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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불순종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다
욘3:1-9 눅11:29-32
올해가 2023년 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시작으로 연수가 정해 진 것이다. 사람들이야 예수님을 믿든 안믿든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독생자로 태어나서 인류에게는 죽어도 부활한다는 소망적인 복음을 전하셨고 마지막은 자신이 유대교권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 즉 신성모독제라는 올가미에 씌어져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3일후 부활하셨다가 40일 후에는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 말씀들을 믿으면 구원받아 영생을 누릴 수 있지만 이런 말씀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천국 대신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것이고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은 캄캄한 지옥불로 떨어져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던 진짜 이유는 지옥갈 인생들을 어떻게든 건져내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자 오신 것이다. 한번은 무리들이 모였을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요청하기를 우리들에게 무슨 표적이라도 보여달라고 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의 이 말씀이 주님의 답변이시다. 그렇다면 요나는 누구인가?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이며 선지자로 부름 받았는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그들에게 심판을 외치라고 명령하셨는데(욘1:2) 요나의 생각에는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원수같은 나라인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싫어서 요나는 니느웨이 반대쪽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어떻게 될까?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왔을 때 하나님께서 큰 광풍을 보내시니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다.(욘1:15).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큰 고래에게 삼키움을 당했고 요나는 3일동안 고래 뱃속에서 회개의 기도를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고래에게 명하시어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다(욘2:10). 이런 요나의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예표임을 알게 하는 일에 쓰임받은 실제적인 인물이 요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이 표적보여 주기를 원했을 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나하면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온 실화로 유명한 선지자이다.
영국 바크로프트 TV는 지난해 요나처럼 고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한 남성을 소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쿠버 관광회사의 수중촬영 잠수부 레이너 쉼프(51)는 지난 2월 정어리 떼를 촬영하기 위해 동료들과 바다를 찾았다. 레이너는 15년간 펭귄, 물개, 돌고래, 상어 등 많은 해양동물을 촬영한 베테랑 감독이다. 팀원들과 함께 케이프타운 동쪽에 위치한 포트엘리자베스 항구를 통해 바다로 들어간 레이너는 촬영 중 갑자기 큰 일렁임을 느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해수면이 요동을 치더니 엉덩이에 압박감이 느껴졌고 곧 사방이 어두컴컴해졌다”고 밝혔다. 레이너는 바다 한가운데서 솟구쳐 오른 거대한 고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당시 현장에서 정어리 떼를 쫓던 팀원들은 해당 장면을 목격하고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레이너의 팀원 하인즈 토퍼저는 “주변의 바닷물이 심하게 뒤틀리더니 곧 고래 한 마리가 나타나 레이너를 집어삼키는 것을 목격하고 겁에 질려 몸이 굳어버렸다”고 설명했다. 레이너를 집어삼킨 고래는 ‘브라이드 고래’로 몸길이는 최대 14m에 이른다. 대개 1~2마리씩 소규모로 헤엄치며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에 주로 서식하는데 분기공에서 높이 4~5m로 공기를 뿜어내며 정어리, 꽁치 등과 같은 어류를 좋아한다. 레이너를 삼킨 고래는 좋아하는 먹잇감인 정어리를 쫓다 마침 정어리 촬영팀과 마주치면서 레이너 까지 집어삼킨 것이다. 레이너는 “고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본능적으로 숨을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래를 많이 접했고 분명 곧 빠져나갈 길이 열릴 거라는 걸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대로 고래는 얼마 후 분기공에서 물을 뿜어냈고 레이너는 바닷물에 휩쓸려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팀원 하인즈는 “레이너가 고래 입속으로 빨려들어간 뒤 보트로 돌아와 계속 고래를 주시했다. 다행히 레이너는 고래가 뿜어내는 물 사이로 탈출했고 보트로 헤엄쳐 돌아왔다”고 밝혔다. 잠깐이었지만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살아나온 잠수부 레이너는 “당신이 고래 뱃속에 있다고 상상해보라”면서 “그 어떤 두려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포였다고 말했다. 레이너가 고래뱃속에 느꼈던 공포가 마치 지옥의 공포와 같다는 말인데 고래뱃속에서 살아나온 레이너를 가리켜 ‘현대판 요나’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하겠다.
