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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
어떤 사람들의 습관
히 10:22-25
류철랑
법률이 하는 일보다 습관이 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습관은 버릇입니다. 나이를 먹을수
록 습관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신앙생활을 대부분 잘하고 있지만 잘못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습관이 잘못되어서입니다.
첫째, 예배하는 곳에 잘 안 모이는 습관입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신앙생활이 건강하게 되려면 예배하는 곳에 잘 모여
야 합니다. 모임을 떠나서 교회가 없고, 모이지 않고 신앙생활은 안됩니다. 유대인이 안
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내 이
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느냐 멀리 하느냐는 모임에 충실하냐 못하냐에 달렸습니다.
둘째, 말씀을 잘 안 듣는 습관입니다.
렘22:21에 보면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
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안 듣는 것이 “네 습관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역경 중에서
나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 들으세요. 지혜 있는 자가 들으면 학식이 더해질 것입
니다. 어리석은 자가 들으면 지혜롭게 됩니다.
셋째, 기뻐하지 않고 불평하는 습관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어 원망하고 불평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
도들에게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10:10)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한다면 어떻게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겠어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매사 잘될 때만 기뻐한다면 강보에 쌓인 아기와 다를 바가 없
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나를 내버려두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
님을 믿는 자들의 앞날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그 계획이 펼
쳐지게 하려면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시
100:2). “항상 기뻐하라”이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습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
다. 잘못된 습관이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부천동광교회목사
금송아지
창 32:1~4, 행 17: 22~25
이성희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백성에게 가장 큰 실수는 금송아지를 만드는 사건입니다. 인간의
실수는 하나님의 진노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얘기하지 않고 야단치시는 것이 아니라 미리 얘기한 것을 지키지 않을
때에 노하십니다.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에서 이미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섬기
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일을 하였기 때문에 노하
십니다. 금송아지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 다시 이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
다.
1.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는 그들을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시는데 우상이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기게 되면 십계명의 1
계명에서 4계명까지 한꺼번에 어기게 됩니다. 때로는 우상과 조형물을 혼돈할 때가 있습
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텔레반 정권은 세계 최대의 불상인 바미안의 불상을 세계적 반대에도 불
구하고 폭파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의 장승이나 불상이나 단군상에 대한
견해도 다시 정립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있어
서 중요한 일입니다.
2. 모세를 신격화하는 인본주의였습니다.
모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이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가 인도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나친 인간의 신격화는 본인
에게나 하나님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아니합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제우스,
헐메스라고 신격화하여 굉장한 대접을 받습니다. 바울이 사양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이익
을 얻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자신을 신격화하고 대접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이
비 종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교주를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3. 재물을 중시하는 물질주의였다.
그들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인 금을 가지고 와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좋고 비싼 것이어야 이끌만한 신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금본위제도는 세상의 잣
대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잣대는 아닙니다. 재물과 하나님은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지폐에는 온갖 균이 득실거립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신에 자신이 얽매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신이며 우리 걸
음의 인도자이십니다.
연동교회목사
복된 장마비
겔 34:25-31
장성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비를 가지고 3가지 일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창세기 6장 이하를 보면 노아 당시의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비를 40주야 내려서 지면에 있는 것을 멸
절 시켜 버렸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통혼했기 때문이고 (창
6:1~3) 다른 하나는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기 때문(창 6:5~7)이었습니
다. 하나님께서 비로 심판의 도구를 삼으신 것입니다.
2.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열왕기상 7장에서 뒤의 몇장까지를 보면 엘리야 선지자
와 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과의 갈등내용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아합이 우상의 나라 시
돈의 공주 이세벨을 왕후로 맞아들이고 그 나라의 우상까지 들여와서 참 하나님 야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온 나라를 우상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
하기 위해서 비를 3년 6개월 간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비로서 징계하신 것입니다.
3. 때에 알맞는 비를 내리시거나 복된 장마비를 내리셔서 은혜와 복이 되게도 하십니
다. 때에 맞는 비에 대한 말씀은 신명기 11:13~15절 사이의 말씀에 약속되어 있고 복된
장마비에 대해서는 오늘의 말씀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가뭄으로 때에 맞는 이른
비가 지나 갔으니 복된 장마비를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그런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영적 장마비입니다. 대지가 메마르면 다른데서
물을 가져와서 공급할 수도 있지만 영혼이 메마른것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
다. 그러므로 더 급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복된 장마비를 맞는 것입니다. 영혼의 복된
장마비가 무엇입니까? 은혜충만, 성령충만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복된 장마비인 은혜충
만, 성령충만을 받으면 수 많은 복을 받지만 본문에 있는 것 중에 3가지만 생각해 보십
시다. 1. 평안입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땅에서 평안할찌라”고 하였습니다. 2. 자유로와집니다. 본문
27절 후반에 보면 “내가 그들의 멍에목을 꺽고 그들로 종을 삼은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
져낸 후에”라고 했습니다 자유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3. 사단의 세력에게 삼켜지
지 않습니다. 28절 후반부터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셔서 복
된 장마비와 영적 장마비를 함께 맞으십시다.
면목교회목사
성령의 인도하심
롬 8:14-17
강동수
누구의 인도를 받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과 사단의 자식으로 구분됩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
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셋째 위로 성부, 성자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구약의 역사에 함께
하시며,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 선교,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에 함께 하신 인격자
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이 성령은 절대적 능력으로 성도를 믿게 하시고 구원에 이르도
록 모든 일에 관여하시며 보호하시는 상담자요 안내자이십니다. 모든 성도는 그 분의 인
도와 지도, 능력에 따라 살아야 바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어차피 자
기 스스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성령의 인도를 받아
순종함으로 살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2.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이란 육신에 속하여 마음과 몸이 원하는 대로 사는 자들입니
다.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것은 본능에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인도
를 거절하고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면 비그리스도인과 다를 바가 없고, 더 나아가
짐승처럼 사는 것이요, 저주의 자식밖에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자기 중심
의 삶을 삽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사
실은 자신의 영광과 명예와 체면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늙은 아이가 되
지 말고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3. 신령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 됩시다.
신령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재를 인식하고 확신합니다. 성령의 내재를 인식
하지 못하거나 확신이 없다면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내재하심을 완전히 인식할
때 우리는 자신을 아낌없이 성령께 맡기고, 몸과 마음을 바쳐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
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그리스
도를 위하여 기쁨으로 고난에 참예하면 성령께서 도우사 이 고난도 극복하고 이길 수 있
도록 필요한 지혜와 능력과 길을 열어 주십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많은 경우
신앙과 믿음의 성장을 위한 특별한 기회입니다.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훈련의 기회
로 삼으면 성장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
를 맺는 사람입니다.
동신교회목사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행 18:1-11
김삼환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복음을 증거하며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
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좋은 인격을 가지고 가정과 삶의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며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 받은 사람,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
만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며 남을 섬기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눈을 뜨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쓸모 없고 보잘 것
없으며 영영 죽어 마땅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
도께서 우리의 이러한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이 은
혜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지 창조’를 작곡한 하이든도 “하나님
의 은혜를 생각하면 영혼 깊은 데서 환희가 솟아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조그
만 것도 못 참고 이해를 못하던 삶이었다 할지라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
혀 돌아가신 은혜를 생각할 때 온유해지고 어린아이 같아지고 이해하게 되고 아름답게
되는 것이 바로 성령 받은 자의 삶입니다. 이 은혜 때문에 범사에 다 평안하고 원수가
없어집니다. 시기 질투할 사람도 없고 말 한 마디에 흥분할 일도 없게 됩니다. 삶의 현
장 어디에도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면 천국 같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단비
가 우리에게 부어져서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어디에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학교에 대해 불평하고, 선생님
에 대해 불평하고 교회에 나와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항상 불안합니다. 요사이 우리 나
라에 우상숭배가 심해지고 점쟁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우상숭배와 미신에 사로잡히면 강
퍅해지고 더러워집니다. 마음이 더러워지고 음란하고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집니다. 이
더러움에서 돌아서는 길은 성령 충만함이요, 강퍅한 마음에서 돌아서는 길도 성령충만함
입니다. 우상과 사탄의 영이 거하는 사람은 땅의 것을 찾지만 성령이 거하는 사람은 하
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생
각합니다.
