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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심심이와 아리짱이 처음 만난 이야기
안녕하세요. 심심이입니다. 다들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흑흑. 무슨 글을 써야할까, 살짝 고민을 하다가. 아리짱을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한번 써볼까 합니다. 때는 2007년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세상물정 모르는 공대생이었는데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이렇게 졸업하면 내 인생은 뭐가 되나.. 라는 회의감이 가득했습니다. 전공이 잘 맞지도 않았고, 그래서인지 취업하기는 더더욱 싫었거든요. 그저 모든 걸 미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 핑계거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워킹 홀리데이'였습니다. 영어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이보다 더 그럴듯한 핑계가 있을까 싶어서 바로 비행기를 끊었죠. 당시에 워킹 홀리데이가 꽤 유행하기도 했었고요.
처음부터 호주로 가기엔 영어 실력이 부족했기에, 먼저 필리핀 어학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도착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리짱도 같은 학원으로 왔죠. ㅎㅎㅎ 그때는 저희가 이렇게 될지 꿈에도 몰랐죠. 지금 생각해도 인연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가까워진 것은 필리핀이 아닌, 호주였어요. 제가 몇주 먼저 도착했는데, 아리짱이 정착하는 과정을 도와주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사실, 돈도 없고 뭣도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둘이 손잡고 달링하버를 걷는 것만으로도 로맨틱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하라는 영어 공부는 안 하고. 하하하. 둘 다 호주에서 고생 많이 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얼마나 그립던지, 몇년 전에는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재원이와 함께 시드니로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연애할 때 갔던 장소들을 재원이가 함께 가보니 그 또한 색다르더라구요. 캥거루와 코알라를 만나는 건 덤이고요.
그 이후, 저희는 5년이 넘는 연애 끝에 2013년 10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결혼 할 당시만 하더라도 제 수입은 엄청나게 불안정한 상태였거든요. 첫 사회 생활을 영업으로 시작하고, 이후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결혼하는 해에는 프리랜서 생활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도 흔들림없이 곁을 지켜준 아리짱이 새삼 감사하네요. 결혼 이후, 2015년 1월이 우리 재원이가 태어났고, 지금은 3명이서 함께 한발씩 걸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미산 어린이집에 왜 오게 되었냐구요? 혼자 묻고 혼자 답합니다. 하하. 엉뚱한 전공 선택으로 인해, 대학 졸업 후 길을 많이 헤매다보니 교육과 학습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아지더라구요. 자유로운 교육 분위기를 동경해서 외국의 대안학교들 (독일 발도르프나 영국의 써머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고,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직접 운영도 했었구요. 국내에서도 일산 자유학교를 비롯한 몇몇 대안 학교에서 직접 수업을 해보고, 아이들도 만나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재원이도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아이들도 꽤 만났던 것 같아요. 결국, 방향이 자연스럽게 공동 육아와 대안 교육으로 흘러왔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근처로 이사를 오시는데, 저희는 성미산 가까이에 살았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복이네요. 연애할 때도 좋았지만, 재원이가 태어나서 함께했던 모든 순간은 더욱 소중했던 것 같아요. 아이도 우리도, 함께 성장하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1부는 여기서 마치고, 2부로 이어지겠습니다. 2부는 지금 쓰는 글은 아니고 재원이가 태어난 시점에 쓴 글인데, 가급적 생생하게 기억하려고 열심히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옮겨놓고 보니 꽤 기네요.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올립니다. 하하. 즐겁게 읽어주셔요!
2. 재원이 탄생 스토리 (2015년 1월 22일)
어제는 자연주의 출산 메디플라워에서 진행하는 자탄 1강을 들었다. 정환욱 원장님께서 직접 진행하는 강의였는데, 자연출산을 한달 앞두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강의였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88%의 경우 대부분 큰 문제 없이 아이를 낳는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가 생각하는 데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판단하는 것을 존중해 준다는 것. 그래서 예정일이라는 것도 의미없다는 것.강의가 끝나고 나오기 전에 정 원장님이 우리에게 오시더니 아이 잘 놓겠다고 말씀 하셨다. 아마 강의 내내 손 붙잡고 다정히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이 좋아보였으리라. 아내는 예정일 4주 남았다고 했고. 원장님은 그건 모르는 거라고, 2주 뒤가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게 내일이 될지는 원장님도 우리도 꿈에도 몰랐다. 다움이(재원이 태명)는 알고 있었을까.
