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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이 홍사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계절이 입덧을 시작했던 모양이다.
뭐에 그리 바빴는지, 그걸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계절이 바뀐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직은 봄인데 새벽부터 후덥지근했다. 입하가 지났는가? 모르겠다.
이젠 날리던 송홧가루도 사라지고 기온은 껑충 뛰어 계절은 드디어 여름을 잉태해서 만삭이다. 나도 모르게 계절의 불룩한 아랫배를 나는 쓰다듬고 있었다.
올해 봄은 날씨가 유별나게 가물어서인지 송홧가루가 참 지독했는데 지난밤 잠깐의 소나기로 인해 말끔히 사라졌다. 소나기는 소나기일 뿐, 대지를 푹 적셔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올봄에는 꽃가루로 인해 알레르기 비염도 심하게 앓았는데 이제 비로소 코로 숨을 쉴 수가 있고 신록이 눈에 들어온다. 곧 여름이 될 것이다.
창 너머로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금오산을 바라본다.
노트북이 있는 책상으로 돌아앉으면 창 너머로 금오산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은 장애물이다. 뭔가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는 게 창이다. 단절이나 차단이 그 목적이겠지만, 목적에 충실한 창은 냉정한 물건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가끔 금오산 정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산정에 올라갈 기회가 있을까, 혹시 이번 생에 있어서 저 산정에 올라갈 수 없는 게 아닌가? 시곗바늘에 묶인 보이지 않는 밧줄이 자꾸 내 목을 조여오는데, 어쩌면 정말 마지막 등산은 이미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도 불안한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번 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일삼아서 한 번 올라가야지.
사무실에서, 나는 책상 두 개를 ㄱ자로 배치하고 쓴다. 업무용 책상은 동쪽으로 향해 있고 노트북이 있는 보조 책상은 남쪽을 향해 놓여 있다. 의자는 하나를 쓰는데 업무용 책상에서 장부를 정리하다가 노트북을 켜려고 돌아앉으면 창 너머로 낮게 드리워진 구름 위로 금오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금오산 정상은 현월봉이라 부른다.
다리에 힘이 모자라면 기어서라도 저 정상에 한 번 올라가야지.
그런 다짐을 하게 하는 산은 나에게 있어서 불편한 존재다. 창으로 보이는 금오산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새벽에 오는 문자 메시지는 뭔지는 모르지만, 항상 불길한 예감이 든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직감대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철환이라는 친구의 부인이 숟가락을 놓았다는 부고였다.
아, 최 철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디를 가나 말수가 적은, 조용한 친구다. 이 친구가 어중간한 나이에 부인을 잃었으니 어떻게 살아가나? 죽은 친구의 부인보다 친구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는 바로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깨춤을 춘다는 말이 있는데, 그럴 나이는 이미 지났다. 참으로 어중간한 나이다. 경제력 보고 붙을 여자는 있어도 사람보고 사랑 타령할 여편네는 없을 나이다. 조강지처가 요긴해지는 나이다.
아, 이젠 죽음이 주위에서 가까워지는 나이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상의 부고를 받았는데 이젠 아니다. 짚어보니, 먼저 간 친구들도 몇이 있다. 우리 친구들 차례가 되었구나.
그 생각을 하니 털컥, 눈앞에 창살이 생겼다. 내 마음의 감옥에 스스로 갇힌 것이다. 감옥에 갇혀 금오산 산정을 바라보았다.
부인을 먼저 보냈다는, 그 친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기다. 고등학교를 나는 도회로 나오고 그 친구는 고향의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 친구는 수도권에 살고 있어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명절이라고 고향에 내려오는지 모르겠다. 부고에 코로나 시국이라 문상은 정중히 사양한다, 고 적혀 있었다, 물론 이 친구가 직접 보낸 문자 메시지는 아니다. 동기회의 총무가 보낸 것이다. 유명을 달리한 친구 부인의 얼굴도 모르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요즘에는 부고도 그렇지만, 결혼식도 문자 메시지에 계좌번호를 보내는 세상이 되었다. 특별한 일도 아니다. 코로나가 남겨준 문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코로나가 끝나면 경조사 문화가 많이 바뀔 것 같다. 문화는 고여있는 상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태다. 시류에 따라야지. 문상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했으니 계좌로 얼마를 보내 마음을 전해야 하겠다.
그건 그렇고 금오산은 언제 도전할까?
