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명 화가들의 쥐(鼠)그림
2020년은 십이지(十二支)의 첫해인 경자년(庚子年), 흰 쥐의 해이다. 쥐는 평생 앞니가 자란다고 한다. 생존하려면 항상 뭔가를 갉아야 한다. 근면이 숙명인 셈이다. 때문에 주로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그려진다. 또 임신기간이 20일 이내로 짧은, 다산(多産) 능력 때문에 부(富)를 가져다 주는 동물로도 등장한다.
십이지 열두 동물가운데 가장 몸집이 작고 보잘것이 없지만 부지런함과 영민함과 풍요의 상징이 되어온 쥐! 2020년은 쥐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세다는 흰 쥐의 해인만큼 희망과 기회의 소중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며 조선시대 유명 화가 네 분의 쥐 그림을 올린다.
(1) 申師任堂(1504~1551) : '수박과 들쥐' (2) 謙齋 鄭敾(1676~1759 ) : '서과투서(西瓜偸鼠)'
(3) 玄齋 沈師正(1707~1769) : '서설홍청(鼠齧紅菁)' (4) 毫生館 崔北(1712-1760) :'서설홍청(鼠齧紅菁)'
(1) 신사임당
신사임당(申師任堂)/ 수박과 들쥐/ 16세기
草蟲圖 10폭병풍 중 2폭/ 지본채색/ 34x28.3cm/ 국립박물관 소장
신사임당의 초충도 10폭 병풍 중 두 번째 폭이다. 작품에 있는 식물과 곤충의 뜻을 살펴보면, 오른쪽 패랭이꽃은 꽃말이 ‘청춘’이다. 나비는 장수를 비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쥐는 우리 옛 그림에서는 재물을 상징한다. 왼쪽 아래에서 올라와 중앙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는 수박 줄기는 ‘뜻대로 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초충도(草蟲圖)
초충도 / 지본채색/ 각 34.0X28.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사임당(1504~1551)의 초충도(草蟲圖)는 비슷한 구도의 초충(草蟲)이 그려진 여덟 폭의 그림과 그림 양옆으로 신경(文人)과 오세창(吳世昌)의 발문이 함께 배접된 열 폭짜리 병풍이다. 각 폭마다 화면의 중앙에 두세 가지의 식물을 그린 다음에, 그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풀벌레를 적당히 배치하여 좌우 균형과 변화를 꾀하였다. 이 <초충도>는 형태가 단순하고 간결하여 규방(閨房)의 여성들이 필수적으로 하던 자수(刺繡)를 위한 밑그림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여러 가지 식물과 풀벌레를 실물에 가깝게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섬세하고 선명한 필선으로 묘사하여 여성 특유의 청초하고 산뜻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2) 겸재 정선
겸재 정선/ 서과투서(西瓜偸鼠-수박 훔치는 쥐) / 18세기
견본채색/ 30.5x20.8cm/ 간송미술관 소장
노대가의 눈에 비친 따스한 일상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그림은 굳세고 반듯하며 당당하다. 서릿발처럼 삼엄한 필치로 그려낸 금강산의 백색 화강암봉, 거칠게 쓸어내린 박연 폭포의 검푸른 수직 절벽, 호방한 적묵의 인왕산 바위 등은 한결같이 헌헌 장부의 장쾌한 기상과 무게를 보여준다.
그런데 겸재 그림에 대한 이런 선입관을 일거에 바꾸어 놓는 그림이 있다. 바로 <서과투서(西瓜偸鼠)> 이다. 그림의 소재부터 산수화의 대가인 겸재의 작품이라고는 쉽게 믿겨지지 않을 뿐더러,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나 섬세한 세부 묘사는 다분히 여성적인 미감이다. 그래서 만약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이 그림을 보았다면, 대개는 신사임당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신사임당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수박과 들쥐>가 연상된다. 하지만 이 그림은 분명 겸재의 그림이다. 그것도 70대 후반의 만년작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겸재'라고 쓴 관서의 필치는 원숙한 노필이며, 음각으로 '정선'이라 새긴 두 방의 인장은 겸재가 70대에 주로 사용하던 인장이다.
들쥐 한 쌍이 큼지막한 청수박을 훔쳐먹고 있다. 수박 속은 벌써 여러 날 들락거린 듯 연분홍빛으로 곯아 있고, 이제 막 긁어낸 조각들은 싱싱한 선홍빛을 띄고 있다. 수박 속에 들어가 먹고 있는 쥐와 밖에서 머리를 쳐들고 망을 봐주는 다른 쥐의 묘사도 정확하고 세밀하다. 눈동자와 자세를 통해서 쥐의 심리상태까지 읽어 낼 수 있을 정도다.
화면 구성 또한 허술함이 없다. 화면 가운데 주제인 수박과 쥐를 배치하여 무게 중심을 잡고, 탄력있게 휘어진 연녹색 수박덩굴을 화면 밖까지 올렸다. 또한 화면 오른 쪽에서 뻗어 나온 붉게 단풍든 바랭이풀과 아래쪽의 푸른 빛 달개비꽃 한 무더기를 호응시켜 화면을 보다 다채롭고 자연스럽게 꾸몄다.
