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중에서...>
무엇이 공동체를 지키는가!
사회의 그 어느 것도 공짜로 좋아지거나 개선되는 일은 없다. 정부나 정당이 알아서 미리미리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발언하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레드 퀸의 가설’이 바로 그 얘기 아닌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제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나라, 그게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정말 이상한 나라를 보게 될지 모른다.
나는 우리의 문제를 풀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경제학과 사회학을 결합시킨 ‘사회경제학’ 같은 분과를 열어서 사회와 경제를 통합적으로 살펴보고 싶었는데,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경제학과 생태학을 통합적으로 접근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내가 희망했던 것은 ‘유학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 대학원생들과 박사과정 후배들을 모아 계속해서 스터디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강의를 줄곧 했던 것은, 최소한 내가 속해 있는 생태경제학 분야만큼이라도 국내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말로 학문할 수 없게 만든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 말로 학문을 하는 풍토에서 비로소 세계적인 이론이 나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프랑스어로 철학하는 프랑스, 독일어로 학문하는 독일, 일본어로 연구하는 일본, 우리 한국만 우리말로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을 폐기하는 중이다.
사회과학의 힘은 비판에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한국에서 사회과학은 대결의 언어였고, 날 선 논쟁의 언어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확히 분석하고 구체적 맥락을 드러내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과 싸우기 위해서거나 논쟁하기 위해서 학문을 한다면 너무 허망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실 좌파든 우파든, 소통이라는 말을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건 홍보지 소통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 된 데는 언어의 문제도 있다.
좌우로 싸늘하게 갈리는 양상은 일상에서보다 학문 내에서 더 강한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사보타지 외에 한 게 뭐가 있는가?
사회과학 내에서도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렸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는 동안 일반인들은 사회과학으로부터 멀어졌고,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언어는 사라져버린 셈이다.
사회과학이 학문으로서 부여받은 소명으로부터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이제는 소통을 넘어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탈권위주의와 탈계몽주의 시대에 이해와 공감을 위한 새로운 의사전달 방식이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런 개인적인 고민이 책의 후반부에 들어 있다. 우리의 특수성을 생각할 때, 전통적인 방법론 논의보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사회과학이라는, 좀 오래되었지만 인류 보편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같이 대화하고 논의하고, 또 그렇게 뜻을 모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성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책을 준비하면서, 사회과학 르네상스라는 희망을 생각하며 내가 가졌던 간절함이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새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과학이 기본적으로 수다쟁이들의 언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맞다, 사회과학자들은 참 말 많은 사람들이고, 간단한 것을 아주 기괴한 언어를 통해서 복잡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좀 시끄럽고 요란해져도 좋은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받거나 아픈 기억을 갖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980년대의 사회과학은 상처를 주는 데만 집중하다가 결국 많은 사람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사회과학은 남성적인 측면만 강조되었고, 수컷들의 호전성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온화하게 얘기하거나 부드럽게 얘기하면 전투성이 떨어진다는 것, 그게 우리가 지났던 80년대의 모습이었다. 사실 남들에게 상처를 주면 자신에게도 상처가 남는다.
논쟁에서 이기면 이긴 것 같지만, 그건 진짜 이긴 게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고한 완화시켜야 그게 진짜 이긴 것 아닌가?
만약 우리에게 사회과학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다면 더 많은 소녀들과 주부들이 이 사회과학에 초대되어야 하고, 그들이 “당신들이 맞다, 틀리다‘라고 기꺼이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은 글을 쓰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 또는 사회의 대안을 찾아갈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실용적인 목적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의 언어가 엘리트 남성들의 전투 용어에서 여성을 포함한 생활인들의 일상용어로 바뀌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대중들과 어떻게 얘기하고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 것인가, 그런 실용적인 측면을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의 이런 노력이 과연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
개개인의 삶이 지금보다는 윤택해지거나 풍성해지면 좋겠지만, 이건 객관적 지수로 확인해볼 길이 없다. .....
우리 공동의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논의에 참여할 때 비로소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법률로 정해 해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덕적인 호소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사회적 논의를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려면 사회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
<출판사 서평>
한국 사회가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공동체를 살리는 힘, 사회과학에 있다. 우석훈 박사의 강의로 만나는 세상을 깊이 읽고 해석하는 방법. 우리 삶을 움직이는 시스템을 밝히고, 세상을 꿰뚫는 통찰과 만날 수 있다.