명성교회목사
일꾼이 받는 면류관
딤후 2:3-6
김창인
1. 군사 같은 일꾼(3-4)
하나님의 일꾼을 군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군사는 군사로되 좋은 군사가 면류관을 받
습니다. 좋은 군사는 정체성과 소속을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잘 훈련된 군사가 좋은 군사입니다. 훈련이 안된 군
사는 오합지졸 일뿐 군대로서의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잘 훈련된 군사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습니다. 즉 천하무적입니다. 군대는 엄격한 조직체로서 기강이 확립되어 있을
때 좋은 군사입니다. 기강이 해이해진 군대는 무질 해집니다. 그래서 자기생활에 얽매이
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군사가 좋은 군사입니
다. 즉 승리하는 군사입니다. 이런 군사 같은 일꾼이 면류관을 받습니다.
2. 선수 같은 일꾼(5-)
옛날 로마시대에는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열리는 경기는 유명하였습니다. 그 경기의 맥
을 이어 온 것이 오늘의 올림픽경기입니다. 이 경기에 출전하려면 아무나 하는 것이 아
니라 선수로 뽑힌 자만이 올림픽경기에 임할 수 있습니다. 선수는 하루아침에 되지 아니
합니다. 먼저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 없이 출전했다면 망신만 당할 뿐입니
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제우스 신상 앞에서 최소한 6개월 간의 훈련을 마쳤노라고 선서
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규칙을 잘 지켜야만 합니다. 반칙을 하고 우승을 하면 그것은 우승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하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마지막에는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고 우승이 주어져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3. 농부 같은 일꾼(6-)
농사는 땀을 흘린 만큼 수확을 얻게 됩니다. 게으른 농부는 거둘 것이 없어서 가난해 질
뿐입니다. 부지런하여 열심히 일하는 농부만이 풍성한 소출을 얻게 됩니다. 근면하며 성
실하게 일하는 농부에게만 가을의 결실이 약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끈기 있게 기다리
며 때에 맞는 일을 계속합니다. 끈기 없는 사람은 농사를 짓지 못하는 법입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전도를 위해서 땀흘리는 수고와 끈기가 있을 때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
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밭을 갈고 씨뿌리는 수고,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김매는 수
고, 또한 수고를 하면 곡식을 먼저 받게 됩니다. 이처럼 농부 같은 하나님의 일꾼은 면
류관을 먼저 받게 됩니다.
광성교회목사
임하소서, 성령 하나님!
행 4:23-31
박금호
성령은 믿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역사 하십니다.
1. 새롭게 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
리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께 무
엇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가정을 새롭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이 새로워지면 사회
가, 국가가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교회를 새롭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
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입니다. 교회가 그 빛을 잃어버리면 이 세상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세상을 새롭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은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입니다.
2. 치유하여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치유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상한 것과 모든 질병과 모든 고통
과 모든 연약함을 고쳐주십니다. 우리의 인격을 치료하여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의
인격이 병들고 비뚤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 있도록 치료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육체를 치유하여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육체의 심한 질
병과 연약함을 치유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치유를 우리의 삶에, 육체 가운데 실제
로 나타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치유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가정이 고
침 받지 않고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습니다.
3. 능력과 권세를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권능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능력과 권세를 주십니다. 성령의 능력
과 권세를 받지 않고서는 이 악한 세상과, 이 악한 어둠의 영들과, 이 뿌리 깊은 죄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의
능력을 간구합시다. 성령께서 주실 은혜를 사모합시다. 성령께서 임하실 수 있도록 우리
의 죄를 회개하고 깨끗하게 합시다. 세상을 사모하고 세상과 벗삼아 놀던 습관과 죄악
을 끊어버립시다. 세상을 사랑하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성령님을 보내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를 고치시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능력
을 주십니다.
광천교회목사
바벨탑
창 11:1-9, 롬 1:28-32
이성희
노아 홍수 이후에 모든 여건은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점점 동쪽으로 가서 시날
평지를 만나게 되자 인간의 힘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바벨탑은 연구결과 지구라트와
같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라트란 당시 신전으로 흔히 사용되던 건축물로 피라미드
모양에 높이가 90미터에 달한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극도의 평안을 주면 망
하게 됩니다. 번성하고 평안하게 되자 엄청난 죄를 도모하게 됩니다.
1. 인간의 이름을 남기려는 이기적 동기로 연합했습니다.
그들이 바벨탑을 쌓은 것은 인간의 이름을 남기려는 의도였습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주
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라고 합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사람 이름 높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데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시
작합니다. 인간이 우상을 만드는 것도 사실은 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높이
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만한 우상을 만들었다는 자기 표현입니다.
2. 흩어짐을 면하게 하려고 했지만 흩어지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목자가 없으면 흩어지게 됩니다. 목자 없이 아무리 뭉쳐도 힘이 없습니다.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아브
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은 재물이 많아서 함께 할 수 없고 흩어졌습니다. 첫 그리스도
인들은 핍박으로 흩어졌습니다. 우리사회에도 가난 때문에, 핍박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
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설이 많이 있습니다. 죽어야 살고, 가난해야 복
있고, 져야 이깁니다. 그런데 흩어지지 않으려니 하나님이 억지로 흩어놓으신 것입니
다. 흩어짐을 면해 보려는 인간의 의도를 하나님이 깨신 것입니다.
3. 형체는 하나님을 향하였지만 의도는 인간을 예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고 하십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위하지만 자신을 위함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자신의 명예를 위하
여 자신의 일을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내세우고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 장사를 합니
다. 요즘의 생명공학도 그렇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세계의 평화와 복지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양은 하나님을 향하지만 사람을 위한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바벨탑
을 쌓는 어리석음을 인간은 벗어나야 합니다.
연동교회목사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
고후 6:1-2
최영환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은혜에는 보통 은혜와 특별 은혜가 있
는데, 보통 은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산소, 물, 햇빛과 같이 거저 주는 은혜를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특별은혜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줌으로 그 피 값으로 구원을 얻게 해주신 은혜를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과 풍성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받을 수 있
을까요 ?
첫째, 은혜를 사모하며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여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큰 은혜를 주십니다. 엘리사가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 그의 스승 엘리야에게 매달렸
을 때 하나님께서 는 갑절의 영감을 주셨습니다. 이번 부흥성회 3일간 다른 핑계대지 마
시고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해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게 되면 삶의 목
표가 달라지고 인생관이 달라지며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아 누리는 은
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 받지 않으면 영이 죽고, 영이 죽으면 나와 내 가족에
게 이유 모를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 열심히 찬송하며 말씀을 아멘으로 받을 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찬송은 곡
조 있는 기도이며, 신앙 고백 입니다. 사울 왕이 악신이 들어 세상 근심 걱정 다하고 있
을 때, 다윗이 수금을 가지고 가서 찬송을 부르자 악신이 물러가고 평안해졌습니다. 열
심히 찬송하면 악마 사탄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뜨겁게 찬송을 하게되면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고, 이렇게 준비된 마음으로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되면 아멘으로 화답하
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장점은 주의 종 바울 사도의 말씀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
으로 받아들인 데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성회에 은혜 받으시려면 강사 목사님께서 말
씀 주실 때 아멘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악령이 물러가고 교회가 평안하여지
며 기도의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의 욕망은 물질에 눈을 어둡게 하고 받은 은혜에
도 감사치 못하게 합니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자족할 줄 모르면 감사하지 못하게 됩
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듯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은혜를 주십니
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영생을 허락 하셨고 그 소용에 따라 물질도 허락하셨습니다.