(3) 현재 심사정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서설홍청(鼠齧紅菁)
지본담채/ 23.5x21.3cm/ 간송미술관 소장
玄齋 沈師正(1707~1769)은 소론과 노론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었다. 심사정은 역적 가문에서 태어나 온갖 천대와 멸시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았으며 화가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쥐와 붉은 무의 이 그림은 조촐하면서도 격의 없이 소소한 기쁨을 건네준다. 쥐가 밭의 채마를 쏠아 서리를 하는데도 그걸 보는 마음은 그저 귀엽기만 하다.
화면 중앙에 잎이 무성한 배추 한 포기가 있고, 그 왼쪽에는 두 개의 순무(또는 홍당무)가 반쯤 땅 위로 나와 있다. 이 중 큰 뿌리에 회색빛의 쥐 한마리가 매달려 파먹고 있고 그 뿌리에서 꽃대 하나가 길게 올라가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땅에는 작은 꽃들이 무성하다. 맨 오른쪽의 잎 앞면은 먹빛에 가까운 녹색으로 칠하고, 잎 뒷면은 점 더 엷게 칠해 잎이 뒤집어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엷게하여 머리와 몸통의 색채가 서로 다른 모습을 자연스럽게 나타냈다.
화면 왼쪽 상단에 예서(隸書)로 화제(畵題)가 쓰여 있다.
暮年落筆 不如少時細畵 可恨也已
(노년의 붓솜씨가 젊은 시절의 세화만 못하니 한탄스러울 뿐이다.)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 서설홍청(鼠齧紅菁)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서설홍청(鼠齧紅菁)
(4) 호생관 최북
호생관 최북(毫生館 崔北/ 서설홍청(鼠齧紅菁-쥐가 홍당무를 파먹다)/18세기
지본채색/ 20x19cm/ 간송미술관 소장
호생관 치북(毫生館 崔北 :1712년 ~ 1760)은 조선 숙종, 영조 때의 중인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인 북(北)자를 반으로 쪼개서 자를 칠칠(七七)로 지었으며, 붓(毫) 하나로 먹고 산다(生)하여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 지었다.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이 많았고 폭주가이며 여행을 즐겼다. 그림을 팔아가며 전국을 주유(周遊)하다가 금강산 구룡연에 이르러 "천하의 명사가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최북은 외눈이었다.어떤 지체 높은 사람의 그림 요청을 거부했는데 그가 위압적으로 강요하자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나를 저버리겠다"며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렀다. 열흘을 굶다가 그림 한 점을 팔아 술을 사 마시고는 눈구덩이에서 얼어죽은 것은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최북은 자신이 49세에 죽을 것을 알고 자를 칠칠(7x7=49)로 했다는 설도 있다.
최북은 산수. 인물, 영묘, 화훼, 괴석, 고목을 두루 잘 그렸는데 특히 산수와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산수(崔山水) 혹은 최순(崔鶉) 즉 최메추라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필법이 대담하고 솔직하여 구애받은 곳이 없었으며 남화(南畵)의 거장인 심사정과 비길만한 인물이다.
호생관 최북은 '서설홍청(鼠齧紅菁-쥐가 순무를 파먹다)'에서는 아호를 생은재(生隱齋)라고 썼다. 생은재라는 뜻은 '생을 은밀하게 도모하는 지경'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북이 그린 서설홍청은 쥐가 붉은 순무를 갉아 먹는 모습인데 볼성사납지 않고 볼만한 그림이다.
땅속 뿌리열매인 순무에 올라탄 쥐는 마치 실뿌리가 자자한 무의 아래쪽을 향해 포복하듯 혹은 큰절하듯 무를 갉고 쏠아댄다. 그림속의 순무를 홍당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홍당무의 잎사귀는 그림의 잎사귀와 다르게 생겼다.
이 그림은 설치류인 쥐가, 평생 자라는 이빨로 홍복의 상징인 순무를 쉼 없이 갉고 쏠아대는 것은 그대로 복락을 집안에 들여 쌓으라는 기원으로 보고 있다.
최북은 생기발랄한 표현을 위해 순무는 허공엔 듯 무청이 들리고 이런 순무의 아랫도리를 쏠아대는 쥐는 눈빛에 총기가 어리고 털이 촘촘하게 서서 함치르르하다. 무의 아랫쪽을 향해 쥐의 머리가 향하고, 순무의 무청을 향해 쥐의 아랫도리가 마주한다. 쥐꼬리는 호기롭게 순무의 푸른 무청과 두동지듯 어울리는 맛이 새뜻하다.
홍당무 순무
첫댓글 쥐의 벼슬은 생원이 전부였던가요?
어릴때 어른들이 쥐를 서생원이라고 하던 생각이 납니다.
저도 어른들이 '서생원'이라 높여 부르는 소리를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왜 쥐에게 '생원'벼슬을 붙여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시원한 대답이 없네요.
복 많이 누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