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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올해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이다. 휴일을 제외한 주 5일을 꼬박해도 시간외의 잔업을 않는 한 소득세와 보험료를 제하면 약 백여 만 원 남짓하다. 한 달 허리가 휘어지도록 뼈 빠지게 일한 초보 근로자의 최저임금 백여 만 원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물품의 양(量)이 궁금했다.
쌀을 산다면 대 여섯 가마를 살 수 있다. 친환경 농업기술로 재배한 고급 쌀일 경우에는 세 가마 정도다. 고급 쌀은 놔두고 보통 쌀일 경우 대 여섯 가마면 네 식구가 일 년 반을 먹고도 남는다. 쌀이 귀했던 시절인 육.칠 십 년대 초에 대 여섯 가마의 쌀을 살 수 있었던 돈이라면 큰 돈 이었다. 쌀이 흔하여 정부창고에 보관하기 힘든 지금도 일 년 반치의 주된 양식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니 육.칠 십 년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결코 적은 돈이 아닌 듯하다. 배고픔이 해결된 지금 대 여서 가마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지 몰라도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많은 국민들을 생각하면 대단한 양의 식량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육체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자녀가 국립대학에 입학했다면 저렴한 등록금으로 부모의 힘을 많이 덜어주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는 사립대학에 입학한 자녀들에 비해 효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최저임금인 백 여 만원으로는 국립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에 턱없이 부족하다. 반값 등록금을 실시한 서울시립대의 등록금 수준에는 미친다. 한 달 벌인 최저임금으로 국립대학 한 학기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국립대학도 후한 편은 아닌 듯하다. 문제는 국립대학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들이 받는 봉급정도라면 최저임금의 몇 배 정도이며 몇 학기의 국립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는지 한번 짚어 볼 일이다.
달동네 민초들도 새 양복을 입어야 할 때가 있다. 그 돈으로 남성용 정장 양복을 산다면 두 세 벌 정도다. 세 벌 산다면 옷감의 질이 그리 좋지 않는 옷이요, 두 벌을 산다면 세 벌에 사는 옷보다는 조금 질이 나은 양복이지만 결코 고급양복은 아니다. 달동네 남성들에게는 두 세 벌 중 한 벌이라도 사 입기가 힘겨운 실정이다. 한 달 최저임금의 댓가가 양복 두 세 벌 정도에 불과하다면 이건 너무 적은 임금인 듯하다. 양복 제작업체는 각 브랜드에 따른 옷감별 원가와 제작비를 바로 공개하고 턱 없이 비싼 가격으로 시중에 판매하고 있다면 옷값을 더 낮춰 달동네 서민들도 양복을 입기 쉽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 여름을 제외한 매주 일요일이면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등산에 별 취미가 없는 이들은 느낄지 모르지만 등산애호가 들에게 등산용품 구입은 신경이 좀 쓰이는 일이다. 100만원으로 등산용품을 구입한다면 어느 정도 살 수 있을까? 브랜드나 질에 따라 가격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보통 가격수준의 것으로 구입한다고 가정한다. 상하의 등산복 한벌에 50여만원(바지 하나 추가), 등산화 20여만원, 스틱, 모자, 스타킹, 장갑, 전등, 우의, 등 20여 만 원 등으로 모두 90여만원 정도다. 한달 최저노임으로 한 사람의 등산용품 치장에 거의 다 쓰여 지니 등산용품생산업체들의 각 재료별 원가에 제작비를 포함한 가격이 얼마쯤 될지 궁금하다.
요즘 건강을 위해 자전거 타는 인구가 부쩍 늘었다. 탈만한 정도의 자전거라면 100여 만 원 정도 홋가 한다. 제품의 질이 좋은 것은 무려 500여 만 원에서 경기용은 무려 3,000여 만 원 짜리도 있다고 한다. 그랜저 승용차 한 대 값과 거의 맞먹는다. 그런 자전거는 대체 어떤 제품으로 만들어졌는지 입이 딱 벌어진다. 100여 만 원짜리도 타고 다니다 자물쇠로 채워두지만 줄을 끊고서 훔쳐 가는 도둑도 있다고 한다. 아마 훔쳐갈 정도이니 100만원 짜리도 괜찮은 자전거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한 달 최저임금으로 탈만한 자전거 한 대를 살 정도라니 그런 자전거의 재료별 원가를 포함한 제작비가 얼마인지 궁금하다.
