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문예 신인상 시 심사평
‘공존’과 ‘공생’을 축으로 하는 에코필리아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심사평]
도순덕 수필작가의 재등단을 축하한다. 요즘은 장르를 넘나들며 창작활동을 다채롭게 하는 시대다. 다원 장르 작가로 다시 시문에 들어서는 도 작가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도 작가는 글을 쓰면서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자의식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고 보여진다. 그 질문은 고스란히 시 작업에 반영될 수 있다. ‘안도 보이고 밖도 보이니/ 두 개의 눈을 주신 당신의 깊은 뜻/ 이제야 헤아려지니’ 자신도 이제서야 익어가나 보다하고 생각하는 시적 자아가 아마도 시인 자신이 아닌가 여겨진다. 익어가는 근거를 직설적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안과 밖’을 제재로 제시하면서, 내면을 투시하지 않고는 진실을 엿볼 수 없는 곳을 투시하여 들어가 도 시인은 자신과 대상이 만나는 지점을 끊임없이 성찰함으로써 본질을 찾는 데 성공한다.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시의 생산은 창작이고, 대상은 창작된 것이 아니라 분명 그대로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미지의 언어와 씨름하는 시는 창작의 영역이고, 대상의 내면은 외면 때문에 볼 수가 없다. 사물의 외면과 외면만 볼 수 있는 육안, 이 이중의 압박을 어떻게 감내하고 그것을 미적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이 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겠다. 이 시는 이 이중의 견고한 그물망을 통과하고 있다는 데서 예술성을 지닌다 하겠다. ‘매캐한 구석에서/ 모자를 거꾸로 쓴 알바생이/ 날다람쥐처럼 재빠르다/ 설마 저녁밥은 먹었겠지’라고 하는 타자의식은 아름다운 시인의 마음이다. 도순덕 시의 출발점은 ‘팝콘 같은 웃음이 터져 나오고/ 격의 없이 녹아내린 호칭 속에/ 구수한 정이 고인다/ 그래, 저 맛으로 직장 다니지’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공존’과 ‘상생’이라는 세계관을 축으로 한다.
이는 도 시인의 현실 인식과 작가정신의 발로다. 그는 언제나 시 작업을 통해 인간의 냄새가 풍기는 생명자본주의 안에 머물고자 몸부림치며 문명 속에서도 변하지 않으려는 선량한 시민으로 남으려 한다. 상실의 아픔으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삼삼오오 둘러앉아 함께 웃음지으며 잃어버린 공존을 위한 순수를 찾아 떠나고자 한다. 그리하여 ‘나’를 철저히 탐색하면서 개인을 초월하여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추구한다. 열심히 일하는 알바생을 지켜보며 ‘저녁은 먹었겠지’라고 진정으로 타자를 걱정해주는 시인은 항상 배려와 관용으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할 공존의 미학을 추구한다. ‘삼삼오오’ ‘두 개의 눈’ 등의 어구는 도 시인의 시정신을 잘 보여주는 핵심코드라 하겠다. 이런 코드가 여러 시에 일관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녀의 시정신을 ‘공존’과 ‘공생’을 축으로 하는 에코필리아에 두어도 좋을 듯싶다.
도순덕의 시는 이 지구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이 과연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철학적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적 감동과 시적 신뢰를 획득한다. 시인의 정직성과 성실성이 탁월한 그녀의 시적 상상력을 만나면, 어떤 사물도 속살을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풍경의 이데아는 ‘사랑’과 ‘공존’의 미학 속에서 하얀 살결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시는 심장에 웃음을 달고 사는 것 같이 삶의 환한 밝음을 드러내고 있어서 감동을 준다.
익어가는 밤
도순덕
삼삼오오 둘러앉은 테이블마다
팝콘 같은 웃음이 터져 나오고
격의 없이 녹아내린 호칭 속에
구수한 정이 고인다
그래, 저 맛으로 직장 다니지
숯불이 들어가고 나오는
매캐한 구석에서
모자를 거꾸로 쓴 알바생이
날다람쥐처럼 재빠르다
설마 저녁밥은 먹었겠지
안도 보이고 밖도 보이니
두 개의 눈을 주신 당신의 깊은 뜻
이제야 헤아려지니
나도 조용히 익어가나 보다
엄마 생각
도순덕
맨드라미가 피었다
고향집 앞마당에
땡볕도 끄떡 않고
증손주까지 거느린
붉은 맨드라미가
맨드라미가 피었다
고향집 앞마당에
꿈같은 세월
흰 눈으로 덮고
문풍지 바람에도 떨고 있는
하얀 맨드라미가
로또 대박
도순덕
오늘도 꽝이라니
부아가 치밀어 밖으로 나왔어
길가에 앉아서 사람 구경을 했지
앞만 보고 걸어가는 아저씨 뒤로
헐떡거리며 따라가는 아지매를 보았어
화사한 원피스에 롱코트로
맘껏 분위기를 낸 새댁들 뒤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표정 없이 걸어가는 남편들도 보았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어
안 맞으니 로또란다
당선소감 도순덕
먼저 시를 쓸 수 있는 건강과 환경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저는 솔직히 시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시가 좋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소녀시절, 친구에게 시집을 빌려 읽기도 하고 베껴 쓰며 가슴 설레었습니다. 교사시절, 아이들과 동시 수업을 하면 참 행복했습니다. 뭐라고 꼭 찝어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시를 통해 제가 느끼는 내적인 즐거움을 아이들도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감히 용기를 내어봅니다. 아는 것이 좋아한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이럴 때는 위안이 됩니다. 풋사과 같은 시가 언젠가 숙성이 되어 깊은 맛과 향기를 내는 순간이 오리라 소망해봅니다.
비록 졸시지만 시를 세상 밖으로 내밀 수 있는 용기주신 에세이문예 권대근 교수님과 송명화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랑하는 남편과 두 자녀, 오 남매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약력 도순덕
경남 함양 출생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