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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2 (바벨론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성경본문 : 다니엘 1: 1-2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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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은 멸망당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백성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포로기에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에스겔 두 선지자를 세워주셨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서는 2009년도를 맞이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다니엘서를 읽으면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역사가 진행될 것을 다 보여주셨으니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느브갓네살에게 보여주신 그 역사의 계시대로 역사가 지금까지 그대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부정하려 합니다.
먼저 다니엘이 이 책을 썼다는 것을 부정하고 무명의 인사가 썼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 책은 다니엘이 자기 시대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 흘러간 후인 BC 2세기에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성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기록했다고 말씀하시고 인정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니엘서를 다니엘이 기록하지 아니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다니엘서가 역사가 다 지나간 후인 BC 2세기에 기록되었다면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사기꾼의 사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다니엘서의 저자는 다니엘이며 다니엘시대에 하나님이 인류역사가 운행되어갈 계시를 보여주신 책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가 운행되는 것을 잘 아시고 그렇게 다 미리 보여주실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역사가 진행될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정도도 못하리라고 의심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복음주의자들도 가장 오용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다니엘서의 오용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다니엘서에 나타난 예언의 세심한 부분에 너무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칠십 이레, 짐승머리에 난 작은 뿔 등 세심한 부분에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보여 큰 그림을 잃어버리는 경우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다니엘서의 스토리에만 관심을 보이고 메시지를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다니엘서는 너무나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몇 가지 스토리 즉, 다니엘의 세 친구가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졌다든지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다든지 이런 스토리만 좋아하지 다니엘서 전체가 증거 하는 메시지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너무 예언적인 퀴즈 풀듯이 읽은 사람, 또 너무 예언적인 면을 무시하는 사람, 이 두 가지 경우가 다 잘못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니엘서도 모든 성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인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교훈하는 책입니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이 되도록 훈련하도록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서를 읽을 때에 예언의 퀴즈 풀듯이 읽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잘못되어 이단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이 말씀이 지금 내게 무엇을 하라고 주신 말씀이냐? 하나님은 이 책을 통하여 내게 무엇을 원하시느냐? 또 하나님은 당신을 섬길 때에 어떤 방식과 자세로 섬기기를 원하시느냐? 이런 질문을 던져가면서 실천적인 입장에서 읽어야 됩니다. 먼저 다니엘서의 서론으로 다니엘서의 기록배경, 성격, 현실적 가치의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다니엘서의 기록 배경
다니엘서는 어떤 배경 아래서 기록이 되었는지 역사적인 배경과 신학적인 배경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서의 역사적인 배경은 1장 1절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지 삼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은 25세의 나이로 주전 608년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 왕은 훌륭한 왕이었으나 여호야김은 대단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11년을 통치하고 36세에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열왕기하 23장 37절에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악행 중 대표적인 것은 예레미야 36장에 나와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비서 바룩을 시켜 두루마리에 하나님 말씀을 기록했는데 그것을 낭독하자 작은 칼로 잘라 불에다 던져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즉위하여 삼년 만에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전 605년 즉, 지금으로부터 2614년 전의 일입니다. 신흥 국가인 바벨론이 근동지방의 강자였던 앗수르를 누르고 강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주전 605년에는 애굽 왕 바로느고가 확장하는 바벨론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갈그미스라는 곳에서 전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애굽 왕 바로느고를 쳐부수고 승리하여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여세를 몰아 같은 해인 주전 605년에 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야김 왕을 폐위 시키진 않았습니다만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하나는 젊고 유능한 유대인 귀족 엘리트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포로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또 하나는 2절에 나오듯이 성전기물의 일부를 빼앗아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둔 것입니다.
이처럼 다니엘이 예언하던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유다백성들에게 너희는 열방의 빛이 되라 했는데 빛은 커녕 열방의 포로가 된 이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 백성의 투쟁사, 하늘 도성과 인간 도성의 투쟁사,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투쟁사가 역사입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에스겔이 예언했던 시대에는 이방인이 투쟁해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서 다니엘서의 신학적인 배경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주어가 주께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패배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주도적으로 관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통제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경과 다니엘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계 역사의 크고 작은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섭리가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100 여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 왕에게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39장에 보니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들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러자 당시 바벨론의 왕이었던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 왕에게 살아난 것을 축하하는 사신을 예물과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이 그만 우쭐해져서 보물고와 무기고를 열어 우리가 이렇게 보물과 무기가 많은 나라라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왕이 참 어리석은 짓을 했으며 왕이 보여준 그것은 나중에 다 바벨론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39장 6절로 7절에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너의 자손 중에 몇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은 잡혀가 환관이 된 것입니다. 느브갓네살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은 벌써 그 일이 일어나기 백 여년 전에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도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가깝게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했지만 멀리는 모세가 이미 광야에서 예언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를 교육한 책이 신명기입니다.
