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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나오는 열매
성경본문 : 잠언 18: 20-21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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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도 목사(수영로교회)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1.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평가합니다.
“얼굴을 보니 사람이 괜찮아 보이네”라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얼굴만 보아 가지고서는 그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그 사람의 가진 재산이나 학벌을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업을 잘하는 것을 보니 괜찮은 사람인가 봐", "많이 배웠으니 뭔가 다를 거야” 등등
그러나 이것도 사람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1. 마음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인지 좋지 않은 사람인지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깨끗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인물이 잘났으면 뭐합니까?
아무리 재산이 많고 학벌이 좋으면 뭐합니까?
사람이 악독하고 더럽고 거짓되고 몰인정하고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물과 재산과 학벌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분명히 나쁜 사람에 속합니다.
가진 것이 많아도 속이 비어 있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2. 말입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마음의 창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 집의 창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사는 형편을 대강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 사람의 인격과 생각과 사상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인도의 유명한 간디 선생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을 때, 그에게 어떤 노인 한 분이 서럽게 우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간디는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그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나는 모든 사람의 눈물을 씻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손이 모자랍니다”라는 감동적인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인도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인도 국민들은 그가 얼마나 자기 나라 국민들을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는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말 한마디는 커다란 영향력을 끼칩니다.
특히 믿는 사람들의 경우,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신앙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인지,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인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안지 한 이십 년이 되어가는데도 도무지 그 사람이 믿음이 있다는 증거도 없고, 은혜 받은 표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은 믿음이 있다고 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믿음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겉모양 치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화장과 머리 손질에 시간을 들이고 옷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래서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누구나 교양 있어 보이고 젊잖아 보이며 또 훌륭해 보입니다.
잠언 17:28절을 보면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 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아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막상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의 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다 나오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가졌던 생각과 인격은 물론 성품과 지식과 지혜 그리고 어리석음까지도 다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잠언 13:16절을 보면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라도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지혜롭게 보입니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다보면 당연히 미련한 것이 밖으로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다고 했습니다(잠 10:19).
말은 복을 가져오기도 하고, 화를 불러들이기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며, 사람을 지혜롭게도 하고 미련하게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칭찬 듣게도 하고 욕을 먹게도 하며, 사람을 성공하게도 하고 실패하게도 만듭니다. 말은 사람을 대접받게도 하고 천대받게도 하며, 사람을 강하게도 하고 약하게도 합니다. 말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합니다.
잠언 13:3절을 보면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말이라고 하는 것은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말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험한 말은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켜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듭니다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야 3:4).
아무리 큰배라 할지라도 모든 배는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됩니다. 사람의 덩치가 크고 우람해도 세 치 밖에 안 되는 작은 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 길이 달라집니다. 복 받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저주받는 길로 갈 수도 있으며, 성공하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실패하는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또 행복한 길로 갈 수도 있고 불행한 길로 갈 수도 있으며, 사는 길로 갈 수도 있고 죽는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혀는 불과 같습니다(야3:6).
작은 불이 어떻게 큰산을 태우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불은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사용하면 대단히 유익합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피해를 가져옵니다. 혀와 불은 아주 비슷합니다. 시작은 작게 조용하게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걷잡을 수없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을 쉽게 잘합니까?
말은 밑천이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라고 하는 것은 잘 번집니다. 불은 한번 붙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번집니다.
언젠가 부산 국제 시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시작은 작은 점포에서 난 불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맨 먼저 말을 시작한 사람은 어떤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번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집니다. “누가 그러는데... 그렇다고 하들아...”하는 말이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부풀려져서 나중에는 엉뚱한 말이 돌아다닙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말을 퍼트린 사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는 때때로 남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하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들은 소리를 전한다 해도 내 입으로 말한 것이니 모두 내 말이 됩니다. 본인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사람들은 남에게 전하면서 “꼭 너만 알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비밀이 지켜지는 말은 천하에 없습니다. 말은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여튼 어떤 식으로 말을 하든지 말을 하는 그 순간은 마치 불을 지르는 순간과 같습니다. 불은 한번 붙으면 잡기가 매우 힘듭니다. 있는 대로 다 태우고 잿더미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불이 꺼집니다.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은 꺼지는 법이 없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제멋대로 번져나갑니다. 그러므로 말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3:6절을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을 더럽게 하면 자신의 입만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다 더럽힙니다
. 더구나 야고보 사도는 말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지옥 불에 비유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어른들의 쓸데없는 농담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농담삼아 아이를 보고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놀립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아니라고 떼를 쓰지만, 속으로는 정말 내가 주워 온 아인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모로부터 야단을 맞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그 말을 생각하고, 내 부모가 아니니까 날 미워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농담 한 마디가 그 아이의 일생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좋지 않은 농담은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소망이 없어!” “싹이 노래!” “네가 별수 있겠니” “지겨운 자식, 나가 버려”
이런 극단적인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말은 큰 비극을 가져옵니다.