그날 밤에는 태동이 상당했다. 아이가 꿈틀꿈틀하는 모습을 왠지 남기고 싶어서 영상을 찍었다. 다움이랑 태담도 하고, 편안하게 잠 들었다. 평상시와 전혀 다를바 없이 말이다. 아내도 별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 3시반, 아내가 급히 날 불렀다. '여보 나 양수 터진것 같아' 목소리는 두려움 때문인지 떨고 있었고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눈을 뜨고 본 첫장면은 평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내가 화장실 가는 길에 멈춰 서서 밑으로는 양수가 줄줄 흐르는 모습. 아내도 나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우린 자탄 리허설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급히 양수인지 확인부터 했다. 무색 무취, 양수가 틀림없다. 약간의 이슬도 보이고. 아내가 일단 대처법을 찾아보라고 했고, 매뉴얼에는 양수가 급히 터졌을 때는 고양이자세를 하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내가 전화를 하자, 가능한 빨리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일단 콜을 부르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날이 아이의 생일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아직 35주 6일을 지나고 있었고, 예정일은 4주가 남았던 터라.
메디플라워에 도착한 시간은 4시반이다. 와서 먼저 태동 검사부터 했다. 아이는 다행히 잘 뛰고 있다. 아내는 슬슬 약한 진통을 느끼고 있었다. 2분 단위로 파도가 오는 걸 봐선 본격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남들는 초기 진통이 하루 이틀 간다고도 하던데 우린 그런 과정도 거의 생략한 것 같다. 참 빨랐다. 그렇게 체크하고 잠시 대기하는 동안 우리 담당 조산사 선생님이 오셨다. 잘 주무시다가 이게 왠 봉변일까. 미안했다. 선생님이 상태를 보시더니 설명을 해 주셨다. 애매한 상황이라고. 만약 35주만 되었더라도 볼 것도 없이 종합병원으로 보냈을 거라고. 하지만 35주 6일. 참 애매하다고. 왜냐면 37주 이후부턴 아이가 나와도 별 상관이 없지만, 지금은 좀 판단하기 어렵다고. 물론 35주에도 잘 낳은 아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결정은 부모가 해야 된다고.
그러면서 다만 아이를 최우선으로 둔다면 옮기는 게 맞고, 그래도 조금 더 자연출산을 하고 싶고 상황을 보고 싶다면 여기서 출산하고 아이 상황을 봐서 옮기는 것도 있다고 했다. 문제는 아이의 폐 성숙은 가장 늦게 이루어지는데, 호흡을 하게 될지 그 부분이 가장 확신하기 어렵다고 한다.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아이는 인큐베이터로 가야 하니 말이다. 아내와 둘이 앉아서 꽤 고민했다. 우린 분명 자연출산을 원해서 공부도 했고, 일반 병원에서 메디플라워로 옮기기도 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우리 의사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법이다. 0.1%의 확률로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상황일 수 있으니. 그래서 결국 옮기기로 결정했다. 연계되어 있는 강남 세브란스 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갔다. 그 시간은 대략 5시 45분쯤. 아내의 진통은 아직까진 괜찮아 보였다.
아쉬운 결정일 수는 있으나, 그래도 메디플라워에서 무엇이 더 나은 방향일지 함께 고민해 보는 건 지금 돌아와보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그런 절차 없이 새벽에 정신없이 119를 불러서 근처 큰 대학병원 응급실로 떠밀려 갔다면 어땠을까? 아내도 아이도 얼마나 불안했을까?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 상황. 응급실에 도착하니 거의 6시. 잠깐 대기하고 필요한 검사를 했다. 아무래도 메디플라워보단 불편했지만 그래도 다들 친절해 대해 주셨다. 입원수속이 끝나고 아내가 분만실에 들어간건 거의 7시였나.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양수가 계속 조금씩 흘러나오는 상황이라. 정신을 번쩍 차려야 했다. 그래도 아내는 큰 병원이 주는 안정감 덕분인지 마음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7시 반부터 조금씩 진통이 강해졌다. 나중을 생각하면 아직은 미약한 수준. 분만실에는 이미 어제부터 와서 진통을 하는 산모들니 2명 더 있었다. 그들의 남편들도 내 마음과 같겠지. 다들 초췌해 보였다. 그 때쯤 양쪽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아내의 철저한 준비성 덕택에 (상황을 미리 준비하는 아내가 참 고맙다. 나라면 절대 이때부터 가방을 안 쌌을 텐데.) 출산 가방 준비는 끝나있었고 몇 가지 필요한 물품을 말씀드리면서 장모님께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계속 진통 중. 내 기억으로 8시부터인가.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 특히 9시부턴 (다움이가 아내의 골반을 누르면서 들어오는 기간이라 추측했던 시간) 진통이 정말 강해졌다. 아내가 입술을 파르르 떨려가며 주기적으로 고통스러워 하기 시작했고, 나는 옆에서 손을 꼭 잡고 같이 호흡하고 독려했다.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깊게 들이쉬고 후후 하자' 이런 말을 계속 반복했던거 같다. 다행히 의사선생님은 진전이 생각보다 빠르다고 하셨다.