중요한 건 자족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항상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며 더 기쁘고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산성교회목사
바른 길로 행하라
사 30 :18∼22
강동수
1. 애굽의 그늘이 너희에게 쉼터가 되겠느냐?
“패역한 백성들이 계교를 베풀고 맹약을 맺으나 이는 죄에 죄를 더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재앙의 원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인간들의 잔
꾀로는 이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
길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 분의 도우심을 간구하라고 촉구합니다. 실제
로 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고서야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간구하였습
니다. 그리고 그날 밤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이 몰살하는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진정한 햇빛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진리의 태양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
도이시기 때문입니다.
2. 구원의 스승을 기다리라
존경받는 스승이 있고, 사랑 받는 제자가 있는 자는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은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나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라고 하셨습니
다. 이스라엘의 스승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
십니다. 가정의 달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가정주
일, 스승의 날, 청년의 날이 5월에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옷과 몸의 관계와
같다고 합니다. 옷 없이는 문명생활이 불가능하고, 몸 없이는 옷의 의미가 없습니다.
명심보감에도 “안으로 훌륭한 부모가 없고, 밖으로 엄한 교사가 없이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고 하였습니다. 조지 엘리어트는 “좋은 교사는 학생을 신뢰하고 학생을 존경
하고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진실한 交感이 오가는 교
육과 존경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3. 이것이 정로니 이리로 행하라
“거친 길,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진리의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하나님
이 너와 함께 하시고 복을 내리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너희 모든 산업에 복과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둘째
는 하나님이 육축과 토지에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민족과 자연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막대기로 치실 때 그들은 낙담할 것이요 이스라엘은 노래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국가 상황이나, 교회, 가정, 그리고 우리의 교육현장이 위기를 낳고 있습니
다. 신앙인들의 결단이 요구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정로니 바른 길로
행하라.”
동신교회 목사
복음을 위하여
행 18:1-4, 롬 16:3-6
김삼환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인간의
유일한 구원의 길은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구원
을 얻고, 입으로 죄사함 받고, 입으로 은혜 받고 입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기독교입니
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10장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
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으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놀라운 기적
이 일어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씨앗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복음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땅을 비집
고 올라오는 씨앗이 능력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간 복음은 죄와 옛사람을 물리
치고 새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이 능력은 복음에만 있습니다. 아직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부귀 영화를 꿈
꾸며 살아가고 있고 세상의 연락과 사치와 죄악에 잠들어 있습니다. 오늘 많은 젊은 세
대들이 방향을 잡지 못해서 방황합니다.
이리 보아도 소망이 없고 저리 보아도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세대는 돈이 없어서가 아
닙니다. 모든 국민이 어디로 가야 할지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헤매이
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교회에 나오면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말씀을 들으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시대를 살면서 끝까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선교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많은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끊
임없이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전파 하는데 쓰임 받
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선교하는 사도 바울을 열심히 도왔으며 기도
해 주었고 여러 모양으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우리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하며 나가 있는 선교사를
물질적으로나 여러 모양으로 돕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는 축복이 됩니다.
우리 영혼이 평안하고 우리의 삶이 강건하게 될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 목사
나의 큰 고통을 인하여
사 38: 14-17
김창인
1. 앙망하는 신앙 (14-)
유다왕 여호사밧 때의 일입니다. 모압족속과 암몬족속 그리고 에돔족속이 연합하여 유
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유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랄 뿐입
니다. 여호사밧은 “우리는 대적할 능력이 없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간구하
였습니다. 즉 하나님만 앙망한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는 브라가의 승리였습니다. 위기
에서 앙망하는 신앙이 승리했다는 교훈입니다.
본문을 보면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
도록 앙망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왕이 39살에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하나
님이 주신 병이기에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고통을 인하여 오직
하나님만 앙망하게 되었습니다.
2. 길들여진 생활 (15-)
야고보 감독은 여러 종류의 짐승이나 새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약3:7). 예를 들면 야생 코끼리는 힘이 강하고 사납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길들이므
로 순화됩니다. 주인에게 순종하고 충성을 다 바칩니다. 그러나 코끼리가 길들여지기까
지 굉장한 아픔의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굉장한 힘은 그대로 남은 채 부드러워 집니
다. 그러므로 길들여짐이 이처럼 귀한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라고 하였습
니다. 여기서 각근히 행함은 조심해서 걷다 부드러워지다라는 뜻입니다. 즉 길들여졌다
는 말입니다. 히스기야왕은 죽을병을 통해서 하나님께 길들여졌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을 통해 길들여 쓰시기 때문입니다.
3. 큰 평안의 축복 (16-17)
베데스다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시므로 즉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육신의 평안입니다. 그 후에 성전에서 그를 만난 예수님은 네
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인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는 죄 때문에 38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죄
와 함께 병마가 모두 해결되므로 큰 평안을 얻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고
한 다음에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통을 인
한 회개로 죄사함을 얻었다는 고백입니다. 즉 죽을병의 고통을 인하여 평안함을 얻었습
니다
광성교회 목사
꿈꾸는 자의 하나님
욜 2:28-30
류철랑
꿈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을 의존할 때 꿈을 꾸게 됩니다. “내가 내 신
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
며”(요엘2:28)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꾸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
하게 하십니다.
꿈을 꾸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
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으로 세례
를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4-8) 성령을 받아야 세계선교
의 비전을 갖게 되고 그 비전을 이루는 권능을 힘입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약속하
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꿈꾸는 사람되게 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꿈이 있는 자는 꿈을 말합니다.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꿈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입으로 말합니
다. 요셉은 꿈을 꾸고 자기가 꾼 꿈을 이야기합니다. 요셉은 꿈을 말했다가 형제들에
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래도 꿈을 말하게 되고 꿈을 말함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꿈을 말해 보십시오. 그리고 책임 있는 인생을 만드세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
노니 누구든지 이산 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
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11:23)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
나님이 들으십니다. 꿈과 언어는 같이 갑니다. 꿈의 언어를 기도로 연결하세요.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말함으로 말하는 대로 이루시기 바랍니다.
꿈꾸는 자는 꿈을 이룹니다.
꿈이 꿈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댓가를 지불합니다.
꿈이란 시간이 흘러가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향한 한걸음 한걸음
그 자체가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가치 있는 일들이 모여져서 꿈이 이루어집니다. 꿈
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꿈이 곧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이루는 능력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을 집중하여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한곳에 집중된 레이저 광선이 철판을 뚫는 엄청난 파괴력을 같습니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갑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꿈을 꾸고 꿈을 말하고 그 꿈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
니다.
부천동광교회 목사
성령의 능력
행 2:42~47
박은성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교훈 때문에
시작되었다기 보다 예수님의 사건 즉,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
다. 그러니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기리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부활
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본질을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셔서 깨닫
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자기들 가운데 살아계신 그리스도
를 체험하면서 모이게 된 것이 교회였습니다.
1. “배우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일은 극히 평범한 일인데도 이 일을
특징으로 말하는 것은 초대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인데도 말씀을 열심히 배웠다는 것입
니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세상적으로 사도들의 학적 배
경이나 출신배경으로 보면 누가 배우려 하겠습니까.
베드로나 요한은 학력, 학벌이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매일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
우고 기뻐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지식을 배우려 모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영생
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배우려 모인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가르치게 하신 이는
성령이고 말씀을 깨닫고 기뻐하게 된 것도 성령의 능력입니다.