애덤 스미스에서 에밀 뒤르켐, 데카르트에서 칼 포퍼까지 위대한 사상과 철학, 최신 논쟁과 연구 흐름을 놀랍도록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사회과학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개념들을 소개하였다.
세상과 소통하는 사회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동체를 살리는 사회과학은 어떻게 가능할까?
공동체를 살리는 힘, 사회과학에 있다!
그는 한국사회의 생태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 열심히 발언했고, 공동체의 공진화와 미래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내 유일의 생태경제학자이자 탁월하고 과감한 세상읽기로 ‘우석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그가, 이제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회의 그 어느 것도 공짜로 좋아지거나 개선되는 일은 없다. 정부나 정당이 알아서 미리미리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발언하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 교육시키고, 정치와 사회는 좌우로 나뉘어 소통 불능에 처해 있으며, 경제 근본주의로의 경도는 ‘이성의 언어’ 대신 ‘돈의 언어’를 선택한 현실!
이것은 오늘날 무한경쟁 자본주의로 성장해가고 있는 한국 사회가 처한 모순되고 왜곡된 현실이다. 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그 해답으로 ‘사회과학의 르네상스’를 말한다. 공동의 문제를 바로 보고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힘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며, 의견을 모아나가고 합의해가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의 언어가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세상의 작동원리를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읽는 방법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권한다. 그리고 전공자나 연구자가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많은 사람들을 사회과학으로 초대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그것이 공동체를 지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사회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동체를 살리는 사회과학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책은 실험실과 연구실에서 만나는 숫자와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주보고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과정으로서 나와 너가, 그리고 우리가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소통하고 토론하자고 한다. 더 나아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문제의식은 무엇인지, 연구주제는 어떻게 선택되는지, 그리고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비유와 예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나와 우리, 세상 사이의 소통을 위한 ‘살아있는 사회과학’을 만나게 해준다.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과학은 어떻게 가능할까?
구멍가게 아주머니의 경제학에서 미인대회의 심리학, 집값 폭등에 숨은 정치학까지.
세상을 꿰뚫는 통찰과 만나라!
‘사회 현상이 존재한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알 것인가?’
이것의 인식 수단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사회과학 방법론이다. 이 책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긴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사회과학 공부를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국가, 사회, 경제 그리고 윤리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하거나, 세상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회과학 공부하기를 권한다. 사회를 살리는 사회과학의 힘이 궁금하다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과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한다면, 이 책이 답이 될 것이다.
저는 지금도 사회과학이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떨립니다. 사회과학은 학문의 기본이기도 하고, 예술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이 강좌를 통해 바라는 것은 좋은 독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독자에 머물 게 아니라 언젠가 자신의 얘기를 책의 형식이든 아니면 예술의 형식이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그런 1차 저자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1장_지금, 우리에게는 사회과학이 필요하다)
사회과학은 사전적인 의미로 인간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모든 경험과학을 말한다. 사회학, 정치학, 법학, 행정학, 심리학 등이 사회과학에 포함된다. 우리가 사회라는 틀 안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고, 그 틀 안에서 생겨난 문제점을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사회과학의 인식과 도구가 필요하다. 복잡한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는 힘이 사회과학 공부에 있다. 지금의 인문학과 교양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보려면, 우선 사회과학이 기본 공부가 되어야 한다. 소통과 공감의 시대에 어울릴 만한 사회과학은 보다 작은 것들, 그리고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했던 존재들의 삶과, 그들이 지고 있는 다양한 맥락을 풍성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첫댓글 http://tv.kakao.com/v/393907693
오늘 잠시 외출하는 길에 지하철에 많은 분들이 모여서 여의도에 내리시는걸 보았다.. 아마도 이 분들인거 같았다... 그때 마침 이 책을 읽던 중이라 , 굳이 연관지어 생각 해볼 수도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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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자에 머물 게 아니라 언젠가 자신의 얘기를 책의 형식이든 아니면 예술의 형식이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그런 1차 저자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이것이 식상행위인가?! ㅎㅎ
자신의 인성으로 비견국 또는 월지를 제어 하거나
다신의 식상으로 월지의 편관을 제살 하거나
관을 제어 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