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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치심과 보증
에베소서 1:3~14 (성령론8)
I. 구원얻은 행복
여러분은 인생을 사는 재미가 무엇입니까?
세상적으로 인생을 참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부가 골프장으로, 또 아이들과 함께 승마장으로, 전국 맛집은 골목시장까지 꿰뚫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인생 사는 재미,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법” 유튜브도 하고 강의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공통된 얘기를 종합해 보면 몇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① 무엇보다 첫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님과 친해지라는 겁니다.
영원히 함께할 친구, 세상 끝날까지 변하지 않는 친구는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② 두 번째는 자기 자신에게 잘해주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도 대단히 소중한 지혜입니다.
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도 자기를 지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친구 삼지 말라고 합니다.
③ 연결선상에서 셋째는 긍정적인 마음 관리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 또 크게 자주 웃으랍니다.
불행한 생각은 곧 물리치고 머물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④ 네 번째는 친구 관계를 건강하게 잘 유지하랍니다.
부정적인 친구는 가지치기하고 손절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게 맞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전화 한 통을 해도 전화 받는 사람이 귀곡산장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그래~~~~ 아직 잠 못 깼는데~~~~~
⑤ 다섯 번째는 신앙그룹이든, 친구그룹이든, 취미그룹이든 서로 힘이 되는 소그룹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해 줄 사람,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목사님은 자기 자신을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묻는다면 저는 제가 저를 생각해도 참 재미없는 사람입니다.
미국 26개 교회를 탐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침 그랜드 캐니언 근처를 지나다가 이곳까지 와서 그냥 가겠느냐?
2-3곳 탐방을 취소하고 그랜드 캐니언을 가보자는 요청들이 있었습니다.
신청을 받아 봤더니 80%는 그랜드 캐니언을 가고 20%는 계획된 대로 교회 탐방에 나섰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었을까요? 말하지 않아도 잘 알지요
이~! 하와이 부흥회를 가서도 비행기로 이섬저섬 다니는 건 우리집 두 속물입니다.
제 아내와 우리 딸이었습니다.
저는 호텔방에서 신간서적을 읽고 비전의 사다리 교재를 집필하는데 몰두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신령하지요 잉~~ 언젠가 괌에 부흥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호텔 교회, 교회 호텔 밖에 모릅니다.
꼭 한 곳을 돌아오기 전에 가 봤는데 요꼬이 동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요꼬이라는 일본 병사가 혼자 깊은 산중에 떨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줄을 몰라 땅굴을 파고 혼자 27년을 숨어 살았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던 겁니다.
물론 그 이후 동굴에서 나와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돈벌이가 되는 곳에는 한국 사람이 있습니다.
그 동굴 앞에서 커피와 라면을 팔던 가정은 크리스챤 한국인이었습니다.
요꼬이 동굴이 주는 신앙적인 의미가 있더 라구요.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전쟁이 끝난 줄 모르면 노예로 살아간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영적인 전쟁 끝났다.
예수 믿어라”하는 전도지를 만들어 이분에게 보내준 적이 있습니다.
II. 구원얻은 행복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진짜 재미가 무엇일까요?
오늘 에베소서는 문을 열며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니깐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보물 두 가지가 보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구원 얻은 성도, 존귀한 성도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피흘려 세운 주의 몸된 교회,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며 1절 2절 짤막한 인사를 하고 3절부터 14절
오늘 본문 열 두 절을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단숨에 써 내려갑니다.
발견된 헬라어 문장 가운데 가장 긴 문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202단어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니까
이 성도와 교회가 얼마나 존귀한지 숨도 쉬지 않고 12절을 한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겁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예수님이 구속하셨고 성령님이 인치셨으니 삼위일체 하나님 찬양~ 하는 내용이죠.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인치시는 이 구원의 사역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내 마음이 착해서 공로와 선행을 쌓아서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조건이 있어서 품성이 개발되어 얻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6절 말씀처럼“거저 주시는 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공짜로 얻은 선물입니다.
싸구려라서 공짜가 아니고 너무 어마어마해서 이 세상에 있는 무엇으로 돈으로 은금보화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존귀한 성도가 되어서 영광스러운 이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 예배하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
기도하는 것, 우리가 임직을 받는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이라는 것이죠.
이걸 모르면 싸구려 예배를 드리고 싸구려 기도를 하고 아무 생각없이 임직을 주고 받고 하는 겁니다.
장례식을 집례하다 보면 수한을 다 채우고 가족들이 마음 준비 다 끝난 다음에 평안히 눈을 감는 호상이 있습니다.
어떤 호상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겁니다.
가장 불행한 죽음일 뿐입니다.
이런 장례식을 집례할 때가 제일 불편하 고 당황스럽습니다.