말은 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를 도무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사회에 대해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몹시 험해지고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기 때문에 이 백성들의 마음을 절망감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기자들 또한 말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유의하지 않고 무책임한 보도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사건이나 사고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온 세상이 마치 곧 망할 것 같고, 온통 나쁜 사람들만 사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신문이나 뉴스의 기사에 너무 민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
우리가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습니다.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마음의 평강이 유지됩니다. 우리는 좋은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말이나 긍정적인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잘된다” “성공한다” “복 받는다”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롬 8:28).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말이나 절망적인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세워주는 말, 용기를 주는 말을 자주 해야 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학교를 다닐 때 열등생이었나 봅니다. 그의 학생기록부에는 “이 아이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슴.”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네 부모님들 같으면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부모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가 남과 같으려고 하면 같을 수가 없단다. 너는 남과 다르단다. 남과 같은 일을 하려고 하면 남보다 나을 수 없지만 남과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남보다 훌륭할 수 있단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어머니의 말은 아인슈타인에게 용기를 주었고, 축복이 되어 아인슈타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금세기 최고의 훌륭한 과학자로 기억되게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한 부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말을 골라서 해야 합니다. 되도록 세워주는 말, 용기를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남편의 기를 살리는 말이 있습니다.
38가지가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아이가 당신을 닮아 똑똑한가봐요”
“내가 시집 하나는 잘 왔지”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역시 당신 밖에 없어요”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당신 곁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것을 아시지요”
“나는 당신 없이는 하루도 못살아요”
“당신은 언제 봐도 멋 있어요”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밖에 없어요.”
반면 남자를 기죽이는 말도 있습니다. 57가지입니다.
“당신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 있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 집 식구들은 왜 그 모양들이에요”
“군대나 제대로 갔다 왔어요”
“머리 벗겨지는 걸 보면 공짜는 대개 좋아하나 봐”
“당신 잘릴 줄 알았어요”
“애들이 당신보고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지지리도 복도 없지 어째 이런 남자를 만났을까”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제대로 해요”
“에고 지애비 닮아 가지고 피는 못 속여”
“평생 쪽박이나 차고 살 인생이에요”.
“당신하고 사는 것이 정말 지겨워요”
“당신은 구제 불능이에요”
“창피해서 못 살겠어요”
좋은 말을 하고 사십시오.
죽으려고 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납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말은 가슴에 비수를 찌르듯이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사람을 분노케 하고 슬프게 하며, 절망하게 만듭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이 담긴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이 담긴 말,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듣는 자마다 은혜가 됩니다. 복 받을 말을 하십시오. 말은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얼마나 악독한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 12:34-37).
예레미야 23:36절을 보면, 각 사람의 말이 중벌(重罰)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못된 소리를 하며 원망 불평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차라리 여기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악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들으시고,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 14:28). 자신들의 말 그대로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옛말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화가 난다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수류탄을 가지고 놀다가 죽었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위로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나서서, “저 놈의 자식, 나가 죽지도 않아. 나가 죽으라”고 밤낮 욕을 해댔으면서 뭐가 서러워서 우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 소리에 아이 어머니가 울음을 그쳤다고 합니다. 사실 아이가 하도 말을 안 들으니까 속상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말이 씨가 되어 이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를 통해 말에 대하여 결론적인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9, 26절을 보면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12절에서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말을 하고 행하기도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