9시 좀 넘어가자 의사 선생님이 '초산 맞느냐'고 물으시면서 출산이 정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셨다. 잘 하면 한 시간 안으로 아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을 하셨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보통 초산은 9-12시간은 걸린다고 들었는데 한 시간이라니! 기뻤지만 쉽게 믿기진 않았다. 9시 반을 넘어서자 자궁의 다 열렸다. 아이는 더 내려왔고, 아내는 거의 죽을 힘을 다해서 힘을 내야 했었다. 호흡도 어려워지고, 힘주는 법도 잘 몰라서 힘들어했다. 처음 겪는 고통에 정말 힘들었으리라. 옆에서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9시 45분에 조금씩 아이의 나오는 것 같았다. 곧 아내는 분만장으로 옮겨졌다. 나는 함께할 수 없었다. 같이 손을 잡아주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들어가니 오히려 소리는 더 줄어들었다. 나중에 아내의 말을 들어보면 조금씩 힘주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의사, 간호사 분들이 옆에서 잘 한다고 지지해주고, 힘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10시 10분이 넘어가자 조금씩 느낌이 왔다. 거의 다 왔구나! 이제 몇번만 더 힘주면 나오겠구나! 떨렸다. 나오더라도 아이의 건강은 보장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카톡에도 페북에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들 아내와 다움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말이다.
10시 17-18분이었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나왔구나. 다행히 숨을 쉬는 구나. 첫 호흡이 얼마나 차가웠을까. 처음 보는 세상이 얼마나 낯설까. 걱정과 안도가 겹쳐서 힘들었다. 간호사가 나와서 17분에 태어났고, 사내아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건강하다고 했다. 우리 다움이가 드디어 나왔구나. 실감이 났다. 얼른 보고싶었다. 잠시 후 조그만 아이가 커다란 플라스틱 통 안 담겨서 옮겨졌다. 저 녀석이 내 아이다. 너무나 조그마해서 안타까운 우리 다움이. (2.3kg로 태어났다. ㅠ) 사진 찍어도 된다고 하셨다. 몇 장을 찍고 신생아실까지 따라갔다. 아이의 입원수속을 마치고, 몇 가지 안내를 들으니 아직 괜찮아 보이지만 저채중 아기라서 일주일은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와 일주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웠지만 일단 병원의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알겠다고 했다.
이후, 아내를 찾아갔다. 진통 2-3시간 만에 아이를 낳은, 출산을 위해 태어난 우리 아내다. 의사나 간호사들도 다들 와서 대단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했다. 예전 메디플라워 정원장님이 아내를 보더니 출산 잘 할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아내와 얘기를 나누고,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 빨리 낳아서 회복은 빠를 듯 하다. 아내의 표정도 생각보다 좋아보였다. 이후 아내는 일반 병실로 옮겼다. 점심을 먹고, 목이 마른지 연신 물을 먹었다. 옆에서 장모님과 내가 머무르면서 도왔다. 큰일 치뤘어. 정말 고생 많았어. 여보. 아내가 역전의 용사처럼 보였다. 스스로 몸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본인도 이렇게 잘 나을 수 있을거라곤 생각치 못했을 거다. 사람의 가능성은 결코 스스로는 알 수 없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가 아는 우리보다 더 크다. 아내 얼굴에도 뿌듯함이 보였다. 이것이 자연분만이 가져다 주는 성취감이 아닐까. 아빠와 엄마와 아이가 큰 전쟁를 치룬 후 전우애를 느끼는 것. 그 감정과 다를 바 없었다.
2시가 되어서 나도 밥을 먹었다. 어젯 밤 새벽부터 지금까지 정신 없이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거의 먹지 못했다. 장모님과 간단히 식사를 하고 올라와서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고 대화를 하니 긴장감이 조금씩 풀렸다. 그간의 무용담이 대해서 나누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이 사진을 보내고, 다들 격려해주는, 그런 좋은 시간이었다. 5시가 되어서, 나는 신생아실로 향했다. 면담시간은 하루 2번, 11시와 오후 5시다. 출생 당시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서 꽤 떨렸다. 내려가서 본 아기는 유리벽 뒤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린 우리 아가야다. 며칠 전만 해도 아내 뱃속에서 장난치고 놀던 우리 아가야. 너무너무 이뻤다. 다들 자기 자식은 누구나 이쁘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명백한 자기객관화가 되는 사람이다. 요 아이는 객관적으로 너무너무 이뻤다. ㅋㅋ 사실 부모로서 자기객관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내에게 콩깍지가 씌어버렸듯, 갓 태어난 우리 아가에게도 씌어버렸다. 그것도 너무 빨리.