반대로 때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울고 또 통곡해도 아쉬운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믿고 죽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숨어 있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건 그가 예수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 이것만 남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본질은 구원 받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다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 축복일뿐입니다.
이 땅에서는 사라질 것들입니다.
영원히 남지 않는 것들입니다.
구원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내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겁니다.
구원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도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취미가 어떻고, 건강이 어떻고, 친구 관계가 어떻고, 인생 재미가 어떻고를 묻는 건 불경한 일입니다.
의미 없는 질문입니다.
몸은 약했습니다.
늘 배는 고팠습니다.
핍박과 고난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걸핏하면 매를 맞고 심지어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성밖으로 갖다 버렸습니다.
강도를 만납니다.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세상의 재미나 행복은 다 빼앗긴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이 복을 보고 나니 우리가 지금 받게 되는 고난은 장차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선언하고 살아갔습니다.
그랜드 캐니언을 지나면서도 못 가 보고, 하와이 마우이섬은 쳐다보고도 못 올라가 보았지만
교회가 좋아서 교회 섬기는 재미에 살았던 재미없는 내 인생도 후회는 없습니다.
나는 목사니 까! 골프, 승마 재미는 모르고 살았고 전국 맛집 재미는 몰라도 예수 믿는 행복 알고 살았고,
교회 섬기는 재미를 알고 살았다면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재미있게 사세요.
목사는 그렇게 살아도 행복하더라고요.
서구가 아프리카를 정복하러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놀아 요.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초콜릿 한줌 주웠더니 다이아몬드를 한 바가 지씩 가져옵니다.
그래서 초콜릿 한 줌하고 다이아몬드 한 바가지씩 바꾸는 거예요.
다이아몬드의 값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살았던 이 삶, 믿음 가지고 살았던 이 삶,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손해 보고 욕 보고 살았던 이 삶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면 이 땅에 초콜릿하고 바꿔 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III. 성령의 인치심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합니다.
옛날에 금슬 좋기로 소문난 젊은 부부가 살았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죽게 생겼어요.
부인이 통곡을 합니다.
“당신없이 나 못 살아. 내일이면 나도 당신 따라 죽을 거야.” 우는 아내에게 남편이 말합니다.
“그러지 말고 잘 살아. 그리고 여름날 내 무 덤에 잔디가 마르거든 시집가!” 시집가지 말란 말이지요.
여름이 되었습니다. 부인이 한 손에는 가위를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무덤을 찾 아갑니다.
가위로는 잔디 뿌리를 자릅니다.
그리고 부채로는 잔디를 말리더라. 여러 분 이게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예수님이 구속하셨고!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내가 가진 이 믿음, 이 구원의 확신, 어떻게 하면 빼앗기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요?
때로는 문득문득 죄에 오염되어지는데 절망하고 낙심하는데 왜 내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것일까요?
♪성령님이 인치셨으니~ 할렐루야!
“인치신다”는 헬라어 “스프라기조”라고 하는 말에는 퍽 재미가 있습니다.
임금의 소유권 확인을 의미합니다.
임금이 아끼는 보물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소중한 보물을 보물함에 넣고 인지를 붙힙니다.
그리고 인지 위에 어인을 찍습니다.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최고의 장수를 세워 보물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의 피로 구원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의 보물입니다.
땅에 살아도 하나님의 자녀는 존귀한 자니 어인을 찍는 게 아니에요.
고종의 어인이 아니라 성령님이 인을 치신다.
도장 꽝! 그리고 군사나 천군천사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친히 내게 오셔서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구원을 지키십니다.
친히 인치신 우리의 구원을 지키십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이 구원은 변하지 않습니다.
취소되지 않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돌발 퀴즈입니다.
여러분은 빈 속에 빵을 몇 개나 먹을 수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르다고요?
빈속에는 빵을 한 개밖에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한 개 먹고 나면 그 속은 빈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빈속에 오시고 나면 영원히 빈 속이 아닙니다.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니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고 나면 곧바로 성령님이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 너는 내 것이다, 천국 백성, 호적 등록 끝나는 겁니다.
떠나지 않고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인치심의 사건과 동시에 일어나는 구원 사건들이 있습니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거”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야.
예수 믿었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 도 너는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야. 내적인 증거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의 후사라는 변하지 않는 확신이 확고해 지는게 인치심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토레이는 이 성령의 인치심 사건과 성령 세례를 동일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령님이 인을 치시면, 하나님의 소유권이 확실해진다.
하나님께서 안전을 보장 하신다.
그 효력은 영원히 유효하다.
인간의 어떤 조건에도 불변이다.
오늘 본문의 용어를 빌리면 보증, 약속의 성령의 인치심은 이런 능력이 있다. 할렐루야!
