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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가족여행
길 융 섭
멀리 미국에서 날아온 혜정이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을 때 여행함이 좋을듯해서 혜정의 효심에 따르기로 했다.
모든 준비는 아들 내외와 혜정에게 맡기고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 먹을 것만 챙겼다. 내가 재배한 상추와 쑥갓을 비닐봉지에 넣어 아들 내외에게 들키지 않게 가방 속에 넣은 것이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아들이 분명 아래와 같이 말할 것이리.
“에이, 아버지 그까짓 것 현지에서 사지요. 몇 푼이나 된다고요.”
드디어 6월 16일 우리 가족들을 태운 고속버스는 청주공항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난폭하게 운전하는 버스 기사 때문에 아내가 차 멀미를 하게 되었으나 다행히 제주에 산다는 여인의 간단한 민간요법을 받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18:45 이륙이 시작되었다. 혜정은 두 왕자와, 희연은 형준과, 그리고 나는 아내와 아들과 나란히 앉아 제각기 설레는 가슴을 안고 점점 높아져 가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내려다본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무슨 호사인가!
스튜어디스가 제공하는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있노라니 앞사람 의자 머리 시트에 쓰인 글귀가 내 시선을 멈추게 한다.
「여행이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는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이로다 감탄하며 밖을 보니 석양의 햇빛이 찬란하다. 높이 솟아오른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내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딸의 얼굴도 바라보고 개구쟁이 손자들의 얼굴도 바라보던 중 아내가 불쑥 말을 꺼낸다. “제주도는 슬픈 도시 같아요. 옛날에 많은 사람들이 귀양 왔으니…….”
그렇다. 얼마나 한 많은 도시인가? 근현대사의 제주도민의 억울한 영혼들이 떠돌고 있으니.
이륙 한지 50 여분 남짓한 비행기는 어둑한 바다 위에 줄줄이 양식장을 밝히는 둥근 불빛을 보며 하강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사치와 쾌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휘황찬란한 장관에 비하여 조용한 분위기의 소박한 제주시에 안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들이 셔틀버스에 올라 공항 터미널에 도착하니 렌터카 회사에서 나온 미니버스가 지친듯한 엔진소리를 내며 서 있다. 사람들을 화물처럼 취급하는 운전기사는 저희들 렌터카 회사 사무실 앞에 우리를 쏟아놓는다. 그때부터 우리 아들이 렌터카의 운전대를 잡고 ‘초록새록 펜션’의 계수 205호실 앞에 내려놓았다.
아들 내외는 작은방에서, 아내와 나는 혜정과 큰방의 바닥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워 있는데, 손자들은 침대 위에서 아이패드에 눈을 박고 히히히 낄낄낄 거린다. 그 세상 물정 모르고 끽끽거리는 소릴 들으며 살포시 잠이 들었는데 요의가 느껴져 눈을 뜨니 아! 손자들 모습 보소!
저희들 셋이서 침대에서 자겠다고 해 놓고는 유진이만 침대에 웅크리고 자고 있는데 저스틴은 제 엄마 발밑에서 발가락을 빨 듯이 누워 자고 형준은 온데간데없다. 분명히 제 엄마 명예의 재산 냄새를 맡으며 콜콜 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제 엄마 곁에서 자지 못하는 유진의 손목을 잡고 제주도의 첫날밤 잠에 들었다.
에코랜드(6.17,월)
아침에 눈을 뜨니 다섯 시다. 먼저 일어난 아내가 애들이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한다. 아내와 맨손체조를 하고 산책길에 나섰다. 500여 m쯤 걸어 나가니 멀리 먼바다 위에 아침 안개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뻗어 나간 도로를 건너 바닷가에 이르니 수만 년 철썩이는 파도에 깎여 들어간 바위들이 검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그 절벽 아래에 움푹 파인 넓은 바위 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한참 걸어 내려가 손바닥에 한 움큼 물을 떠서 맛을 보니 짜지 않다. 바닷물이 아닌 샘물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다. 바닷물이 출렁이는 바로 옆에 샘물이 있음을 처음 발견한 옛사람은 얼마나 좋아했을까? 이 샘물은 오늘날 제주 제일의 해안 용수가 되고 있음을 자랑하고 있단다. 해안 도로를 따라 바닷가를 거닐다가 펜션으로 돌아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제주도 여행 첫날의 여정에 들어갔다.
