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보람, 그 아름다웠던 추억들'
일곱 번째 이야기
우리 딸이 달리기에 1등하다니?
세상이 참 요란하고 어지러운 것 같다.
정의와 공의는 사라지고 도덕, 윤리는 땅에 떨어지며, 불법이 성하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 처럼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얼마나 정의롭고 공정하고 정직하며 진실하게 살아가고 이웃을 위해 선한 봉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 세상이 이렇게 지탱하는 것도 이런 사람들 때문이리라.
"오직 정의가 물 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 같이 (아모스 5 : 24)" 역사 속으로 도도히 흘러가며 이 지구를 존재케 한다.
(의인이 10명도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창세기 18: 32 참조)
지금부터 약 37여년 전의 일이다.
정확히 1987년 3월 1일자로 40대 초에 재단으로부터 대구삼육초등학교에 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6학급 총 학생수 87명의 소규모의 학교이다, 학교 발전을 위해서 부단히 기도하고 노력했다.
어느 날 오후에 한 부부가 교장실로 찾아왔다. 익숙한 얼굴이다. ㅇㅇ학교 동기생이다.
대뜸 하는 말
"어이~ 친구 오랜만일세, 그런데 자네가 왜 여기 교장실에 있나?"
나는 웃으며 "나 이학교 교장일세"
"뭐라고 자네가 교장이라고 이 젊은 나이에! 와~ 잘 됐다.
자네가 교장이라면 우리 아이들 믿고 맡길 수 있겠는 걸"
"무슨 이야기인데"
그 친구와 약 2시간여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와 나눈 대화의 요지는 대충 이러하다.
자기는 ㅇㅇㅇ 회사의 중역이고 부인은 약사란다.
두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서 자기를 육성회장으로 추대하였단다.
할 수 없이 수락했으며 학교를 돕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않았다고 한다.
그해 가을 운동회날, 자기는 운동회 텐트 본부석(VIP석)에서 교장님과 나란히 운동회 경기를 관람하였다고 한다.
얼마쯤 시간이 지난 후에 자기 큰 딸이 달리기를 하는데 1등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더라는 것이다. 자기 딸이 평소에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면 늘 중 하위권에 속하는데
그날따라 1등을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계속 떠 올랐다는 것이다.
운동회 마치고 집에와서 "얘 너 오늘 달리기 1등 축하한다.
그런데 오늘 어떻게 달리기 1등을 했는데? 아빠가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빠, 내가 오늘 1등 한 것은 선생님이 우리반에서 달리기 제일 못하는 아이틀 뽑아서
한조가 되게하였는데 그 중에서 내가 1등했지. 아빠가 육성호히장님이라고 선생님이 봐준 것 같애 ㅎㅎ"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단다.
이 일을 어쩌나 정직과 진실을 배워야 할 이 아이가 '반칙'부터 배웠으니
그는 자기와 가족들의 삶의 방향을 '정직하게 진실되게 살자' 인데 이게 여지없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의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친구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담임 선생님은 아빠가 육성회장님 이신데 그 딸이 꼴찌하면 창피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 배려한 것이라고 한 것이
짐작되고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정직하게 바르게 해야 할 교육현장에서 그런 걸 보고
교육에대한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그후 고민을 하고 며칠 있다가 자기 친 삼촌을 찾아 갔다고 한다.
자기 삼촌은 당시 경상북도교육위원회 김ㅇㅇ 학무국장 이란다.(당시는 경북과 대구와 합친 상태)
아주 저명한 중등계 교장출신 학무국장님이시다.
"삼촌, 이러이러해서 삼촌을 찾아 왔는데 바르고 진실되게 교육하는 초등학교를 소개해 주십사" 고 하였단다.
다 듣고는 "별나구먼 알았다" 고 하시면서
"나는 초등학교는 잘 모르니 초등과장님에게 물어보고, 답변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자기는 곧장 집으로 돌아 왔단다.
그 이튿날 바로 전화가 왔단다.
내용은 학무국장님이 초등과장님에게 묻고 초등과장님은 다시 초등장학사에게 물으니 어떤 여자 장학사님이 대답하시기를
"수성구에 아주 소규모의 삼육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 교사들은 모두 기독교인이고 사랑으로, 믿음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인 것 같
다."라고 하셨단다.
