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無不通) 연개소문이 강소성에서 당 설인귀 부대를 쳐부수다
네티즌 필명 “思無不通”님이 중국 사이트에서 찾아낸 내용을 재정리하여 올려드립니다 思無不通님의 노력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자료를 보완해 주신 道不遠人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동이대륙사의 흔적은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할 것이다"
(운영자 당부 말씀)
정사의 내용이 아니므로 단순참고 바랍니다 거품을 물며 달려드는 그들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합니다 소설이라 하여도 좋습니다 조건없이 단순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요 약)
강소성 숙천자치정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 내용중 장산삼림공원(嶂山森林公园) 소개부분을 보면
고구려 연개소문이 당나라 장수 설인귀와 전쟁을 하여 연전연승 하였다는 고사가 전해내려온다는 내용입니다
산동성 즉묵시에서 강소성 숙천지역까지 연개소문의 전쟁지역이었다는 말인가 ?
숙천 인근지명중 “사, 연수”지역은 장보고 친구 정연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살던 신라땅이었다
신라는 고구려의 침입에 대항하고자 당에 원군을 청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강소성은 바로 지명 “사, 로”가 있는 사로신라의 주강역이었다
(등장인물)
- 고구려 연개소문 - 당장수 설인귀 - 전쟁결과 : 고구려 연개소문이 연전연승함
산동성, 강소성에 나타난 연개소문의 전쟁지역
강소성(江蘇省) 숙천(宿遷)의 연개소문
안녕하십니까?
중국(여기서의 중국은 현 중국이 아님) 대륙 전체를 누비고 다니며 당나라 이세민을 혼내 준 연개소문의 이야기를 오늘은 강소성 宿遷(숙천, 수천)지역에서 찾아 봅니다.
숙천지역은 강소성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의 동이맹주(東夷盟主) 서언왕(徐偃王)이 이 지역에 나라를 세워 주변 36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던 바로 서주(徐州)지역입니다.
중국 5대 담수호 중의 하나인 홍택호(洪澤湖)와 락마호(駱馬湖)가 있고 그 유명한 경항운하가 지나는 곳으로서 강과 호수와 산과 평야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지역이며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가 태어난 곳입니다.
이 곳은 전에 제가 글을 올렸던 고구려 절세미인 아희와 수양제의 전설로 유명한 단양(丹陽)으로부터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개소문과 당태종 사이의 마산대전이 벌어졌던 산동성 청도시 즉묵의 남서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목적은 고구려 강성시 백만대군을 보유했고 유, 연, 제, 노, 오, 월을 다스렸다는 최치원 선생의 말을 고증하기 위해 하나하나씩 그 진실을 벗겨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숙천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장산삼림공원(嶂山森林公园)에 대한 소개가 나오는데 그 장산삼림공원안의 유적을 설명하는 곳에 연개소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在灵赭山南麓有藏军洞。 相传唐时高丽酋长盖苏文率兵入侵,唐将屡战屡败,匪寇遂深入腹地。 唐将薛仁贵领兵藏于洞中伺之。 寇至,仁贵突然出击,将敌人兵马斩获殆尽。 此处附近尚有点将台、冷饭台。 传说点将台是薛仁贵出兵打仗前点将的高台;锅框山是唐军埋锅煮饭的遗址;鏊子山是当地 百姓给唐军摊煎饼的地方;冷饭台是唐军吃饭的地方。 当时供唐军生活用水的水井有72口(现已发现6口,其中1口较完整)。
园区北端交界处有一遗址,名曰青墩。据1963年《淮阴地区考古调查》介绍 :青墩有一米多厚的汉文化层,下面有一米厚的西周文化层,面积约5000平方米。 在园区东北端交界处有一座西汉古城遗址。 古城北有清凉院,相传为唐代入侵者盖苏文扎营地。 古城西侧曾于1996年出土一古棺,棺内有头盔、护心镜、铁剑、铜茶壶等, 充分证明此处为古代兵家鏖 战之地。 当时供唐军生活用水的水井有72口(现已发现6口,其中1口较完整)。
영자산(靈赭山) 남견(南麓)에 장군동(藏軍洞)이라는 동굴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나라때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병사를 거느리고 침입을 하여 싸웠으나 당나라 장수는 고구려에 싸우면 싸우는 대로 연전연패했다. 적은 내륙 깊숙히 들어왔다.
