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동창들의 노년 여행/이명철
초등학교 동창들이 1박2일 여행을 간다는 연락이 왔다. 그 연락은 전화로 문서로 카톡으로도 계속 알려왔었다.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쉽게 결정을 못하고 망설였다. 왜냐하면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찜통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하며, 1차 집결지가 김제 원평이어서 거기까지 운전하고 가는 것도 멀쩡한 날에 눈의 시야에 안개가 끼여 걱정스러웠으며, 호텔이 아닌 모텔이나 유스호스텔 등 침대가 없는 온돌방일터인데 잠자리도 불편할 것이 뻔하고, 음식이며 걷는 것 등 제약되는 것이 많을 것이란 생각에서 선 듯 간다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가기 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걱정스러운 태도로 아내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이번 여행 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해?” ‘그럼 가지 마’란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다 같은 처지일거 아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간다고ⵈⵈ, 갔다 와.”라고 정색하며 말했다.
고맙긴 해도 진정 걱정스러웠으나, 집에서도 동창들에게도 늙으니까 별수 없는 쪼다란 소리는 듣기 싫어 가기로 결정했다.
출발 안날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른 물건들은 별로 신경을 안 써도 되었으나 삼시새끼 챙겨 먹을 약이 문제였다. 가지 수만 일곱 가지나 되었다. 같은 약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는 것까지 하면 10회가 넘게 약을 챙겨야 했기에, 약국에서 얻은 휴대용 약 곽에 편리하도록 일(日)자와 세 때, 약 이름 등을 세밀하게 표기해놓았다.
내 차는 원평 하나로 마트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친구 차로 전주로 가서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합류하였다. 부산 대구 등지에서 하루 전에 도착한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 22명이었다. 그 중 여학생은 단 3명뿐이었다.
아파서 못 나온 사람들부터 안부를 물어보았다. 치매에 걸린 사람, 요양원에 있는 사람, 걸음을 잘 못 걷는 사람, 나름대로 이유는 다 있었다.
나온 사람들도 그렇다. 반듯하게 걷는 사람이 드물었다. 어깨, 허리 다리 등 흠 없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학생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남해 보리암에 갔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보리암까지는 버스와 택시가 있는데, 나는 친구가 택시를 타자 해서 보리암에 가장 가까이까지 갈 수 있어 얼마 걷지 않아도 되었다. 문화관광해설사 때 두 번이나 답사했고, 이번에 세 번째라 뭘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와 푸르다 못해 검은 섬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핸드폰 사진만 연신 찍어댔다.
여학생 둘이 버스로 와서 1KM쯤 걸어 계단을 내려올 때는 보리암 극락전까지 잘 왔으나 갈 때 계단을 오르면서는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나 역시 있는 힘을 다하였다. 눈치를 보니 안 그런 척하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우리보다 네 살 위인 동창이 더 싱싱한 것 같았다.
초딩들이 늙어 귀까지 먹어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어 엉뚱한 이야기로 판을 깨뜨려버린다. 상대방이 말을 듣지 못하고 그러니 나무랄 수도 없다.
약의 가지 수가 많은 건 나뿐이 아니다. 약을 제때 먹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이 말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나 역시 혈압ㆍ혈당 약은 꼭 챙겨 먹어야 했다.
노년의 우리들이 여행에 참여하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남이 볼 때는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 같으나 우리에겐 소중하고 특별한 여행이며, 가벼운 만남이 아닌 중압감 있는 만남이었다.
팔순의 여행은 무엇을 보고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황혼의 세계에서 노년의 참된 우정을 찾는 일이며 아직 오지 않은 내생의 새로운 세계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팔순의 우리를 예측하지 않았듯 우리들의 내일도 미리 염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우리들만의 길이고, 그 어떤 아름다운 꽃으로도 우리들 황혼의 꽃을 흉내낼 수 없으며, 그 어떤 색깔로도 우리의 색깔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빛을 발하며 우리만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행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긴 여행의 황혼녘에서 황홀한 노을빛을 발하고 아직 남은 희망의 삶을 살아갈 것이란 믿음의 끈을 놓지 안을 것이기에 이 다음 여행도 빠짐없이 나오기를 기대해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