요나서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멸망받아야 할 니느웨이성 사람들이 왕부터 일반 사람들까지 아니 가축까지도 금식하면서 회개한 결과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은 금식하면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에 금식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들은 해가 뜨기전부터 해가질 때까지 물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우고 금식하는데 실은 저녁 먹고 나서 밤중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자고 종일 금식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점심만 안 먹는 금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라마단 기간은 매년 10일 일찍 하게 되므로 여름에도 하고 겨울에도 하게 되는데 이런 금식을 어느 신이 받겠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금식기도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금식 기도해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말씀이시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다보면 금식기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도 10일간 금식을 네 번 하였으며 매년 3일에서 7일 정도는 금식 기도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닥친 문제들을 금식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아뢰면 응답이 속히 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자녀들이 밥 안먹고 어떤 것에 대해 요구하면 처음엔 안 된다고 하였다가 나중에는 허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듯이 성경에는 금식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사58:6-9)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그것은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앞에서 주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주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 말씀은 자칭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기도를 하며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탄원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인데 그렇기 위해서는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그리고 혈육을 돌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금식을 한다면 네가 부를 때에는 주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라고 한다니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나를 찾고 내 길 알기를 기뻐하는듯하니 그들이 정말 정직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잘 지키는 민족 같은데 그러나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을 찾고 있는 모순된 이스라엘을 향한 역설적인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하였을 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금식하는 날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즐거워하는 일들을 하였고, 그들이 부리는 일꾼들에게 온갖 일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종이나 일꾼들에게 일을 강요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곧 종업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엄포를 놓으며 교회를 가는 업주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내가 받고 싶은 금식이며 통회하고 괴로워하는 날이란 말이냐? 그저 갈대처럼 고개만 숙이기만 하고 굵은 베 옷과 재를 펼쳐 놓는 것뿐이 아니냐? 이것이 너희가 주께서 기꺼이 받으실 만한 금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냐?’라는 말입니다. 진솔한 회개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금식을 어찌 하나님이 받을 수 있겠느냐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주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라는 말은 어두움에서 광명을 본다는 뜻이고, ‘공의가 네 앞에 행한다’는 것은 죄와 허물을 용서받는다는 뜻이고, ‘주의 영광’은 하나님과의 단절로부터의 재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금식한 결과 우리말로 마치 물 댄 동산 같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금식을 한다면 복을 주시겠다는 것도 무려 10개 이상입니다. 이 수지맞는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성경 말씀을 감히 시험해 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금식의 효과가 얼마나 위대한가는 금식기도를 통해 멸망에서 구원받게 된 니느웨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을 때 요나의 표적이외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
(눅11:29-30)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오늘의 세대를 향하여 예수님은 악한 세대라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보면 생각지도 못한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은 이제는 더 이상 놀랄만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재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한 일도,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도, 부부간의 부정한 사건을 숨기기 위해 청부업자를 이용해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성폭력 강간, 강도 등 숱한 사건들은 이세대가 얼마나 악한 세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하셨지만 솔직히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예수님 당시보다 수십배, 수백배나 더 악하고 음란한 시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악을 행하면 그 댓가가 무서운 재앙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와 결국은 인간이 그 댓가를 혹독하게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시대일수록 빈부의 차이는 더 급격하므로 지금 이시간도 너무나 많이 먹어 배터져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 1달라가 없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사는 인간의 욕망은 아무도 만족시킬 수가 없는데 이러한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되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는 부활보다 기쁜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요나서는 BC793-753년에 살았던 선지자 요나에 의해 기록되어진 것으로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니느웨 성읍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 결과 그들이 회개하고 멸망으로부터 구원 얻은 사건을 보면서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차질없이 진행되어 가는 중에 기적같은 일들이 적절히 가미되어 있어서 친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요나서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너는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니느웨성의 사악이 하나님 앞에 이르렀으므로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신다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심판은 코밑 까지 다가오는데 하나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보내시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요나란 인물이 역사적인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나에게는 이스라엘과 앗수르와의 관계는 앗수로가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에 대한 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은 약하지만 선민의식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앗수르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세계만민에 대한 구원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의 사랑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나서를 보면 얼마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민의식과 이방인에 대한 편협적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백성들이 가장 적대의식을 갖고 있는 니느웨 성에 요나로 하여금 그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여 그들이 회개한다면 구원얻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1)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요나는 그 소명을 거역하여 니느웨와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려고 욥바항구에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무사히 잘 갈 수 있었는가?
(욘1:3) 요나가 주의 앞을 떠나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일어나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모든 일이 순풍에 돗 달고 잘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 명을 거역하여 니느웨와는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요나의 마음이 불안해 질 수 밖에 없어서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요나의 일탈된 행동을 보신 하나님께선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왔을 때 갑자기 큰 풍랑을 준비하셨습니다.
