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우병 파동에서 세월호, 코로나19, 이태원 참사까지
한국 현대정치를 돌아보면 대형 재난과 사회적 위기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권력투쟁의 정치적 기제(機制)로 작용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분열과 소모적 논쟁이 반복되었고, 국민적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재난은 본래 국가 시스템을 점검하고 공동체의 연대를 회복해야 할 계기이지만, 현실 정치 속에서는 오히려 진영 대결과 권력 재편의 도구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우병 파동, 세월호 참사, 코로나19, 그리고 이태원 참사는 서로 다른 시대와 성격을 지녔지만, 사회적 해석의 방식에서는 공통점을 드러낸다. 국민들은 단순히 사건 자체만 본 것이 아니라 “국가는 과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정치권은 이러한 불안과 분노, 공포와 슬픔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정치화했다는 점이다.
대형 재난은 한편으로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과 공감 능력, 책임지는 태도를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진영이 상대를 공격하거나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선동정치의 기제로 악용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적 원인 규명보다 감정의 동원과 프레임 경쟁이 앞서면서 사회적 갈등과 진영 대립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은 촛불정치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원라 검역과 안전 기준을 둘러싼 기술적 논쟁에 가까웠지만, 정치적 상징성을 띠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의 최대 위기로 번졌다. 이를 정치 이슈로 확대시킨 것은 시민사회와 인터넷 여론, 촛불집회 세력, 그리고 야권과 진보 진영이었다. 이들은 정부의 졸속 협상과 무능을 부각하며 대규모 촛불집회를 조직했고, 반대로 여권은 이를 과장된 선동으로 규정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총선 직후 한나라당 153석이라는 안정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까지 더하면 범보수 진영 의석은 180석을 넘었다. 그러나 광우병 파동 이후 정부 지지율은 급락했고, "불통 정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사실관계 자체보다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하는 정부"라는 인상을 남겼고, 이후 반MB 정서는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정치적 흐름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304명이 희생된 이 사고는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니라 국민들이 국가가 국민을 끝까지 구하지 못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건이었다. 구조 실패와 혼란스러운 대응은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누적시켰다.
이 사건을 정치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린 것은 유가족과 시민 추모세력, 야당과 진보 진영, 그리고 이를 집중 보도한 언론이었다. 반면 여권은 참사의 정치적 이용을 경계하며 방어 논리를 폈다. 세월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152석이라는 안정적 의석 기반을 갖고 있었지만, 2016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122석으로 추락하고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으로 원내 1당이 되었다.
박근혜 탄핵의 직접 원인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었지만, 세월호를 통하 누적된 정부 불신이 탄핵 여론의 정서적 토양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코로나19는 또 다른 양상을 보였다. 초기에는 정부 대응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평가되며 오히려 정권 지지 효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검사와 추적 거리두기 체계를 빠르게 구축하며 이른바 "K-방역"을 국가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 친정부 성향 언론은 방역 성과를 적극적으로 정치적 자산화 했다.
그 결과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은 180석에 가까운 압승을 거두었고, 미래통합당은 103석에 머물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장기화된 거리두기와 자영업 피해, 방역 피로, 부동산 문제 등이 누적되며 정권심판론이 커졌다. 결국 같은 코로나라는 사건이 초기에는 정부 결집 효과를, 후기에는 정권교체 여론을 동시에 낳은 셈이다. 코로나는 방역이 곧 정치가 된 대표적 사례였다.
2022년 이태원 참사는 다시 한 번 재난의 정치화를 보여주었다.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사고는 예방 가능성이 큰 참사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이 컸다. 야권과 시민단체, 유가족들은 정부 책임을 강하게 제기했고, 반대로 여당과 윤석열 정부는 이를 "재난의 정치화"라고 방어했다. 애도는 곧 정치적 언어로 번역되었고, 책임 규명은 진영 대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세월호와 달리 이태원 참사가 곧바로 정권 재편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이미 극단적 양극화가 고착된 정치환경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애초부터 국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여소야대 구조 속에 있었고, 사건 해석 자체가 진영별로 크게 갈렸다.
결국 재난의 정치화는 대체로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사실관계의 일부만 강조해 공포와 분노를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둘째, 상대 진영의 책임을 과도하게 일반화해 정권 전체의 도덕성 문제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셋째, 추모와 안전의 언어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네 사건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은 재난 자체보다 "재난 해석 경쟁"이 정치가 되었다는 점이다. 여권은 위기관리 성과를 강조하거나 비판을 정치 공세로 규정했고, 야권은 정부 실패를 정권 정당성 전체의 문제로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언론과 SNS, 정치권은 사실 확인보다 정서 자극어 집중하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한국 정치에서 재난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권력의 도덕성과 정부의 신뢰 자산을 시험하고, 때로는 선거와 탄핵의 정서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동시에 정치세력은 재난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며 정치적 기제로 활용하려 한다.
동시에 정치세력은 재난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며 정치적 기제로 활용해 왔다. 재난을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언어로 독점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사건 그 자체와 함께, 재난 앞에서 권력이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인정하며 무엇을 책임지는가하는 태도에 주목한다. 그리고 한국 정치의 큰 전환점들은 대개 그 태도가 실패했을 때 찾아왔다.
전쟁의 폐허 위에 장미꽃을 피워낸 기적을 일군 민족, 우리의 정치라는 정원은 언제까지 거친 황무지로 남아 있을 것인가!
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