09:30 우리는 에코랜드를 향해 출발하였다. 도로 중앙 분리대엔 화이트 핑크 셀릭스 나무가, 도로 좌우엔 소나무, 향나무들이 줄줄이 서서 우리들을 맞이한다. 열어놓은 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향기와 손자들의 재잘거리는 낭랑한 소리를 들으며 젊은 시절에 누리지 못한 여행의 즐거움을 지긋이 맛보며 달려오다 보니 벌써 에코랜드 정문이다.
여기서 잠깐! 에코랜드에 대한 내 생각을 털어놓고 가자. 에코랜드는 30여만 평의 곶자왈에, 곶자왈은 제주도 방언으로 곶은 숲을, 자왈은 암석과 덤불을 의미하는데 이 광활한 곳에 호수를 만들어 놓고 호수를 따라 온갖 나무와 아름다운 꽃을 심어 놓고 외국에서 제작한 빨간 미니 기차에 손님들을 네 개의 역에 실어 나르며 그 역마다 특색 있는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놓고 육지에서 온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내고 있는 현대판 배비장전이 연출되고 있는 현장이다.
도넛 모양의 메인 역 매표소에서 표를 끊은 우리들은 빨간 미니 기차에 올라탔다. 원시림 숲속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첫째 역 에코브리지 역에서 내리니 푸른 숲속에서 넓은 호수물이 따스한 햇볕에 몸을 데우며 우릴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은 마치 호수 위를 걸어가듯이 만든 수상 데크 길을 걸어가며 멀리 호수 섬도 바라보고 수변 산책길을 유유히 산보 하는 사람들이 제각기 고운 추억 만들기를 하는 모습도 보면서 우리들도 온갖 멋을 부리며 스마트폰에 정신없이 사진을 담았다. 사진만 찍는다면 눈을 감아버리는 제 엄마에게 “엄마! 제발 눈 좀 뜨라고.” 하며 깔깔대는 혜정도, 말없이 펼쳐지는 경관의 정서를 만끽하는 며늘애도 더없이 즐거워 보인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떠들어 대는 손자들을 데리고 두 번째 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담았다. 태초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숲속을 달리던 기차는 우리들을 두 번째 역 레이크사이드 역에 내려놓았다.
아! 드넓게 펼쳐있는 녹색 목초들!
예전에 말을 길렀던 목초지를 이용하여 만든 호수와 물을 이동시키는 커다란 풍차가 있는 이국적인 파크였다. 해적들이 활동하고 있는 디스커버리 존에서 창을 들고 있는 해적과 사진도 한 컷 찍고, 호수 위에서 즐기는 범퍼보트는 타보지는 못하였으나, 개구쟁이 저스틴은 제 엄마와, 유진은 외삼촌과, 형준은 제 엄마와 전동보트를 신나게 운전하며 즐기는 모습을 핸드폰에 담았다. 아내가 어지럽다 하여 보트를 즐기지는 못하였지만, 억새와 곳곳에 숨겨져 있는 동백나무 숲이 우거진 삼다정원을 돌아보고 세 번째 역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서 있는 기차에 올랐다.
철도 양편의 숲속에서 자생하고 있는 나무와 풀, 약재, 암석들에 대한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 번째 역인 피크닉파크 역에 도착하니 드넓게 펼쳐진 금잔디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우리 손자들은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들의 집 그라스하우스를 드나들며 깔깔거리고 포토존에서 둥근 얼굴 모양의 구멍에 얼굴을 내밀고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어 달란다. 이곳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키즈타운이지만, 곶자왈 숲길 에코로드는 이곳을 찾은 모든 관광객들이 잊지 못할 곳이라고 한다.
