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황복사지에는 귀부 2기가 동서로 서있는데 귀부의 등에는귀갑문(龜甲門)이 새겨져 있고 그 가운데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 임금왕자는 왕사로 책봉된 스님의 비문에 새기던 글씨이다. 또 그곳에서 비편이 출토되었는데 이 비편의 서체도 무장사터지의 아미타조상 사적비와 인각사 일연선사 비문의 서체와 마찬가지로 왕희지체(王羲之體)이다.
귀부 주변에서는 수십 점의 비석 조각(비편)들이 출토되었다. 이 비석 조각들에 새겨진 인물 기재 방식이나 관직명을 토대로, 학계에서는 황복사에 국가가 직접 운영·관리하던 사찰 관청인 '성전(成典)'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즉, 이 귀부들은 단순한 가람비가 아니라 신라 왕실과 국가가 주도하여 세운 거대한 기념비의 받침대였던 셈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신라, 특히 통일신라 왕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통치하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황복사지는 신라 효소왕과 성덕왕 등이 부왕과 신문왕의 명복을 빌며 탑을 건립한 대표적인 왕실 원찰이다. 따라서 귀부 등에 새겨진 '王' 자는 이 비석의 주인공이나 사찰의 후원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신성한 왕(왕실)'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왕권을 신성시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다.
신라 불교 사상 중에는 '왕즉불(王卽佛, 왕이 곧 부처다)'이라는 관념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찰의 가장 핵심적인 기록을 담은 비석 받침에 '王' 자를 촘촘히 새겨 넣음으로써, 불교적인 신성함과 세속의 최고 권력이 결합되어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 절과 비석은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지키는 호국 불교의 상징"이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동양 전통 문양에서 거북의 등껍질인 육각형(귀갑문)은 '우주의 질서와 하늘의 보호'를 뜻한다. 그 무수한 우주의 질서(육각형)의 중심마다 '王' 자를 배치한 것은, 왕의 지배권이 자연의 이치와 하늘의 뜻에 부합하며 우주 만물의 중심에 왕이 존재한다는 절대적 권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王' 자 문양은 고려 시대로 넘어가면 글자 형태보다는 단순한 기하학적 문양이나 꽃무늬(화문) 등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황복사지 귀부처럼 귀갑문 내에 '王' 자가 선명하게 표현된 것은 통일신라 전성기 왕실 발원 석조 미술의 아주 강렬하고 독특한 특징으로 평가받는다.
첫댓글 황복사지에는 귀부 2기가 동서로 서있는데 귀부의 등에는귀갑문(龜甲門)이 새겨져 있고 그 가운데에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 임금왕자는 왕사로 책봉된 스님의 비문에 새기던 글씨이다. 또 그곳에서 비편이 출토되었는데 이 비편의 서체도 무장사터지의 아미타조상 사적비와 인각사 일연선사 비문의 서체와 마찬가지로 왕희지체(王羲之體)이다.
거북의 머리 부분은 안타깝게도 모두 부러져 전하지 않지만, 몸통과 네 발의 조각은 통일신라 시대의 당당하고 힘 있는 기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등껍질에는 육각형의 귀갑문(龜甲文)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으며, 비석을 꽂아두었던 홈인 비좌(碑座)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귀부 주변에서는 수십 점의 비석 조각(비편)들이 출토되었다. 이 비석 조각들에 새겨진 인물 기재 방식이나 관직명을 토대로, 학계에서는 황복사에 국가가 직접 운영·관리하던 사찰 관청인 '성전(成典)'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즉, 이 귀부들은 단순한 가람비가 아니라 신라 왕실과 국가가 주도하여 세운 거대한 기념비의 받침대였던 셈이다.
비석 받침돌인 거북의 등에 새겨진 이 '王' 자는 단순히 글자를 적어 넣은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 시대의 사상적 배경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고도의 시각적 장치이다. 크게 3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신라, 특히 통일신라 왕실은 자신들의 권위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통치하는 이상적인 제왕인 '전륜성왕'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황복사지는 신라 효소왕과 성덕왕 등이 부왕과 신문왕의 명복을 빌며 탑을 건립한 대표적인 왕실 원찰이다. 따라서 귀부 등에 새겨진 '王' 자는 이 비석의 주인공이나 사찰의 후원자가 '천하를 다스리는 신성한 왕(왕실)'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왕권을 신성시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다.
신라 불교 사상 중에는 '왕즉불(王卽佛, 왕이 곧 부처다)'이라는 관념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찰의 가장 핵심적인 기록을 담은 비석 받침에 '王' 자를 촘촘히 새겨 넣음으로써, 불교적인 신성함과 세속의 최고 권력이 결합되어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 절과 비석은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지키는 호국 불교의 상징"이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동양 전통 문양에서 거북의 등껍질인 육각형(귀갑문)은 '우주의 질서와 하늘의 보호'를 뜻한다. 그 무수한 우주의 질서(육각형)의 중심마다 '王' 자를 배치한 것은, 왕의 지배권이 자연의 이치와 하늘의 뜻에 부합하며 우주 만물의 중심에 왕이 존재한다는 절대적 권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王' 자 문양은 고려 시대로 넘어가면 글자 형태보다는 단순한 기하학적 문양이나 꽃무늬(화문) 등으로 변해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황복사지 귀부처럼 귀갑문 내에 '王' 자가 선명하게 표현된 것은 통일신라 전성기 왕실 발원 석조 미술의 아주 강렬하고 독특한 특징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