 받아 호머가 그리로 건너갔을 때의 일이다.
평소에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인 테스토리데스 라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 그는 어느 정도 부와 명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호머에게 자신만을 위한 단독 공연을 열어 자신을 위한 시를 써서 노래해 준다면, 숙소와 음식은 물로 후하게 보상해 주겠다는 제의를 해온 것이다. 하여 한동안 그의 제의에 따라 시를 쓰고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배려가 점점 형편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끝내는 모든 약속을 파기하고 호머를 내쫓았다. 하여 호머는 다시 쿠마로 돌아와 다소 처량한 생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우연히 쿠마를 방문한 키오스 섬의 한 상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상인으로부터 요즘 한참 키오스 섬에서 뜨고 있는 시를 소개받게 되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그 시는 호머 자신이 쓴 시였다. 작가를 물어보니 새롭게 등장한 시인이라며 테스토리데스라는 이름이 나왔다. 호머에게 자신을 위한 시를 쓰게 하고는 무차별로 내쫓은 다음에 그 시를 자신이 지은 시라고 발표했던 것이다.
화가난 호머는 부랴부랴 키오스 섬으로 달려갔다.
섬에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어 헤매던 중에 글라우쿠스 라는 선한 양치기를 만나 그의 오두막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되었다. 밤이 깊도록 두 사람의 대화는 길게 이어졌고, 호머는 그간 자신이 경험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시를 양치기를 위해 기꺼이 노래해 주었다.
그러자 양치기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자신의 주인이자 그리스 본토에까지 명망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관리에게 달려가 지난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를 거두어 머물게 해줄 것을 청했다.
‘내 평생동안 글라우쿠스가 호들갑을 떨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는, 오늘 이게 무슨 사단이란 말이냐? 그런 훌륭한 인물이 이 작고 초라한 섬에 떠돌이 행색으로 찾아왔다는 말이 어떻게 가당키나 하단 말이냐. 네가 무엇엔가 홀렸거나, 그 나그네가 엄청난 사기꾼인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틀림없는 인재였습니다. 감히 청하건데 주인께서 한 번만 그를 직접 만나주십시오. 거듭 요청드립니다.’
평소 세상에서 둘 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충직한 하인이 저렇게까지 하는데는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주인이 호머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호머는 그 주인집에서 주인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더불어 테스토리데스의 시인 사기가 밝혀지고 가짜 시인은 키오스 섬에서 영원히 추방되고 말았다.
호머 인생의 황금기가 그곳에서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섬 사람들이 그를 환영했고 자랑스러워 하게 되었다.
호머는 그곳에서 결혼을 했고 두 딸을 얻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그를 초대하고자 하는 초청장이 쇄도했다.
호머에게는 아테네를 방문하고 싶다는 오랜 열망이 있었다. 하여 마침내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
바닷길을 통해 아테네로 향하기로 하고 출발을 하였는데, 항해 도중에 그만 발작을 일으켜(요즘으로 치면 심혈관 질환) 서둘러 키오스 섬으로 돌아왔고, 이내 사망했다.
전해 내려오는 한 풍문 같은 전설에 따르자면, 항해 도중에 한 섬엘 들렸는데 그곳에서 어떤 어부의 아들이 호머에게 수수께끼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만 안타깝게도 호머는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당대 그리스 전역을 통털어 최고 시인이자 최고 지식인이라 자부하던 호머가 후미진 지역의 한 어촌 마을 꼬맹이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는 수치심이 그를 나락으로 떠밀었으며, 꼬맹이에게서 그 해답을 듣고 나서 그길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허풍일까?
어쩌면 그럴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럼 그 호머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수수께끼가 한 가지 있다. ‘신화와 역사가 혼재되어 있던 바로 그 시대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가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를 대표하는 비극 <오이디푸스>에 등장하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알아맞히자 스핑크스가 그대로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의 유래가 어쩌면 호머가 어부 아들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수치심에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전해지던 이야기를 살짝 변형시켜서, 비극의 극적인 장면에서 얼마든지 충분히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너무나 충분해 보이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어쩌면 호머는 정말로 그렇게 사망했을지 모르겠다.(세상 어디에도 들어본 적도 없는 필자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이참에 나서서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호머의 논문 한 편을 써볼까?
서구의 유럽에서는 헤로도투스(Herodotus. 기원전 484~425)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歷史)라는 개념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고대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헤로도투스를 빼놓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다. 다만 오지랖이 너무 넓은 탓에, 그의 주장에 너무 깊게 의존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산에 올라가 있을 수도 있다.
호머(Homer)에 대한 이야기가 그 가장 좋은 예라고 하겠다.