2. ‘기도하는 교회’라 했습니다. 본문 42절 마지막에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
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성령충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 충
만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
령 충만한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고,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고, 외부의 어떤 핍박이나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
다. 기도 없는 신앙 생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 생활은 기도 생활로 지속되
는 것입니다. 이미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도 기도 생활을 쉬게 되면 은혜의 감격도 잃
게 되고, 마음의 기쁨이 없는 메마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말을 하는 것도, 말을 듣는
것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기도로 합니다. 모든 일은 기도
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 교회가 교회다워 집니다. 성전은 ‘만인의 기도
하는 집’이라 말씀했습니다. 사단은 우리 기도 생활을 교묘히 방해합니다. 성령의 능
력으로 우리의 기도 생활이 회복되며, 초대 교회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오늘 우리 교
회에서도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대중앙교회 목사
성령이 충만한 사람
출 18:19-22, 행 6:3-6
이성희
성령강림은 예수님의 가심으로 주신 은총입니다. 그리고 인격적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홀로 있기를 통하여 성령의 내재하심, 성령의 충만을
경험합니다. 초대교회의 일꾼의 자격은 영성과 도덕성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사
람이 필요합니다.
1.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지혜도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만 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안되고 지혜가 충만하지만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령과
지혜는 동시적으로 충만해야 하고 충만해집니다. 지혜란 히브리 단어로 ‘살아가는 기
술’이란 뜻입니다. 반면에 어리석다(absurd)란 말에는 귀머거리라는 뜻의 라틴어 단
어 surdus에서 나왔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지혜에 귀가 밝습니다. 성막을 지을 때 하
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신을 충만하게 주셔서 지혜로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습니
다. 세례 요한의 부모인 엘리사밧과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으로 요한을 낳았습니다.
2. 성령충만한 사람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령과 지혜의 충만은 칭
찬의 조건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칭찬의 대상입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고 그는 첫 순교자가 되었고 그의 삶
은 칭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런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칭찬을 듣는 조건입니다.
3. 성령 충만한 사람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교회의 일꾼의 자격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
서 돌아오셔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공생애
의 조건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에게 이끌립니다. 성령 충만해서 성령에게 이끌려
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고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지만 성령이 충만할 때에 담대
하게 전도하였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성령 충만은 필수조건입니다.
연동교회 목사
가정은 작은 천국 시 144:12-15
강동수
1. 현대는 가정의 위기입니다
전통적 가정관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혈연중심의 결혼관이었다면 이제는 결혼이
당사자들의 행복추구 수단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제도 자체가 급격하게 변함
에 따라 멀지 않은 장래에 가정제도의 위기나 붕괴를 예고하는 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
을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세상에 올 때 가정을 통해서
오고, 가정에서 살다가, 가정에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만약 가정이 없어지고
가정제도 자체가 사라진다고 가정한다면 그때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요, 사람은 본능에
따라 사는 신종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복을 내리십니다
기독교는 가정을 대단히 중히 여깁니다. 교회 자체가 가정제도로 형성되었습니다. 하나
님은 아버지시요 예수님은 아들이시고, 교회는 신부요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형제와 자
매입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요,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섬기며 사랑과
믿음과 소망 중에 서로 격려하며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시며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남자
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인생의 복을 내려주십니다. 이 복은 바로 예수님이요 천국도 그 핵심은 바로 예수
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가정,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과 가르치심에 따라 사는 가정
이 바로 작은 천국입니다.
3. 가정 천국은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가정은 쉼과 안식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노동으로 심신이
피곤할 때 가정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상처를 싸매고 용서와 화해의 새 장을 열어 인생
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사랑을 서로 나누는 공간
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명령으로 지도와 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끌어
안고 함께 마음과 마음을 나눌 때 존경심과 효행심, 사랑의 마음이 움트고 자랍니다. 그
러할 때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한 사랑의 눈물이 있고 사랑의 표현이 있는 것입니
다. 아무쪼록 하나밖에 없는 나의 가정을 지상의 작은 천국으로 만들어가시는 예술인 성
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동신교회목사
지혜롭게 삽시다 잠 8:17-18
김갑식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
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8:17-20)
잠언에는 지혜라는 단어를 어떤 성경보다 많이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라는 말을 정
의하거나 설명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일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지혜를 넷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자신이며,
둘째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세째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들어가게 하는 방편이며,
그리고 네째는 지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지혜를 얻는
방법과 얻은 결과로서의 유익을 소개합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지혜를 얻습니다.(17절)
하나님을 떠나서는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지혜는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
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사모
하는 사람이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어
사랑을 입게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와 용서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복을 받는 풍성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2. 하나님을 찾는 자가 지혜를 만납니다.(17절)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자 애쓰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
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얻게 하시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탈무
드에서 정의한 바와 같이 지혜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방편입니다. 그
러므로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만나 주시고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3. 지혜에는 부귀와 장구한 재물이 있습니다.(18절)
하나님은 지혜라는 방편을 통해 부귀와 장구한 재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 없이 일시
적으로 부귀를 누린다고 해도 장구한 재물은 지혜 없이 유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혜가 부족하면 부귀와 재물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녀들을 지혜자
에게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믿음의 일꾼 행 18: 5-11
김창인
1. 사로잡힌 믿음 (5-)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왔을 때입니다. 벙어리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
버지가 주님께 간절히 호소하였습니다. 그 아들은 악신에 사로 잡혀 자기 의지대로 살
지 못하고 귀신이 시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악신에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물
론 예수님에 의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무엇에 사로잡히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
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사도가 고린도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
도라고 확증한 까닭이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일꾼은 자기의 믿음대로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일꾼에게는 말씀에 사로잡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 열심 있는 믿음 (6-8)
엘리야 선지자는 열심히 특심하였습니다(왕상19:10). 하나님을 위하는 열심이 그로 하여
금 목숨을 걸고 충성하게 하였습니다. 악명 높은 아합왕 치세때에도 굴하지 않고 여호와
가 참신이 되심을 확증하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여 승리를 하
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열심 있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뜻을 보면 고린도에 사는 유대인들이 열심히 전도하는 바울을 대적하고
훼방하였으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을 떠나 이방인으로서 하나님
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고린도 전도의 본거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한 결과 수다한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열심 있는 믿음으로 일했
기 때문입니다.
3. 환상적인 믿음 (9-11)
바울사도는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고후12:1).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의 한 방편입니다. 그러나 모든 계시가 다 환상일 수는 없습니다.
그는 환상 중에 삼층천의 계시를 받고 죽음도 불사하는 믿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
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
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환상은 황홀
한 상태에서 받은 시각적 청각적인 계시를 의미합니다. 이런 환상이 바울로 하여금 환
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일하게 하였습니다. 일꾼에게는 환상적인 믿음이 이처럼 귀
합니다.
광성교회목사
모세의 어머니 출 2:1-10
류철랑
어머니는 자녀를 길러 사람답게 만듭니다. 이세상에 어머니보다 더 위대한 교사는 없습
니다. 히브리인의 영도자 모세의 어머니는 요게벳 입니다. 요게벳을 통해서 나를 낳아주
신 어머니를 생각해봅시다.
첫째, 어머니는 인간의 출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어머니를 통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체의 자궁에서 아
들과 딸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무서운 출산의 고통을 견디면서 한 생명을 출생시킵니다. 고통스러운 아픔을 참고 견디
는 것은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2,25)고 하십니다.
둘째, 어머니는 장점 발견자입니다.
어머니 요게벳에게 태어난 세 번째 아들 모세는 용모가 ‘준수’ 했다고 합니다(2절).
자녀에 대해서 어머니처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점도 단점도 가장 잘 아는 이가
어머니입니다.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히11:23)임을 보았다고 했고, “그때에 모
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행7:20)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보셔
도 아름다운 아이였습니다. 지혜로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의 장
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셋째, 어머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로왕의 악함이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인구가 늘
어나는 것에 불안을 느낀 바로는 여아는 살리고 남자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
습니다. 그러나 요게벳은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모세를 3개월이나 숨겨서 길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용기 있는 행위에 대해서 “믿음으로...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
하였으며”(히11:23)라고 말합니다. 바로의 명령에 복종치 않고 아들의 생명을 보존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어머니는 덮어줍니다.
어머니처럼 자식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고 감춰주는 이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서 나온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버트 까뮈는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없었다
면 나는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랑의 눈동자는 잠시도 나를 떠나지 아니하였고,
나에게 만족과 용기를 주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기억합시다.