신명기 28장 47절로 48절에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다가도 먹고 살만해지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가지고 즐기고 놀 생각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대적을 보내서 철 멍에를 메워 멸할 것이라고 모세가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불순종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다 무시하고 우상숭배와 부도덕에 빠짐으로 결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직접적으로는 국제적인 정세의 변화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이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일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다는 것이 다니엘서의 신학이고 성경 전체의 신학입니다. 다니엘서는 주전 605년 여호야김이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을 때 기록되었고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배경하에서 기록되었습니다.
2. 다니엘서의 성격
우리는 다니엘서가 어떤 성격의 책인지 조심히 살펴봐야 됩니다. 다니엘서는 문학적인 양식으로 특수한 장르인 묵시록에 속한 책입니다. 구약의 묵시록은 다니엘서고 신약의 묵시록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이것은 상징 혹은 그림으로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잘 그린 그림 한 점은 수백마디 말보다도 더 강한 웅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을 가르칠 때 더 효과적인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니엘서에 그림으로써 진리를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묵시록인 다니엘서를 공부할 때에는 두 가지를 조심해야 됩니다.
첫째로 그림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그 그림 전체를 봐서 인상을 받아야 됩니다.
그림의 십분의 일을 잘라서 현미경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학창시절 미술점수가 좋지 않았습니다만 그림을 볼 때에 전체를 보지 부분으로 보지 않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며 칠십 이레와 작은 뿔이 무엇인지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구하다가 성경을 옳지 않게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서를 공부할 때에 먼저 이 그림으로 우리에게 강하게 남기시려고 하는 전체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둘째로 묵시록은 상징적인 문헌이므로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20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큰 신앙적인 문제는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666과 144,000 등의 숫자들을 문자적으로(literally) 해석하면 안됩니다. 요즘도 대부분의 이단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숫자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상징은 상징으로 해석하고 그 상징이 나타내고자 하는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데 이해의 목표를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묵시록이기 때문에 전체로서 보고 또한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3. 다니엘서의 현실적 가치
왜 이 시대에 우리가 다니엘서를 묵상해야 되느냐? 즉, 다니엘서의 현실적인 가치가 무엇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시편 137편 1절로 4절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되었을 때에 겪은 심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외국인인 유다백성들을 불러 강가에서 “여호와의 노래가 어떤 것인가 좀 불러봐라.”하니까 이 사람들이 “우리가 여호와의 노래를 예루살렘에서 불러야 되는데 어찌 바벨론 강가에서 불러야 되느냐?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겠느냐?”하며 쓴 것이 시편 137편입니다.
1970년대 중반에 보니 엠(Boney M)이라는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 4인조 보컬그룹이 부른 노래 가운데 “the Rivers of Babylon(바벨론 강가에서)” 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And there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입니다.
그 가사 중에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포로로 잡아갔습니다(When the wicked carried us away in captivity).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요구했습니다(Required from us a song). 그런데 이상한 나라에서 어떻게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Now how can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the Rivers of Babylon(바벨론 강가에서)은 시편 137편의 내용을 부른 것입니다.
21세기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바벨론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일하고 있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 되어가는 유다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을 기억하라(Remember Jerusalem)”는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너희가 바벨론에 가도 바벨론 포로는 70년이면 끝나고 거기서 포로로 영영히 살 것은 아니므로 예루살렘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유다백성이 예루살렘을 기억했듯이 우리의 돌아갈 본향인 천국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의 주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아니하는 적대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주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이방국가인 바벨론에서 큰 소리로 신실하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가장 아름답게 부른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벨론 같은 세상에 살면서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켰는가 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다니엘서를 읽어야 되는 이유입니다.
다니엘서는 세 가지로 유익을 줍니다.
첫째, 개인 성도에게 유익을 줍니다.