이런 문제는 마음먹고 준비하면 결국 가지 못한다. 경험상 그렇다. 벼르기만 하지 말고 아무 날이나 그냥 뒷산 산책하는 기분으로 시작해야 성공할 수가 있다. 당장 오늘 올라갈까? 오늘은 할 일이 뭐가 있더라?
턱을 괴고 곰곰이 오늘의 일정을 짚어보았다.
얼마 전에 미니 굴삭기를 샀다, 그게 내 몫이다. 미니 굴삭기를 사는데 의견이 분분했다. 아이들 장난감보다 조금 큰 것인데, 이걸 사자고 하니까 기사들이 반대했다. 운전석이 없는 장비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운전석이 오픈되어 있어서 춥다. 지금 가지고 있는 굴삭기는 모두가 전자식 최신형이다. 운전자 편의 시설이 되어 있어 일하는 환경이 쾌적하다.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이 있고 히터가 있고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미니 굴삭기는 그런 편의 시설이 없다. 굴삭기는 많은데 미니 굴삭기가 없으니 일을 따오는데 지장이 생긴다. 거래처에서 미니 굴삭기를 보내달라고 주문하는데 미니 굴삭기를 가진 사람을 연결해주면 다음부터 소식이 깡통이다. 그 미니 굴삭기 차주가 상거래 질서를 무시하고 제가 친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이다. 괘씸한 일이지만, 그렇게 빼앗긴 일이 많아서 미니 굴삭기를 사자고 기사들에게 말을 했는데 또 반대했다.
“이놈들아, 손도 대지 마라. 내가 직접 탄다.”
직접 운전을 할 각오를 하고 미니 굴삭기를 중고로 구매를 했다. 나는 굴삭기 운전 경력이 사십 년이 넘는다. 한동안 손을 놓고 관리만 했지만, 아직 손이 녹슬지 않았다. 그걸 끌고 일을 나가니 현장 관리가 저절로 된다. 물론 일감을 빼앗기는 일도 없고.
좀 힘이 들지만, 보람도 있다. 힘든 노동과 보람은 언제나 비례한다. 그런데 이 미니 굴삭기가 매일 일을 나가는 게 아니다. 일감이 그 정도로 많지 않다.
오늘도 역시 미니 굴삭기는 일이 잡히지 않았다. 오늘 할 일은 겨우 현장을 둘러보는 게 일이다. 그건 내일로 미루어도 상관없다.
오늘 금오산을 도전해도 좋을 것이다. 벼르기는 이제 끝.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고 했다. 천 가지 생각이 있어도 한 번 행동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벼르기는 이제 끝이다. 기어서라도 올라가야지. 갑자기 성질이 급하다는 소리를 듣는 내 성격이 마음에 들어 흡족했다.
뒤적거리던 인터넷을 끄고 사무실에서 집으로 올라갔다.
뭘 준비해야 하지?
산행을 하도 오랜만에 하니까,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보! 나 오늘 금오산 정상에 도전할 거야. 준비해줘!”
아내가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서면 곤란하다. 아내는 산을 나보다 훨씬 잘 탄다. 아내의 보폭에 맞출 수는 없다. 그러나 인사치레로 같이 가자고 해보았다. 아내는 대구에서 모임이 있단다. 모임? 아내의 모임은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항목이지만 오늘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밥을 먹는 동안 아내는 이것저것 준비했다. 작은 배낭을 꺼내고 물과 오이 그리고 언제 샀는지 동그란 플라스틱 반찬통에 블루베리를 담았다.
“블루베리가 벌써 익었어?”
밥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제주도에서 물 건너온 물건이라고 했다. 집의 화단에도 블루베리가 두 그루 있다. 이제 겨우 열매 모양을 갖추고 시퍼런 것이 조그맣다. 묻지는 않았지만, 제주도에서는 블루베리도 온상을 하는 모양이다. 김밥은 가다가 깁밥천국에서 한 줄을 사라고 했다. 배낭은 대충 꾸렸는데 등산용 지팡이가 없다. 아무래도 지팡이는 두 개가 있어 네 발로 걸어야 할 것인데 지팡이를 준비해주지 않았다.
“지팡이는 없나? 지팡이 없이 못 갈 것 같은데?”
지팡이는 금오산 마지막 주차장에 가면 무료로 빌려주는 곳이 있다고 했다. 별걸 다 아는 여자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았을까?