여러 시설물들의 이곳저곳을 신나게 구경하는 손자들을 데리고 네 번째 역 라벤더,그린티&로즈가든 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네 번째 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광은 이름 그대로 라벤더 향과 장미 향이 그윽하게 퍼지도록 꾸민 파크였다. 이미 계절이 바뀌어 이들 꽃들의 화려한 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이곳저곳에서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 앞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메인 역으로 가는 기차역 부근에 노천 족욕장이 있어 온 가족이 양말을 벗어 던지고 그동안 구경하느라 고생한 발을 따뜻한 물속에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피로를 풀었다.
이곳에서 메인 역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피크닉을 즐기며 걸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인데 우리들은 배도 출출하고 오후 일정도 있어 기차를 타고 메인 역으로 돌아와 렌터카에 몸을 실었다.
아내가 차멀미와 소화불량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제주도에 자주 와본 아들이 ‘제주 김만복 식당’ 앞에 차를 세운다. 식당 안에 들어가 전복 김밥을 몇 접시 주문하였다. 네모 모양의 김밥 중앙에 전복말이로 두른 것이 특색인데 한 접시에 6500이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동행하는 아내에게 미안하여 김밥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어디론가 달려가던 렌터카는 ‘이드레 국수’ 집 앞에 선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보말칼국수로 기억되는데 다른 식구들은 고기국수와 비빔국수를 주문했는데, 유진은 메뉴를 보고 돔베고기를 원했다. 돔베는 제주 방언으로 ‘도마’라는 뜻인데 도마 위에 올려 나온 돼지고기는 달랑 여덟 쪽인데 그것도 비곗덩어리라서 이를 가위로 잘라내니 기껏 살코기 대여섯 점인데 값이 17,000원이란다. 궁상스런 할아비는 속으로 너무 비싸다고 두런거렸는데 제 엄마는 고기 한 점이라도 아들이 먹고 싶다면 무조건 주머니를 연다. 이것이 부자 엄마와 가난한 할아비의 차이런가? 식당을 나오며 벽을 보니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이드레는 ’여기로‘라는 제주 방언으로 “이드레 왕 하영 드십써”는 ‘여기 와서 많이 드십시오.’라는 뜻이란다.
김밥이랑 국수를 뱃속에 넣은 손자들은 “바나나 바나나 바나바나 바나나” 노래를 급작하여 합창하면서 해변에 이르렀다.
협재해변이란다. 해변이 온통 검은 현무암으로 깔려있는 제주에서 조개 가루와 휜 모래가 두텁게 덮여 있는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니 참으로 신비롭다. 아내는 아들과 간이천막 속에서 누워 있고, 손자들은 출렁이는 파도 물결 속에 뛰어다니고 모래성을 쌓기도 하면서 조잘댄다. 혜정과 희연도 예닐곱 살 소녀가 되어 찰랑이는 잔물결을 밟으며 즐거워한다. 나는 바위 위에 앉아 왜 이리 세월이 많이 흘렀냐고 서글퍼하며 손자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펜션으로 돌아오는 차 안은 손자들의 이상야릇한 노랫소리로 왁자지껄하였다.
박물관은 살아 있다 (6.18 화)
오늘은 혜정도 아침 바다가 보고 싶다 하여 아내와 셋이서 바닷가로 나갔다. 해안 도로 옆 풀숲에서 딸기 몇 알이 매달려 있기에 이를 몇 알 따서 혜정을 주려니, 혜정이 “아빠, 따지 말아요. 산새들이 따먹어야지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지만 딸기를 따 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꺼내어 몇 개 따서 아낼 주니 먹지 않겠다고 한다.
싱그러운 해변에서 모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산보 하는 정경을 핸드폰에 담았다.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내는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로가에 핀 백일홍 한 포기를 뽑아 우리 집 화단에 심자고 한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육지로 옮기면 처벌받는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나는 백일홍을 펜션 앞에 심었다. 아들이 두통으로 늦게 출발하겠다고 하여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혜정이 제 언니와 하하하 거리며 얘길 나눈다. 참 보기 좋았다.