(욘1:4) 주께서 큰 바람을 바다위에 내리시매 바다가운데 강력한 폭풍이 일어나 그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된지라.
하나님께서 요나를 위해 준비된 풍랑은 집채만한 파도가 배를 부딪치면서 배가 깨지기 직전까지 왔습니다. 배 젓는 사공들은 배가 파도에 깨질 것 같아 그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들을 바다에 던지고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 하지만 파도의 기세는 곧 배를 삼킬 것 같은 상황으로 변하는데 요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배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욘1: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요나를 깨우면서 말합니다. 오 잠자는 자여 너도 네 하나님을 부르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면 우리가 망하지 아니하리라.
각자가 자기들 신에게 기도하지만 풍랑이 여전하니 풍랑이 뉘 때문인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욘1:7) 그들이 말하기를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왔나 알아보자 하고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히게 됩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가 제비에 뽑히니 더 이상 숨을 수가 없으니 요나가 말합니다.
(욘1:9) 나는 히브리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주 곧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이말은 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는 요나의 신앙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욘1:10) 자기가 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였기 때문에 풍랑이 일어난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배에 탄 무리가 심히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을 피하여 도망하던 요나를 책망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요나가 도피한 것은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구원받을 자이며 모든 열방은 당연히 심판받아 멸망해야 한다는 배타적인 민족감정 때문에 니느웨 성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거역하였다는 것입니다.
(욘1:11-13) 11 요나가 자신 때문에 풍랑이 일어난 원인을 말하였지만 바다는 점점 흉흉한지라 우리가 네게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잔잔하겠느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13 바다가 점점 사나워지므로 능히 육지까지 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현재의 위기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뱃 사람들은 곧바로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어떻게든 노를 저어 육지로 가고자 하였지만 풍랑은 쉽사리 잔잔해지지 않습니다.
2) 큰 물고기 배속에 들어간 요나
(욘1:16) 그들은 결국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었더니 그렇게 배를 삼킬 것 같은 파도가 기적처럼 잠잠해지니 선원들과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주 하나님을 크게 두려워하였고 주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인 고래를 예비하셔서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마자 요나는 고래에 삼켜져서 고래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요나는 고래 뱃속에 3일 있으면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였는데 그 회개 기도한 것에 대하여 요나는 물고기 뱃속이 마치 지옥 같은 곳이라고 하여(욘2:2) 내가 지옥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라고 말합니다. 지옥같은 고래 뱃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기도가 주께 상달되었고 그가 고백한 대로 구원은 주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였는데 삼일 후에 주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여 내니라(2:10).
(2) 요나의 전도
3일 동안 요나가 고래뱃속에 있었던 것은 마치 죽음의 깊은 지옥까지 내려갔다는 말인데 이는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여주는 것이고 요나가 삼일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후에 부활을 예표하시는 것이라고 마태복음12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물고기 뱃속에서 육지에 토함을 받아 생명을 얻은 요나에게 주의 말씀이 두 번 째 임하니라.
(욘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주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갔는데 니느웨는 3일 동안 걸어다닐 정도로 큰 성읍인데 요나가 성읍에 들어가서 단지 하루동안 외쳐 이르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전하였더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3) 전무후무한 니느웨성의 회개
(욘3:5-8) 5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앞에서 금식을 하는데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6 이 일이 왕에게 들리니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으니라.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는다는 것은 가장 철저하게 회개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7 왕과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선포하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것이요 물도 입에 대지 말 것이며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8 니느웨 성의 왕이 선포합니다.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악한 폭력에서 떠날지니라고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였지만 성전체가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 까지 아니 가축까지도 금식을 선포한 회개는 실로 전무후무한 회개를 위한 금식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감히 하지 못한 회개기도를 가장 악하기로 소문난 니느웨성에서 했었다는 것은 가장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4) 구원받은 니느웨 성
그런데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역사이래로 한 성이 왕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 까지 아니 소나 양같은 가축까지 금식을 하였다는 것은 아마 인류역사상 처음이었고 전무후무한 회개기도에 하나님도 감동하셨던 것입니다. 결과는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욘3:10) 하나님이 니느웨성 사람들의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지라.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진솔한 회개운동으로 니느웨성이 구원받은 것은 요나가 전도를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말 요나가 한 것은 3일 동안 다녀야 되는 지역을 겨우 하루 다녔고 외친 것도 40일이 지나면 니느웨성이 무너지리라고 말 한 것 즉 전도 같지 않은 전도를 듣고도 니느웨성 사람들이 정말로 진솔한 회개를 하였기 때문에 니느웨성 사람들이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회개하면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요한일서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인애하시고 누구든지 죄용서 받기 원하면 용서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국가적인 금식기도의 날 선포