밥을 먹다가 생각하니 이 시점에 금오산엘 가면 욕이나 먹지 않을까? 누구 말마따나 아궁이 옆에 서 있는 부지깽이도 바쁘게 뛰어다닌다는 계절이다. 보리를 베고 타작하고 논을 갈고 써레질에 모를 심는 농번기다. 그러나 이젠 농번기는 옛말이다. 농기계가 좋아서 농번기인지도 모르고 나가 보면 벌써 들판에 모를 다 심은 경우가 허다하다.
시대가 정말 좋아졌다.
옛날에는 무논에 들어가 한창 모를 심을 나이의 아주머니들이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낀 채 금오산 올레길을 잰걸음으로 돌며 체지방을 태우고 몸매를 가꾸는 시대가 되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변했다. 얼마나 좋은 시대냐?
아침밥을 먹는 동안 아내가 배낭을 다 꾸렸다. 이젠 출발이다.
산아 거기 있거라! 내가 간다.
마당에 나와서 금오산을 보며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차를 끌고 십오 분이면 금오산 맨 위의 주차장에 닿는다.
메뚜이야다짜비!
금오산 주차장에 도착해서 처음 떠올린 말이다.
미얀마 말로 오랜만이라는 말인데 기억의 저편에 있던 그 말이 불쑥 떠올랐다. 지척에 살면서도 금오산은 정말 오랜만이다. 일단은 주차장 관리소에서 지팡이 두 개를 빌렸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이 이름만 적어놓고 가져가면 되는 시스템이다. 지팡이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잔뜩 꽂혀 있었다. 평일이라 지팡이를 빌려 간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물을 한 모금 마셔 입을 축이고 배낭을 멨다. 정상까지는 거의 사 킬로다. 가파른 계단을 지겹도록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정상을 밟고 나면 창 너머로 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겠지.
한 걸음을 가면 정상이 한 걸음 가까워진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치를 떠올리며 걸음을 떼었다. 운동을 나왔는지 반바지 차림에 뛰어 올라가는 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무리하지 않았다. 체력을 아끼며 최대한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금오산은 폭포까지 새벽 운동한다고 다닌 적이 있다. 그게 정상의 삼 분의 일 지점이다. 새벽 운동 코스로는 적당하다. 새벽에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적당히 땀을 흘리고 들어가 씻고 아침을 먹으면 가뿐하다. 오늘도 공기는 쾌적하다.
봄 가뭄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폭포에는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삐쩍 말라 있었다. 물이 없는 폭도가 훙물처럼 보인다는 걸 이제 알았다. 그러나 산에서 보는 하늘과 공기는 싱그러웠다.
폭포를 지나고 할딱고개에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옛날에는 그 길을 돌부리를 피해서 오솔길로 미끄러지면서, 올라가야 했는데 언제 보니 계단을 설치했다. 할딱고개까지 대충 한 시간이 걸린다. 거기까지는 산을 잘 타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할딱고개에 올라서니 새벽에 출발했는지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할딱고개를 올라서면 너럭바위가 있어서 올라가는 사람이나 내려오는 사람들은 대충 그곳에서 좀 쉬어 가는 곳이다. 올라온 길이 다 보이고 시내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계단을 올라오면서 몇 번이고 쉬다가 왔다. 평일인데도 등산객이 많은 편이었다. 요즘 처녀들은 등산할 적에 꽉 조이는 바지도 아니고 스타킹도 아닌 것을 입고 온다. 운동을 할 적에 입는 것인 모양인데 저런 옷의 이름을 모르겠지만 남에게는 참 불편한 옷이다. 뒤따라 계단을 오르면서 앞을 보면 그런 옷을 입은 처녀들 육감적인 엉덩이가 바로 얼굴 앞에 있다. 그걸 보고 바짝 따라붙기가 민망해서 먼저 보내고, 또 먼저 보내고 쉬엄쉬엄 올라왔다.
너럭바위에 앉아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시내를 내려다보다가 옆에 앉은 무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듣고 있다는 걸 의식했는지 나를 힐끔힐끔 보며 나에게 충분히 들릴 정도의 크기로 이야기를 했다. 한 남자가 울산에서 왔다는 부부에게 금오산에 관해서 설명해주었다. 정상 부근에 올라가면 오형석탑이라고 있는데, 오형석탑? 처음 듣는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최근에 누가 만든 것인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오형석탑이 있는 자리에 가면 시내가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라 하면서 슬픔이 어린 탑의 사연을 말해주는 걸 옆에서 들었다.