우리들은 좀 늦은 시각에 ‘박물관은 살아 있다’로 향하였다. 본 박물관은 다섯 개(옵티컬 일루전아트, 디지털아트, 오브제아트, 스컬쳐아트, 프로방스아트)의 눈속임 테마파크로 조성되어 있다.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명한 유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꾸며 놓은 일종의 착시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아내는 휴게실에 앉아 있었지만, 우리들은 제각기 각 테마에서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 속에 들어가 직접 주인공이 되고, 미술작품 속에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추억을 엮어 나갔다,
엉뚱한 발상에 호기심이 많은 형준과 저스틴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곳이었다. 형준과 저스틴은 유령이 나올듯한 텅 빈 방 안에 들어가 소릴 지르고, 목욕하는 처녀의 손목을 끌어당기고, 미술작품에서 나오는 흰구름을 끌어안기도 하고, 예쁜 아가씨의 의자를 끌어당겨 놀라게 하고, 우산을 함께 쓰고 걸어 다니고, 해바라기 꽃밭에 들어가 방긋이 웃어보기도 하고, 폭포수 밑에서 물벼락도 맞아보고, 저스틴은 숲속에 누워 있는 외삼촌을 밟아 보기도 하고,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구렁이에게 잡혀 몸부림치고, 어느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빠져나오려고 인상도 긁어 보기도 하고, 춤추는 소녀가 뒤로 뻗은 발을 차기도 하는가 하면, 아름다운 여인의 발가락에서 풍겨 나오는 고약한 냄새에 코를 쥐어 잡고, 박혁거세의 알 속에 들어 가 보고, 얼룩말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킥킥거리다가 사나운 말에게 먹이도 주더니 성난 황소의 등에 올라 소릴 지르며 좋아도 한다. 유리 거울 속에 들어있는 유진과 이야기도 나누고, 침대와 카펫에 누워보기도 하고,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연설도 했다.
형준은 유명한 권투선수의 얼굴이 홱 돌아가도록 주먹을 날렸고, 가마 속에 들어가 “대감마님 납시오.”
라고 호령도 해보고, 정물화에 나오는 바나나와 귤을 빨아먹기도 했다. 그리고 유람선이 전복되어 구조해 달라고 소리치는 여인의 손목을 잡아 구조해주기도 하였다.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찾아다니며 즐거워하는 손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니 자기 손자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체험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손자들을 보니 기운이 나는지 환하게 웃는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의 작가와 주제를 자세히 보지 않고 흥미 위주로 견학하고 나온 것이 잘못된 점이 되겠으나 박물관에 대한 호기심을 넣어주는 데엔 성공하였다는 생각을 하며 족욕을 한다는 집을 찾아 나섰다.
이는 고생만 하며 따라다니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희연의 기특한 제안에 따른
것이었으니 훗날 오래도록 기억할 애정으로 남을 것이다.
드디어 찾아낸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오십을 바라보는듯한 여인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준다.
우리들은 제각기 자기 취향에 따라 허브향과 아로나향의 냄새를 맡으며 따끈한 족욕기 속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었다,
배탈과 차멀미에 고생하던 아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며 제일 좋아한다, 족욕을 마친 혜정이 아내와 나에게 발 마사지를 권하여 아내의 발은 여주인이, 내 발은 스물 남짓한 아가씨가 담당하였다. 아내의 발을 주무르던 여주인이 뱃속에 음식물이 심하게 굳어있다며 발이 아프도록 강하게 자극한다. 이에 아내는 뭉친 것이 쑥 내려간 듯 시원하다며 아주 좋아했다.
탄력 없는 내 종아리를 주무르는 아가씨는 중국에서 왔단다, 대학을 다니며 청춘을 노래할 나이에 멀리 이국땅에 와서 뭇사람들의 발가락이랑 종아리를 마사지하는 처녀가 가련해서, 그리고 늙은 내 다리를 만져주는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잠시 마사지하고 그만하도록 했다. 이를 보고 혜정이 빙그레 웃으며 일갈했다.
“에이, 아빠 뭐가 미안하다구,”
나는 마사지를 받으며 큰딸의 배려로 장가계에 여행 갔을 때 전신 마사지를 받아보았던 기억을 해봤다.
천문산에 올랐던 날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팬티만 입은 내 알몸을 주무르던 아가씨가 불쑥 어눌한 어조로 내게 말을 건넨다.
“아저씨, 부자야? 사장님이야?”
