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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과 당진에 펼쳐진 예당평야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삽교읍내. 그 조그만 시골 소읍(小邑)에서 '돼지곱창구이'라는 메뉴를 개발해 47년간 전통과 명맥을 이어온 우리나라 최초의 돼지곱창 구이집이 있다. 바로 '삽교곱창', '삽다리곱창'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돼지곱창의 원조, 충청남도 삽교읍내의 돼지곱창·전골 전문점들의 원조 삽교곱창 <신창집>이다. <신창집>의 정소득 여사는 특별한 곱창 손질법을 개발해 최초로 돼지곱창구이를 선보여 높은 가격으로 일반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소곱창 대신 돼지곱창으로 곱창요리를 대중화했다.
고향 버리고 삽교로 들어와 호구지책으로 선술집 시작해
지금의 삽교에서 삽교곱창 원조 정소득 할머니가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은 1964년. 일반 식당들이 간판을 바꾸는 평균 시간에 비하면 열배 이상의 장수식당이다. 삽교곱창 원조 정소득 할머니가 처음 터를 잡고 장사를 시작할 무렵의 삽교는 예산 당진지방의 물산이 모여드는 곳으로서 예산과 예당평야 중심지로의 위세가 당당했다고 한다. 삽교는 이웃에 신례원이 함께하고 있는데 신례원은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서남, 호서지방과 서울을 오르내리는 길목이었다. 그래서 이곳 인근 지방의 물산(物産)과 사람이 모여 제법 큰 우시장(牛市場)이 설 정도로 활력 넘치는 곳이었다고 한다.
삽교곱창 원조 <신창집> 김명식 대표의 선친(先親)은 원래 신창에서 방앗간도 운영하고 전답도 많은 부호(富戶)였는데 파적(破寂)삼아 심심풀이로 시작한 노름에 휘말려 집안 살림이 기울었다고 한다. 행색 빠지지 않게 살다가 일순간 기우는 살림을 접고 다시 새롭게 시작 하고자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찾아들어 자리잡은 곳이 신창 인근의 삽교. 이웃들 보기에 낯부끄러워 고향을 등진 처지라 생계가 막막했던 상황에 어린자식들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선술집이었다. 인근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다 팔고, 가게 근처 도살장에서 값이 비싸 끊어오지 못하는 고기대신 값싸면서 많이 살 수 있는 곱창을 받아다 팔기 시작했다. 그것이 원조 삽교곱창의 시작.
돼지 곱창구이를 처음 시도해 오늘날 삽교곱창으로 이름 알려져
삽교곱창의 가장 큰 특징은 소곱창이 아닌 돼지곱창을 이용해 양념 없이 구이로 만들어 낸다는데 있다. 소곱창에 비해 돼지곱창은 특유의 곱 냄새가 강해 양념과 부재료를 넣어 끓인 순대국이나 양념전골로만 먹어왔기 때문에 구이는 전혀 새로운 조리방법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돼지곱창을 구워서 먹는 곳은 전국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삶아서 먹거나 선지국으로 끓여먹거나 야채와 볶아먹었던 것이 돼지곱창의 일반적인 조리법. 그러나 원조 삽교곱창 정소득 할머니는 독특한 곱창 손질법을 개발해 돼지곱창의 냄새를 없애고 구워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막걸리 안주로 삶아서 팔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연탄불에 구워 먹어보니 부위별로 맛도 다르고 식감이 색달라 부위를 잘 선택해 손질만 잘 하면 소곱창 못지않게 담백하고 쫄깃한 맛을 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만드신 삽교 돼지곱창의 가장 큰 의미는 ‘곱창의 대중화’라고 말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먹이를 잡으면 가강 먼저 뱃속 내장부터 먹는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녀석들도 알고 있는 거죠. 거기가 가장 연하고 맛있다는 것을. 어머니의 삽교곱창이 있기 전에는 사람들은 곱창구이하면 으레 소곱창을 떠올렸고 소곱창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소곱창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참 귀하고 값비싼 음식이었어요. 소가 귀하고 대접받던 시절이라 소를 잘 잡지도 않을뿐더러 곱창은 소를 잡아서 나오는 고기의 양보다도 훨씬 적어 극소수 재력(財力)있는 미식가(美食家)들에게나 알려진 희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곱창구이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보통사람들이 어렵잖게 즐길 수 있기 시작한 것은 돼지곱창으로 구이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후부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이러한 사정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소곱창과 돼지곱창의 가격 차이는 매우 큽니다. 아직도 소곱창 요리는 서민들 주머니사정으로 마음껏 자주 먹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만드신 삽교돼지곱창의 진정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머니께서는 돼지곱창이라는 이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을 만들어 소곱창 못지않은 맛을 널리 알리신 거죠. 또한 어머니는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고 함께 부대끼며 삶과 애환을 듣고 호흡하는 삶에 만족해 하셨어요."
