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가는 다람쥐와 자유 동시의 미학 ―
― 윤동재
산골짝의
애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갖고
소풍 간다
다람쥐야
팔딱
재주나 한 번 넘어라
날도 좋다
― 김영일, 「다람쥐」
어린이다운 눈으로 만물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김영일의 「다람쥐」는 그 눈에 비친 자연이 어떻게 시적 세계로 바뀌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람쥐 한 마리가 도토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평범한 모습이 여기서는 즐거운 소풍이 된다. 특별한 사건도 화려한 수사도 없이, 몇 마디 일상적인 말과 자유로운 호흡만으로 자연의 움직임을 새롭게 살려 낸다.
첫 연은 어린이의 눈에 들어온 산골짝과 그곳에 사는 다람쥐를 보여준다. 대상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다만 ‘산골짝’이라는 공간에 다람쥐 한 마리를 놓아둘 뿐이다. 그런데 다람쥐 앞에 붙인 ‘애기’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이 말은 다람쥐를 작고 친근한 존재로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를 드러낸다. 다람쥐는 산속에 사는 작은 동물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와 가까운 세계에 속한 존재가 된다. 이 따뜻한 눈길이 다음 연에서 다람쥐의 움직임을 새롭게 해석하는 바탕이 된다.
도토리 점심 갖고
소풍 간다
이 두 행에서 다람쥐의 세계와 어린이의 세계가 겹쳐진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먹이지만, 화자는 그것을 ‘점심’이라고 부른다. 어린이의 일상에서 익숙한 말을 다람쥐의 세계에 가져온 것이다. 다람쥐도 어린이처럼 점심을 챙겨 먹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데서 어린이다운 상상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소풍’은 이러한 상상을 한층 넓힌다. 다람쥐의 움직임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소풍’이라고 부르는 순간, 평범한 움직임은 즐거운 나들이가 된다. ‘점심’이 다람쥐의 먹이를 어린이의 일상으로 끌어들였다면, ‘소풍’은 다람쥐의 움직임에 어린이의 즐거운 경험을 겹쳐 놓는다.
다람쥐가 왜 소풍을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소풍 가는 날의 들뜬 마음을 다람쥐와 함께 맛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화자는 다람쥐의 행동을 설명하지 않고 새로운 이름으로 부른다. 그 작은 명명의 변화가 자연의 모습을 새롭게 만든다.
셋째 연에서는 들뜬 화자가 다람쥐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다람쥐야
팔딱
재주나 한 번 넘어라
앞의 두 연에서 다람쥐를 바라보던 화자가 이제 다람쥐를 부른다. 다람쥐는 바라보기만 하는 대상에서, 말을 건네면 알아들을 것 같은 친근한 상대가 된다. 소풍을 가는 날인데 가만히 있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재주라도 한번 부려 보라는 것이다. 이 장난기 어린 권유에는 다람쥐의 즐거움에 끼어들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여기서 ‘팔딱’은 특별한 역할을 한다. 이 말은 다람쥐가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 뛰어오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재주를 넘으라는 화자의 말 속에 놓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움직임을 소리와 가락으로 먼저 불러낸다.
더욱이 ‘팔딱’은 독립된 한 행을 이룬다. 부름 다음에 이 말이 따로 놓이면서 말의 흐름이 순간적으로 튀어 오른다. 짧고 힘찬 두 음절이 읽는 호흡에 경쾌한 변화를 주고, 시행의 배치가 말의 뜻과 어울려 다람쥐의 날렵한 몸놀림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시는 다람쥐가 실제로 재주를 넘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 생략은 중요하다. 그 장면까지 그렸다면 시는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다람쥐는 재주를 넘을 수도 있고, 그냥 소풍길을 갈 수도 있다. 화자는 그 움직임을 읽는 이의 상상 속에 남겨 둔다. 다람쥐에게 말을 건네는 즐거움만으로 이미 시의 한 장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행은 더욱 흥미롭다.
날도 좋다
이 말은 앞의 장난스러운 권유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소풍도 가고 점심도 챙겼는데 날씨까지 좋으니, 뛰어놀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라는 것이다. 조사 ‘도’에 그 마음이 담겨 있다. 동시에 이 행은 화자의 눈길을 다람쥐에게서 산골짝 전체로 넓힌다. 다람쥐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즐거움이 자연의 분위기로 번져 나가는 것이다.
이 마지막 행은 앞의 장면을 설명하거나 의미를 정리하지 않는다. 감탄에 가까운 말로 소풍의 즐거움을 그대로 이어갈 뿐이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지만 시는 끝난다. 다람쥐는 여전히 소풍을 가고 있을 것 같고, 산골짝에는 좋은 날씨가 계속될 것 같다. 시는 사건의 완결보다 즐거운 정서의 지속을 선택한다.
이 작품의 짜임 또한 이러한 시적 움직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시행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고, 음수율이나 음보율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에는 분명한 말의 가락이 살아 있다.
첫 연은 하나의 명사구를 두 행으로 나누어 대상을 천천히 드러낸다. 첫 행 끝에서 잠시 호흡을 멈추면 다음 행의 다람쥐가 더욱 또렷하게 나타난다. 둘째 연은 다람쥐의 행동을 간결하게 이어가며 자연스러운 말의 흐름을 만든다. 셋째 연에서는 부름으로 말투가 달라지고, 한 행으로 선 ‘팔딱’을 지나 장난스러운 권유가 펼쳐진다. 마지막 행은 짧고 느긋한 감탄으로 앞선 움직임을 받아낸다.
이처럼 화자의 눈길과 마음이 움직이는 데 따라 시행의 길이와 말의 호흡도 달라진다. 일정한 형식에 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시적 장면과 화자의 태도에 알맞게 말의 길이와 가락을 선택한 것이다. 다람쥐를 발견하고, 소풍을 상상하고, 말을 건네고, 좋은 날씨를 즐기는 과정이 그대로 시행의 움직임이 된다. 형식의 자유가 시적 표현의 자유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작품의 어린이다운 시선과도 잘 어울린다. 어린이는 다람쥐를 보면서 일정한 순서에 따라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는다. 눈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말한다. 이 시의 자유로운 시행과 호흡은 그러한 생각과 말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어린이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말 가운데 필요한 것만 골라 짧게 배치하고, 덜어낼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덜어냈다. 자유로운 말의 흐름 속에서도 시적 언어의 선택과 배치가 치밀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김영일은 1950년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한 동시집 『다람쥐』를 펴내면서 ‘아동자유시집’이라는 명칭을 내세웠다. 이는 동시의 형식에 대한 그의 지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당시까지 동시 창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정형적인 운율을 넘어, 어린이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로운 말의 호흡으로 표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유 동시의 가치는 정형률에서 벗어났다는 데만 있지 않다. 정해진 틀을 벗어난 말이 시적 내용과 결합하여 그 작품만의 가락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형식적 자유는 미학적 성취가 된다. 「다람쥐」에서는 다람쥐의 소풍을 발견하는 어린이의 눈길이 자유로운 말의 움직임을 낳고, 그 움직임이 다시 소풍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살려 낸다. 시적 발견은 설명이나 교훈으로 전달되지 않고, 일상적인 말들이 서로 어울려 빚는 의미와 가락으로 전해진다.
김영일이 추구한 자유 동시의 미학은 어린이의 눈으로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발견에 알맞은 말과 가락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데 있다. 「다람쥐」는 그러한 자유가 한 편의 동시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작고 경쾌한 목소리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영일 #다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