부천동광교회목사
청년아 일어나라
전11:9-12:2, 13-14, 눅7:11-17, 딤전 6:11-16
손인웅
세상에서는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과 같은 사람이 있고, 죽었어도 영원히 역사 속에 살
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히 청년들이 죽은 사람과 같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아니하
고, 뜻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인류 역사 앞에서 너무나도 큰 손실입니
다.
한 시대에 청년들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든지 향락에 빠지든지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그
사회의 미래는 희망이 없습니다.
또한, 지독한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에 빠지거나 꿈을 상실한 채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다
고 하면 그들이 살아갈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청년이 왜 일어나야만 하
며, 예수께서는 왜 그를 일으키셨는가 생각해보는 것이 유익하겠습니다.
첫째는 그 청년의 인생이 너무 원통하기 때문입니다(전11:9). 20대 청년이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도 못한 채 끝낸다는 것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입니다. 할 일 많은 세상에
서 뜻 있게 살도록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둘째는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 살려주신 것입니다(눅7:13,15). 혼자된 처지에 애지중지
키운 아들에게 많은 기대와 꿈을 걸었던 어머니가 통곡하는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그 불
쌍한 어머니를 위해서 아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효도 한번 못하고 떠나가는
불효한 아들을 살리셔서 어머니의 행복을 다시 찾아 주심으로 가정을 일으키게 하셨습니
다.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눅7:16절). 사람이 세상을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다시 살아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청년들이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어
나라’ 하신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일어나라고 하십니다(눅7:17절). 이 청
년이 살아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라는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이 인류를 구원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정신 위에 세계를 튼튼히 세우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청년의 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전12:1-2,13-14)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
니다. 또한 청년의 때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경건의 훈련을 맹렬히 함으로써 어떠한 경우
에도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덕수교회목사
좋은 길을 가르치자
잠 22:5-6, 엡 6:1-4
이성희
사람은 길을 가는 존재이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길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성공적 길을
가고 어떤 이는 실패의 길을 갑니다. 어떤 이는 가야할 길을 가고 어떤 이는 가지 말아
야 할 길을 갑니다. 성경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비교하여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비
교하며, 바른 길과 굽은 길을 비교합니다. 마이크 머독은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보지
말고 가야할 곳을 똑바로 쳐다 보라”고 합니다. 좋은 길을 쳐다보고 좋은 길을 가면 뒤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1. 좋은 길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입니다. 그 길로 가야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길이
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 외에 갈 길이 없으며, 다른 이
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유일한 길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
을 휘장가운데 열어놓으셨고 새롭고 살 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제일 좋은 길
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랑은 가장 좋은 길이 된 것입니다.
2. 좋은 길은 마땅히 행할 길입니다.
성경은 패역한 자의 길과 마땅히 행할 길을 대비합니다. 패역한 자의 길은 가시와 올무
가 있어 영혼을 지키는 자가 멀리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행할 길은 늙어도 떠나
지 아니하는 길입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는 자연 육아운동이라는 것을 합니다. “태
아 때 교육이 여든까지”라는 목표로 가장 좋은 육아교육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다 거짓되었습니다. 이것이 거짓 위(僞)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人)이
바뀌어야 모든 것이 편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편할 편(便)자입니다. 제도나 조직이 아니
라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좋은 길을 가르쳐야 좋은 세상이 됩니다.
3. 좋은 길은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좋은 길은 가르쳐야 합니다. 좋은 길은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은 나쁜 길을 가르친 자들을 소개합니다. 발람의 길을 가
르치고, 악의 길을 가르치고, 거짓의 길을 가르칩니다. 잘못 가르치면 모두 함께 멸망합
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텔레비젼 끄기 운동을 합니다. 청소년들을 비만에서 구하자는 운
동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는 책 읽고 그림 그리는 아이가 컴도사 보다 창의력 뛰어나
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좋은 길을 가르치고 좋은 길 얻기를 구해야 합니다.
연동교회목사
물가에 심기운 나무
렘 17:5∼8
강동수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다고 신랄하
게 책망하면서 유다가 택해야 할 근본적인 길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그는 저주받을 사람과 복받을 사람을 대조해서 말합니다. 먼저 저주받을 사람은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입니다. 이들은 광야에
거하는 자와 같습니다. 반면 복받을 사람은 여호와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 분을 순종하
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습니다. 하지만 물가에 심기운 것
은 전적으로 은혜입니다. 그리고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그 임무와 권리, 사명도 아울러
기억해야 합니다.
1.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영원히 푸른 나무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면서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고 했습니다. 샘
곁에 심기운 나무는 복 있는 나무입니다. 이 샘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생의 샘물
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 그리고 교회는 인류에게 목마르지 않는 샘물입
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힘과 능력과 위로를 주시는 영원한 샘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
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2.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나무는 태양의 빛을 받아 인간 생존에 절대 필요한 산소를 공급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
의 은혜의 빛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살맛 나는 삶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는 뜻입니다. 나무는 또한 인간들이 품어낸 모든 나쁜 공기와 오물들을 정화하여 인간
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시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쏟아내는 모든 거짓과 숨
겨진 것들을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3.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이웃을 돕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한 배에 탄 항해사와 선장처럼 진실이라는 핑계로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
하고 못살게 굴지만 나무는 모든 것을 바쳐 인류에게 봉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
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것
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를 의지하며 신뢰하므로 순종하는 자가 복있
는 자입니다. 그들은 마치 물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심은 뜻과 의지를
따라 영원히 푸르고 변하는 능력으로 주변을 새롭게 하고 이웃에게 유익과 기쁨을 주는
봉사의 삶을 유감없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동신교회목사
길이 참는 자의 복
약 5:7-11
김갑식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
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
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과 본을 삼으라 (약5:7-10)
본문에서 야고보는 “오래 참으라”는 뜻의 문장을 5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7절에
“길이 참으라” 8절에 “길이 참고” 10절에 “오래 참음의 본” 11절에 “인내하는
자” “욥의 인내” 사람이 얼마나 인내하며 사느냐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기도 합니다. 야고보가 이 말씀을 기록할 때에는 평안한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사회부
조리와 핍박이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라고 했습니다.
1. 자연의 이치가 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7절)
농부가 땅에서 귀한 열매를 바라기 때문에 길이 참고 늦은 비와 이른비를 기다리는 것
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참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참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
니라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참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거둘만한 열매가 있습
니다.
2. 아름다운 것은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10-11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
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인
내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필수과정입니다. 위대한 작품일수록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인내가 복된 것은 모든 것에는 반드시 결말이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는 욥의 경우와 같
이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반드시 보상의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8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이 말씀에서 주의 강림
은 종말적인 사건을 의미하기 보다는 임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9절에는 “보라 심판자
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언제나 우리 가까
이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보상이 멀리 있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보상할 때만 보고 계실 것입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주여 평안을 주시옵소서
눅 10:5
김삼환
오늘 우리 사회에 많은 가정이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우리의 가정에 내려오
는 좋은 점들이 최근에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아무도 반증을 제시할 사
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어떤 상처를 받아도 주님께로 나아오면 주님께서 그 상처를 싸매어 주
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상처받은 가정에서 자라났을지라도 주님께로 인도되면 마음에 평
안이 오고 소망이 생기고 인류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① 모든 축복과 평안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아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하나님께
서 가정에 베푸시는 축복을 받고 누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야겠습니다. 시편 25:12-13절
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며 살아가야겠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평안한 길로 인도하며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가정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③ 나라가 평안하기를 힘쓰며 살아야겠습니다. 예레미야
29:7절에는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
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
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을 때 바벨론이 적의 국가이며
이방국가이지만 평안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속에 안과 밖으로부
터 수많은 전쟁과 환난이 있었지만 한번도 남을 해치거나 국경을 넘어서서 남의 나라를
침범한 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민족이고 약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있을지
모르지만 선교에 있어서는 장점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는 아무런 저항없이 복음
으로 국경을 넘어서고, 복음으로 남에게 유익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민족이 되었습니
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직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지만 이제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평화를 잘 유지하
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따라 살아갈 때 개인의 평안과 가정의
평안과 국가의 평안이 강같이 흐를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
아서 영혼에 평안을, 가정에 평안을, 그리고 이 민족에 평화를 가져오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명성교회목사
예수의 소문
눅 7: 11-18
김창인
1. 찾아오시는 예수 (11-12)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찾아가셔서 숨어있는 그들 부부를 기어이 찾아 내
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으나 무화과나무 잎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셨
고 가죽옷은 예수님의 의를 뜻합니다. 여하간 하나님은 죄인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문제
의 실마리는 찾아오심에서 풀리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나인성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과부의 독자의 장례행렬과 마
주쳤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불행 당한 과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과부를 보시고 불쌍
히 여기셨고 울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불행한 자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입니다.
