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벗들과 함께 담양 소쇄원(瀟灑園), 식영정(息影亭) 등을 유람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해설을 담당했던 육십 중반 여인의 현란한 입담은 지금은 기억의 저편으로 스러졌으나, 길가에 가로수로 줄지어 서있던 배롱나무 꽃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자주색의 작은 꽃잎을 지니고 있다고 해선지 자미화(紫微花)라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도 선비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茶山 정약용 선생은 ‘옛 문헌에서 간지럼나무라고 한 紫微花, 한 가지에 꽃이 피면 다른 가지에서는 꽃이 진다(膚癢於經是紫微 一枝榮暢一枝衰)’ 고 읊었습니다.
예전엔 九中深處의 꽃
보라색(紫)이 중국 황제나 황실을 나타내는 색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배롱나무 역시 고귀한 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중국에서는 唐·宋·明代에는 황제의 조칙을 입안하고 하달하는 관청을 중서성(中書省 또는 紫微省)이라 불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비슷한 기능의 관청을 승정원(承政院)이라 하였는데, 여기에는 어김없이 배롱나무가 있어 이 관청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고 하네요.
중서성에 봉직했던 당나라 백거이(白居易)는,
絲綸閣下文書靜 중서성 문서 다루는 일 한가하고
鐘鼓樓中刻漏長 종루 물시계 소리 길게 내는데
獨坐黃昏誰是伴 황혼에 홀로 앉은 날 누가 벗해줄가?
紫微花對紫微郞 배롱나무 꽃만이 이 몸을 대하는구나
승정원에서 일했던 성삼문(成三問) 선생은,
歲歲絲綸閣 해마다 승정원에서
抽毫對紫微 배롱나무 꽃을 보며 붓을 들었었지
今來花下飮 지금 꽃 아래서 술 마시자니
到處似相隨 가는 곳마다 따라오는 듯하네
사랑스런 꽃
당나라 시절 최고의 멋쟁이 시인으로, 특히 배롱나무 꽃을 사랑하여 두자미(杜紫微)라는 별칭이 붙은 두목(杜牧)은,
曉迎秋露一枝新 가을 이슬 새로 맺힌 새벽 꽃가지
不占園中最上春 한참 봄날에는 뜰을 차지하지 않았었지
桃李無言又何在 그때 복사꽃 오얏꽃들은 말없이 어디에 있는가
向風偏笑艶陽人 화창한 봄날에만 뽐내던 꽃들에게 미소짓네
松江 정철(鄭澈)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자미(紫微)라는 남원의 동기(童妓)의 머리를 얹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어린 기생을 무척 사랑하여 자신의 호 중 한자를 따서 강아(江娥 ) 즉 松江의 여자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지요. 귀경하여 승정원에 들어간 후에도 이 여인을 잊지 못해 ‘영자미화(詠紫薇花)’란 제하의 시를 짓습니다.
一園春色紫薇花 봄빛 동산에 배롱나무 꽃 피니
纔看佳人勝玉釵 그 예쁜 얼굴 옥비녀보다 곱구나
莫向長安樓上望 누대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滿街爭是戀芳華 길가에 온통 네 꽃다운 모습 다투어 연모하리
*비하인드스토리 : 松江이 떠난 후 강아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는데, 송강이 죽은 후엔 시묘살이도 했다네요. 강아가 죽자 문중에서 그녀를 송강 곁에 묻어주었다나...
첫댓글 요즘 산책하보면 배룡꽃을 자주 감상하는데 즐거운 내용을 보니 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