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기본연구 결국 폐지 수순...
R&D 생태계의 근간 무너져. 예산 전면 복원해야
- 우리나라 기초연구의 뿌리이자 과학기술연구자 양성의 근간이 되는 생애기본연구 폐지 수순, 연구 인력의 다양성 확보와 세대교체 어렵게 만들어
- 정부는 과학기술연구자 양성 및 자율적‧창의적 연구 지속할 수 있도록 기초과학기술의 디딤돌 튼튼히 해야
윤석열 정부에서 ‘나눠먹기식 R&D’로 지목되며 전면 삭감되었던 생애기본연구 예산이 정부가 R&D 예산 복원을 넘어 사상 최대 R&D 예산을 편성했다고 자화자찬한 2025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전혀 복원되지 않고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실이 과기정통부에서 국회로 제출한 2025년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그동안 우리나라 기초연구의 뿌리이자 과학기술자 양성의 근간이 되어 온 생애기본연구 예산이 ‘나눠먹기식 R&D’로 지목되며 2024년 예산에서 전면 삭감된 후, 정부가 사상 최대 R&D 예산을 편성했다고 자화자찬한 2025년 예산안에서도 복원되지 않고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기정통부는 생애기본연구 대신 중견 연구의 창의연구형, 우수신진연구의 숫자를 늘렸다고 해명했으나, 개인기초연구 전체적으로 보면 연구비 단가만 대폭 늘렸을 뿐 과제 수는 오히려 대폭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애기본연구는 개인기초연구(R&D) 예산 중 가장 기본이자 과학기술연구자 양성의 근간이 되는 연구이다. 경력 초기 단계의 연구자들에게는 독립적인 연구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여 연구 관리 및 예산 운용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좋은 훈련의 기회가 된다. 특히, 지방대학 교원의 주요 연구비 재원으로 대학원생 인건비, 연구 재료비 등으로 활용되어 중견‧중소기업으로 진출하는 연구인력을 양성하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이러한 생애기본연구 예산 삭감은 대형 국책과제를 수주 또는 참여하기 어려운 지방, 중소대학의 연구자들과 신진 연구자들에게 치명적이라는 현장 연구자들의 지적이다.
기초과학 분야 학회장은“대형 국책과제들은 소위 상위권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학교들이 대부분 가져간다”라고 언급하며“개인기초 연구들은 지방 중소 학교들에 많이 혜택을 받고 있기에 연구예산 삭감은 이들의 싹을 말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전했다.
또한 생애기본연구에 참여한 신진교수는 “기본연구는 신진에서 떨어진분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신진이 아닌 중간단계 연구자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가뭄의 단비 같은 연구 예산이다.”라고 강조하며 생애기본연구 예산 삭감은 우리나라 연구 생태계의 근간은 흔드는 시도라고 밝혔다.
이해민 의원은 “생애 기본연구 예산은 우리나라 연구 생태계의 근간을 든든하게 만드는 시드머니이자 R&D 인력을 든든하게 양성하는 중요한 예산”이라며 “이런 기본적이고 토대를 만드는 연구를 대폭 줄여 생태계를 악화시켜놓고 국가 아젠다 연구, 전략 기술, 게임 체인저 기술 개발 연구에 대폭 투자를 늘리는 것은 연구 생태계의 피라미드를 역피라미드 형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의원은“정부는 신진연구자뿐만 아니라, 중간단계 연구자들도 연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연구 예산을 복구하고, 우리나라 기초과학기술 도약의 디딤돌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 첨부: 1. 3년간 개인기초연구(R&D) 과제수 변화(’23~’25)
2. 개인기초연구 축소 및 생애기본연구 폐지 관련 현장 연구자 의견
<3년간 개인기초연구(R&D) 과제수 변화(’23~’25)>
<개인기초연구 축소 및 생애기본연구 폐지 관련 현장 연구자 의견>
구분
내용
기초과학분야 학회장
개인기초연구는 연구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생활비로 기본적으로 과제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과기정통부는 개인기초연구 예산을 많이 늘렸다고 이야기하지만, 전반적으로 국가 아젠다 부분으로 한정하여 늘렸습니다. 그렇다면 반도체, 양자, AI 이런쪽으로만 과제가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국가 아젠다 부분은 국책연구, 대형과제로 많은 예산이 지원되고 있어 기회가 많은데 개인기초연구까지 국가 아젠다 연구로 주제를 한정하여 지원하는 것은 다른 연구자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 국책과제들은 소위 상위권,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큰 학교들이 대부분 가져갑니다. 개인기초연구들은 지방, 중소학교들에서 많이 수혜를 받고 있으며, 논문 생산성도 매우 좋은 편입니다. 이들은 R&D 연구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는 연구실이고 인력들입니다. 개인기초연구, 특히 생애기본연구를 폐지하는 것은 이들의 싹을 말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굉장히 우려스럽습니다.
