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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야고보서 3장, 올바른 언어생활
오늘은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주보 교안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야고보서의 내용 구조를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야고보서의 내용 구조
1:1~18, 전반부 - 시험에 대한 성도의 바른 인식의 문제
1:19~5:6, 중반부 - 행함으로써 입증해야 할 믿음의 문제(본서의 핵심)
⓵ 1:19~2장, ‘행위와 믿음’의 문제
⓶ 3:1~12, ‘말과 믿음’의 문제
⓷ 3:13~5:6, '세속주의(secularism)와 믿음‘의 문제
5:7~20, 후반부 - 고난에 대한 성도의 바른 대처의 문제
이제 본서 중반부 두 번째 부분입니다. 3장 1에서 12절은 말과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서에서 야고보는 믿음의 실천을 잃어버린 본서 독자들에게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참된 믿음에 대한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촉구하고 있습니다.
3장 1에서 12절은 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진술합니다.
야고보는 1장 19절과 1장 26절에서 짧게 언급하였던 성도의 바른 언어생활에 대한 주제를 이제 3장 1에서 12절 단락에서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주보 교안을 보시면 3장 1에서 12절 단락은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른 신앙생활의 필수적인 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진술입니다.
먼저 야고보는 1절과 2절에서 잘못된 가르침과 말실수에 대하여 경계합니다.
야고보의 언어 생활에 대한 충고는 우선적으로 교회 안의 선생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1절에서 선생은 원어적으로 가르치는 자를 의미합니다. 아마도 당시 선생 직분을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으며, 따라서 교회에서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자 하는 성도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치는 은사, 즉 말씀의 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 믿음과 인격과 자질이 부족한 자들, 검증되지 않은 자들이 선생이 됨으로써 교회 안에 잘못된 가르침이 많아지고, 또 가르치는 자가 모범이 되지 못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당시 교회 가운데 발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3장 1절입니다. 우리 다시 한 번 함께 읽겠습니다.
Jam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그래서 오늘날 전도를 우리가 강조할 수 있는데 누구나 전도자가 돼야 되고, 누구나 성경 교사가 돼야 되고, 누구나 목회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상고합니다.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1절을 새 번역으로 다시 봅니다.
(약3:1, 새번역)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교회 내에 가르치는 직분이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나 경솔하게 그 직분을 맡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의 지식의 은사와 말씀의 지혜의 은사를 부여받아 그 직분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선생이 되려 하지 말라고 야고보는 단호하고도 심각한 어조로 충고합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왜 선생 되는 일에 대해 엄한 경계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선생의 직분에는 반드시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곧 선생으로서의 가르침은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므로 선생이 만약 잘못 가르쳐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미쳤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가르쳤을 경우에 가르치는 자가 큰 책임을 지고 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배도의 시대에 목회자가 된다는 것 교역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에 매우 위험한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Jam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2절 말씀 보십시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여기서 이 실수는 말 실수를 의미합니다. 목회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말 실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진리를 잘못 전하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하는 말 실수가 목회자로서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심판을 받게 되는 하나님 관점에서 큰 범죄입니다.
2절 말씀 보십시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성숙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3:2, 새번역)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입니다. 선생들은 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말은 의사 전달의 수단이므로 비단 선생이 아니라도 사람은 항상 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말이라는 것은 항상 실수가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2절은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 죄성을 가진 사람이 가진 바로 이 공통적인 약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구사하는 지상의 유일한 피조물인 사람에게 말의 실수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의 실수가 사실은 아담으로부터 전가받은 탈락하고 부패한 본성의 열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1절 2절에서 잘못된 가르침과 말 실수에 대하여 엄하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3에서 5절에서는 비록 크기는 작지만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혀의 특성에 대하여 세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Jam 3: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3절 첫 번째 비유, 우리가 포유동물인 말들의 입에서 중요한 표현입니다. 작은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1장 26절에서도 나왔었던 재갈은 말이나 소의 입에 가로로 물리는 쇠토막을 가르키는데, 이 재갈의 고삐를 맵니다. 고삐를 매면 말은 사람이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질이 사나운 야생마라 할지라도 재갈과 고삐를 사용해 통제하며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3절은 힘이 센 야생마의 입에 작은 재갈을 물리면, 그 작은 재갈로서 말의 온몸을 통제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4절을 보시면 두 번째 비유입니다. 4절 두 번째 비유 또 배, 이 배는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큰 범선입니다.
Jam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3절에서는 작은 재갈 강조 표시하셔야 되고, 4절에서는 작은 키 강조 표시하셔야 됩니다.
작은 키로서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4절은 강풍에 밀려가는 큰 배도 작은 키로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Jam 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5절 말씀 보십시오. 이와 같이 작은 재갈과 키와 같이 그 배의 키에 대해서 이해가 없는 분들은 집에 돌아가셔서 꼭 검색을 해 보시거나 사전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5절 말씀 이와 같이 작은 재갈과 키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 혀도 작은 지체로 돼 큰 것을 자랑하도다. 그 영향력은 매우 크도다. 혀는 작은 지체인데 그 영향력은 매우 크도다.
