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알아가기를 늘 원하는 말씀에 대한 초보자입 니다. 이곳에서도 우리주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신학이라는 뜻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이 까페에서 늘 한 수 배우고자 관심을 갖은 사람입니다. 특히 "십자가마을의 신학은 건전한가?" 의 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연히 십자가마을을 알게 되었고 말씀의 초보자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의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있습니다. 우선은 질문과 답변의 내용들이 신학을 공부하신 분 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공방 되는 내용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로 비 판되는 내용에 대한 이해를 제가 못해서 그런지 왜 믿는 형제들이 말싸움만 할까? 하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양쪽에서 비판되어지는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고 그 비판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면 예수님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면에서 특히 이 카페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통해서 유익함을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 마음 에 답답함이 한 자리하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답답함을 가지고 저의 짧은 소견을 간단 하게나마 감히 적어 보려고 합니다. 물론 비판의 내용입니다. 첫번째 이곳의 비판형태가 "십자가 마을의 자유게시판이나 질문 답변" 에 대한 중계방송식 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중계방송에 꼬리말로 각자의 의견을 적습니다. 이런 형태에서 나 타나는 "의견들"이 끼리끼리 문화의 내용이라는 것을 떨쳐 버릴 수 가 없습니다. 물론 어쩌 다 한, 두어분이 다른 의견으로 접근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런 분위기라는 것입니다. 덧붙이면 십자가마을을 불쌍히 여기고 권면의 말을 하지만 그 뉘앙스에는 받은 상처와 괘 씸함이 듬뿍 묻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답답한 마음 입니다. 두 번째는 이곳의 신학적인 관점이 십자가마을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드디어 말씀 의 초보자인 제가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머릿글로 올려진 '열매"라는 분의 글에서 보면 이 까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로 십자가마을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글들이 없다 는 것입니다. 모두 잘 알고 있는 분들만 계셔서인지는 몰라도 제 생각은 그런 글들로 이곳 을 꽉 채워야 된다고 봅니다. 이 또한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러함에도 이곳에서 십자가마을을 비판하는 주된 출발점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 유의지인 것에서 출발되어 진다고 봅니다. 즉 십자가마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만 강조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시한다는 것이 비판의 대체적인 흐름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바로 여 기서부터 정확히 다른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십자가마을에서는 하나님의 절 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모순되지 않으며 두가지 다 허용이 되는 개념으로 인정하고 있 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곳과는 다르게 이 두 개념이 인간의 철학에서 나온 개념이라는 것입 니다. 따라서 성경적이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출발점이 왜 다른지 를... 저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 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철저히 알려주는 것이 이곳의 의무이며 이 곳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과 함께 십자가마을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사 료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제가 첫번째에 지적한 내용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제 짧은 소견입니다. 칭찬하는 말이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답답함에
첫댓글이곳 마을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참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마을의 문제점을 애정의 눈으로 지적해 주시니 참 감사를 드리면서, 님의 지적해 주신 문제들을 개선해 가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마을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더불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의지의 자유"와 "자유의지"는 비슷한 듯 하지만 서로 다릅니다. '자유의지'라는 말은 의지 자체가 자유롭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오해를 낳게 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자유롭기도 하고 자유롭지 못하기도 합니다. 중생받지 못했을 때는 우리의 자유는 악으로만 자유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자유하지 못합니다. 중생된
이후에는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께 대해서 선을 향해서 자유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악을 짓기에도 자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영광스러운 신분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선과 하나님에 대해서 자유하기만 한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존재들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지의 기능에 대해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주권에 우리가 자원해서 반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그 역사하심이 절대적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전적인 책임입니다. 약물중독이 되면 될 수록 도덕의지가 약해집니다. 도덕의
지가 약해져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면 약물중독이 된 이후에 살인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고 얘기를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선을 행하지 못한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능력으로 그 책임을 평가한다면, 살인을 많이
한 사람이 선을 행할 능력이 적어지기 때문에 살인의 책임이 덜하게 된다는 모순된 설명이 나옵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없어도 그 선을 행하지 못한 것은 그 선을 행하지 못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곳 양무리마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모두 균형있게 강조하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첫댓글 이곳 마을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참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마을의 문제점을 애정의 눈으로 지적해 주시니 참 감사를 드리면서, 님의 지적해 주신 문제들을 개선해 가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마을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더불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의지의 자유"와 "자유의지"는 비슷한 듯 하지만 서로 다릅니다. '자유의지'라는 말은 의지 자체가 자유롭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오해를 낳게 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자유롭기도 하고 자유롭지 못하기도 합니다. 중생받지 못했을 때는 우리의 자유는 악으로만 자유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자유하지 못합니다. 중생된
이후에는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께 대해서 선을 향해서 자유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악을 짓기에도 자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영광스러운 신분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선과 하나님에 대해서 자유하기만 한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존재들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지의 기능에 대해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주권에 우리가 자원해서 반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그 역사하심이 절대적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전적인 책임입니다. 약물중독이 되면 될 수록 도덕의지가 약해집니다. 도덕의
지가 약해져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면 약물중독이 된 이후에 살인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고 얘기를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선을 행하지 못한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능력으로 그 책임을 평가한다면, 살인을 많이
한 사람이 선을 행할 능력이 적어지기 때문에 살인의 책임이 덜하게 된다는 모순된 설명이 나옵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없어도 그 선을 행하지 못한 것은 그 선을 행하지 못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곳 양무리마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모두 균형있게 강조하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균형잡힌 복음의 강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