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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치악산 늦가을기행1-치악산 구룡사와 세렴폭포
작성자 찬란한빛e 작성일 20-11-14 21:24
치악산 세렴폭포..2020.11.11.수
지난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1박2일간 원주 치악산 구룡사에서 세렴폭포,
그리고 치악산 상원사로 향하는 아름다운 계곡 산행을 하고 왔다.
상원사 사찰 1km를 전방에 두고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귀경길이 염려되어 상원사는 후일이 다시 찾기로 하고 하산하면서
아랫쪽에 위치한 신림면 성남2리 '성황림'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마이홈으로 오니 오후 6시가 조금 못 되었다.
첫날 아침식사를 하면서 갑자기 일정을 잡게되어 부랴부랴 여행봇짐
간단히 챙기고 10시40분에 출발했다.
원주 치악산 늦가을기행1- 치악산 구룡사와 세렴폭포(20.11.11.수)
빼어난 경관의 폭포, 세렴폭포
아홉마리 용의 전설이 얽혀있는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위치한 세렴폭포는
2단으로 휘어져 떨어지는 환상적인 물줄기가 일품이다. 인근의 구룡폭포와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곳으로 강원 내륙에 산재한 여러 폭포 가운데서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구룡사에 대하여
치악산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에서 학곡리 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치악산구룡사사적』에 따르면
신라말의 고승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강희45년 글자가
새겨진 와당이 출토되어 숙종 32년(1706)에 구룡사가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서상원과 보광루, 적묵당, 심검당의 승사가 있으며
이밖에도 원통문, 국사단, 사천왕문, 범종각, 응진전 등이 있다.
* 출처:다음백과
치악산 국립공원
국립공원이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지로서
국민의 보건, 휴양과 정서생활 향상을 위한 공간입니다.
후손으로 부터 잠시 빌려 온 소중한 국립공원을 우리 모두 올바르게
이용하고 자랑스럽게 물려줍시다.
*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1872년)
*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국립공원(1967년)
매표소를 지나면 먼저 만나는 문화재가 강원도 기념물 제 30호 학곡리황장금표이다.
학곡리 황장금표(鶴谷里 黃腸禁標, 강원도 기념물 제30호)
황장금표는 황장목(黃腸木)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벌채를 금지한다는 표시로
설치한 것으로, 이 표석은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것이다. 보호림 구역을 만들어
표시를 해놓는 제도는 조선 전기부터 생겨난 것이다.
황장목은 나무의 안쪽이 누렇고 단단하며 질이 좋은 소나무로, 용도가 매우 다양하여
왕실에 올리는 특산물 중의 하나였다. 조선시대에는 질 좋은 목재의 확보를 위해
황장목 관리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치악산은 조선 황장목 보호림 가운데서도
이름난 곳 중의 하나였는데, 치악산에는 질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강원감영이 가까워 관리가 쉽고, 한강의 상류에 위치하여 서울로 운송하기에도
편리하였기 때문이다.
이 황장금표에서 100여m 떨어진 구룡마을 입구와 치악산 정상 부근에 '황장 외금표'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사례는 이곳이 유일하다.
이 금표는 조선시대에 설치한 것으로, 황장목(黃腸木)의 보호를 위하여
벌목을 금지하는 경계의 표시이다.
이것은 관아에서 황장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산이 헐벗지 않도록
소나무의 벌목을 금지시킨 것이다.
이러한 정책으로 1448년(세종30년)에는 금산(禁山)이 200개소 이상이나 지정되었다.
자궁(梓宮:임금, 왕비, 왕세자들의 유해를 모시는 관)감을 쓰기 위하여
출입을 금지시킨 곳을 봉산(封山)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금산과 마찬가지이다.
지금에 와서 이것을 자연보호 운운하기도 하지만
백성들의 입장보다는 황실의 이익이 우선시된 청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바위의 한 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글귀를 새긴 모습이다.
구룡사계곡의 외로운 소나무(孤松)
좌측은 구룡사부터 세렴폭포까지 황장목 숲길, 2.2km,
구룡사는 원주 8경 중 제1경으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의 승려 의상(義湘)이 666년(문무왕 6) 창건하였다고 하며,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래 지금 절터의 깊은 연못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의상이 못을 메우고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은 비를 내려 온 산을 물로 채웠다.
이에 의상이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갑자기 연못물이 말라버리고 용 아홉마리는
도망쳤다고 한다. 의상을 절을 창건한 뒤 이러한 연유를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구룡사(九龍寺)라 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 도선 · 무학 · 휴정 등의 고승들이 머물면서 영서지방 으뜸 사찰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사세가 기울어지자 어떤 노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쇠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거북바위 등에
구멍을 뚫어 혈을 끊었지만 계속 사세는 쇠퇴하였으므로, 거북바위의 혈을 다시 잇는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706년(숙종 32) 중수되었고, 여지도서 원주목조에는 '구룡사는 85칸이다. 치악산 북쪽에 있다.
절 앞에 용연(龍淵)이 있는 홍수난 가뭄이 들 때마다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구룡사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안석경(1717~174)의 삽교집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대승암과 백련당, 월봉암 등 선승들이 살았던 암자와 호랑이를 만난 일 등
구룡사 주변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절의 지정 문화재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던 대웅전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보광루가 있다. 대웅전은 2003년 화재로 불에 타고 지금 대웅전은 2004년 실측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하였다. 그 밖의 건물은 삼성각, 심검당, 설선당, 적묵당, 천왕문, 종루, 일주문,
국사단 등 모두 19동이 있다.