이처럼 야고보는 작은 혀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논증합니다.
5절 하반절, 세 번째 비유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작은 담배꽁초 하나 혹은 작은 성냥불 하나로 광대한 숲이 모두 다 타버리는 일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불이 광풍을 타고 번지면서 삽시간에 산 전체를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해 작은 혀의 엄청난 파괴력, 그 작은 혀에서 나오는 말에 엄청난 파괴력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 크기는 작지만 너무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혀의 특성, 말의 특성을 언급한 3절부터 5절에 이어 6절부터 8절에서는 혀를 잘못 사용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혀의 심각한 해악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혀를 잘못 사용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혀의 심각한 해약성에 대하여 논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6절 말씀 보십시오.
Jam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뭡니까? 강조 표시합니다. 혀는 불입니다. 불의 세계라 본문은 잘못 사용된 혀의 해악성을 5절 하반절에 묘사된 것과 같이 모든 것을 파괴시켜버리는 불의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불과 같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혀를 잘못 사용하면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절 상반절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힐 수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혀를 통해 내뱉는 말이 전인격을 더럽힐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6절 중반절 3 인생의 수레바퀴, 인생 노정을 불사를 수도 있습니다. 6절 중반절은 혀를 통해 내뱉는 말이 인생에 불을 질러 그 인생 전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6절 하반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본문은 혀의 해악성을 지옥불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 22절에서 형제에게 욕하는 자는 지옥불에 던져지게 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Mat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제 7절 8절에서 야고보는 길들일 수 있는 동물과 길들이기 불가능한 죄성을 지닌 사람의 혀를 대조하면서 혀의 악한 특성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Jam 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Jam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7절 말씀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파충류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생물들을 만물의 영장으로서 길들였고, 또한 길들이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인간이 동물의 세계를 인간의 통치권 아래에 두고 지배해 오고 있다는 사실과 다음 8절에서 정작 인간의 혀는 길들이거나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대조시켜 후자의 안타까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을 지닌 사람의 혀는 능히 아주 중요한 가치관입니다.
여러분 우리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교육은 어떻게 얘기합니까?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심리학은 어떻게 얘기합니까?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인문학은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오늘날 지성인들은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하지만 성경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8절 말씀 보십시오. 죄성을 지닌 사람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강조 표시합니다.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인간의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이 외부로 투사되는 통로인 혀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말씀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어떤 인본주의적 방법으로도 길들이기 불가능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전가 받은 죄성을 지닌 인간의 혀는 실제로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악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9에서 12절을 통해 야고보는 성도가 혀를 악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모순성을 지적합니다.
즉, 한 입으로 주 하버지 하나님을 찬송하고, 동시에 그 입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욕하고 비방하고 저주하는 모순된 삶을 사는 성도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Jam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9절 말씀 보십시오. 이것으로 한 입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고, 우리가 예배 시간에 주 아버지 하나님을 함께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일한 입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일주일간 삶을 살아가면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욕하고 비방하고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상당수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러한 모순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Jam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0절 말씀 보십시오. 10절 강조 표시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와 관련해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우리 교안을 통해서 마태복음 12장 33절에서 3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마12:33, 새번역) 나무가 좋으면 그 열매도 좋고, 나무가 나쁘면 그 열매도 나쁘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
(마12:34, 새번역)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마12:35, 새번역)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
Mat 12: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Mat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Mat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12:36,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가 말한 온갖 쓸데없는(더러운)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마12:37, 새번역) ★너는 네가 한 말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하고, 유죄 선고를 받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믿음과 언어생활의 일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결코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다른 사람을 욕하고 비방하며 저주하는 이런 모순된 언어생활을 하는 자는 이미 참된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순된 언어생활은 스스로 자기 믿음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Jam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야고보서 3장 11절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 자연은 항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 자연 법칙에 따라 한 우물에서 나오는 물은 항상 한 가지 맛을 지니게 되어 있습니다. 한 우물에서 두 가지 물맛이 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자연 법칙과 같이 신앙인이 한 입으로 찬양과 저주를 말하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야고보는 지적합니다.
Jam 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2절 말씀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자연적으로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법칙이요, 하나님의 창조 원리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입도 본래는 선하고 의로운 말만 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부패와 타락으로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창조주를 대적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롭게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입은 하나님께서 그 입을 만드실 때에 본래의 목적에 따라 이제는 깨끗하고 선한 말만을 내야 함을 야고보는 논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께 믿음의 선조 다윗과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보 교안을 통해서 시편 141편 3절, 저와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이 돼야 됩니다.
