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공동체
(창 44: 30-34)
사랑이라는 말이 세상에 어느 말보다 힘이 있는 까닭은 그 말이 아름다와서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과 수고가 동반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수고나 희생도 마다하지 아니하지만 공동체의 일원이 되 었을 때는 희생이나 수고 대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관망만 하기 쉽습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함은 사랑의 이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타주의적인 희생과 수고의 상징인 십자가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1. 회개의 공동체
애굽 총리의 뜻밖의 환대와 베냐민과 시므온을 데리고 많은 양식까지 구하여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요셉의 형제들은 그동안 염려했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안심이라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마치 항해하는 배와 같아서 언제 풍랑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뜻밖의 일이 벌어졌으니 그것은 (창44: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수탐하메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고 한것처럼 총리가 귀중히 여기는 은잔이 베냐민의 양식 자루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요셉이 그의 형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꾸민 연극이지만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형 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놓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거나 변명하는 대신 (창44:16)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라고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적발하셨다라고 회개 하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숨은 죄를 인정한 것은 요셉으로 하여금 더 욱 그 형제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교회는 죄가 없는 깨끗한 사람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 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여 하나님께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회개의 공동체 인 것입니다(요일1:9)
2. 희생의 공동체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양식을 구하기 위해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부터 유다가 아버지에게 자신 이 베냐민의 담보가 되겠노라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거 공약처럼 자신의 입으로 약속하고 다짐한 것이지만 상황이 달라지게 되면 그것을 잘 지키지 아니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과거에 요셉을 미워하고 팔기 위해서 나쁜 일에 하나가 되었었으나
1)이제는 (창44:16)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라고 한 것처럼 자신들이 종이 되겠다고 하나같이 희생을 자원하였습니다.
2)자신들의 신변보다 (창44:31)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라고 하며 아버지를 더 걱정 하였습니다.
3)유다는 아버지 앞에서 서원한 그대로 (창44:33)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 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라고 하므로 자신이 담보가 되어 총리의 종이 되겠노라고 자원하였습니다.
그동안 야곱의 가정에 몰아닥친 여러 가지의 고난은 온 식구들을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 었는데 그것은 바로 가족을 위해 자신들의 희생도 불사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온 가족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오늘날 세상은 갈수록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십자가를 높이 세운 교회마저도 이같은 사람들로 인하여 점차 이기주의의 집단으로 전락될 우려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같은 현실에서 우리의 교회는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만 할까요?
앞에서 언급한 이기주의가 팽 배한 교회가 아니라 서로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자하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 기 위해서는
1)서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허물을 감싸는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 가 되어야 하며
2)크고 작은 문제를 막론하고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 취하라 는 말씀처럼 말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 수고하는 사랑과 희생의 공동체가 되는 것만이 교회가 살고 부흥하며 성장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담보할 줄 아는 사 랑의 사람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