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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32
비교하지 마라!
비교하지 말아라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과도한 비교의식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불행은 계속됩니다. 가인이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 이유는 비교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비교의식은 분쟁의 원인이 되고 시기와 미움과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불러 일으켜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 동창회를 갔다 온 후에 열등감과 무력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친구와 자기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두 남자가 자기 부인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남자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내 아내는 정말 천사야, 천사!”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남자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습니다.
“자네는 좋겠다. 우리 마누라는 아직도 살아 있어!”
자기 아내와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비교한다면, 그 가정이 행복할까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바꾸지 못하고 무르지 못할 바에야 나의 배우자를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비교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그 가정은 불행해집니다.
마귀는 비교하도록 충동질합니다.
“친구는 벤츠를 타고 다니는데, 너는 아직도 티코를 타고 다니냐?” “누구는 Fendalton에 100만불 짜리 집을 샀는데, 너는 아직도 랜트집에 살고 있냐?” “누구누구의 딸은 오타고 의대에 합격했다는데, 네 딸은 폴리텍에 진학하는 것이 말이 되냐?”
마귀는 계속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만들고, 내 배우자와 다른 사람의 배우자를 비교하게 만들고, 내 자녀와 다른 사람의 자녀를 비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2절 하반절 말씀을 메시지 성경으로 읽으면 굉장히 마음이 와 닿습니다. “비교하고 등급을 매기고 경쟁하는 자들은 사실상 핵심을 놓친 것입니다.” 비교하고 그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갈라디아서 6장 4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각자 자기 행위를 살피십시오. 그러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도 자기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행한 일과 다른 사람이 행한 일을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역과 다른 사람의 사역을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했다고 생각하면 이로 인해 낙심할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보다 내가 잘 했다고 생각하면 이로 인해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하는 태도는 섬김을 방해하고 사역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 ‘분문’이란 분뇨를 처리하는 문으로 쉽게 말하면 똥문(Dung Gat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똥문 건축을 맡았던 말기야는 다른 사람들이 맡고 있는 일과 자기의 일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제사 드릴 양과 염소가 드나들게 하는 양문(Sheep Gate)이나(1절), 말을 탄 사람이 성내로 들어갈 때 이용했던 마문(Horse Gate)이나(28절), 여의도 광장 같은 대형광장 앞에 있는 샘문(Fountain Gate)(15절)과 같은 문들을 건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그에게 본문을 건축하라고 했을 때, “나는 못합니다. 왜 나에게 그 더러운데 사용되는 똥문을 건축하라고 합니까?”라고 하며 불평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갑의 아들 말기야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른 사람의 일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님께서는 두 달란트를 남겼든지 다섯 달란트를 남겼든지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칭찬하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일과 다른 사람의 일을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맡겨진 일이 빛이 나는 일이든지 빛이 나지 않는 일이든지, 눈에 띠는 일이든지 눈에 띠지 않는 일이든지 비교하지 말고 말기야처럼 맡겨진 일,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조화를 이루라!
둘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하던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그리기 힘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저녁 해질 녘에 저 들에 드리워진 노을을 그리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왜 노을을 그리기가 그렇게 힘든가요?”
그러자 다빈치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녁 노을에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빛만 있어도 그리기가 쉽고, 어두움만 있어도 그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빛과 어두움의 조화를 그리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을을 잘 그리기만 하면 명작이 됩니다. 조화를 잘 그리면 명화가 되지요.”
그렇습니다.
이처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조화롭게 그리면 멋진 작품을 만들어 수 있습니다.
성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가대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네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여성 소프라노는 멜로디를 부르며 전체 곡을 인도하고, 여성 알토는 잔잔하게 소프라노를 받쳐줍니다. 남성 테너는 고음으로 화음으로 넣고 베이스는 낮은 음으로 받쳐주면서 음악을 만들어갑니다. 이 네 개 파트가 함께 협력하고 어우러질 때, 좋은 화음이 나올 수가 있고 듣는 회중들에게도 기쁨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네 개 파트가 따로따로 소리를 질러대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됩니다. 그리고 듣는 회중들을 불편하게 만들게 됩니다.
