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생각
인간은 다른 모든 식물이나 동물과 달라 자기 자신을 알고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면서 인간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참다움과 착함과 아름다움(진, 선, 미)을 추구하고 결국 삶의 최고 목적으로서 행복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일까? 오래 전부터 인간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다.
"인간은 행동할 줄 아는 존재이다."
"인간은 의심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식일 줄 아는 존재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도구를 제작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존재이다."
이 이외에도 인간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말 들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어떤 말보다 인간의 특징을 가장 잘 지적해 주는 말은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라는 정의일 것이다.
인간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성적일 것이므로 우리들은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파괴하고 진리를 밝히며 선과 악의 구분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드러낼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충동과 감정도 가지고 있고 외부 환경에 쉽사리 좌우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칫하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이성을 망각하고 비이성적이고도 충동적이기 쉬우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맹목적일 수 있기도 하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지나치게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으로 기운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쟁과 기근이 있었으며 미신과 독단이 있었고 불의와 불평등이 있었다. 그러한 상황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네로황제,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의 독재자가 마치 절대 인간인 양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군림했던 것은 인간의 이성이 충동 때문에 억압당하고 망각되었던 사실을 입증해 준다. 어디 그뿐이랴? 수많은 후진국의 일반적인 양상으로서 군사정권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것 역시 이성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많은 사람이 내면에 숨어 있는 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단지 이기적인 자기방어의 본능에 의해 움직일 때, 미신의 노예가 되어 창조적인 자아를 망각하는 것 역시 비이성적인 현상이다.
인간이 비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비합리적이며 비논리적인 혼란과 무질서이다.
우리는 자칫하면 이성적이라는 말과 수학적이라는 말을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학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형식적인 면이 매우 강하다. 그러므로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한 사람은 여유가 없고 좁은 형식에만 치우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이성적이라는 말은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조화롭게 통찰하는 의미를 가진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로마시를 불태우면서 기쁨에 넘쳐 눈물단지에 기쁨의 눈물을 담으려 하였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 신하들로 하여금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하였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욕망 충족이 행복의 척도라고 보고 공동의 생산과 분배에 의하여 계급 차별 없는 공산주의 사회라는 이상사회를 세우려고 하였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일본 역시 대 일본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지금도 곳곳의 후진국에서는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에 젖은 군사 독재자들이 백성을 가난과 공포의 늪에서 허덕이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고와 행동은 모두 비이성적이자 비합리적이다.
만일 우리들의 개별적인 감정이나 충동을 확고한 신념으로 삼아 생각하고 행동할 경우, 우리는 삶과 사회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을 전체로 착각함으로써 독단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비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마치 정당한 가치를 가진 양 행해지고 있다. 예컨대 나이라든가 돈이라든가 권력 등을 살펴보면 비합리적인 생각이 얼마나 우리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질서를 존중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정의를 손수 실천하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의 자리에 있어야 솔선수범하여 옳은 사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 사람아, 나이도 젊은 사람의 주장이 왜 그렇게 제멋대로인가? 이 사회는 전통이 있는 것이야. 제아무리 정의로운 사람이라도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이 높은 자리에서 일하기는 아직 빠르네. 아무래도 나이 먹은 사람이 여러 가지 인생과 사회 경험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이 지도층에 있어야 하네."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이런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놈," "
어른을 몰라보는 친구," "젖비린내나는 아이 같은 놈"…. 이렇듯 수없이 많은 말들 역시 합리적인 생각을 담고 있지 못하다.
한 살이라도 더 많으면 무조건 존경받고 대접받으려는 풍토는 사실 한심한 노릇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어른이 존경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농경사회는 지극히 단순한 사회였다. 대가족제도에서 어른은 당연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가정일과 농사일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과거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나이 먹었다고 컴퓨터에 관해서 더 많이 아는가? 나이 먹었다고 젊은 사람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가? 나이 먹었다고 해서 회사를 더 잘 경영하는가? 별다른 능력이 없이 나이만 먹으면 늙고 힘없기 마련이다. 나이만 먹은 사람들은 늙고 힘이 없어서 대접받기 위해서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강요하는 것일까? "나잇값도 못 한다"는 말이 있다. 나이 먹을수록 능력과 노력이 쌓여 간다면, 그러한 사람은 단순히 나이 때문만이 아니라 성숙한 한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것이다.
돈이나 권력도 나이와 크게 다를 것 없다. 단지 돈이나 권력만 가지고 존경받으려고 하고 또 그것들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합리적인 생각을 결여한 사람들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남녀문제는 과연 어떠한가? 남녀문제에 관해서도 우리 대부분은 확실한 근거 없이 유교적 전통에 매달린 채 남존여비 사상에 물들어 있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니 집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든가, 남자는 신체적으로 남자보다 연약하니까 여자는 특정한 직업에만 종사해야 하거나 아니면 남자와 함께 근무할 경우 남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사고는 모두 비합리적인 사고임이 분명하다.
선진국에서는 공장이나 학교 또는 정치계나 경제계에서 남자보다 훨씬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든지 있다.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질서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의와 평등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의와 평등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현재 널리 퍼져 이는 부정·부패의 문제는 합리적 사고가 결여 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나와 내 핏줄만의 편안함을 생각하는 사고와 행동은 사회를 썩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어떤 특정한 나라가 오직 자기 민족만을 생각하여 다른 나라에 대하여 테러를 자행하고 심지어는 원자탄이나 수소탄마저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각오할 만한 것이 될 것이다. 내 자식만 잘되라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대학에 부정입학시키려는 부모, 그러한 행동에 가담하는 교육자들과 관리들 역시 합리적 사고와 행동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비합리적 사고와 행동은 인간의 가치를 무효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퇴보시킨다.
합리적 사고는 이성적 사고이자 논리적 사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질서 있는 생각이다. 합리적 사고를 결여한다면 우리는 공상과 착각의 홍수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공상과 착각은 비록 순간적으로는 우리에게 짜릿한 쾌감을 갖다줄지 몰라도 그것이 지나면 우리는 환멸과 절망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본능적인 충동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며 아무런 문화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