음식점 주인이 아니라 손님의 사연과 고민을 들어주는 인생 상담가
어렵고 힘들던 시절. 돼지 곱창, 간, 허파 등을 삶아서 접시에 썰어내고 국물로는 국밥을 말아 소금 한 종지를 곁들여 내면 안주가 되었다. 자신이 키우던 소나 돼지를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돈을 받아 정작 그들이 먹던 것은 <신창집>의 돼지곱창구이였다. 하루벌이 막노동꾼, 농사꾼, 삽교와 예산, 당진을 오가는 장돌뱅이들이 주린 배를 채우고 한잔 술로 삶의 고달픔을 달래주던 곳이 어머니가 꾸려나가시던 <신창집>의 분위기였다고 김 대표는 회상한다.
“어머니께서는 늘 당신의 처지와 분수를 지키려 노력하신 분이었습니다. 당신의 하루장사와 수입, 그리고 거기에 기대어 자식들을 가르치고 먹이는 것에 만족해 하셨어요. 제 기억 속에 어머니의 모습은 식당일로 힘들고 팔자 고된 모습이기보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서 말없이 조용하게 밥을 짓고 재료를 손질하며 손님을 기다리는, 어딘가 모를 평온이 깃든 모습이었습니다. 손님으로 찾아오는 보잘 것 없는 서민, 유식한 말로하면 민중들이랄까? 뭐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함께 애달파하고 걱정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느 사람들을 상대로 밥과 술을 파신다기 보다는, 그들 제각각이 가지고 있는 고단한 삶의 사연을 충실하게 들어주는 상담가 같은 분이셨어요.”
곱창의 맛은 재료의 손질에서 시작돼
신창집 돼지곱창 맛의 비결을 묻자 김 대표는 충청도 사람 특유의 조곤조곤하면서도 느릿한 말투로 겸연쩍어하며 말을 잇는다.
"맛의 비법이랄 게 뭐 있나요? 어머니는 늘 신선한 재료를 정성껏 손질하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그냥 신선한 재료를 정성껏 깨끗하게 손질하는 거지… 아! 참, 있다고 한다면 곱창의 부위를 선택하는 거, 그리고 손질하는 방법이랄까요? 사람들은 무엇을 곱창재료로 쓰는지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께서는 늘 막창과 새끼포를 쓰셨어요. 막창은 곱창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부위인데 말하자면, 항문 바로 윗부분이죠. 어머니 늘 ‘여기가 맨 마지막 부분이라 냄새도 겁나고 손질하기도 대간하고(힘들고) 그렇지만 쫄깃한 맛이 있으며 붙어 있는 기름이 독특한 맛을 낸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희는 막창과 새끼포를 써요."
그래도 같은 재료를 쓴다고 다 같은 음식 맛을 내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김 대표는 조심스레 맛의 비법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이건 사실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어머니께서 생전에 우리 집사람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비법을 적어서 책으로 전해 준 것도 아니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곱창손질을 하고 준비를 하면서 자연스레 노하우가 전수된 것 같아요. 별건 아니고 우리 집사람이 작업하는 것을 얼핏 보면 곱창 끝에 달려 있는 기름기를 손질하는 데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말만 대표지 사실 허릅숭이 껍데기 대표예요.(하하) 아무튼 어머니께서 ‘곱창에 달려있는 기름 중에 어느 놈은 담백하니 맛을 돋우는 기름이 있고 어느 놈은 노린내를 풍기는 놈이 있는데 이걸 구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것 같아요. 아내한테 상세하게 물어볼라치면 어머니가 ‘너만 알고 있으라’며 절대 알려주지 말랬다고 이야기해주지를 않데요. 그냥 하는 소리인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그냥 웃고 말았어요. 우리 집 곱창 맛은 며느리만 아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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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집이 잘돼야 곱창집도 잘된다!’ 더불어 사는 삶의 이치
나름의 경영철학이라든가 신념이 있느냐는 질문에 ‘시골 식당주인인 제게 무슨 경영철학 같은 게 있겠느냐’며 손 사레를 치다가 문득 생각에 잠겨 말을 잇는다.