나는 속으로 킥킥 웃었다. 내 좌우에 누워 마사지 받는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부자인데.
그 가난한 아가씨는 금시계 비슷한 번쩍번쩍 빛나는 내 시곌 보고 부자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으니…….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마사지 덕택에 속이 시원해진 아내를 태운 자동차는 흑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하다는 ‘웃뜨르식당’을 찾으러 달렸다. 드디어 발견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손자들 테이블에는 희연이, 내 식탁엔 아들이 집게를 들고 흑돼지오겹살을 구워낸다, 손자들이 지글거리는 노르스름한 고기를 정신없이 집어 먹는다. 내 어린시절 1년에 대여섯 점 얻어먹었던 고길 말이다. 손자들 테이블의 18,000원 짜리 4인분 고기가 순식간에 없어지고 있다. 희연과 혜정은 아들 먹이느라 부지런히 구워내고 형준 애비는 제 엄마와 나에게 밀어주고.
여기서 잠깐 부끄러운 내 고백을 하고 나가자.
고기를 구워 내 접시에 올려놓으며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맛있지요?”
“응, 그런데 나는 이 버섯이 더 맛있어.”
“그럼 이것 더 드세요.”
하며 몇 개 남은 버섯 중 한 개의 버섯을 잘라 놓는다.
나는 이 버섯 요리가 식탁에 올라오는 기본 음식인 줄 알고 먹었는데 계산할 때 메뉴를 보니 통새송이버섯으로 5,000원이란다, 한 개에 칼국수 한 그릇 값인 버섯을 나 혼자 먹은 셈이니 아, 네가 애비냐? 아내는 앉아만 있었는데.
작년에는 큰딸이 부산으로 여행 가서 자갈치시장에서 전복이랑 광어 우럭 회를 배가 터지도록 먹게 하더니 올해는 둘째 딸이 흑돼지고기로 내 배를 잔뜩 채워준다,
나는 아들들 먹이느라 먹지 못하던 혜정과 희연에게 추가 주문시켜주고, 혜정이 여행 떠나기 전에 내 지갑 속에 넣어준 돈을 꺼내어 계산대 위에 놓고 나왔다.
기분이 째지게 좋았다. 제주도의 하늘이 더없이 고와 보였다. 이 같은 딸을 낳아준 한없이 고마운 아내는 맛있게 먹지 못하여 아쉬웠지만…….
제주도 흑돼지 고길 위 속에 저장한 우리네는 제주도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하여 펜션으로 향하였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저스틴, 형준, 그리고 유진은 우리말이랑 영어를 뒤섞어가며 재잘거리고, 녀석들이 작사 작곡한 “바나나 바나나 바나 바나 바나나
올레 레오 레올레 올레 올레”를 목이 터져라 합창하며 갔다.
돌아오던 날 (6월 19일)
어젯밤에 한 번도 소변을 보지 않고 다섯 시에 기상하였다.
밤중에 한두 번은 일어났었는데 꿈도 꾸지 않고 꿀잠을 잤으니 잊지 못할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아내가 아침 바다를 또 보러 가자 하여 바닷가로 나갔다.
해안도로를 따라 좀 멀리 걸어 나가니 낮은 절벽 위에 돌멩이로 지은 ‘해녀의 집’이 바다를 바라보고 동그마니 앉아 있는데 머리가 허연 노인이 바싹 마른 손으로 낡은 어망을 챙기고 있다. 이 분이 젊어서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며 해삼이랑 멍게 소라를 잡아 올리던 분인가 보다. 참 쓸쓸해 보였다. 늙은 해녀와 바닷속을 누비던 얘길 나누고 싶었으나 팬션으로 돌아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침대 위 베개 밑에 이천 원을 놓고 자동차에 몸을 담았다.
내 평생 다시 못 올 팬션을 출발한 우리들을 태운 자동차는 어디론가 달린다. 우리가 가는 곳이 그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9.81park 란다.