치아(齒牙)가 오복은 아니지만 오복중의 하나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는데 가장 중요하기에 오복이라고까지 했으리라. 아무리 치아관리를 잘해도 일생에 한 두 번쯤은 틀니나 임플란트를 하거나 다른 재료로 치아를 새로 해 넣는다. 요즘 치과의 임플란트 가격도 몇 년 전에 좀 저렴해졌지만 백만 원으로 임플란트이 한 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치과의사야 수년간 공부하느라 밑천을 많이 들였을지 몰라도 한 달 최저임금으로 겨우 임플란트이 한 개정도 밖에 할 수 없다면 근로자가 왠지 불쌍하게 여겨진다. 초보 근로자가 대체 몇 년을 일해야 치과의사가 한 달 버는 수입을 따라 갈지 궁금하다.
자장면을 즐겨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그 자장면이 정말 맛이 있어서 사 먹었다. 귀한 음식으로 대접 받던 시절의 자장면이 요즘 한 그릇에 사 오 천원이다. 100만원으로 자장면을 사 먹는다면 200 ~ 250그릇이다. 4인 가족이 매일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을 경우 두 달 가량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니 쌀값에 비하여서는 아주 비싼 편이지만 다른 공산품가격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이다.
한 달에 이발 한 번에 머리 염색을 한번 정도하고 욕실에서 목욕을 할 경우는 22,000원 ~ 25,000원 정도 소요된다. 백만 원으로 남성 머리손질을 한다면 40번 정도 할 수 있다. 이발 염색, 목욕을 다 하더라도 2시간 반 정도면 족하다. 한 시간에 11,000원~12,500원 정도 지출되니 시급 5,210원의 근로자에게는 좀 비싼 값이다. 이발사의 일이 얼마나 중노동인지는 모르지만 최저임금 근로자에 비하면 고액의 수입인 셈이다.
서울 강남의 귀부인들이 입고 다니는 고급 밍크코트 가격은 최하 500여 만 원에서 천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저임금근로자가 꼬박 다섯 달에서 일년 가까이 벌어야만 사 입을 수 있는 옷이다. 500여 만 원 짜리 밍크코트의 재료비와 제작비를 포함한 실제 원가가 얼마인지 궁금하다.
정도에 따라 차이야 나겠지만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귓병, 콧병을 앓거나 감기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동네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경우 진찰료는 사 오 천원에서 약국의 약값 사 오 천원으로 1회 진찰비와 약값이 팔 천원에서 일만 원 정도다. 백만원으로 100회 ~ 120회의 진찰과 약을 구입할 수 있으니 동네병원의 병원비와 약값은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대학병원은 진료비와 약값 포함하여 삼 사 만원 정도이니 백 만원으로 25회 ~ 33회 정도의 진단과 처방에 따른 약을 구입할 수 있으니 대학병원의 병원비와 약값은 후하지 못하다. 최저임금근로자가 대학병원의사의 한달 봉급에 해당되는 돈을 벌자면 일 년을 벌어도 못 따를 것 같다.
마지막으로 200여종의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들의 1달 세비만 해도 얼마쯤인가. 연봉을 한 달로 나눠보면 약 1,200만 원 정도로 최저임금근로자가 1년을 꼬박 벌어야하는 거액이다. 보좌관들의 임금과 다른 지원금을 합하면 최저임금근로자가 평생을 벌어도 못 따르는 돈이다.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벼농사 짓는 농부들이 가장 착한 분들이다. 양복제작업체,등산용품제작업체, 자전거제작업체, 밍크코트제작업체 사장, 국회의원, 국립대학교수, 대학병원의사들은 최저 임금근로자들의 임금과 어려운 삶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해 봐야한다. 벼농사를 짓는 노고에 비해 헐값으로 쌀을 제공하는 농부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지금 너무 낮게 책정되어져 있다면 내년에는 그 인상폭을 크게 올려야 할 것다. 문제는 최저임금근로자가 소속된 회사 사용자의 양심이다. 자신은 한 달에 순이익 수 억원을 가져가며 최저임금근로자에게는 법이 보장하는 최저임금 100만원만을 지급한다면 이는 자본주의 윤리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 연대의 측면에서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용자측에서 경영 여건상 이윤이 거의 남지 않아 도저히 최저임금밖에 지급할 수 없는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사용자는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도 근로자에게는 쥐꼬리 만큼 지불하는 임금 착취가 이루어진다면 자본주의 윤리상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착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 사용자는 근로자의 임금이나 복지에 신경을 써야한다. 또한 제품의 판매에도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 과다한 이윤을 남겨도 안 될 것이다. 재료비와 인건비 외 제작비를 합한 원가에 따른 적정한 이윤을 남겨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북돋워야 할 것이다. 과다한 이윤을 남기든가 폭리를 취하거나 근로자의 임금착취에 몰두하여 자신의 배만 불리는 사용자가 있는 한 노사분규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근로자의 약점을 이용, 근로자에게 불리하도록 근로계약을 체결한 기업은 그 규모를 막론하고 이를 시정하는 제도적,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사용자와 근로자간에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는 - 제대로 된 근로계약이 체결된 중소기업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첫댓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