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씨가 또 구설에 올랐다.
정치인의 말실수는 정치인의 정체성, 품성, 인간됨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반 조중동 등 소위 보수 언론들의 '말솜씨'에 대한 비판은 바로 자사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했다. '과격하다''성급하다' 는 등의 비판의 저변에는 권위주의 청산이나 권력 해체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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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0년 5월 25일자 사설>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건 전두환을 향한 말이었나? 국민을 향한 계도였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근 2년 넘게 건강악화설을 제기하며 심지어는 '오늘 내일 대통령이 죽는다면'이라는 끔찍한 시나리오도 보도했던 것이 바로 한국언론이다. 자신들이 골라잡은 고위 공무원 직군들의 출신지역별 분포를 뽑아 70%가 넘는 요직을 호남출신이 장악했다고 보도했지만 얼마 안가 호남이 26%, 영남이 28%인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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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0년 5월 28일자 사설> 무엇이 '악몽'인가.전두환의 양민학살인가 아니면 광주시민의 항쟁인가?
노무현의 말실수와 관련한 것은 주로 그가 대학졸업자가 아니라는 학력 콤플렉스와 그가 인문계가 아닌 상고출신이라는점, 부산 출신이면서도 지역감정 해소를 주장해왔다는 점, ys로 정치를 시작했으면서도 ys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 영남출신이면서도 보수적 색깔을 띄지 않았다는 점, 정치인이면서도 언론(조선일보)과 맞붙어 이긴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점 등은 늘상 공격의 이유가 돼 왔다.
신정아의 학력 위조사태로 촉발된 한국사회의 학력콤플렉스는 사실 문화예술계만의 문제도 아니고, 교수나 지식인사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바로 언론의 문제다. 학력콤플렉스를 부추기는 그 저변에는 평준화반대를 통한 경쟁사회나 고교입시부활, 사립학교법 반대 등 이 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비용을 추가시키고 이를 통해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이해와 관련돼 있다.
이런 언론사에 재직중인 기자들의 출신학교 비율이 sky가 대부분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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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0년 5월23일자>
이명박씨의 일련의 발언 파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 서울시민증을 수여하는 자리에 자신의 사위와 아들을 불러내 기념촬영을 한 게 구설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이명박씨는 히딩크에게 자신의 아들이 입고 있는 멘체스터 유나이티즈 붉은 상의를 가리켜 "우리 아들도 붉은 악마"라고 소개한 일화가 네티즌들 사이에 큰 조롱거리가 된 바 있다. 아울러 이씨의 아들이 입은 옷과 샌들 등 도합 100만원 가까이 나가는 사치품이라는 주장도 있어 한동안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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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80년 5월 25일자>
- 마치 무협소설을 써놓은 듯 하다. 무정부상태라던 조선일보 보도와 달리 광주의 치안상태는 은행한 곳 털리지 않은 만큼 무척 양호했다.-철저하게 북한과의 연계설을 강조하던 신군부 쿠데타 정권의 조작된 발표를 받아쓰며 광주항쟁의 대북연계설을 유포시켰다.
여러 구설들을 제외하고 5.18에 대해서 이명박씨의 논란은 이번으로 삼진아웃이다. 하긴 삼진아웃도 아니다. 네번째다. 2005년 서울역 광장에 '경축 5.18광주민주화운동' 탑을 세운 것을 포함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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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 2007년 5월 21일 이명박씨가 고 홍남순 변호사 묘비 참배시 발을 올려놓은 장면>
'5.18 사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등 80년 당시 주요 신문들이 일제히 뽑았던 제목이다. 당시 이라크의 후세인처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세력이 공식적으로 정의한 사건명이기도 하다. 당시 언론중 제 기억으로 경향과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언론들은 5.18 왜곡보도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면 '무정부 광주''무장한 폭도가 거리를 어슬렁 거린다''간첩 좌익세력이 배후로 일으킨 폭동' 등의 용어를 써가면서 철저하게 신군부의 발표를 받아베꼈고 광주항쟁을 '북한 간첩과 특수부대가 침투하여 일으킨 좌경친북폭동'으로 규정하는데 일조하였다.
