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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있다
정희경(시조시인)
2017년 4월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업률은 4.3%,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를 각각 기록하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삶의 어려움을 계량화한 지표인 ‘경제고통지수’도 6.4로 2012년 1분기(6.8)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가계의 경제고통이 엄청 심하다는 얘기이다. 올 1분기(2017년 1월 ~ 3월) 중 대졸 이상 학력의 청년(15~29세) 실업자 수는 최초로 50만 명을 돌파해 전체 실업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65세 이상 초고령 실업자는 12만 3000명으로 실업률은 7년 만에 최고를 찍었다고 한다. 여기에 결혼과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 문제, 이른 정년으로 한창 일할 장년층의 실업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등이 산재해 있다. 이런 많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조의 시각은 어떨까? 절망적일까?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까? 단순히 상황을 알리고 고발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을까? 이런 현상을 노래한 시조의 효과는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바탕에 두고 다섯편의 시조를 읽으며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아져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이 그린다섯편의 작품에서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는 다양한 군상들을 만난다. 그들이 처한 현실의 심각함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마음으로 읽는다. 물구나무 샘플 병을 콕콕콕 두드려대는
그녀의 출근 준비에 왠지 생이 샘플스럽다
우루루 들러리나 서다 덤으로 얹혀가는
짧게 쓰고 치워지는 알바채용 난무 아래
근무지는? 잉여인간이요, 막차를 기다리듯
마음이 절뚝절뚝하다 청춘이 다 누수된 양 -이은주 「샘플 인생」 전문, 『오늘의시조』 (2016년 제10호)
아르바이트는 일본에서 학생들이 본업인 공부 외에 가외로 학비나 용돈을 버는 일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학생들의 돈벌이, 또는 부업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아르바이트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 땅의 청년들의 생계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찌 청년들뿐이겠는가? 장년층뿐 아니라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정규직을 얻지 못한 이 땅의 많은 노동자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르바이트는 우리나라의 실업률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어가 된 지 오래되었다. 시인은 ‘그녀’의 출근길을 따라 가고 있다. 거의 다 써서 거꾸로 ‘물구나무’ 세워둔 ‘샘플 병’의 화장품을 그것도 ‘콕콕콕 두드려’ 바르는 ‘그녀’는 아르바이트 중이다. ‘우루루 들러리나 서다 덤으로 얹혀가는’ ‘잉여인간’이라 자신을 지칭하고 있는 ‘그녀’, 자신의 생을 ‘샘플스럽다’라고 한탄하고 있는 ‘그녀’는 ‘청춘이 다 누수’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르바이트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그것마저도 불안하다. ‘샘플 병’에 담겨 있는 화장품이 ‘콕콕콕 두드’릴 만큼 거의 없다는 것과, ‘짧게 쓰고 치워지는’ ‘잉여인간’ ‘막차를 기다리듯’ 이런 구절들은 ‘그녀’가 지금의 아르바이트도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런 구절들이 아르바이트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현재의 불안한 ‘그녀’를 상징하기도 하여 제목인 ‘샘플 인생’에 귀결된다고 본다면 시인은 치밀하게 언어들을 골라 배치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절뚝절뚝’하는 소리가 참 아프다.