(그 여자 장학사님은 우리 학교에 장학자도 나온 적이 있었음)
그러니 그 학교에 가서 알아보라고 해서
오늘 물어물어 우리 학교에 오게되고 나를 만났단다.
정말 기적이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친구를 우리학교에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친구 집은 우리학교와는 반대편 서부쪽에 거주한다고 했다.
곧 바로 두 딸을 우리학교로 전학시켰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우리 교육에 대단히 만족했다.
학교를 위해서 많은 도움도 주었다. 또한 자기 대학친구들에게도 소개를 해서 대학교 교수님 자녀들, 법조계, 약사, 교사자녀 등 심지어 다른 사립학교에서 우리학교로 전학오는 사례도 있었다. 학생수가 순식간에 3배나 껑충뛰었다.(87명에서 262명으로)
여기에 대구 SDA 삼육영어학원의 원어민 교사들의 영어교육도 큰 몫을 차지했다.
당시 원장이셨던 김ㅇㅇ 목사님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서로 협럭하여 선을 이룬 셈이다.
하나님의 큰 축복이시다.
교육청에서는 관례로 평소에 장학지도를 한 내용들과 교육성과 내용 등을 종합분석 평가하여
년말 교장회의 때 우수학교 1~2개 학교를 선정하여 표창한다.
사립학교는 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언제나 공립학교 위주다.
그런데 예외없는 규칙은 없다 했던가?
(There is no rule but has exceptions)
1991년 12월 31일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교육청에서 교장회의와 우수학교 시상식이 있었다.
초등과장님이 사회를 하셨다.
교육장님의 인사 말씀이 끝나고 바로 우수학교 사상식에 들어 갔다.
모두 긴장한다.
호명하는 학교장님은 앞으로 나오세요.
약간 뜸을 들이더니만 "대구삼육국민학교"
호명 하시지 않는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나는 멈칫했다
내가 잘 못 들었는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엉거주춤 했더니
사회하는 초등과장님께서 웃으면서 삼육 김교장님 어서 나오세요.
나는 좀 어색하게 쭈뻣쭈뻣 하면서 교육장님 앞으로 나갔다. 50여명의 교장님들과 교육청의 직원님들의
박수소리가 대단했다 교장님들은 모두 어리둥절, 의아한 모습이었다.
초등과장님께서 낭독하셨다.
표창창
대구삼육국민학교
이 학교는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교내 장학 활동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되어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1991년 12월 31일
대구직할시 동부교육청 교육장 나예훈
낭독이 끝나자 교육장이 미소를 지으연서 김교장 수고했소 축하하오.
자그만한 소리로 격러해주셨다.
순간 교장님들의 박수 소리가 대단했다.
뒤돌아 서서 교장님들께 인사를 드렸는데 아주 기이한 일이다는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교장님들은 거의 60대였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삼육초등학교, 더군다나 새파란 40대 초반 교장! 자기네들은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회의가 마치고나니 교장님들이 축하한다면서 나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고향이 어디며, 나이는 몇이고, 무슨 김씨냐? 교대 몇회냐? ( 당시 교대 출신 교장은 1명도 없었고 모두 사범출신들이다).
전에는 어느 학교에 근무 했느냐는 등 신문기자 질문 하듯이 내게 다가와서 자꾸 묻곤 하였다.
사립학교에 이런 젊은 교장이 근무하는 학교에 우수학교 표창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 중에 이례적이다.
당시 동료 교사들이 하나가 되어 참으로 열심히 봉사했다.
그들에게 참으로 감사를 드린다.
믿음과 사랑과 연구와 열심으로 진실되이 가르친 결과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우리 모두의 승리이다.
집에 와서 많이 울었다.
그동안 소규모 학교라서 경영면에서 마음고생도 많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상으로 보상해 주셨으니 어찌 아니 기쁘리요!
학교와 내 생애의 최대의 기쁨이 기쁨이요. 자랑이다. 또한 삼육교사의 보람이다.
'눈에 눈물을 흘러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그 눈에서 무지개를 볼 수 없다.'
'혼신을 다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다'
(No cross no crown) 는 등의 격언이 머리 속을 지나갔다.
이러한 큰 상을 받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드린다.
지금도 여전히 대구삼육학교는 소규모 작은 학교이지만, 입학 경쟁이 아주 치열한 명문학교이다.
자랑스러운 학교이다.
2024. 5. 20
김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