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힘으로 끝까지 외 1편
김광기
추수를 끝낸 벼 밑동에서 파랗게 올라오는
싹들을 보며
언젠가 무 윗동을 접시에 담아놓았더니
책장 턱에서 푸르고 성하게 싹을 밀어 올리다가
꽃까지 피워내는 생명력을 보고 놀랐던
기억을 떠올린다.
생명이 남아있는 것들, 계절에 따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도 않고
남아있는 힘으로 끝까지 싹을 틔우고 있다.
시리게 쓸쓸해지는 가을,
가지는 시들어가고
잎들은 누렇게 물들고 있는데
스산한 담장 가에서 빨갛게 꽃을 피우고 있는 장미들
아직 꽃 피울 여력을 보이며
낙엽이 지고 있는 거리를 밝히고 있다.
나무꽃
푸르른 녹음이 짙은 한여름에도
나무는 뜨거운 공간에
고사리 같은 손까지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허공을 움켜쥐는 듯한
새순 다발을 꽃처럼 휘날리며
나무는 씨앗을 날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가을이 오고
모든 이파리 몸을 떨구겠지만
나무는 마지막까지
허공을 쥐었던 아귀의 힘을 기억하며
내년 봄에는 버젓한
어른 손이 될 새순을 들이밀 것이다.
흔들리는 바람을 타며
다시 악수를 청하며
푸르른 녹음의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사이
고사리꽃 같은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시와경계> 202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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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힘으로 끝까지 외 1편 / 김광기
문학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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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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