2. 바꿔 주시는 예수 (13-15)
세상에서 아무리 악한 아버지일지라도 생선을 달라 하는 아들에게 뱀을 주지 않습니다.
알을 달라 하는 자식에게 전갈을 주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
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더 좋은 것에 대하여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을 주신
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알을 구하고 생선을 구하는 성도에게 성령으로 바꿔주신다는
뜻입니다(눅 11:13).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관 뚜껑을 여시고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즉 죽음을 생명
으로 바꿔주셨습니다. 그 어머니에게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셨습니다. 공동묘지로 가
던 것을 집으로 방향을 바꿔주었습니다. 즉 초상집을 잔치 집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예수
님은 이처럼 성도들의 불행을 바꿔주십니다.
3. 챙겨 주시는 예수 (16-18)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해서 일곱 제자
가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 했습니다. 피곤한 제자들을 위해서
떡을 준비하시고 생선을 구웠습니다. 시장한 제자들을 불러서 실컷 먹게 하셨습니다.
즉 배고픈 제자들에게 아침 식사를 챙겨 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과부의 독자를 살려 주신 일을 목도한 후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
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야 합니다. 그들은 이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아보셨다고 하였습니다. 돌아보
셨다는 말씀은 챙겨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과부의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아시고 챙겨주셨습니다.
광성교회목사
마음을 자녀에게로
말 4:6
류철랑
이세상에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더 신실하고 지속적이며 애틋한 사랑은 없습
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 주신 독생자만큼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주는 것이 최고의 것을 주는 것입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니
라 정신입니다. 마음으로 마음을 정복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때로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마음이 너무 조급한 것을 봅니다. 어린 자녀
들의 현재만 보고 조바심을 합니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수학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목에서 낙제점수를 받았습니
다. 실망한 담임선생님은 가정통신란에 이렇게 적어서 보냈습니다.
“이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공부로는 희망이 없으니 아예 다
른 방향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어머니는 오히려
아들을 격려했습니다. “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어. 다른 아이들과 같지 않기 때
문에 틀림없이 비범한 인물이 될거야”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은 아인슈타인은 자신
이 좋아하는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마침내 세
기의 과학 연구 이론으로 평가되는 상대성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오늘, 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용기를 주는 격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격려 한마디는 자녀에게 다른 무엇보다 큰 힘이 됩니다.
조바심으로 속단하지 맙시다. 꿈나무는 천천히 자라는 것이지 하룻밤 사이에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자녀에 대한 이해심을 가지고 지켜봅시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이
해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자녀들의 깊
은 내면까지 잘 아는 선한 목자 같은 부모,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문제를 풀어주고 꿈
과 용기를 불어넣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부모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의 마음이 부모에게로 돌아
올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교류하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을 믿는 마음을 자녀에게 줍시다. 예수를 주면 최고의 유산을 준 것입니다.
부천동광교회목사
좋은 청년이 되는 길
시 119:9-12, 딤후 2:22-23
이성희
청년은 사회의 희망이자 교회의 미래입니다. 청년은 가장 힘이 있는 시기입니다. 청년
은 가장 유혹이 있는 시기입니다. 청년은 가장 복된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님은 이 땅에 청년기에 일하셨으며 청년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청년
은 살려야 할 시기입니다. 청년은 대신 죽어야 할 시기입니다. 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살
고 미래에 희망이 있습니다. 좋은 청년이 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변하는 청년이 되어
야 합니다.
1. 행실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
잠언 25장 4절에는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
요”라고 합니다. 금이나 은도 돌에서 불순물을 제거해야 비싸고 아름다운 보물이 됩니
다. 우리도 찌끼를 제거하고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혼합물을 깨끗하게 하는 노력이 있
어야 합니다. 몰리노스는 “고난은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깨끗
하게 하는 고난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변화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세상
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깨끗하게 변화된 사람이 세상을
깨끗이 합니다.
2. 말씀을 따라 삼가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은 창조 때부터 짝이 되어 일했다고 켄 가이어는 말합니다. 말씀은 성령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청년의 때에는 삼가는 마음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힘은 있
고 이성적 판단과 절제가 부족하면 혼란에 빠집니다. 현대인들은 지나친 과음과 과식으
로 건강과 생활을 망치고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생활은 파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예 악인의 죄와 멀리 살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
이 좋습니다. 시편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합니
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고 삼가게 하는 것입니다.
3.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는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
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합니다. 성경은 육체의 정욕을 제거하
라고 여러 번 권합니다. 동물 조련사는 동물에게 반복적인 훈련을 통하여 반사적으로 행
동하게 합니다. 훈련이 우리를 말씀에 대한 반사적 행동을 하게 하며 바르게 살게 합니
다. 육체미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으로 과시만 할 것이 아니라 세
상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힘을 세상을 위하여 사용할 줄 아는 청년이 좋은 청년입니
다.
연동교회목사
귀히 쓰임받는 청년
딤후 2:22-23
김갑식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
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줄 앎이라
(딤후2:22-23)
한 나라의 장래가 청년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청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
나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깨끗한 그릇과 같이 준비되어 하나님 뜻에 합당
하며 귀히 쓰임 받기 위하여 주의하고 노력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합니다.
1.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청년의 특성은 피가 끓고 의욕이 넘치며 무엇이든지 하고자하는 열정이 강합니다. 그러
나 이열정이 통제를 받지 아니하고 이기적인 욕망이나 세속적인 욕망에 빠지게 되면 국
가의 기조가 흔들리고 교회의 장래는 세속화로 치닫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육신의 정과 욕심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요셉과 같이 깨끗하게 사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2.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 합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22
절)는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
는 자들과 함께 사귀는 것이 전제되어야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을 수가 있습니
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특히 이웃에게 영향받기가 쉽습니다. 그래
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바른 신앙을 소유한 자와 함께 어울리면서 바
른 신앙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려야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23절) 비생산적인
언어 생활은 다툼을 만드는 것외에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끼
치는데 소용되는 말을 해야합니다.(엡4:29) 언어 생활뿐 아니라 모든 삶에서도 우리는
비생산적이거나 유익이 없는 모임이나 오락은 삼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툼을
일으키는 모든 행동은 반드시 제한되어야 합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예수님의 사람을 보라
막 10:13-16
김삼환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잘 자라도록 힘써야 하며 믿음의 자녀로 양
육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아이를 잘 기르는 길은 하나님을 잘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며 축복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 나올 때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올 때 우리는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품
은 사랑의 품입니다. 능력의 품이며 은혜의 품입니다. 겸손히 주님의 품에 안길 때 구원
의 은혜와 신령한 은혜를 받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또 어린아이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주
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축복’이란 말은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복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복은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
로몬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반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놀라운 일은 없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허랑방탕하고 어두
운 삶을 살았지만, 예수를 잘 믿는 친구를 만남으로써 성경을 읽게 되고, 사업이 잘 되
고, 주지사가 되었으며 끝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영적 부흥 운동
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백만장자인 록펠러의 어머니는 어린 록펠러에게 믿음 생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
은 10가지 수칙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①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②목사님을 하나
님 다음으로 잘 섬겨라 ③주일예배를 본 교회에서 드려라 ④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
조 주머니로 하라 ⑤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아라 ⑥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⑦
저녁에 잠자리를 들기 전에 반성하여 기도하라 ⑧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⑨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⑩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이것은 오늘 우
리 시대의 가정에도 매우 합당한 교훈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할 일은 한나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을 잘 경
외하고 믿음에 굳게 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온갖 복을 주
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자녀들과 이웃에게 받은 복을 나누며 격려하며 용기
를 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명성교회목사
하나님의 선물
전 3:10-13
김창인
1. 사모하는 마음 (10-11)
예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마음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길바닥 같은 완
고한 마음, 돌밭 같은 메마른 마음, 가시덤불 같은 꽉 막힌 마음에는 결실이 없습니다.