탑을 조성한 사람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했다. 이야기로 들어서는 오륙십 대쯤 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탑을 조성한 사람은 코오롱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했다. 손자가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정년에 가까운 나이였을 것이다.
손자가 있었다?
있었다는 과거형으로 입을 열었다.
손자의 과거형? 뭔가 낌새가 이상하고 불길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 손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이학년쯤 되었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어린 나이에 왜 죽었는지 그 연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했다. 그 손자가 죽자 할아버지가 되는 위인은 회사를 그만두고 금오산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금오산에서 천막생활을 하면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정상 부근의 너럭바위 위에 돌탑을 쌓았다고 했다. 손자의 넋을 기리는 마음으로 돌 한두 개씩 날라서 공들여 탑을 쌓은 모양이다. 탑은 한두 기가 아니라 어른 키 높이로 여러 개인데 금오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라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블루베리를 좋아해서 부근 숲에 블루베리 나무를 심어서 블루베리 군락지를 이루었고 그게 익으면 등산객들이 따 먹고 간다고 했다, 나는 앉은 채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금오산은 자주 오느냐고, 생뚱맞은 내 질문에 그 양반은 가끔 온다고 했다.
이야기를 거기까지 듣고 숙연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그런 연유로 최근에 쌓은 탑이 있다는 걸 몰랐다.
손자를 잃고 얼마나 참담했으면 탑을 쌓을 생각을 했을까? 내가 알기로는 그곳에는 굴러다니는 돌이 흔하지 않은 곳이다. 돌을 금오산 전역에서 날라야 했을 것이다. 너무 참담한 일을 당하면 화가 나거나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이야기 속의 그도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렸으면 탑을 쌓을 생각을 했을까?
할딱고개를 지나서도 돌계단은 이어졌다.
옛날에는 돌이 굴러다니는 비탈길이었는데 누군가 보폭에 맞게 돌계단을 쌓았다. 금오산을 언제 오르고 지금 왔는지 모르겠다. 기억으로는 까마득하다.
지팡이를 빌리지 말 걸 그랬나?
지팡이에 문제가 생겼다. 중간 연결부분이 자꾸 빠지는 것이었다. 높이를 조절하는 나사가 고장인 모양이다. 아무리 조여도 자꾸 연결부분이 빠지곤 했다. 지팡이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되었다. 버리고 싶지만, 안내소에 빌린 것이라 반납을 해야 하니 버릴 수도 없는 문제다. 조금 올라가면 두 번째 할딱고개가 있다. 거기까지 올라가니 벌써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당긴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정상을 찍고 나면 아무래도 며칠 동안 다리가 당길 것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숨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아니, 더 오를 수 있어. 오늘 못 오르면 영원히 올라갈 수가 없을 거야.
이를 악물고 그렇게 자문자답하면서 한 계단 또 한 계단을 올랐다. 고장 난 지팡이를 들고 그야말로 땅을 물고 올랐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한 계단을 오르면 정상이 한 계단 가까워진다. 그게 위안이 되었다. 숨이 턱턱 막히지만, 그런 인내로 오르다 보니 나무로 된 손바닥만 한 안내판에 오형석탑이라고 적어놓고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 두 번째 할딱고개를 거의 다 올라 마애석불로 빠지는 길이었다. 거기서부터는 산 옆구리로 돌아가는 평지 오솔길이라는 걸 안다. 계단 끝에 서서 차오르는 숨을 돌리고 마애석불 가는 길로 빠졌다. 그곳에는 시원한 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금오산 정상을 찍을 것 같은 예감이다.
다리는 뻐근했지만, 기분 좋은 예감이었다.
오솔길을 조금 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그곳에도 조잡한 안내판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탑을 만든 사람이 걸어둔 것 같았다. 위로 가면 마애석불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오형석탑이다.
아래쪽 길로 들어섰다.