작년에 개장하였다는 곳이니 어두운 내가 어찌 알 수 있으랴만 저스틴과, 유진 그리고 형준에게 어린 날의 경험을 넓혀주려는 아들 내외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
9.81park 정문 앞에서 하차한 우리들은 아직도 페인팅 냄새가 있는 특이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티켓팅을 하니 손목에 밴드를 채워준다. 아내와 나는 들어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본 건물 안에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곳은 중력가속도만으로 스릴 넘치는 레이싱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을 손짓하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9.81은 중력가속도 g=9.81m/s2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제법 무식하지 않은 교양인(?)처럼 어정어정 걸어 다니며 손자들을 기다렸다.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레이싱을 즐기고 나와서 하는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여러 개의 트랙에서 각각 난이도가 다른 코스를 마련하여 놓고 특수 제작한 차량에 올라타 스피드 경주를 하며 빠른 속도감을 만끽하는 것으로 짐작하였다.
넓은 공간에서는 손목에 채워준 밴드를 대고 들어가서 즐길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어 손자들은 제각기 좋아하는 장소에 들어가 농구, 야구, 축구, 말타기, 그리고 볼링 등을 하며 즐거워하였다. 유진과 저스틴의 농구공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났고 형준의 야구공을 치는 기능도 차츰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손자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미국 손자들이 외갓집에 와서 이곳이 매우 기억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저스틴이 아픈 추억을 발생시켰으니,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진 사건이다. 워낙 특별한 짓을 잘 일으키는 엉뚱 발랄한 저스틴이에게 딱 맞는 사고였다. 금쪽같은 우리 손자가 얼마나 아프겠냐며 제 할머니는 사뭇 속상해하였지만.
이곳이 차츰 알려지면 제주도에서 황금알을 낳을 곳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엮을 수 있다는 한담해변으로 향하였다.
한담해변 쪽으로 갈수록 도로는 비스듬히 높아지면서 카페, 식당.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도로 한쪽에 주차하고 차 밖으로 나오니 멀리 넓고 푸른 바다 위에 어선들이 군데군데 떠 있고 그 뒤편엔 선 하나로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짓는 수평선도 보인다, 해안 가까운 잔잔한 바다 위엔 카약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돌고 있다. 해변 쪽 해안 도로 위에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이 해변도로가 관광객을 유혹한다는 한담해변 도로란다.
우리들은 작은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 해변도로에 들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손자들은 재잘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즐거워한다. 혜정과 희연은 아들들이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부지런히 핸드폰에 담는다.
맑고 푸른 바다를 앞에 둔 이곳엔 제주도에서 유명한 카페가 많다고 한다. 해변도로를 산책한 관광객들이 피로도 풀 겸 정다운 한담(閑談)도 나누기에 적격인 카페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산책을 마친 우리들도 ‘지금 이 순간’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손자들이 먹을 빵과 쥬스, 우리가 마실 커피 값으로 십만 원 남짓한 돈을 카운터에 내밀고 2층으로 올라가는 혜정을 따라갔다. 넓은 방 안에는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바다 쪽을 향한 맑은 유리창 안으로 들어오는 6월의 따끈한 햇볕이 대여섯 개의 선인장 화분을 어루만지고 있다.
저스틴이 품위 있고 우아한 자세를 유지해야 할 고급 카페에서 쉬지 않고 촐랑댄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의 자존심을 내세워주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언젠가 그의 엄마에게 해주었다는 싸인 얘기가 떠올라서)
“저스틴! 너 훌륭한 사람이 되면 해주겠다는 싸인 좀 해다오.”
이에 저스틴이 제법 의젓한 자세로 내가 내민 백지에 Justin이라 필기체로 멋지게 써준다. 모두가 박술치며 좋아하니 쑥스러운 듯 씽긋이 웃으며 조용해진다.
딸 덕택으로 젊어서 들어와 보지도 못하던 고급 카페에서 제법 있어(?) 보이는듯한 폼으로 커필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곳이기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비행기 이륙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혜정이 친구들에게 선물하겠다는 ‘오메기떡’을 사러 동문시장으로 간다기에 여행을 다닐 때는 반드시 시장을 들여다보며 그 지방 특유의 풍습과 정서에 묻어봄이 좋다는 생각에서 혜정을 따라 시장에 들어가 보았으나 한 보따리의 선물과 떡을 사 들고 부랴부랴 자동차로 돌아가는 혜정과 희연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느라 애만 먹었다.