아브라함 링컨(1809-1865)은 남북전쟁(1861-1865)이 중반으로 접어들어 한창 치열했던 무렵인 1863년 4월 30일 목요일을 국가적인 금식기도의 날로 정하자는 연설문을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온 미국 국민이 자기의 죄와 허물을 온전히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나라만이 축복받을 수 있다는 숭고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황폐케 하는 이 남북전쟁의 참화는 하나님만이 끝낼 수 있다고 믿고서 우리 모두 금식 기도를 하자고 요청한 대국민 연설인 것입니다. 그 결과 노예해방을 둘러싼 남북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어메이징 그레이스 죤 뉴톤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죄를 짓고 노예로 팔려가 아프리카 집단 농장에서 일하던 죤 뉴톤이 그의 아버지의 친구였던 선장에 의해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였습니다. 그들이 탄 배가 캐나다 부근의 바다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심한 풍랑이 일더니 배가 곧 뒤집힐 듯이 흔들렸다. 식량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갔고 바닷물이 넘쳐 들어와 선원들이 사력을 다하여 물을 퍼냈다. 그들은 배에 요나와 같은 말썽꾸러기 뉴톤이 탔기 때문이라며 그를 바다에 던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뉴톤은 자기를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었는데도 감사하기는 커녕 늘 술에 만취되어 선원들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행패를 부려 곧잘 싸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강팍하고 완악한 그였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자 눈물로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가 통렬히 회개하며 눈물로 부르짖자 바다는 곧 잔잔해졌고 그 공포의 7일간 한사람의 희생자만 생겼을 뿐 모두가 구원을 받았던 것이었다. 죽음을 극적으로 모면한 뉴톤은 자기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그의 생활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후에 목사가 되어 곳곳을 다니며 자신의 삶을 간증으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였고 그가 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라는 찬송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멸망받아야 할 니느웨성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이것을 기뻐하지 않고 불평한 사람이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성이 구원받기 보다는 차라리 멸망당하라고 대충 전하였는데 이 니느웨성 사람들이 전부 회개를 하였는데 그것도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열이 올랐던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두 번 들어갈 가봐 전도흉내만 내고 간절함이 없이 전도했는데도 성 전체가 이러한 회개역사야 말로 기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가 전도를 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회개역사와 니느웨성 백성들의 구원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도록 하는 메시지가 전도입니다. 왜 전도를 해야하는지 전도받아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아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에 사도바울이 말씀한 것이 있어요.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너희가 보거니와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부르심을 받은 너희들의 출신성분과 사회적인 배경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 세상적으로 볼 때 똑똑한 사람들 아니였잖아 능력있는 사람들 아니였잖아 가문좋은 사람들 아니였잖아(고전1:26). 솔직히 말해서 돈도 별로 없었고 신분도 별볼일 없었고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한 자들을, 미련한 자들을, 없는 자들을 택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지 않느냐? 복음전도는 말의 지혜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전하는 것이 전도의 핵심입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인데 구원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지혜롭게 전한 것이 아니라 일어나 가서 전하라는 말씀에 순종만 하였는데 구원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확인만 했다. 요나서의 주제는 뭐니뭐니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애입니다. 요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를 돌이켜서 이방인의 성읍 니느웨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파케 하시고 결국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하신 사실은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세계만민을 사랑하시며 그들 모두가 회개하고 구원받길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요나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욘4:10-11) 10. 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던 곧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한 자가 12만명이 넘고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전도가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방이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들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고 전도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곧 전도입니다.
(1) 요나서의 교훈
우리는 오늘 이 요나서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야 말로 하나님이 내리시기로 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고 온 백성이 금식함으로써 죄를 회개하였던 니느웨성 사람들이 바로 이같은 진리를 증거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살면서 죄악된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죄악과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며 요나서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받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통치권은 진실로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십니다.
2.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패하거나 변경되는 일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모든 시도를 좌절시키시고 니느웨백성 구원이라는 목표를 일관성 있게 이루어 나가신 것에 대한 훌륭한 예증이다.
3. 하나님 구원의 은총은 민족이나 혈통에 의해서 차별되는 것이 아니며 누구든지 회개하면 구원의 은총은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이다.