당나라 장수 설인귀는 병사를 거느리고 이 동굴에 숨어서 적을 엿보고 있었다. 적이 다다르자 설인귀는 갑자기 출격을 하여 적병과 병마를 베고 빼앗아 위태롭게 했다.
이 부근에는 장대(將臺)와 냉반대(冷飯臺)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장대(將臺)는 설인귀가 출정전에 높은 대에 올라 장대를 세운데서 유래하며, 과광산(鍋框山)은 당군이 솥을 걸어 놓고 밥을 해 먹던 터를 말하며, 오자산(鏊子山)은 당시 백성들이 당군에게 솥을 걸어 놓고 전병을 만들어 주었던 곳이며, 냉반대는 당군이 밥을 먹던 곳이라 한다.
공원 북쪽 경계지역에 서한(西漢)의 옛성(古城) 유허지가 하나 있다.
고성 북쪽에는 청량원(清凉院)이 있는데 전하는 바에 당나라시대에 침입자 연개소문의 병사가 주둔하던 주둔지(영지)가 있다.
고성서쪽은 1996년에 출토된 고관(古棺)이 있는데 관 속에는 투구와 호심경, 철검, 동차호(구리 차 주전자)가 있어 이 곳이 고대에 병사들이 격전을 벌이던 곳이라는게 증명이 된다.
당시에 당나라 군사가 생활용수로 쓰던 우물이 72곳이 있는데, 현재 6개의 우물이 발견되었고 그 중의 하나는 정비가 끝났다.
이상이 연개소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출전 : http://www.suqian.gov.cn/sqgk/syl02.htm
차이나 강소성 지도 : http://homechina.co.kr/data/jiangsu/jiangsu.htm
또한 이 곳에서 가가운 지역에서 2002년 11월 왕묘를 하나 발굴했는데, 여기의 설명으로는 서한때의 사수왕(泗水王)묘라고 하는데 발굴된 유물을 보면 봉황의 문양이 보이며,
나무로 만든 말(木馬), 나무로 만든 돼지(木猪) 등이 눈에 띠는데
제 생각엔 동이의 맹주 서언왕이 통치했던 지역이고 또한 부여나 고구려의 5부와 관련된 동물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동이족 왕의 무덤이라 생각됩니다.
http://www.suqian.gov.cn/sswl/index.htm (사수왕릉)
(운영자주) 지명 “사 연수”는 본래 신라땅이었다(우리역사 -> 신라항목 참고)
위 연개소문에 관한 전설(?)에서 보듯이 당시 당나라 군대는 연개소문의 군대에 싸우는대로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군기가 빠진 오합지졸을 당나라군대라고 하는데 고구려 병사의 용맹앞에 맥없이 쓰러지는 저 군사가 바로 오합지졸 당나라군대입니다.
얼마나 당의 군사가 피폐하고 어려웠으면 냉반대(冷飯臺)라는 곳이 있을까요? 찬밥을 먹던 누대가 바로 냉반대 아닙니까?
차이나는 그 들의 역사를 숭상하고 이적의 역사를 말살할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만 조그만 곳에서 이렇게 역사의 진실이 줄줄줄 밝혀지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땅이 요동지역뿐이라면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진을 치고 있는 군대가 적군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 당시에 이 곳이 바로 고구려와 당의 접경지역이며 격렬한 전투지였기에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말살하려고 하지만
여기의 연개소문의 전설에서 보듯이 단양주의 전설을 보듯이 산동성 청도의 마산대전을 보듯이
바로 이 곳이 고구려의 중심지역이 아니라면 이런 전설이 남아 있겠으며 고구려가 수와 당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 할 수 있었을까요?
감사합니다
(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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