구룡사에 이르는 길에는 곧게 자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이는 조선시데에 세운
황장금표(黃膓禁標)와 관련이 있다. 매표소 부근에 있는 황장금표는 치악산 일대의
송림에 대한 무단벌채를 금지하는 표시로, 구룡마을 입구와 치악산 정상 부근에
황장외금표가 함께 남아 있는데 이러한 예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구룡사 일주문(一柱門, 圓通門)의 주련(柱聯)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 천겁(千劫)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요
恒萬歲以長今(항만세이장금) - 만세를 이어도 항상 오늘은 길구나
* 구룡사 입구에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이라 안하고
圓通門(원통문)이라고 현판이 걸려있다.
圓通門(원통문)이란 圓(원)과 通(통)하는 門(문)이란 뜻인데
圓(원)은 바로 無極(무극=○)인데 미륵을 일컫는 것이다.
즉 이 門(문)으로 들어서면 무극신과 통할 수 있는 진리가 있으니
그것을 깨닫고 가라는 뜻이다.
僧兵長 武總大禪師之塔(승병장 무총대선사지탑)
1895년 을미년 구룡사 승려이며 원주의병시 의병장으로 활약하신 무총대선사의 승탑이다
구룡사 국사단(龜龍寺 局司壇)
국사단은 국사대신(局司大神)을 모신 단(壇)으로서 도량(道場)이 위치한 산국(山局)을
관장하는 산신(山神)과 토지가람신(土地伽藍神)을 모시는 곳이다.
局司壇 柱聯(국사단 주련)
局司大神振玄風(국사대신진현풍) - 가람을 보호하시는 국사대신은 현묘한 바람을 떨치며
消災降福願皆從(소재강복원개종) - 중생의 재앙을 없애시고 모든 소원을 따라서 오시네
洞察人間如反掌(통찰인간여반장) - 인간의 세상 꿰뚫어 보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시며
敎化群生一切同(교화군생일체동) - 중생을 교화 함에도 모두를 똑같이 하나로 여기네
세렴폭포는 2.2km, 구룡사는 바로 우측으로 100m 위치, 비로봉은 4.9km이다.
구룡사부터 둘러보고 세렴폭포 산행이다.
보호수 은행나무, 수령 200년, 수고 25m, 나무둘레 350cm,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가을이 되면 잎이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는 1억5천만년 전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있었던 나무이기 때문에 화석(化石)나무라고 한다.
윗 건물 왼쪽부터 요사채, 연화각(차와 이야기), 치악산 구룡사 보광루
아래 왼쪽부터 거북석상, 약사여래상, 미륵부처상, 촛불대
구룡사 사천왕문 왼편에 모신 미륵부처상
치악산 구룡사 대웅전
대웅전 주련
達摩何事踏江來(달마하사답강래) - 달마는 무슨 일로 강을 밟고 왔는가
東土山野春草綠(동토산야춘초록) - 동토의 산과 들이 봄빛에 푸르기 때문이다
世尊因何兜率來(세존인하도솔래) - 세존은 어인 일로 도솔천에서 오셨는가
鹿園苑中百花香(녹원원중백화향) - 녹야원 가운데 온가지 꽃의 향이 만발하구나
구룡사 대웅전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측에 아미타여래불, 우측에 약사여래불
대웅전앞 석등과 향로
구룡사 템플스테이
사찰을 둘러보고 세렴폭포로 향한다.
구룡사계곡, 구룡소(龜龍沼)
세렴폭포가 500m 남았다.
세렴폭포 75m 앞두고 이 다리를 건너 사다리병창, 비로봉으로 오른다.
여기서 비로봉 2.7km 조금 젊었으면 올라갈텐데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세렴폭포만 관람하고 하산했다.
세렴폭포
치악산 세렴폭포에서 우리부부의 건강을 감사하며 그 기쁨과 희망을 노래한다.
구룡사로 다시 내려왔다.
노오란 가을빛을 만났다.
치악산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어느 상점앞에서 예쁜 가을단풍을 만난다.
너무 반갑고 예쁜 나머지 마구마구 디카에 담는다. 치악산의 단풍을...
단풍이 더러 남아있지나 않을까 그 남은 단풍보러 왔더니
산중엔 헐벗은 나목들과 떨어져 수북히 쌓인 낙엽더미들 뿐
치악산은 온통 빈가지들과 회색빛만 감돌 뿐
썰렁한 산빛이 멀리서 달려 온 우리가슴에 잿빛만 안겨 줌이다.
그런데 이렇게 빛깔고운 단풍이 와락 내 가슴에 안기다니!
치악산의 가을빛을 주차장에서 채우니 갑자기 가슴이 빨갛게 타오른다.
하룻밤 둥지(에델바이스) 주변을 둘러보며 시골정취에 젖는다,
둥지 큰 창에서 바라본 계곡 건너편 시골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숙소로 내려오니 그 새빨간 단풍잎이 뒤틀려있다.
우릴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서 뒤틀렸나보다.
기다려 준 그 마음이 고와서인가 한없이 예쁨이다.
치악산의 첫날은 세렴폭포까지 산행으로 건강도 챙기며 행복을 만끽했다.
산행길이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없이 오를 수 있는 평평한 길이어서 헐떡숨과
긴장감없이 경쾌유쾌히 신명나게 다녀 올 수 있었다.
저녁식사는 숙소 건너편 가든에서 곤드레 돌솥밥을 맛있게 들고
첫날 하루의 일정을 마친다.
이것으로 원주 치악산 늦가을기행(1) - 세렴폭포와 구룡사 사찰관람을 마치며
2편 치악산 아름다운 상원사와 성황림으로 이어지겠습니다.
찬란한 빛/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