공항에서 보딩할 시각이 16:30. 식사를 즐길 충분한 시간이 있기에 비행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임금님 밥상’으로 향했다. 아들 내외가 즐겨 찾아보았다는 식당이기에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이전을 하였기에 좀 헤맸다.
점심때가 훨씬 지난 시각이어서인지 줄지어 자리한 식탁이 텅비어 있으니 어린이 셋을 동반한 우리 여덟 손님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분에 넘치는 친절한 써비스를 보이며 진열된 임금님 밥상은 그리 대단한 차림상은 아니었다. 예닐곱 개의 끈적하고 달착지근한 반찬에 미역국과 잡채 옥돔을 구워낸 것이 전부인 평범한 밥상이었으나 저스틴과 유진이 잡채와 특별한 반찬 몇 가지를 집어 먹어보고, 혜정이 생선 구운 것이 맛있다며 즐겨 먹어주어서 다행이었다.
수라상을 물리친 우리들은 공항으로 갔다. 환히 밝힌 공항 대합실에는 사람들이 혼자서 혹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환하게 웃으며 걸어 다닌다. 우리 손자들은 그런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며 재잘거리고, 혜정과 희연은 다정한 자매처럼 면세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유유히 걸어 다닌다. 참 보기 좋았다. 일만원 짜리 지폐를 핸드백 가득히 넣고 다니는 것이 소망이었던 아내는 당신이 낳은 딸이 내면에서 은근히 배어 나오는 귀티를 보이며 쇼핑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은지 환한 얼굴로 바라보고 앉아 있다.
이윽고 보딩이 시작되었다. 줄지어 늘어선 승객들 사이에 단아한 젊은 수녀가 내 나이가 훨씬 넘어 보이는 노모의 손을 붙잡고 서 있다. 엄마와 여행을 다녀오고 있는 모양이다. 참 애잔하고 대견스러워 보였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꾸만 그녀들을 바라본다.
드디어 승객들의 탑승이 끝나고 청주를 향하는 비행기는 활주로 위를 힘차게 달리다 이륙하여 제주도를 뒤로하고 비행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온하고 행복스럽고 평화로운 얼굴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아마 여행에서 돌아오는 승객들이 앉아 있는 비행기 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같은 정서 속에 앉아 있도록 배려한 혜정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들이 대전행 고속버스에 오르니 운전기사가
“버스 안에서 절대로 말을 하지 마시오,”
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여행 중에 있었던 얘기도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벙어리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의 시계가 10시를 보이고 있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형준네는 세종시로 갔다. 쥐띠 모녀는 침대 밑 방바닥에서, 유진과 저스틴은 침대 위 모기장 속에서, 나는 작은방에서 꿈나라에 들어갔다.
이렇게 3박 4일의 즐겁고 행복한 제주도 가족여행은 그 막을 내린다.
2019.7월에. 길 융 섭.
*여행 후기 : 본 기행문은 혜정의 친정 가족들을 향한 깊은 애정에 대한 고마움을 남기기 위한 아빠의 가슴을 털어 보인 것으로 내 사후 나를 기억하는 작은 흔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좋은 기행문 보내주어 고마워
여행을 다니면서 그저 이것 저것 지나치며 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오는 게 보통인데
이렇게 글로 남기면 다녀온 여행의 모습들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자세한 표현으로 여행의 모습을 담은 여행기가 융섭의 자상한 마음씨가 그대로 드러나 읽기가 편했어
이런 멋진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 크네
다른 친구들도 많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카페에 올렸는데 친구도 허락하겠지?
글솜씨가 학생때나 여전하구먼 학보에 실렸던 수필이 기억나네
좋은 글 보내주어 고마워
동문 친구들에게
여기에 실린 글은 길융섭님이 메일로 보내준 원문을 복사해서 올린 것이라 읽기가 불편하니
편하게 읽고 싶은 분은 아래 글에 가서 파일을 열면 원문이 한글본으로 나오니 그걸 읽으면 편합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이 많이 올라와서 이 란이 아리나님 혼자만 외롭게 꾸며가지 않고 누구나 작품을 올리는 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