솔숲 사이로 너럭바위에 사람들이 쉬고 있는 게 보였고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렇게 탑을 쌓으려고 얼마나 많은 돌을 날랐을까? 그 사연이 사실이라면, 돌 하나, 하나를 옮기면서 손자를 생각했겠지. 돌을 나르는데 지게 아니면 다른 도구를 쓸 수가 없는 지형이다. 가까이 가니 어른 키 높이보다 높은 탑을 여섯 기 쌓아 놓았다. A4 용지에 인쇄된 문구를 코팅해서 사연을 적어 근처의 작은 나무에 걸어 놓은 게 눈에 들어왔다. 금오산에서 오烏를 따고 손자의 이름 김형석에서 형亨을 따서 오형석탑이라 불러달라는 문구다. 아까 들은 그 사연이 사실이다. 그 안내 용지를 보고 숙연해졌다. 얼마나 가슴이 아렸으면 이렇게 탑을 쌓을 생각을 했을까? A4 용지를 보니 최근에 적은 것이었다. 이 글을 인쇄하면서 얼마나 울었을까?
가쁜 숨을 고르며 탑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구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금오산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지 싶다.
예전에 탑이 조성되기 전, 그러니까, 죽었다는 손자가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이곳에서 쉬어간 기억이 있다. 그게 몇 년 전인지도 모른다. 가장 큰 탑 앞에 합판으로 된 간판에는 탑에 돌을 더 올리거나 내리지 말라는 안내판도 있었는데, 매직으로 쓴 글씨인지라 그 글씨가 시간이 지나서인지 희미했다. 탑을 조성한 양반은 탑을 쌓는 기술에 비하면 글씨는 달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양반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세월이 더 흘러 그 양반이 손자의 곁으로 가더라도 이 탑은 남겠지. 어쩌면 그 양반은 이미 손자의 옆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너럭바위에는 대여섯 무리의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쉬고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탑에 관해서 얘기하는 무리도 있었을 것이고.
좀 쉬어가야지! 오이를 먹으면서 목을 좀 축이고.
사람들을 피해서,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너럭바위 탑 뒤로 가서 배낭을 벗고 앉았다. 등산화를 신은 발바닥이 화끈거려 신발도 벗고 다리를 뻗었다. 날씨가 화창해서 시내가 잘 내려다보인다. 산들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주고. 아무리 생각해도 날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뻐근하고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게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이는 시원하다 못해 달콤했다.
오이를 하나 먹고 너럭바위에 누워 맑은 하늘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서인지 약간의 어지러움이 일었다.
하늘이 맑고 더 넓은 초원에서 양들이 풀을 뜯는다. 초원은 싱그럽고 푸르다. 사막 멀리서 목동이 말을 타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아주 어린 미소년이다. 아마도 몽골의 초원인 모양이다. 그 뒤에 말을 타고 또 달려오는 늙은이가 있었다. 아마도 어린 목동의 할아버지인 모양이다. 혹시나 저 손자가 죽으면 할아버지는 탑을 쌓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이런 사막에 웬 전화인가?
눈을 번쩍 떴다, 사막이 아니라 너럭바위였다.
배낭 옆구리에 꽂아둔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살짝 잠이 덮쳐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아주 달콤했는데. 아쉬워 입맛을 쩍 다시며 전화를 받았다. 나를 호명한 이는 서울에 산다는 친구, 천수였다. 이 친구가 웬일이지?
친구 오랜만일세!
전화기에 찍힌 이름을 보고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상투적인 인사를 간단하게 하고 천수는 대뜸 연락받았느냐고 물었다.
무슨 연락?
철환이 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깜빡 잊고 있었다. 아침에 문자 메시지로 부고를 받았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철환이 식구가 숟가락을 놓았다는 소리는 들었어.”
자네는 부조를 좀 많이 해야 할 거야. 그 친구가 사정이 좀 딱하게 생겼거든.
마누라가 죽었으니 사정이 딱한 건 알겠지만. 어투에 그 이상의 딱한 일이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부인이 숟가락을 놓은 것 말고 무슨 다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천수는 그 친구 사정이 딱해서 경제력이 괜찮은 친구들에게만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했다. 경제력이라면 나도 별로인데, 마누라가 죽은 것 말고 뭐가 사정이 딱하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철환이는 자주 만나느냐고 천수에게 물었다. 둘 다 고향 친구이고 같은 학교를 나와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자주 만나는지 궁금했다. 철환이는 같은 시흥에 산다고 하면서 자주 만나는데 그 친구 사정이 딱해서 글로벌로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게 전화를 했다는 말을 거듭했다. 촌놈인 나는 시흥이 어디인지 말로만 들어서는 모른다. 소문이 잘 나서 나쁜 거야 없지만, 글로벌로 사업을 벌였다고 소문만 났지, 지금 좀 막막하다. 그렇더라도 사정이나 들어보고 부조를 해야지. 나도 사정이 어렵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들어보고 사정이 어려우면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야지.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 친구 부인이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이고.
