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주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은 베드로의 깨달음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려주셔야 가능했다.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가장 정확한 고백이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두 가지 면에서 알려주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지도력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즉 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화두였다. 이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시대사조가 형성되었다. 쾌락주의나 금욕주의, 허무주의나 실존주의 등. 그리고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중이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그 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성경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빛을 비추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빛을 싫어하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찾고자 한 결과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신분이요, 다른 하나는 사명이다. 나의 신분을 알면 확신 가운데 산다. 주변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늘 안정감을 유지한다. 낮은 자존감이나 열등감, 우월감에서 자유롭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며 나를 무시한다고 불쾌해하거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반응을 하지 않는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진다. 주변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힘이 생겨 평정심을 갖게 된다. 나의 신분을 아는 것은 점진적 계시의 과정을 지난다. 한 번에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가면서 더욱 뚜렷이 알게 된다.
다음으로, 나의 사명을 알면 삶에 역동성과 추진력, 그리고 방향성이 생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낙심할 때가 있다. 심하면 살아갈 의욕이 사라지고, 더 심하면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칠전팔기는 사명자에게 해당한다. 사명자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절제할 줄 알고, 장애물을 넘어갈 힘이 있다. 넓은 마음으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인생을 멀리 볼 줄 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이런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신분과 사명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는 예수님의 신분(Identity)이다. 예수님의 신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예수님의 안정감은 오직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거나 대해도 평정심을 유지하셨다. 불쾌해하지 않으셨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에서 자유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셨다.
둘째,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이는 예수님의 사명(Mission)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고, 그 사명을 성취할 성령의 능력을 받는 과정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고 사명을 성취하는 그룹이 셋 있다. 왕, 제사장, 선지자다. 예수님은 이처럼 자신이 누구며,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는지를 아셨다. 요한복음에 명확히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셨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직접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