악한 세상에서 다니엘이 친구들과 함께 갖가지 압박을 받았습니다. 압박을 받으면 어떻게 그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느냐를 다니엘서가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갖가지 압박이 옵니다. 불교를 믿는 집안의 시어머니는 교회에 나가는 며느리를 압박합니다. 또 직장에서 사장님이 주일날 압박합니다.그런데 이런 압박은 바벨론에서 다니엘이 다 당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마귀가 공격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을 통해서 방해합니다.
다니엘서에는 마귀가 공격해 올 때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방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 불같은 신앙의 시험이 오면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한 모든 답을 다니엘서가 제공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 책은 교회에도 유익을 줍니다.
다니엘서의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 왕에게 큰 신상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그 꿈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른척하고 박사, 술객들에게 꿈과 함께 해석을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박사, 술객들이 “세상에 그런 것을 요구하는 왕이 없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니엘 2장 10절로 11절에 “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기도해서 그 꿈도 해석도 알아냈습니다. 31절로 33절에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계시를 보여준 것입니다.
머리는 금같은 나라인 바벨론이요 은은 메대 바사 두 나라요 놋은 헬라요 철은 로마인데 로마는 여러 나라로 나뉘어서 철과 흙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역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세속 나라는 진행되지만 하늘의 사람이 뜨지 아니한 그런 돌이 한 개 날아와서 우상의 발을 치니 우상은 다 망가져 사라져 버리고 그 돌은 한 개 날아왔는데 나중에 보니 큰태산을 이루더라는 말입니다. 바벨론도 날아가고 헬라도 망하고 로마도 망하고 메데 파사도 다 망해도 망하지 않는 한 나라인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입니다.
로마제국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산돌로 말미암아 세우시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점점 확장되며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다니엘서의 주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나라라고 해도 결국은 멸망합니다. 미국도 대한민국도 중국도 인도도 멸망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멸망하지 않는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시민권이나 미국 시민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나라 백성들은 영생하는 백성들이요 그 나라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나라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서가 가르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완전동일시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이름을 가져도 하나님 나라가 아닌 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곳은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때로는 원수들이 불구덩이에 던지려하고 사자 구덩이에 던지려 하지만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사자가 하나님 나라를 먹을 수 없고 불구덩이가 하나님 나라를 사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어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사단이 교회를 넘어뜨리려 해도 교회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권력세계에 넘어뜨리려 해도 교회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의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구약적인 해석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어느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통치자나 망하려면 하나님 교회를 대적하면 됩니다. 그러나 흥하려면 하나님 교회를 위하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그냥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시리라고 마태복음 6장에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책은 세상에도 유익을 줍니다.
구약성경 대부분의 책은 이스라엘 백성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4장 중간부터 7장 끝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유다백성의 언어이고 아람어는 국제 언어입니다. 그 당시에 아람인들이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등 여러 곳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 아람어가 주전 7세기에 오늘날의 영어와 같은 국제어였습니다. 대부분의 문명국가 사람들은 아람어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가 국제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백성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열방 모든 민족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그림은 인류역사와 흥망성쇠를 다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론
왜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만 세우시면 되지 인류역사 흥망성쇠까지 다 보여주시고 관여하시느냐?
그 이유는 인류역사 흥망성쇠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밑그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연필로 스케치를 한 후 물감으로 칠합니다. 스케치를 하며 어떤 때는 지울 때도 있고 안 지울 때도 있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완성되는 그림으로 밑그림은 나중에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 로마, 미국, 대한민국, 중국 같은 이 세상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커가는 밑그림에 불과합니다. 이 밑그림은 실체인 하나님 나라가 다 그려지면 소용이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속에서 시작되어 세상 속에서 확장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성도들은 부활하게 될 것이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께 바칠 때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밑그림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됩니다. 이 세상 나라는 아무리 발전하고 흥망성쇠를 계속해도 결국 밑그림에 불과하고 결국 그것은 없어지고 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완성되고 영영히 서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나라에 유익을 주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원대한 인류역사를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왕국이 아무리 흥망성쇠를 계속해도 결국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가 영원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유대인 중에 남은 자가 될 것이고 이방인 중에 택한 자가 될 것입니다. 남은 자와 택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영영한 나라를 이루게 되고 거기서 영생과 지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소망입니다. 그 이상의 소망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역사를 해석하는 바른 열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같은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신앙을 지켜야 되는가하는 지혜와 신앙을 다니엘로부터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통해서 여러분 영혼에 큰 유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한서노회(http://cafe.daum.net/harn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