이처럼 미술이나 음악이나 모든 분야에서 조화를 이루며 함께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혼자서는 하지 못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연합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다음은’이라는 말입니다. 2절에 보면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고’, 4절에도 보면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가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계속해서 ‘그 다음은 누구, 그 다음은 누구, 그 다음은 누구‘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7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따로따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함께 협력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142년 동안 무너져 있던 성벽을 단 52일 만에 재건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과의 조화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이와 학벌과 수입과 직업과 피부색깔, 등에 따라 차별을 한다 할지라도, 교회 안에서는 차별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격과 자라온 배경과 은사가 다르다 할지라도, 나를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7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협력했지만, 그렇지 않고 구경만 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같이 5절을 보겠습니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이렇게 계속 잘 나가다가 뭔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너진 성벽도 다시 쌓고, 불타버린 문짝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다는 등, 성벽재건 공사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드고아 출신 귀족들은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않고 구경만 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구경꾼과 참여자 두 부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입니까?
드고아 출신 귀족들처럼 하나님의 일을 구경하는 구경꾼입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렵지만 성벽재건공사에 참여했던 75명처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주인공들입니까?
저는 이 자리에 하나님의 일을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참여자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는 기도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보급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보급로가 끊기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중보기도 없이는 선교의 결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 바누아투로 출발하는 우리 선교팀이 승리하고 돌아오려면 기도의 보급로가 끊어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 선교팀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선교팀을 보내놓고 멀찍이 떨어져 구경만 하지 말고, 기도로 이번 미션 2010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미국의 ‘Golden Gate Bridge(금문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길이 2,825m, 너비 27m의 6차선 도로가 나있는 금문교는 1933년에 착공하여 당시 돈 ,500만 달러가 투입된 끝에 193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수심이 90m나 되는 곳으로 차갑고 거센 조류와 안개가 많은 날씨 그리고 수면 아래 지형이 복잡하여 건설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4년 만에 완공되어 미국 토목학회에서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이 다리의 특징은 다리 양쪽에 227m 높이의 두 개의 큰 교각이 세워져 있는데, 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가 1,280m나 된다고 합니다. 다리 중앙부는 해면에서 70m나 떨어져 있고, 수심이 깊어 다리 밑을 대형선박이 통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면과 다리와의 사이가 넓어 비행기도 통과할 수 있고, 시속 160km의 풍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금문교의 핵심은 다리 상판을 떠받치고 있는 교각과 교각 사이에 연결된 직경이 1m나 되는 두꺼운 줄에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보통 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려 27,000개의 작은 철선이 합해져서 한 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해주는 이야기입니까?
비록 가늘어도 그 줄들이 많이 모이면 1,280m나 되는 무거운 상판을 떠받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닥의 굵은 줄보다 비록 가늘더라도 여러 겹의 줄이 더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밀림에는 매우 사납고 힘이 센 동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동물이 가장 무서운지 아십니까?
개미떼라고 합니다.
개미떼가 이동하면 몸집이 큰 코끼리나 밀림의 왕이라고 불리 우는 사자 같은 동물들은 무서워서 다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개미떼가 있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맹수들이 개미떼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개미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닙니다. 개미가 가지고 있는 협동심 때문입니다.
개미는 지극히 작은 동물이지만, 수십만 마리가 함께 힘을 합쳐 공격하면 몸집이 큰 코끼리나 사자라 할지라도 단 하루 만에 앙상한 뼈만 남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미떼만 나타나면 맹수들이 무서워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팀사역이 중요합니다.
(전 4:12)에서 “한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았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 지지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혼자서는 패배해도 서로 연합하면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가 연합하여 힘을 모으면 교회가 부흥되는 줄로 믿습니다.
선교팀이 연합하고 하나 될 때 시험과 유혹을 이기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맡겨진 일, 주어진 일에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교향악단처럼 나를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팀사역을 통해,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순복음교회 조상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