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온 신라화랑 사다함
사다함(斯多含) : 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귀담비장을 역임한 화랑
골품 진골(眞骨) 직위 귀당(貴幢) 비장 성씨 김(金) 이름 사다함(斯多含) 아버지 김구리지(金仇梨知) 생몰연도 547년 ~ 563년...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열전에 사다함의 행적이 실려 있다.
궁에서 쫓겨난 미실은 화랑 사다함을 만났습니다. 세종이 미실이 상대한 첫 남자라면 사다함은 그가 만난 첫사랑이었습니다. 이때 사다함의 나이는 불과 열대여섯 살이었습니다. 사다함과 사랑에 빠진 미실은 ‘부귀는 모두 한때’라면서 부부가 되기로 굳게 약속 했습니다.
일방적인 색공보다 서로가 주고받는 사랑이 더 큰 즐거움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미실은 사다함을 만나면서 죄 없이 쫓겨난 억울함을 더 큰 사랑으로 보답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사다함은 남자 중의 남자 화랑이었고, 화랑 중의 화랑 풍월주였습니다.
5세 풍월주였던 그는 대가야 정벌전에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흥왕이 재위 23년(562)에 이사부(異斯夫)에게 대가야 정벌을 명령하자 그도 자원 참전했습니다. 그는 사랑을 핑계로 참전을 기피하는 대신 참전을 자원하는 사나이의 길을 걸었습니다.
신라 여인 미실 또한 전선으로 가는 사다함을 사랑으로 막지는 않았습니다. 신라의 남성과 여성에게 사랑과 전쟁은 둘 다 피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였습니다. 미실은 〈출정가〉를 불러 사다함을 위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