무엇보다, 개인기초연구는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고 단순하고 큼직큼직하게 가면 좋겠습니다.
과제당 연구비를 늘리는 것보다 연구 과제수를 줄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중견 교수
그 연구비들은 당연히 대학원생 인건비, 재료비, 연구활동비 등으로 활용되었고 대학원생들의 주 진출 분야는 중견, 중소기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아마 지방대의 다른 이공계 랩들도 상황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기본연구, 지역대학우수과학지지원사업 등(연 5천만원 정도)의 예산은 수도권 대학 뿐 아니라 특히 지방대학 교원의 주 연구비를 구성해 왔습니다.
이런 소액 연구과제의 의미라 하면
(1) 이공계 대학 교원(그리고 아마도 국책연구기관의 신임 연구원들)의 랩을 운영하는 필수적 요소들(대학원생 인건비, 재료비, 연구활동비 등)을 구성함으로써 대학에서(특히 지방대에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풀뿌리 연구의 핵심 토대가 되는 것이죠.
(2) 신임 교원의 입장에서는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의 경쟁률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기본연구 등이 일종의 시드 머니를 이룸으로서 대학이나 연구소 부임 초기 랩을 셋팅할 수 있는 소중한 재원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면, 제가 올 초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심사를 했는데, 11명의 지원자의 연구 업적은 저 같은 중견연구자의 업적을 훨씬 뛰어 넘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그 중 누구도 현재 연구비를 운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신진연구자 사업의 경쟁률을 고려하면 아마 그 중 1-2명만 연구비를 지원받았을 것이고 나머지 분들은 아마 랩 셋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국내 대학 중 신임 교원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시드 머니를 제공하는 대학은 극소수입니다.) 이 때 기본연구가 충분히 있다면 신진연구자들도 랩을 셋팅할 어느 정도의 기본 재원은 마련되는 것입니다.
(3) 수도권 대학의 대학원생의 상당 비중, 그리고 지방대 대학원생들의 다수는 국내 중견, 중소 기업에 취직합니다. 이들의 연구력이 중견-중소 기업을 뒷받침하는 소중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방대를 포함한 대학의 랩들이 운영을 중지하면 대학원생 배출인력이 감소할 것이고 이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의 연구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것입니다.
- 저는 현재 한 공동과제의 연구과제에 참여하고 있어 내년까지는 랩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수주에 실패했고 경쟁률이 워낙 높아진 상황이라 (기본연구 지원자들이 모두 중견연구로 몰린 상황이라서요) 내년에도 사업 수주를 낙관하지 못합니다. 정년까지 9년이 남은 상황인데, 내년 말 현 과제가 끝나고 연구비 수주에 실패하면 아마 랩의 운영을 중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료 교원 중에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 5천만원 정도의 기본 연구가 대폭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 정도로 아마 설명될 것 같습니다.
신진 교수
(신진 교수 A) 정부에서 내놓은 예산안을 믿을 수 없다는 게 가장 마음이 쓰립니다. 예산이 갑자기 깎여 출연연에 있는 연구자도 개인연구 수주에 힘쓰게 하질 않나, 우수신진 금액만 급격하게 높여 중견 연구비에 지원할 연구자까지 우수신진에 지원하게 해 2배 이상의 인원이 경쟁에 박차를 가하질 않나, 정작 우수신진도 759개를 선정한다고 했다가 예산 문제로 644개를 선정하질 않나, 우수신진에서 떨어진 4천여 명의 연구자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연구와 같은 패자부활전을 없애질 않나... 아무것도 없는 연구실에 앉아 연구비만 줄창 쓰다가도,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떨어지니 불안감과 패배감만 듭니다. 그나마 교수는 월급이라도 나오지, 아무것도 없는 연구실 믿고 들어온 학생들은 대체 무슨 죄일까 싶습니다. 연구비 떨어지거나 또 갑작스레 깎이면 전부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 학생들 보는 것도 고역입니다. 그나마 학생들이라면 다른 기관 연구자들에게 구걸이라도 해서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지만, 저를 믿고 같이 연구하기로 한 연구실 박사후연구원은 소속 때문에 그렇게도 할 수 없습니다. 모쪼록 박사과정부터 시작해 박사후연구원, 그리고 신진연구자에서 중견, 리더급 연구자로 이어지는 트랙이 안정적으로 정립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제도를 운영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진교수 B) 기본연구는 신진에서 떨어진 분들 뿐 아니라, 더이상 신진이 아닌 그렇다고 중견으로 도약하기 어려운 중간단계 연구자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가뭄에 단비같은 연구예산입니다. 액수가 매우 작지만 그 연구비라도 있으면 연구 유지는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저도 기본연구를 계속 유지하여 다른 부처과제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발판과 디딤돌 역할을 해준 과제들인데, 대폭 축소라니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