철환이 부인이 지병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소식을 들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
지병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자살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
왜? 왜 그 나이에 왜 자살을 해?
내가 반문하자 천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다.
철환이에게는 늦게 낳은 딸이 하나가 있다고 했다. 아이를 몇이나 두었는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아이가 발달장애로 지금까지 누워서 지낸다고 했다.
발달장애가 뭔가?
정확히 모른다. 아무튼, 딸은 누워서 지냈단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일어서지 못했단다.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다. 삼십 년 친구의 아내가 딸의 수발을 들다가 지난달에 딸이 폐암 진단을 받았단다. 그 아이가 담배를 피웠던가? 내 질문에,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무슨 담배를 피워? 조금 큰소리로 퉁을 먹이고는 천수는 폐암은 담배와 상관이 없다고 했다.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자신도 그 약을 먹고 동반자살을 시도했는데 친구의 부인은 죽고, 딸은 응급실로 실려 가 위세척을 하고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했다.
이럴 수가?
하늘이 무심하지 않은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앉은 채 손으로 무릎을 쳤다. 그런 사실을 나는 까맣게 몰랐다. 내 친구에게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또 소름이 오싹 끼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면 둘 다 안고 가면 깨끗한데, 딸이 살았다는 게 문제라고 넘겨짚었다. 그건 불행 중 불행이다. 그럼 살았다는 딸은 누가 돌보나? 불행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철환이도 당뇨가 심해서 눈이 잘 안 보이고 썩어들어가는 발가락을 두 개나 잘랐다고 했다. 듣고 있으니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이 나왔다. 숨을 돌리고 억지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철환이는 직장에 아직 다니나?
그게 궁금했다. 지난달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몸이 아파도 다니고 싶었는데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설상가상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했다.
통화를 하면서 금오산 정상 위에 걸린 낮달을 보았다.
통화를 하는 동안, 천수는 그 딸도 죽었어야 했는데, 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깔끔하다. 그러니 계좌번호를 받았으면 부조를 좀 넉넉히 하라는 요지였다. 서울에 사는 동창들은 개인적으로 부조를 얼마하고 동기회에서 십시일반 모금해서 도울 거라고 하면서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마땅한 일이다. 친구가 그런 위기에 처하면 돕는 게 친구의 책무다.
뭔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산에서 내려가면 무엇보다 먼저 부조금부터 보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났다. 챙기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지팡이다. 이건 지팡이 구실을 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짐이다.
탑 뒤에서 돌아서 나오니 앉아서 쉬던 사람들은 한 팀만 남기고 모두 떠났다. 그런 전화를 받아서인지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마애석불 쪽으로 넘어서 정상을 가려고 오솔길로 들어섰는데 철환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숲에 블루베리 군락지가 보였다. 탑을 쌓은 사람이 심었다는 그 군락지인 모양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보니 블루베리의 작은 열매가 달렸는데 익은 것도 가끔 눈에 띄었다.
블루베리는 익으면 까맣게 색이 변한다.
죽은 손자가 좋아했다는 블루베리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할아버지가 이렇게 군락지를 만들었을까?
블루베리가 우리나라 토종 식물은 아니다.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저 열매가 있었다면 내 별명은 블루베리가 되었을 것이다. 피부가 유난히 새카매서 깜상으로 불리는 나는 블루베리라는 별명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군락지로 들어섰다. 지팡이로 넝쿨을 해치고 다니며 익은 것을 한 줌 땄다. 넝쿨을 헤치고 들어가니 익은 것이 상당히 많았다. 배낭을 뒤져 오이가 든 반찬통을 꺼냈다. 오이를 배낭에 비우고 블루베리를 한 통 가득 땄다. 마시던 물병의 남은 물로 씻었다. 그 반찬통을 들고 다시 넝쿨을 빠져나와 탑으로 갔다. 가장 가운데 있는 탑 앞에 놓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블루베리를 좋아했다는 손자의 몫이다. 탑을 쌓은 사람은 누군가 손자에게 따서 바치라고 블루베리를 심었을 것이다. 나는 불특정의 그 누군가로서 소임을 하고 있다.
친구 부인이 죽었다는데 그녀의 빈소에 꽃 한 송이 드리지 못하는 점이 죄스러웠다. 다리에 힘은 풀리지만 후딱 정상을 찍고 내려가 통장에 얼마의 여유가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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