육천 원 시급도 좋고 밤새워도 좋은데 오 년 된 양복 한 벌 옷소매를 만져본다 -돈 쪼매, -통장에 넣었다 눅진해진 전화기
흔적을 품고 있는 피로한 새벽공기 지난날의 찐득함은 걸음마다 눌러 붙고 훅, 씹힌 생강 맛처럼 봄바람이 싸하다 -정옥선 「찬 봄」 전문, 『정형시학』 (2017년 봄호)
「샘플 인생」에서 불안했던 아르바이트는 「찬 봄」에서는 차라리 호사다. ‘육천 원 시급도 좋고 밤새워도 좋은데’ 육천 원 시급의 아르바이트도, 밤새워 일하는 힘든 직장도 구하지 못한, 어쩌면 구할 수 없는 그는 오 년째 구직 상태이다. ‘-돈 쪼매,/-통장에 넣었다’는 전화기 속의 부모님 목소리는 그와 더불어 독자를 눈물 나게 만든다. ‘눅진해진 전화기’는 가히 이 작품의 백미다. 그 속에는 부모님의 눈물도 그의 눈물도 함께 흘러 끈끈하다. 심각한 실업률이 한 개인을 넘어 한 가정의 아픔이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임을 이 구절은 환기시킨다. ‘취준생’ ‘공시생’이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된지는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청년들을 공무원 시험으로 내몰고 있다. ‘공시폐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워낙 높다보니 ‘3년은 필수, 5년은 기본, 7년은 선택’이라는 말마저 나돈다. 공무원 시험 뿐 아니라 대기업 도전에도 3수, 4수하는 젊은이들이 허다하다. 지방의 중소기업에도 어마어마한 스펙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그’를 통해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따뜻한 바람이 살랑거리는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림 속의 봄은 차갑기만 하다. ‘생강 맛처럼’ 그것도 ‘훅, 씹힌’ 그 맛에 ‘봄바람이 싸하다.’ 촉각의 미각화라는 공감각이 절묘하게 이 그림의 배경으로 들어앉아 작품의 품격을 높인다. 그리고 그 봄바람이 ‘새벽공기’이기 때문에 더욱 차갑다. 희망을 상징하는 밝아오는 새벽이 아니라서 그 차가움은 배가 된다. 시인은 부모님과 전화를 한 첫째 수의 늦은 시간과 둘째 수의 시간적 배경 사이(‘새벽공기’)에 많은 시간적 간격을 두어 그의 아픔을 더 진하게 그리고 있다. 눅진함과 찐득함을 날려줄 따뜻하고도 신선한 봄바람을 기대한다. ‘봄바람’ ‘새벽’이 원래 가지고 있는 그 의미로 되돌아갈 날을 고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행간마다 총총하다.
공치는 날 다반산데 비오는 날 또 다반사
우의 없이 알몸으로 허공을 잇대보지만
빗물만 오종종 매달려 눈물처럼 글썽인다 -김종연 「거미줄」 전문, 『나래시조』 (2016년 가을호)
거미줄에 먹잇감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모습의 거미는 이미 일자리에 있어서는 ‘을’로 전락해버린 구직자의 은유이다. ‘공치는 날 다반’사인데 거기다가 비까지 오는 날을 더하면 거미의 삶도 일용직 노동자의 삶도 더 팍팍해진다. ‘우의’ 도 없고 가진 것 없어 ‘알몸’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다림뿐이다. ‘허공을 잇대’보지만 돌아오는 것이 없다. ‘우의’ ‘알몸’ ‘허공’은 그들의 현재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 시어들이다. 시인은 결국 종장에서 ‘빗물’과 ‘눈물’을 동일시하여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을 거미에 비유한 작품인데 제목을 ‘거미’라 하지 않고 ‘거미줄’이라했다. ‘거미줄’은 거미의 일터이다. 시인은 실업의 문제가 구직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일터, 즉 사회 구조에 있음을 ‘거미줄’이라는 제목으로 역설하고 있다. 구직자는 넘쳐 나는데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최고의 문제점이라는 것을 이 한 편의 단수는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가진 것 없고, 스펙 없고, 배경 없는 그들에게도 그의 능력에 적합한 일자리가 넘쳐나 비오는 날이 공치는 날이 아니라 휴식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힘 자랑 하지 말란 벌교를 끌어 와서 밑천인 몸뚱이를 명함처럼 내어 걸고 수원역 뒷골목에서 사내들이 서성인다
공사판 굴러먹다 굳어버린 그 바닥에 정년은 정규직만큼 낯설고 먼 나랏일 오십줄 홀아비 김씨 끝자락에 붙어있다
화창한 추석 하늘 긴 연휴가 무거운 듯 아련한 먼 고향 길 화투 패로 날린다 몇 봉지 카스텔라가 송편 대신 놓여 있다 -인은주 「벌교 용역」 전문, 『오늘의시조』 (2016년 제10호)