성령의 인치심이 내 안에 있게 되면 신앙생활에 변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강산이 열번, 백번 변해도 때로는 인생살이에 고난이 있고 실패가 있을 수 있지요.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낙심할 때도 있지요.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되나? 오해받을 때도 있지요.
상처받을 때도 있지요. 그러나 성령의 인치심, 성령세례를 경험하고 나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있는 확신인데,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십자 가 위에서 내 죄를 담당하셨다.
나는 나의 약점 때문에 구원을 빼앗기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있는 내 이름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천지가 무너져도 내 구원은 무너지지 않는다.
천사가 와서 내 구원을 가짜라고 이야기해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 사실은 변경되 지 않는다.
내 느낌, 내 환경, 내 행동, 내 감정 여하에 따라서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게 성령의 인치심의 사건입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성령의 인치심 사건은 곧 성령의 견인의 시작입니다.
성령의 견인이 무엇입니까?
죄짓다 죽어도 구원은 빼앗기지 않는다는 장로교의 고귀한 성경의 교리입니다.
장로교가 발견한 진리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교리입니다.
우리는 성도의 견인으로 모든 면에서 아직도 어립니다. 부족합니다.
모자라지만 성화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치심, 구원의 내적인 증거, 성령 세례, 성도의 견인, 성화의 삶의 시작. 물론 구별되지만 동시적인 사건입니다.
따로 나누어져서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동시적으로 내 안에서 일어난 위대한 구원의 사건인 것입니다.
IV. 보증 – 알라본 성령의 인치심으로 인한 우리 구원의 또 다른 안전장치가 14절에 나옵니다.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입니다.
하나님 나라 기업의 보증이 되었단 말입니다.
때로 세상이 나를 무시하고 비웃을지라도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을 지키십니다.
천국문 입구에서 마귀는 나를 비난하지만 성령님은 나를 변호하시고 보증하십니다.
내가 구원받았으면 되었지 왜 또 다른 안전장치 보증이 필요한 것일까요?
우리가 전적인 부패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연약성이 아직도 우리 가운데 남아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가 끊임없이 우는 사자처럼 택한 백성들을 무너뜨리려고 덤비고 있습니다.
그때 마다 성령님이 네가 가까이 할 사람이 아니야.
네가 빼앗을 수 있는 구원이 아니야. 보증하셔 서 구원을 흔들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보증”이란 말이 신약 성경의 언어 헬라어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언어 히브리어 “알라본”에서 그대로 가지고 와서 사용합니다.
“알라본” 창세기 38장에 나옵니다.
성경을 읽다가 왜 이런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빼 버리고 싶은 내용이 창세기 38장이에요.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에 장자 르우벤도 아니고 요셉도 아니고
유다 자손을 통하여 메시야가 이 땅에 오도록 한 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면 유다 집안에서 자손이 태어나고 태어나고 태어나야 되는데
다말이라는 며느리가 들어와서 아기를 낳기 전에 남편이 죽어요.
그러면 다른 방법을 통하여 이 아들이 태어나야 되는데 아버지가 다말을 쫓아내버립니다.
그런데 성령이 가르쳐 주셨는지 다말이 뭘 알아?
나는 아이를 낳아야 된다. 어떤 일 있어도 아이를 낳아야 된다.
윤리가 정상적이 아닌 이때이니까 기가 막힌 꾀를 냅니다.
시아버지가 쫓겨나서 살고 있는 자기 동네를 지나가는 거예요.
창녀로 변신해서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하룻밤을 잡니다.
그리고 화대를 요구하는데 돈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담보물을 내라. “알라본” 보증을 내라고 합니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 내놓으세요. 허리띠 내게 맡겨놓으세요. 도장 맡겨놓으세요. “알라본” 보증입니다.
시간이 한 달, 두 달 지나는 사이에 소문이 들립니다.
유다에게 쫓겨난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겁니다.
쫓아내기는 제가 쫓아내고 당장 저 년을 끌고 오너라! 끌고 와서 칼을 들이대며 불살라 죽이라! 외쳤습니다.
네 뱃속에 있는 아기가 누구 아기냐?
그때 지팡이를 내밀면서 이 지팡이 주인의 아이입니다.
허리띠를 끄집어내면서 이 허리띠 주인의 아이입니다.
이 도장은 누구의 것입니까?
시아버지 유다가 화들짝 놀라지요.
이 사건을 성경에서 빼버리고 싶은 사건 아닙니까? 알라 본입니다.
알라본은 담보물, 선수금, 보증이란 뜻입니다.