시편 141편 3절 다윗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성도는 참된 믿음의 사람 다윗처럼 하나님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와 함께 혀의 오용, 혀의 실수를 막기 위해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 배웠던 것처럼 새로 태어난 성도는 새 사람이 된 성도는 말씀을 듣기는 속히 하고 자기의 말하기는 더디 하는 경건의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혹시 말하기가 빠른 성급하며 조급한 언어 습관이 여전히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민수기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 불평하는 말이나 불신하는 말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말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과 깨달음이 없으면 이러한 불평과 불신의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본서 중반부 세 번째 부분입니다. 3장 13에서 5장 6절은 세속주의와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13에서 18절 단락은 주보 교안을 보시면, 13에서 18절 단락은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를 대조하는 내용입니다.
Jam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3절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 선한 행함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3절은 성도 중에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를 가정합니다. 그러한 성도는 온유함에서 나오는 선행으로서 그 지혜를 입증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14에서 16절은 세상의 지혜, 거짓된 지혜에 대하여 논증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얼마나 많은 지혜를 추구합니까? 그런데 이 세상을 보십시오.
가장 많은 지혜가 모여 있는 오늘날의 미국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Jam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야고보서 3장 14절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 독한 시기와 다툼, 본인보다 더 나은 사람에 대해 갖는 시기와 당을 지어 분쟁함이 있으면 지혜롭다 총명하다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지혜롭다고 총명하다고 거짓말하지 말라.
Jam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5절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세상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굉장히 영적입니다. 귀신의 것이니
Jam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6절 강조 표시, 다시 한 번 나오죠. 시기와 다툼, 본인보다 더 나은 사람에 대해 갖는 시기와 당파를 지어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무질서한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이 발생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시기와 다툼, 여러분이 강조 표시하신 14절, 16절에 시기와 다툼은 온유함과 대조되는 것으로, 앞 절에 온유함과 대조되는 것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에서 맺히는 대표적인 열매입니다. 시기와 다툼은 앞 절의 온유함과 대조되는 것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에서 맺히는 대표적인 열매입니다.
시기와 다툼은 갈라디아서 5장 20절에서도 성령의 열매와 대조되는 육체의 열매로 바울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위 선생이라고 하는 자들에게서 이러한 시기와 다툼의 특성들이 많이 나타나고, 이로 인하여 교회는 무질서한 혼란과 온갖 악한 일에 휩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Gal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이것이 바로 땅 위에서 나는 세상의 지혜, 즉 거짓된 지혜의 대표적인 특성, 인물 야고보 장로는 논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위로부터 나는 하늘의 지혜, 즉 참된 지혜가 있는 교회에는 조화와 일치와 평화가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Jam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이제 17, 18절은 하늘의 지혜, 참된 지혜에 대하여 논증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추구해야 할 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땅의 지혜, 세상의 지혜, 거짓된 지혜를 버리고 배설물로 여기고, 이러한 참된 지혜를 추구하고, 이런 참된 지혜에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어떤 특성을 가집니까?
첫째 성결합니다. 다음에 화평합니다.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약3:17, 새번역)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여러분 돌이켜야 합니다. 이 땅의 지혜에서 위에서 오는 지혜로 단호하게 돌이켜야 합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깨끗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17절 개역 개정 성경에서도 다음에 화평하고 그 부분 강조 표시합니다. 개역 개정도 그리고 새 번역도 화평, 평화 강조 표시하셔야 됩니다.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 우리가 앞에서 배웠죠. 사람을 외적 조건에 따라 판단하고 차별하는 편견과 여러분 배우자 선택할 때 이 편견으로 배우자 선택하면 불행합니다. 이 편견으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면 불행을 자초하는 미련한 일이 되고 맙니다.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이제 3장에 마지막 절 18절은 개역 개정으로 봅니다.
Jam 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8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강조 표시합니다.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 순종의 열매, 성화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는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며 시기와 다툼의 특성을 보이는 성도들을 향하여 17절에 하나님의 지혜의 8가지 특성 가운데 평화 화평의 특성을 18절에서 다시 강조하면서 본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 화평은 14절에서 언급된 시기와 다툼, 16절에서 언급된 혼란과 온갖 악한 일들의 상태와 상반된 하늘에서 난 참된 지혜의 대표적인 특성입니다.
이렇게 3장 1에서 12절을 통해 야고보는 재갈, 배의 키, 불 등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지체 중에 작은 혀가 지니는 큰 영향력에 대하여 논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혀를 잘못 사용할 경우 전 인생을 불사를 정도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경고하며 이어서 성도는 모순적인 언어생활을 해서는 안 됨을 지적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행위로 입증되고 증명되는 두드러진 양상 중에 하나가 바로 올바른 언어 생활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리고 13에서 18절을 통해 야고보는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종류의 지혜의 대조는 곧 두 가지 삶의 가치관의 대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자기 성찰을 야고보 장로는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에서 진리적이고 신본주의적인 가치관으로 단호하게 돌이켜야 함을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허락된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을 조용한 골방에서 상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진리의 성삼위 하나님, 주일 예배를 통해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저희를 복된 주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고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장로를 통해 증거되는 이 귀중한 말씀들이 우리의 발에 등이 되고 우리의 길에 빛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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