'5.18사태'는 이후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권이 '5.18기념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으로 역사적 평가가 정의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5월 유관단체들은 '5.18항쟁'으로 이름을 원했지만 정부와 관료들은 '항쟁'이 될 경우 정권의 도덕성(3당 야합)과 정체성에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수많은 수구기득권(당시 정권은 5공세력이 주축이 된 민정당이 포함된 민자당)이었고 야당의 일부 정치인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결국 시민들의 피땀어린 '항쟁'이 그저 새마을 운동처럼 켐페인이나 벌이는 '민주화운동'처럼 그 성격과 규모, 역사적 평가가 축소됐다.
아직도 이같은이데올로기적 규정은 정부는 매년 '민주화운동'으로, 시민사회는 '5.18항쟁'으로 명칭을 부르는 이원화된 현상을 보여준다.
위에 설명해 놓은 것처럼 이명박씨의 '5.18사태'는 그가 역사인식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5.18사태'가 '5.18민주화운동'으로 바뀌고 기념일로 된지 10년이 넘었다는 점. '5.18사태'는 소위 5.18항쟁이 일부극렬좌경세력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신군부의 주장이라는 점을 살펴본다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이명박씨는 이미 2005년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 안에 유영봉안소(5.18과 관련 사망한 영령들의 영정사진을 모셔놓은 곳)를 들렀다가 일행의 이야기를 듣고 '파안대소(입을 벌리고 고개를 젖혀 크게 웃음)'하는 모습이 한 지역 언론사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혀 수난을 당한 바 있다. 불과 얼마전에는 5.18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묘지 앞에 있는 상석에 발을 올려놓아 또한번 논란을 지핀 바 있다. 상석이란 묘비에 제를 올릴 때 음식 등을 올려놓는 '제삿상'과 같은 것으로 이씨의 이날 돌출 행동은 '파안대소'에 이어 이씨가 '5.18'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하겠다.
이번에 이명박씨는 '5.18사태'라고 발언한 것이 또한번 논란이 됐다. 세번째다.
'사태'라는 건 사전적의미로 '일어난 일'로 해석되지면 사회학적 의미로는 '불현듯 일어난 우발적 상황'으로 요약된다.
세번이면 삼진아웃이다. 5.18에 대한 이명박씨의 연이은 돌출행동과 발언은 5.18에 대한 그의 역사적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행동이라 할 것이며 군사독재정권의 망령이 떠오르는 듯 때아닌 '독재향수'논란까지 지피고 있다.
살인마라 일컫는 전두환에 대한 팬클럽이 생겨나고 전두환을 기념하는 공원까지 생겨나는 때에 이명박씨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5.18 폄하'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자국민을 학살하고 나서 학살의 원흉들이 단 한번이라도 우리 국가의 존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던 적이 있는가?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는 반인륜범죄가 오늘날 어떻게 반복되는지 우리는 이웃 일본의 '일제하 강제동원 성노예여성'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36년간 강제 점령하면서 온갖 침탈과 약탈로 우리 문화재를 훔쳐갔고 친일 사학자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훼손하는데 앞장섰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젊은이들을 강제징용으로 끌고가 아직까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 나머지 '우토로' 동포들의 한맺힌 투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의 잔인한 전쟁중 집단 성폭행 만행에 대해 미국 의회에서까지 결의안이 채택됐지만 일본은 이에 반성하거나 사과 태도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들은 왜 그런가? 단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차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과는 너무 사뭇다르다.
서구 유럽에서는 2차대전의 전범을 사죄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실시해왔으며, 심지어 또다른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처벌법령까지 만들어놓았다 한다.
우리나라도 친일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처벌과 단죄는 물론, 군사쿠데타 세력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 있었더라면 과연 오늘날 전두환 팬클럽이 가당키나 하며 전두환 기념공원이 왠말이겠는가. 또한 오늘날 역사왜곡논란이 무엇이며 친일파 자손들의 조상땅찾기가 가당키나 하겠으며 친일파들의 자손들은 땅을 찾아 재산을 불리고 독립훈장을 강탈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자손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하는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왜 반복되겠는가?