옥토 같은 기름지고 순수한 마음에서 말씀의 열매는 백 배를 맺습니다. 마음이 깨끗하
면 생각도 생활도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인생에게 주신 노고는 때를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하나님
은 인생의 노고 중에서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모든 고난을 이기어 복되게 하
십니다.
이처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생활이
다릅니다. 영원을 위해서 전력투구하기 때문입니다.
2. 선행의 기쁨 (12-)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유대인
들이 송사하려하여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 물으시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뻐하며 선한 일을 하셨습니
다.
본문을 보면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하였습니다. 즉 솔로몬은 선을 행할 때 기쁨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선행의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3. 수고의 복락 (13-)
이스라엘백성들을 성전에 올라가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수고한대로 먹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그것이 곧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수고한대
로 먹고 누리는 복은 하나님의 선물로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받는 복락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
인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수고한 만큼 먹고 누리는 복락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정당하게 수고하며 일하는 자에게 복락을 베푸시기 때문
입니다.
광성교회목사
나의 기업이 아름답도다
시16:5-6, 엡1:11-14
김형기
하나님은 그 지으신 뭇 족속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
습니다. 관심과 사랑을 쏟으시고, 은혜 복을 주셔서 당신의 기업으로 조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당신의 선하고 의로운 뜻을 이루시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
의 영광을 만방에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저버리고 불순종하며, 죄악
의 길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
는 패역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진노하셔서 이방족속의 손에 이스라엘을 붙이시
고 그 애지중지하시던 기업을 폐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
방 족속들 중에서 예수를 주로 영접한 자들로 교회를 조성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그 마
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기
업이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다 부어 주셔서 이 교회를 충만케 하고, 부요
케 하며, 권세 있게 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인이 찬송은 곧 우리의 찬송이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내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켜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
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제 영원토록
살아계신 주님, 전능하시고 부요하시고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
이 되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그 가문과 나라도 대대로 화평
과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 아들을 통하여 조성하신 교회는 우리의 아
름답고 위대한 기업입니다. 이 기업이 잘되고 흥왕하면 우리 모두가 잘되고 흥왕하게 됩
니다. 나라가 잘되고 민족이 창대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도 잘 되고, 장차 영원한 나라
까지도 상속 받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로부터 아름답고 위대한 기업을 물려받았습니다. 우리도 대를 이어
서 이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충성하여 창대함을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주
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될 수 있도록 헌신하면서 사랑이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경주제일교회목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신6:1-9, 마5:43-48, 요일3:17-18
손인웅
우리가 부모나 교사로서 자녀들이나 학생들에게 무엇을(내용), 어떻게(방법) 실제적으
로 교육해야 할 것인지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편의상 교과 내용과 교육방법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첫째로 사랑으로 사랑을 가르칩시다(신6:4-9).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예배드리는 생활을 통해서 가르칩시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
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을 보입시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칩시다.
이웃을 사랑하는 교육은 희생적인 봉사활동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요일3:17-18).
③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칩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시키시면서까지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이 세상(요3:16)과 만물
을 화목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생
활을 통해서 생명 사랑의 교육을 해야만 합니다(골1:20).
둘째는 믿음으로 믿음을 가르칩시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사도 신경에 나오는 순서대로입니다. 하나님, 예수
님, 성령님, 교회, 성경, 창조, 죄사함, 부활, 종말, 영생 등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내
용들을 어떻게 자녀들이나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
치는 사람들이 그 모든 내용들을 확실하게 믿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믿음을 실증
해 보여주는 것입니다(약2:21-26).
셋째는 소망으로 소망을 가르칩시다(롬8:24-25).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소망에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적인 삶
을 살아가면서 항상 소망중에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망에 넘치는 삶
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만 소망에 대한 교육이 가능해 집니다.
넷째로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교육을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가치
관과 의로움에 대한 교육도 병행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의롭게
살아감으로 그리스도적 가치관이 형성되고 의로운 사람으로 자라게 합니다(딤후3:16-
17).
덕수교회목사
그리스도인 청년의 삶
전11:9-10, 딤후2:20-23
이성희
필립 매신저는 “청년기는 마치 고급 양피지와 같아서 그 위에 무엇이든지 새겨 넣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청년기는 기회와 가능성의 시간이다. 청년기의 자세는 기회도 가능
성도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청년기는 모든 것이 새로운 시기이다. 그러나 혈기가
절제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감성이 이성을 이기지 못하게 하고 육체가 영혼을 이기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결심이 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미
래의 일꾼들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 청년의 때는 삶은 어떤 삶인가?
1. 청년의 때를 즐겨라.
성경은 청년에게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라고 한다. 청년
은 인생의 절정기이다. 인생의 절정기를 놓치지 않게 즐겨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인간은 노동 자체만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마음에 원
하는 대로 가고 싶은데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라고 한다. 그러나 무절제한 방탕으로
타락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심판을 전제로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기독교는 지나
친 방종주의나 극단적 금욕주의를 다 배격한다.
2. 근심을 떠나게 하라.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라고 성경은 권한다. 청년들도 미지의 세계에 대
한 근심이 더 많다. 근심이란 말은 분노, 슬픔을 의미하는데 인생의 낙을 누리는데 방해
되는 슬픔의 요소를 제거하라는 뜻이다. 인간을 파괴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상하며 육적
인 쾌락으로 몸을 병들게 한다. 근심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유익하고 생산적인 근심
이 있다. 생산적인 근심을 할 줄 아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쓸모 없는 근심에서
떠나면 생산적인 영적인 근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된
다.
3. 악을 물러나게 하라.
“악으로 물러나게 하라”는 말씀은 육신의 고통이 떠나게 하라는 뜻이다. 인간의 악은
육신의 고통이며 육체적으로 따라 사는 삶이 결국 악이고 그 악의 종국은 고통이다. 지
나친 방종과 타락에 처하지 않도록 자제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청년 시절에는 이성의
유혹을 조심하고, 장년 시절에는 물질의 욕심을 버리고, 노년 시절에는 명예의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이지만 본능대로만 살면 동물과 다름이 없
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한다. 청년 문화가 영혼을 죽게 하는 것
이 많이 있다. 청년들이 미래가 있고 즐길 줄 알며 악을 물리치는 청년이 되자. 연동
교회목사
한 어린이를 통한 축복
요 6:5-13
김갑식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
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 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
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요
6:9-11)
오천이 넘는 장정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거둔 오병이어의 기적을 모르는 성
도는 없을 것입니다. 기적의 질에서나 양에서 최고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런데 이 기적은 기적의 크기에 비해 기적을 불러온 사람은 이름 없는 “한 아이”였다
는 점이 더욱 대조를 이룹니다. 기적에는 남녀노소가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특히 교
회는 어린이의 믿음도 소중히 여길 때에 기적을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한 어
린이를 통한 기적의 의미를 살피고자 합니다.