「거미줄」이 단수의 묘미를 최대한 살린 작품이라면 「벌교 용역」은 연시조의 효용에 충실한 작품이다. ‘벌교에서는 힘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항일운동과 관계가 있든, 「태백산맥」과 관계가 있든 그것은 이 작품에서 중요치 않다. ‘벌교 용역’이니 가히 힘 센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밑천’이 ‘몸뚱이’인 것이다. ‘오십줄 홀아비 김씨’는 ‘공사판’에서 뼈가 굳은 사람이다. 몸뚱이를 밑천으로 열심히 일해 온 그에게 ‘정년’과 ‘정규직’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정년이 너무 일러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 비해 ‘오십줄 홀아비 김씨’는 아직도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어 살아야하는 신세다. 그에게 ‘정년’은 없다. 그러나 ‘끝자락에 붙어있’는 그는 그것마저도 언제 끝날지 몰라 불안한 상태이다. 「거미줄」의 ‘공치는 날’ ‘비오는 날’은 「벌교 용역」에서는 ‘긴 연휴’로 표현되었다. 그것도 ‘화창한 추석 하늘’이다. ‘화창한’과 ‘무거운’이 ‘카스텔라’와 ‘송편’이 대비되어 그 슬픔이 더욱 진하다. ‘사내들’에서 ‘오십줄 홀아비 김씨’로 인물을 구체화하고 마지막 수에서 주제를 부각시킴으로써 연시조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이 이 작품에서도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음은 작가의 현실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성 공원 벤치 위에 헌 신문지 누워 있다
지난밤 한 사내가 두고 간 종이 이불
얼룩진 눈물 자국들 별이 와서 덮는다
울분에 만취한 술 운전면허 백지 되고
행여나 광고지 속 보석 하나 캐내 볼까
두 눈을 부릅뜨지만 엇나가는 스펙들 -오은주 「버려진 신문지 한 장」 전문, 『시조21』 (2016년 여름호)
“노숙하는 분들이 신문을 덮고 자는 경우가 많던데 신문 종이가 따뜻해서 그런가요?”“신문용지 자체가 두껍기보단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다른 종이들보다 친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겠죠.” EBS 라디오 ‘사물의 재발견’ 프로그램에서 ‘신문’을 다루면서 나온 대화이다. 이불 한 장 구할 수 없는 노숙자에겐 쉽게 얻을 수 있는 신문이 곧 이불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신문은 그들에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동아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황성 공원 벤치 위에’ 놓인 ‘헌 신문지’에서 작품을 시작한다. 이 ‘종이 이불’에서 ‘얼룩진 눈물 자국들’을 본다. 그리고 둘째 수는 이 ‘얼룩진 눈물 자국들’을 풀어쓰고 있다. 시인은 노숙자가 남기고 간 흔적을 따라 읽는 방식을 취해 노숙자의 아픔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련함을 보인다. 번잡한 경주역이 아니라 비바람도 피할 수 없는 ‘황성 공원 벤치 위’가 노숙의 장소이다. ‘황성 공원 벤치 위’는 ‘별이 와서 덮는다’라는 다소 서정적인 구절과 잘 조응하고 있다. 사회나 국가가 노숙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별의 위로가 더욱 애틋하다. ‘한 사내’는 덮었던 ‘신문지 한 장’마저 버리고 어디를 또 헤매고 있을까?
장미 대선이 한창이다. 대통령 후보자들은 저마다 실업률을 해결하겠다고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재원이 문제라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공허하다. 그들의 공약들에 비해 시조는 따뜻하다. 시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외롭고 힘들고 슬프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격려하는 시선과 상처를 드러내어 공유하고자하는 마음이 행간마다 자리하고 있어 따뜻하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내일이 있음을 시조를 통해 본다. 일자리 고민이 없는 행복한 나라, 능력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는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시조가 더 힘을 보태기를 응원한다.
-《시조21》 2017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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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희경샘, 시조도 잘쓰시고 평론도 잘쓰시네요~
평론 올려주신 임성구 부회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