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해처럼 자란 조카가 있다.
그 녀석이 이번에 '국민대'에 합격했다.
열심히 공부하느라 수고했다며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집이 '광주 광역시'였고 지방 학생들을 우선 배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쟁이 제법 치열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용케도 입실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지방에서 부모님이 상경했다.
기숙사에서 쓸 다양한 용품들을 SUV에 가득 실고 와서 조카의 방에 넣어주었다.
짐 정리에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주고 마지막에 한마디를 건넸단다.
"잘 살아라"
그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조카는 펑펑 울기시작했다고 했다.
내가 현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얘기를 들어보니 그랬다.
가까스로 달랜 뒤에 그 가족은 차를 몰아 우리집으로 왔다.
조카와 그의 부모가 마지막 밤을 보낼 처소가 필요했고, 우리가 그 가족들을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축하도 해줄 겸 오랜만에 정담도 나눌 겸 매우 좋은 기회였다.
저녁 사를 하면서 가볍게 맥주도 한 잔씩 나눴다.
이런 저런 덕담이 오갔다.
어렵고 힘든 점이 있어도 잘 이겨내라는 당부도 있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이 녀석이 또다시 닭똥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기 시작했다.
"아이고 주여"
진짜로 '유구무언'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엄마와 헤어져 살아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요녀석 보게?"
아무리 무공해처럼 자란 스무살 숙녀라지만, 군대에 가는 것도 아니고 겨우 기숙사에 들어가는 건데 그게 그리도 애닮고 슬픈 일인가 싶었다.
지 사촌 언니인 내 딸도 장교가 되겠다며 ROTC에 지원해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아마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흘리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눈물을 쏟았다.
녀석의 큰 안경너머로 맑은 눈물이 소리없이 주루룩 주루륵 흘러내렸다.
지 엄마도 마음이 짠한지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우리 가족들은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알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다는 건 얼마나 축하할 일이며 가슴 설레는 일이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부모와 헤어져 어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더 이상 매끄러운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누가 맞고 틀리다는 얘기는 아니다.
스피릿과 마인드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대화의 컨셉과 텐션을 잡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
그것은 이 거친 세상을 홀로 부대끼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은 채 전진하고 또 전진해야 한다는 의미일 터였다.
적응과 독립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물론, 나도 잘 안다.
조카 녀석은 금세 잘 적응할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캠퍼스 라이프'에 젖어들 것이다.
새날이 밝고 녀석은 학교 기숙사로 돌아갔다.
내일부터는 생경한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함께 멋진 대학생활을 시작하겠지.
걱정 반, 희망 반, 두려움 반, 설레임 반, 지금은 심경이 다소 복잡하겠지만 머지 않아 그 안에도 한 떨기 신선한 바람이 불 것이다.
그리고 연둣빛 예쁜 새싹들이 소담스럽게 피어날 것을 믿는다.
먼 훗날, 이 녀석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성장하여 다시 엄마품을 떠나게 될 때쯤 내가 이 일기와 함께 얘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한다.
"니네 엄마가 너만한 나이에 할머니와 떨어지기 싫어서 이틀 동안이나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던, 울보 새내기였노라"고 말이다.
"후후후"
귀엽고 착한 조카의 빛나는 대학생활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작은 날개에 깃털이 나고, 머지 않아 푸른 창공으로 힘차게 비상할 것이다.
뉴욕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조카도, 이태리로 건너가 성악을 공부하는 조카도 한두 달만에 입이 귀에 걸린 사진을 보내왔다.
"그럼 그렇지"
애들의 놀라운 '적응력'과 생각의 '유연성' 그리고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은 기성세대인 우리보다 훤씬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대견하고 멋지다.
높은 창공과 거친 바다가 젊은 청춘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고로 "거친 파도가 훌륭한 선장을 만든다"고 했다.
진리다.
더 뜨겁게 부대껴 주길 기도한다.
브라보.
2011년 3월 1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