다말이 하나님의 백성의 씨를 잉태하고자 하는 귀한 뜻을 가졌다 해도
다말의 이런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시아버지를 속인 이 행동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라본, 보증, 담보물로 인하여 죽을 몸이 살아납니다. 정죄받지 않았습니다. 심판 받지 않았습니다.
불에 타 죽을 몸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알라본, 보증의 위력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내가 구원받고 걸핏하면 넘어지고 걸핏하면 죄가 가슴에 들어오고, 주님 앞에서 자랑스럽지 못한 내 인생의 삶,
용서받을 수 없는 삶이 구원받았다는게 말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네 구원이 끝까지 취소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게 말이 안 되는 데 말이 되는 게 네 구원이다.
그뿐이겠습니까?
이 구원의 씨앗, 메시아를 낳은 이 백성을 유다와 다말의 자손을 유다인이라 불리워집니다.
흠많고 모순덩어리 유다인, 야곱같은 간사한 족속들 이스라엘!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엄청난 것이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골교회에서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교인들이 10명, 20명정도 되는 조그마 한 교회입니다.
신학생들이 와서 주일만 예배를 인도하고 갑니다.
여전도사님이 오셔서 때로는 다른교회 장로님이 오셔서 목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이 1년에 한번 교회를 방문합니다.
왜? 세례예식을 거행하기 위해서, 연말이 되면 당회장님이 방문합니다.
그리고 세례예식을 거행하고 성찬예식을 거행하고 갑니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밥을 해드려요.
식사를 하시는 당회장님 앞에 제가 무릎을 꿇고 중학교 2학년 때 간청을 했습니다.
“당회장님 고등학생이 되어야 세례를 준다면 서요.”
그럼 그게 법이거든. 당회장님, 고등학생한테 내가 모자란게 뭐가 있겠습니까?
지난 달에 우리 시찰내에 교회들이 함께 모여서 암송대회 1등 누가 했습니까? 네가 했잖아!
어른 들과 함께하는 성경 퀴즈에 1등 누가 했습니까? 네가 했지!
저 세례 주세요. 제게 물어보세요. 식사를 하시면서 이것저것 묻고 대답하고 그러더니 “야, 너 세례를 받아도 되겠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어야 세례를 받는데 중학교 2학년이 세례를 받았어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에서 법을 어기고 세례를 받은 장본인 여기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어요. 우리 집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빚을 갚아야 되니까 밤에도 일하시고 낮에도 공장에서 일하시고 농사짓고 1인 3역 하며 돈을 모읍니다.
그리고 은행이 없잖아요. 그래서 나도 몰래, 누구도 몰래 베개 속에 돈을 모으시는 거예요.
베개를 꼬매고 또 꼬매고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도둑님이 기가 막히게 알아. 그 베개를 가지고 간 겁니다.
내일 모래면 빚을 어느 정도 갚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둑님이 가지고 가셨어요.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우리 어머니가 모은 돈이 어떤 돈입니까?
청상이 농사짓고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개나리봇짐 짊어지고 다니면서 모은 돈 아닙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거예요.
교회는 다녔지만 기도 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항거하는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됐는데 학교 안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더라고요.
이건 하나님이 살아계 시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가 자퇴서를 내고 집을 나와서 대구로 도망을 갔습니다.
집을 나와서 대구에서 혼자서 살고 있는 겁니다.
친척집에서 우리집에 연락을 했는지 어머님이 알고 찾아오셨어요.
제가 어머니 손에 끌려 집에 왔는데 또 당회장님이 세례를 베풀러 오신 겁니다.
우리 집에서 밥을 잡수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당회장님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세례받았죠.
그럼 법에도 없는 걸 네가 떼를 써서 내가 세례를 주었지. 세례 취소해 주세요.
그랬더니 껄껄 웃으시면서 네가 똑똑해서 세례 준 게 아니고 예수님의 은혜로 네가 세례를 받은 거야.
세례받고 나면 네가 박구원 집사의 아들로 호적 등록 마치면 죽어도 또 죽어도 넌 박구원 집사님의 아들이야.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호적 등록 끝났어.
구원이 취소되지 않듯이 세례는 취소되지 않는 거야.
그렇 게 가르쳐 주신 게 지금 생각하니까
성령의 인치심에 관하여!
성령님의 보증에 관한 설명을 쭉 하시더라고요.
내가 세례받고 타락했지만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구나!
그때 확신을 가지게 된 겁니다.
그리고 55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55년동안 내 인생에 우여곡절도 있었고
내 인생에 여러 가지 변화무쌍한 일들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구원받은 이 확신,
성령의 인치시고 보증하신 구원의 감격, 이 능력을 빼앗겨본 적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왜요?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은 것, 성령의 인치심과 성령이 보증하시는 것,
이 시간 내적인 증거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주시는 이 확신, 변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치심, 성령의 보증을 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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