그 누구도 나서서 호머란 존재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런 때문에 존재했던 사람과 존재하지 않은 꾸며낸 사람이라는 평가가 공존하지만, 위에 밝힌것처럼 호머란 존재를 실존인으로 확신하기에는 저렇게 헤로도투스가 작정하고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호머에대한 이야기가 버젓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헤로도투스가 남긴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사시를 (무명씨 작품)으로 알게 되거나, 수많은 유량시인들에게 전해내려 오던 이야기를 후대에 누군가가 집대성하여 책으로 발표하면서 필자란에 가명으로 (호머)를 써 넣었다는 이야기가 성립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호머를 되살려냈는가 하면, 동시에 ‘트로이전쟁 이야기’를 서사하면서 정작 호머와 전혀 다른 엉뚱한 주장을 펼친다.
헤로도투스는 아카이아 연합군(그리스군)이 헬레네를 되찾겠다며 트로이로 쳐들어 갔을 때, 정작 파리스와 도망친 헬레네는 트로이에 없었다는, 참으로 당혹스런 엉뚱한 주장을 또한 기록으로 분명하게 남겼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꼬득여 납치해서 바다로 도망쳤다가, 거센 풍랑을 피해 잠시 쉬어가려고 이집트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다. 그리스군이 뒤쫓아 올 것이라는 불안감과 파리스의 가혹한 행위에 불만을 품은 부하와 하인들이 모조리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친 하인들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그 이집트 항구의 총독에게 달려가 파리스와 헬레네의 존재와 이제까지의 여정에 대해 고발을 했다. 고약한 군주가 헬레네와 보물들을 다 빼앗고 파리스를 내쫓아버렸다. 파리스는 거지꼴이 되어서 트로이로 돌아왔고, 이어서 아카이아 원정대가 들이닥쳤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내놓으라 했고, 파리스는 이집트에서 빼앗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믿지 않은 아카이아 연합군이 10년 동안 전쟁을 불사했고, 끝내 트로이는 멸망하고 말았다. 트로이 성에 들어가 샅샅이 뒤졌지만, 헬레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파리스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음을 깨닫게 된 메넬라오스는 군대를 몰고 다시 이집트로 갔고, 거기에서 헬레네를 되찾아 그리스로 되돌아갔다.
이렇게 되면 <일리아드>는 참 웃기는 시시하고 엉뚱한 서사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영웅이라는 존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명분도 없이 쪼잔하게 쌈질이나 했다는 결론이되는 것이다. 그런 나가리 판에 신의 아들인 아킬레우스가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이런 해프닝이 헤로도투스에게서만 모두 끝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헬레네>에서도 보면, 헬레네를 꼬득여 납치한 파리스가 속임수로 환상을 부려 트로이로 함께 도망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부탁해 헬레네를 이집트에 숨겨달라고 요청했다. 하여 헬레네는 이집트 왕인 프로테우스의 보호하에 트로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집트에 머물렀다. 이집트에서 트로이 전쟁 때문에 수많은 영웅과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던 중에, 자신이 저지른 행동 때문에 어머니 레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에 빠져 슬픈 나날을 보내게 된다. 거기다 보호자인 이집트 왕의 아들에게서 거듭되는 무리한 청혼 요구에 살아갈 의욕마저 상실하였을 때, 전쟁을 끝내고 귀국하던 도중에 지중해 거친 파도에 난파되어 거지꼴로 이집트에 떠내려온 메날라오스와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고, 함께 그리스로 돌아간다.
여기에선 아킬레우스가 덧없이 죽은 별 볼일 없는 영웅으로 전락하고, 메넬라오스가 승리자가 되며, 헬레네는 정당한 명예회복을 얻게되는 것이다.
헤로도투스와 에우리피데스에 따르자면, 트로이 전쟁은 호머가 적어내려간 것처럼 그렇게 거창하고 명분있고 신들까지 가세하는 위대하고 거룩한 성스러운 전쟁이 결코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호머의 뻥이 심한 것일까? 아니면 쥐 뿔도 모르는 헤로도투스와 에우리피데스가 괜히 딴지를 걸었던 것일까?
아무튼 트로이 전쟁(Troy War)이 실제 있었다? 없었다?
설사 있었다고 쳐도, 실제 헬레네가 이집트에 체류하고 있었다면, 그 전쟁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아니겠는가? 그런 해프닝에 수많은 영웅들과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패거리를 나누어 쌈질까지 벌였다면, 그게 무슨 거룩한 대서사시란 말인가?
헐!!!!!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어쨌거나 호머는 헤로도투스에게 의문의 1패를 당했다. 팽을 좀 심하게 당했다.
--- 글 올리는 작업중입니다. 일과 병행하다보니 조금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