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인숙
물을 준다
몇 그릇의 소리를 흠뻑흠뻑, 진화되지 못한 악보의 정수리에 부어내린다
졸음을 떼고서 거푸 붓는 음계의 간격 속
양은 다라이로 쏟아지는 잡음을 걸러 몇 번이고 재생시킨다
격한 반주엔 머리가 갈라지고 잔뿌리가 생긴다고
감미로운 사랑을 주라고 어머니는 당부하신다
아직은 불협의 뭇매를 버텨 낼 수 없는 콩나물
때론 아삭한 탱고를
때론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된 보사노바의 거나한 취기를 쏟아낸다
콩나물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 성장의 뿌리는 가난이고 그 시절의 콩나물은 귀머거리였다
가난의 화음에도 비릿한 날개만 달려고 할 뿐
도돌이표처럼 대물림 되는 빈곤의 음표들을 걸러내지 못했다
한낮이 되어서야 졸아들기 시작하는 아버지의 숙취 속에서
우리의 오후는 이빨 빠진 하모니카처럼 빈 소리만 내곤 했다
콩나물을 키우는 것
말갛게 고인 가난을 비워내는 일
우리는 우리의 귀가 더 먼 공복에 가라앉을 때까지
콩나물의 순진한 화음에 길들여졌고
콩나물은 예나 지금이나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음이라도 솎아내듯 웃자란 몇 줌의 화음을 뽑아내자
등 뒤 락은 지난밤의 불면을 털어내며 한껏 진화되고 있었다
한인숙 시인의 [콩나물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음악적 지식의 시적 활용’의 가장 탁월한 예이며, ‘콩나물 악단의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물을 준다/몇 그릇의 소리를 흠뻑흠뻑, 진화되지 못한 악보의 정수리에 부어내린다”라고 말할 때, 콩나물은 음표가 되고, 콩나물 시루는 악보가 된다. “격한 반주엔 머리가 갈라지고 잔뿌리가 생긴다고/ 감미로운 사랑을 주라”는 “어머니는” 음악 감독이 되고, “아직은 불협화음의 뭇매를 버텨 낼 수 없는 콩나물”은 “ 때론 아삭한 탱고를/ 때론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된 보사노바의 거나한 취기를 쏟아낸다.” 이때에 콩나물은 음표이면서도 콩나물 악단의 단원이 되고, 이 콩나물 악단은 때로는 아르헨티나의 아삭한 탱고를, 때로는 브라질의 대중음악인 보사노바의 거나한 취기를 쏟아내다. 요컨대 콩나물 악단은 더 강하고 정형화된 음악, 즉, 금속성이나 고음을 선호하는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 성장의 뿌리는 가난이고 그 시절의 콩나물은 귀머거리였다”는 것, “가난의 화음에도 비릿한 날개만 달려고 할 뿐/ 도돌이표처럼 대물림 되는 빈곤의 음표들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 “한낮이 되어서야 졸아들기 시작하는 아버지의 숙취 속에서/ 우리의 오후는 이빨 빠진 하모니카처럼 빈 소리만” 냈다는 것----. 콩나물은 아버지가 되고, 콩나물은 어머니가 된다. 콩나물은 오빠가 되고, 콩나물은 동생이 된다. 가난처럼 늘 푸르고, 가난처럼 무성한 것도 없다. 가난처럼 독하고, 가난처럼 잔인한 것도 없다. 콩나물은 가난했고, 콩나물은 귀머거리였다. 콩 나물은 도돌이표처럼 대물림되는 음표들이며, 콩나물은 이빨 빠진 하모니카처럼 빈 소리만 내는 악기였다.
하지만, 그러나 “콩나물을 키우는 것”은 “말갛게 고인 가난을 비워내는 일”이라는 시구는 천하 제일의 시구가 되고, 낙천주의 사상가인 나의 마음을 울린다. 가난이 무엇인지, 노래가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깊이 깊이 깨달은 자의 지혜가 그 시구에는 만리향의 향내처럼 배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목의 진정성 이외에도 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인 인물의 창조----, 바로 이것이 돌부처의 내장을 뚫고 들어가 만인의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이다.
한인숙 시인은 그의 가난을 말갛게 비워내는 가수였고, 그가 그의 가난을 말갛게 비워내는 동안 그의 콩나물들(가족들)은 더욱더 순진한 화음에 길들여졌고, 따라서 콩나물은 예나 지금이나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소음이라도 솎아내듯 웃자란 몇 줌의 화음을 뽑아내자/ 등 뒤의 락은 지난밤의 불면을 털어내며 한껏 진화되고 있었다.”
콩나물 악단은 보컬, 리드 전기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등으로 구성된 ‘록 그룹’이었던 것이다.
가난으로 콩나물을 가꾸고, 콩나물로 가난을 말갛게 비워낸다.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문화선진국이 된다면 내 {행복의 깊이} 네 권만 살아남고, 그 모든 책들은 다 불태워지게 될 것이다. 나의 이름은 낙천주의 사상가로서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 자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