"제게는 그런 경영철학이니 하는 것은 가당치 않지만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제게 하시던 말씀 중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멀리보고 사람간의 관계를 중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료에 있어서 정직하려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어느 해앤가 돼지구제역으로 돼지고기 소비가 줄자 곱창수매량도 줄어 고통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곱창을 구하러 구미나 김해에서까지 서울 독산동 시장으로 올라가곤 할 정도였으니까요. 더러는 수입산 재료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묵묵히 시간을 보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삼겹살집이 잘돼야 돼지를 많이 잡고 그래야 우리네 곱창집도 잘되는 게구먼!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이치 인겨!’하고 웃어넘기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세상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가슴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맛과 정성 그리고 저렴한 음식 값이 사람들 불러 모아
삽교라는 곳이 옛날과 달리 잊혀져가는 작은 동네인데 47년간 꾸준히 장사가 잘 되는 비결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 삽교 지역 주민 이래봐야 기천 명 될까 말까하고, 자체적인 수요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 힘들죠. 결국 타지에서 찾아오는 외부인들이 손님의 대부분인 셈이에요. 여기 사는 사람도 아니고 지나다가 우연히 들른 사람들이 주된 손님입니다. 소위 뜨내기손님이라고 하죠. 근데 뜨내기손님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그분들은 다시 안 오는 뜨내기손님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흔히 역 근처나 터미널 근처에서는 밥 사먹지 말라고 하죠. 왜 그렇게 말합니까? 어차피 지나치는 손님, 다시볼일 없는 손님이라고 생각해 맛과 서비스가 엉망이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들은 빨리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손님과 함께 밤을 지세고 그들과 부대끼며 함께 하셨습니다. 저희 집에 오시는 손님을 정성껏 모시고 맛까지 있으니 다시 우리 집을 지나다 들를 뿐만 아니라 일부러 찾아오시기도 하더라는 것이죠. 손님의 입소문도 무시할 수 없고요. 드시고 가신 손님이 ‘어디가면 거기 맛있으니까 그 근처 가면 거기 꼭 가봐’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으로 저희 손님을 늘려나가는 것이 저희의 유일한 홍보 전략이라 말할 수 있겠네요."
주중보다는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 등 주말에 주로 사람들이 많고, 봄, 가을 나들이객이 늘어나는 시기에 손님이 더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푸진 봄볕아래 신록이 더없이 푸른 봄이다. 새봄맞이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서울에서 멀지 않으면서 볼거리 많고 한적한 이 지역을 추천하고 싶다. 주변관광지가 많고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덕산스파캐슬도 있다. 수암산과 용봉산 등산을 계획해도 좋다. 수덕사, 윤봉길 사당, 추사고택, 만해 한용운 생가 등이 있어 자녀들의 체험학습과 한적한 산책 장소로도 좋겠다. 그리고 해질 무렵 나들이의 마지막으로 충청도의 푸근하고 구수한 입담을 들으며 삽교 곱창과 전골을 먹는다면, 모처럼 만의 가족나들이에 추억의 마침표를 찍어줄 수 있을 듯싶다.
맛의 비결,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는 것!
김명식 대표는 푸짐한 곱창 한 상을 차려 내와 직접 구워가며 곱창 굽는 방법부터 먹는 순서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시범을 보이면서 <신창집> 곱창구이와 전골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신창집 곱창의 특징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곱창부분에서 막창과 새끼포만을 사용할 것을 고집한다.
막창과 새끼포를 섞어서 굽는데 그 이유는 새끼포에 기름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새끼포에 막창을 더하면 막창에서 나오는 담백한 내장기름으로 한층 맛이 잘 어울리고 느끼하지 않으면서 담백한 곱창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끼포는 한 번이나 두 번 새끼를 낸 돼지를 잡은 것에서 나온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둘째 곱창 맛의 관건은 내장특유의 냄새를 없애는데 있는데 이것이 노하우다.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요즘 서울의 유명한 소곱창 요리집에서 마늘을 넣어서 굽는 마늘곱창이라든지 특별한 간장소스를 곁들여서 낸 다든지 하는 노력을 하고 있던데 이러한 것들 모두 곱창에서 나는 냄새를 줄이기 위한 것이지요.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리에게만 곱창 손질 비법을 알려 주셨어요. 막창은 뒤집으면 곱창 안에 기름기가 달라붙어 있는데 거기서 뗄 부분과 안 뗄 부분을 구별하는 노하우가 맛의 비결이라네요. 모르는 사람은 이걸 밀가루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닦아내거나 무작위로 제거해 버리는데 그렇게 하면 냄새는 줄일 수 있을지언정 곱창구이 특유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은 잃게 되는 것이죠. 기름을 잘 선별해서 떼고 난 뒤 소금만으로 깨끗이 닦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