아울러 5.18학살 원흉이 버젓이 살아 29만원이 전재산이라며 돌아다니고 공짜 항공권으로 외유를 떠나며 신호등 조작으로 골프를 치러다니고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그의 집을 경호하겠는가 말이다.
서구 유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후세인도 1970년대 말 미국의 지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장기집권으로 결국 그 종말을 미국에 의하여 맞게 됐다. 그리고 그는 쿠르드족 학살에 대한 책임으로 사형당했다. 전두환도 그와 같은데 왜 29만원에 우리 국가의 정통성을 포기하나?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비일비재하다.
항쟁의 당사자들은 성폭행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병원 요양중이며 많은 관련자들이 고문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등학교 3학년에서 대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아직 채 어린 청소년들이 대부분 희생됐으며 철모르는 초등학생도 쿠데타군의 총에 사라졌다.
쿠데타군의 희생을 당시 광주시민에게 떠넘기는 인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어찌 광주시민 탓인가? 당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던 사건은 바로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보병학교 군인들과 쿠데타군과의 오인총격전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대부분 오인사격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철모르는 젊은 청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했건만 정권 야욕에 불타는 쿠데타 군수뇌부는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그 청년들의 목숨을 자신의 부모형제인 국민들을 향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그들이 책임져야 함이 옳다. 살인교사범들이다.
광주에 희생된 그 피는 광주시민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쿠데타 군에 끌려와 진압에 임해야 했던 군인들도 포함돼 있다. 마치 군인들의 죽음에 학살의 주범들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양 물타기 성 조작으로 여론을 흐리고 있다.
사안이 이럴진대 제1야당의 대선예비후보라는 사람이 감히 '5.18사태'라며 '파안대소'하고 '상석에 발을 올려놓는' 몰상식한 행동을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을 조작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일대에서 20만명에 가까운 자국민을 학살하였고 박정희는 숱한 조작사건으로 정적을 제거하였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했는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을 탱크로 진압한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스러지고, 박정희 밑에서 쿠데타를 배운 신군부 전두환 노태우 패거리가 정권을 잡으며 자국민을 또다시 총으로 뭉갰다. 87년 서울 구로구청에서의 집단 학살극에 이어졌다.
치욕이다. 역사는 역사의 평가에 맡기라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을 호도하지는 말자. 역사는 바로 국민들이 만드는 것이다. 국민이 역사를 만들고 국민이 바로 역사다. 국민이 심판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역사가 심판하는 것이다. 역사에 죄인인 자들은 늘상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그러면서 친일청산도 역사에 맡기자 하고 양민학살도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도대체 그들에게 단죄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서 벗어나면서 제일 먼저 단행한 것이 언론과 지식인들에 대한 단죄였다고 한다. 그런 프랑스가 오늘날 문화가 꽃피우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성장한 것은 그다지 생경스러운 일도 아니다.
우리는 친일파에 대한 단죄도 못하였고 오늘날 친일행위에 대한 검증자체도 일부 친일파 옹호세력의 반발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를 엉뚱하게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 아닌 엉둥한 이념대결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세력들도 많다.
늦지 않았다. 80년 5월 그날 폭동을 일으킨 쿠데타 세력의 편에 서서 자국민을 폭도라 몰아세우며 온갖 이념 색칠을 마다 않던 조선일보 등 그날의 언론과 이 나라의 반역자들을 단죄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정통성과 헌법정신을 수호하는 것이다.
다시는 5.18같은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바로 국민과 법, 그리고 이 나라의 정통성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
이명박씨는 어설픈 해명을 그만 늘어놓고 5.18 영령들에게 무릎꿇고 통곡의 사죄를 드려야 마땅하다.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길은 바로 그길이며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바로 5.18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다. 필요할 때만 광주에 와서 5.18 운운하는 것이 결국 뒤로는 '파안대소'하며 '5.18사태'하는 것이 아닌가?
이명박씨의 진심어린 사과와 해명만이 그를 존경하고 지지하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