아기는 다행히 혈색도 좋고 잘 자고 있었다. 너무 조그마해서 걱정했는데 내 생각보다도 의연하고 침착해서 놀랐다. 마치 나에게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내 옆에는 다른 예비 아빠도 아기를 보러 왔는데 거기도 비슷한 분위기 였다. 생명의 탄생은 축복받고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다움이도 많은 이들에게 축복받도 있단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무사히 확인 하고 아내와 담소를 나눴다. 아내도 하루 빨리 아이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내일이면 만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저녁에는 장인어른과 이모님, 이모부 그리고 처제도 잠깐 들려주셨다. 우리 필요한 짐들도 싸가지고 와 주셨다. 참 감사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나로썬 군대에 입대하는 날 이후로 가장 긴 하루였고, 인생이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배운, 하지만 그 상황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하면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지구엔 70억 인구가 있다. 그리고 각자 70억의 이야기들로 아이들은 탄생한다. 꿈에도 예상치 몰랐던 경험이라 아직도 해롱해롱하고 있지만 다들 축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참고로 태명 다움이는 자기답게 자라란 의미로 자기다움에서 따 왔다. 그렇게 다움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태어났다. 반갑다. 앞으로 재미있게 놀아보자꾸나. 사랑해.
첫댓글 ^^ 코로나 속에 단비같은 귀기네요~
재원이의 탄생스토리 생생하네요~ 3부도 있나요???
ㅎㅎㅎ 3부는 없습니당~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여!!
꺅! 지금도 너무 이뿐 재원이는 객관적으로 태어나자마자도 심하게 이쁘네요^^ 읽으며..우리집이랑 대충 같은 세대를 살았나싶은..ㅎㅎ 우린 12년에만나 13년에 결혼 15년에 자출로 유찬이가 나왔는데 비슷한듯하나 심심이랑 아리짱 사이엔 그 전에 더 딴딴한 역사가 있었네요. 그리고 한달전부터 출산가방?을 다 싸놓는 아리짱이 있고요...^^ㅋ
오 정말 역사가 비슷하네여!! 자출까지! ㅋㅋㅋ
귀를 기울이면 잘 읽었어요. 다음 주자 부탁을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 그러나 부탁드릴때 우려했던 것 처럼 제 글과 너무 비교된다는.ㅋㅋ^^;; 긴박했던 순간들이 잘 느껴지네요. 재원이의 탄생 순간!
ㅎㅎㅎ 아이고. 감사라뇨~ 죄송해여~ 뒤의 글은 예전에 써놓은 글이라 ㅎㅎㅎ
조그만 신생아 재원이 넘 귀엽네요^^
얼마전 또치의 귀기 러브레터급으로 출산기록이 상세하시군요!
저도 자연출산 준비했어서 읽는내내 공감했어요ㅎㅎ 아빠와 같이 준비하는것들이 많아 의지도되고, 정말 전우애?도 생기고 좋더라구요~
ㅎㅎㅎ 감사합니닷. 그땐 엄청 자세하게 남겨놓고 싶더라구요~ 한번 뿐인 경험이라 그랬나봐요~
처음 등원하는 날, 재원이가 연이를 꼭 안아주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는 재원이를 이렇게 만나게 되었던 거군요!
이제 여유가 생겨 읽게됐어요. 재원이 신생아 사진보니 객관적으로 진짜 예쁘네요. ^^ 심심이 아리짱 그리고 재원이 정말 알콩달콩 예쁘게 사는거 같아요. 아 연애 이야기, 출산일 등 너무 생생해~ 아리짱 정말 대단하다~
"때는 2007년 여름이었습니다"부터 자세를 바로하고 초집중했습니다. 러브스토리가 출산기보다 좀 덜 상세해서 아쉽구려...누가 어떻게 스치듯 손을 잡게 되고~ 이런 건 살짝 나와줘야 2부 재원이 탄생기와 '객관적으로다가' 형평성이 맞는 것 아냠? 뭐든 꽂히면 탐구해 들어가는 심심이여서 그런지 공동육아 까지의 객관적 기본기가 탄탄한 게 느껴지네요. 그 탄탄함 배우기 위해 더 만나야겄네.
무엇보다 그렇습니다. '객관적으로 이쁜' 재원이 맞습니다. 맞고요. ㅎㅎ 3부가 없다고 그렇게 확답하기에는 이른 것 같은데~~ 과연 3부는 없을 것인가! 미완의 2부작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