4. 하나님의 은총은 실로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당신께 불순종한 요나를 용서하셨으며 수백년간 죄악을 일삼아 오던 니느웨성 사람들이 회개하였을 때에도 즉시 용서하셨다. 지금도 어떠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즉시 용서하여주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하나님은 요나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분이십니다. 지금도 온 나라가 금식을 선포한다면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
요나가 지옥이라고 말한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3일을 보내고 다시 살아나온 요나의 경험을 통해 예수께서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다가 장사되어 3일간 무덤속에 계시다가 부활하게 될 자신을 예표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3야를 지낸 사건을 통하여 요나서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장 생생하게 예표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온 것을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표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7-38)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의 표적들과 이적들과 능한 행위들로 사도의 표적들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 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표적을 주십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여 표적을 구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던 고향 사람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분명히 의원아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내게 말하며 우리의 들은 바 네가 가버나움에서 행한 모든 일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행하라 하리라”(눅4:23)고 하셨사람들처럼 교만하면 표적을 행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이라는 아람나라 장군도 처음에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와 서 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5:11) 했습니다. 즉 나아만이 처음에는 ‘네가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니 나를 고쳐 보아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엘리사 앞에 나왔으나 그가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을 때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4:27)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느 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을 때 예수님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마16:2-4)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이렇게 비판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표적을 구하기 직전에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는 표적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고 말을 하게 하였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악평하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했습니다.
(3) 시험하기 위해 표적을 구하지 말라
사단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했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에게 속해 있으면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하여 예수님을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마26:68) 했고,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27:40) 했습니다.
시편 78편 18~20절에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했습니다.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수많은 표적을 보았지만,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고(갈6:7),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십니다(약1:13).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에게는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행5:9).
(4)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진리이다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님 말씀은 너희들이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하셨는데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간 있었다가 밖으로 나온 것처럼 예수님은 표적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세대의 사람들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남방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그 세대의 사람들을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보십시오.
(눅11:31-32) 31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 사람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먼저 예수님은 심판 때에 남쪽여왕이 일어나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을 정죄한다고 하는 것은 남쪽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부터 와서 솔로몬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시바여왕은 솔로몬을 방문했지만 예수님 이후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있는 예수님도 영접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표적을 사단의 역사라 악평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남방여왕이 일어나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을 심판하리라 하셨습니다. 남방여왕뿐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도 일어나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을 심판하리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원래 하나님은 니느웨성을 멸하기로 작정하셨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절박한 회개하고자 재에 앉으면서 철저한 회개를 했었기에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니느웨성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요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더 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악평했습니다. 그러므로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회개해야 마땅했지만 그들은 진리의 말씀이 자기들 속에 없으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 뿐 아니라 벙어리가 말하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를 바알세불의 역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남쪽여왕과 니느웨성 사람들이 일어나 외치는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4. 폐허로 변한 니느웨성(나 2:10-3:7)
니느웨 성도 요나의 회개의 외침으로 당대는 멸망에서 구원받았지만 세월이 100여년 지나면서 니느웨가 전성기를 누릴 때 저들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고 나홈 선지자는 그들의 멸망을 선포했으므로 나홈서는 요나서의 후속편이라고 합니다. 니느웨의 멸망은 전적으로 그들의 교만으로 인한 것임을 일 수 있다.
(나 2:13) 만군의 주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너의 병거를 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너의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너의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너의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으리라 하셨느니라.
본 단락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성이 폐허가 되기까지 멸망하게 됨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 앗수르는 근동 지역의 가장 강한 나라이자 강한 침략자 이였으므로 근동의 모든 나라들은 앗수르를 두려워했다.
앗수르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했고 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끊임없이 주변 나라를 괴롭혔다. 히스가야 시대에 앗수르의 군대 장관 랍사게는 남유다를 공격하면서 그들의 교만함을 이렇게 보이고 있다.
(왕하 18:35) 앗수르 이웃 여러 나라들 모든 신들 가운데서 누가 자기 나라를 내손에서 건져내었기에 주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라고 말했고, 앗수르 왕 산헤립도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대하 32:17) 그가 편지를 써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욕하고 그분을 비방하여 이르기를 다른 땅들의 민족들의 신들이 자기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하나님도 자기 백성을 내손에서 건져 내지 못하리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이런 그들의 교만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잔혹한 압제로 인해 니느웨 역시 심판을 받아 폐허더미가 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는 것이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우리들도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교만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 앞에 내가 용서받은 죄인임을 깨닫고 늘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