1. 한 어린이와 오천 장정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장정 오천이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을 소자 한명이 주님
의 은혜로 말미암아 능히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어린이주일이 아니라도 한
어린이의 중요성은 계속 강조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천국이 어린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영적인 것은 결코 육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일은 어른과 어린이를
떠나 믿음의 정도와 헌신의 여부에 따라 맡겨져야 할 것입니다.
2. 적은 헌물과 많은 축복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는 지극히 보잘것 없는 어린이의 혼자 먹을 만한 분량의
음식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천명의 장정을 배불리는 음식이되었고, 남아서 열두광주리
나 거두어 드린 분량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결코 양적으로, 눈에 보이는것 만으
로 할 수 있다 없다를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보이는 것외에도 보이지 않
는 믿음의 실체까지를 포함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3. 주님 한분이 만인과 만물 보다도 귀중합니다.
한 어린이나 다섯마리의 물고기 보리떡 다섯개 이러한 것에는 결코 어떠한 능력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미약한 것이라도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붙들렸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손에서는 아무리 미약하고 미천한 어린아이일찌라도 강하고 귀하게 될
수 있음을 믿어야할 것입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영원히 영원히 오직 여호와
사 26:4
김삼환
이번에 유럽 선교사 대회를 인도하고 오면서 우리나라가 더욱 하나님을 잘 믿고 그 뜻대
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유럽을 비롯하여 온세계
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유럽인들은 매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또 유럽에서는 창조질서를 무시하고 인간 복제까지 시도되고 있는데 이로 인
해 인간의 존엄성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인간들이 감수해야만 하
는 고통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불신앙과 교만과 멸망은 언제나 같이 다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에스겔 31장에는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
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 이 물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는
교만한 나라를 심판하신다는 비유입니다. 교만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앗수르, 두로, 애굽
도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우상숭배와 사치와 음란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
으면 영적으로 병듭니다.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을 치료하는 길은 온 민족
이 다시 한번 신앙을 회복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
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과 은혜 아래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각양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구약 잠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여호와
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하셨고, “여호와를 경
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하셨으며, “겸손
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 첫째, 물질의 축복이 옵니다. 둘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와 삶
의 영광이 따라옵니다. 셋째,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삶을 얻는 줄 믿습니
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일에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자
녀가 잘 되고, 물질도 복을 받고, 이름도 존귀하게 되고 하늘과 땅의 온갖 축복이 다 찾
아오는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귀감이 되는 믿음의 가정
행 10:1-5
김창인
1. 경건한 가정 (1-2)
예루살렘교회에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박해로 인하여 사도들 외에는 사마
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져 피난을 갔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들은 스데반의 순교현장
을 지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감히 누구나 나서지 못하는 때에 그들이 용감히 나서
서 스데반을 장사했습니다. 경건한 자들이 일을 해내더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고넬뇨의 가정이 등장하는데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
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좋은
예배라는 뜻으로 경외와 구제와 기도를 나타냈습니다. 즉 경건은 생활에까지 이어졌습니
다. 고넬뇨의 가정은 경건하여 믿는 가정에 귀감이 됩니다.
2. 열려진 가정 (3-4상)
성도들의 마음이 열린 경우와 닫힌 경우는 천양지차이입니다. 예를 들면 요나는 선지자
이면서도 닫혀진 자입니다. 니느웨 전도를 죽기 보다 싫어 했습니다. 불순종하기도 하였
지만 나중에는 니느웨 백성들의 구원까지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열린 일꾼이었
기에 세계선교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열림과 닫힘의 차이는 밤과 낮만큼 다릅
니다.
본문을 보면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왔습니
다. 고넬뇨는 그 천사와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고넬뇨의 가정은 하늘을 향해
또는 이웃을 향해 열린 가정이었습니다(행10:24) 그 가정을 통해 큰 역사가 일었습니
다. 열린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3. 열납 된 가정 (4하-5)
한번은 예수께서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주여’라고 말은 잘하
면서도 하나님의 뜻은 내가 알바 아니라는 듯이 살아갑니다. 동시에 교회에 나와서는 열
심히 봉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봉사를 도무지 모르겠다하십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의 기분대로 명예를 위해서 자기들의 이름을 나타내고 영광을 모두 다
받았기에 그들의 신앙생활은 하나도 열납 되지 못했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불
행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
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고넬뇨의 신앙생활 전부가 열납 되었
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뇨의 가정은 하나님께 열납 된 가정의 모델입니다.
광성교회목사
안보고도 믿는 자들
요 20:29
류철랑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
수를 안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 하나인 도마입니다.
부활하시던 날 저녁때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예수께서 거기 오셨습니다. 그때 마
침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고 하자 도마
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에,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안겠다고 합니다(요
20:25). 여드레 후에 예수님이 도마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만져보고 믿음 없
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며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
는 자들이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보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있는 자입
니다. 보면 더 잘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메시야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현실 때문에 예
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기 어렵게 합니다. 하나님을 꼭 보아야 믿겠다는 것
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못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보이
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안보고도 믿습니다. 하나님이 믿게
해주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
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
9) 어떤 사람이 나를 불신하는 것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로
부터 신뢰를 받는 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
때 하나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빛이 있어도 시력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
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어서 안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고 믿으려 말고 듣고 믿어
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보고 믿은 것이 아
닙니다. 그들은 모두 안보고도 믿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바라보며 모험하게 합니다.
결단하게 하고 문제를 향해 도전하게 합니다. 믿음은 비전입니다. 비전은 선견이요, 상
상력, 통찰력입니다. 믿음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며 삽시다.
부천동광교회목사
달란트 비유의 교훈
시126:5-6, 마25:14-30, 살전3:11-13
손인웅
1. 달란트의 의미
달란트라는 말은 지금은 ‘재능’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특별히 연예인들
을 ‘탈랜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 비유의 목적
예수께서는 종말과 재림에 대한 교훈을 하시는 중에 역사의 종말을 예고하시고 그 이후
에는 반드시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말씀과 주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다시 오신다
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까?
달란트 비유에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재능의 차이에 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똑같은 것
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하 만민중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으며,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
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은사를 찾아 개발해야만
합니다.
둘째는 깨달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깊은 마음과 의도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주인의 사랑과 자신에 대한 깊은 배려를 깨
닫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과 불공평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돈이 한 달란트라고 해서 적다고 생각했다면 큰 잘못입니다. 주인
의 사랑과 배려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주인을 사모하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주
인의 뜻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두려움과 나태와 불만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노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깨닫는대로 올바른 가치관과 적극적인 태도로 최선의 노력을 하면, 갑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열 달란트를 구하시지 않으시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자신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심지도 않고 거두게 된다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기
뻐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결과의 차이에 대한 교훈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심는대로 거둔다(갈
6:7)’,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는 원리
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덕수교회목사
좋은자녀가 되는 길
출 20:12, 엡 6:1-3
이성희
외국에 입양된 한국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 다시 한국에 와서 뿌리를 찾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
다. 뿌리를 알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순종하지도 않고 훈계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모에 대한 구타와 유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주신 부모에 대하여 좋은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태도입니다.
1.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자세
로 대전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옳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
다. 불순종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옳다라는 헬라어는 디카이오스로서 의롭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꼭맞다는 뜻입니다. 순종하다라는 말은 ‘듣는다’
는 뜻의 라틴어 아우디레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에서 바친 사건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이삭도 위대하였습니다. 순종은 예수님의 마음
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2.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공경하는 것은 높은 가격을 매긴다는 뜻입니다. 또 소중히 여긴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
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께 높은 위치를 매겨 놓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하나님께 향하는 자세와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공경이라는 단어가 31번 나
오는데 부모에 대하여 17번 하나님께 대하여 7번 그리고 나머지가 7번 나옵니다. 공경
은 부모님과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복
주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3. 부모님의 훈계를 듣는 것입니다.
잠언 4장 1절은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합니
다. 자녀들은 부모의 훈계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꾸지람을 잘 듣지
못합니다. 훈계를 듣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훈계가 없으면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가장 지혜로운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도 내 아버지에
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고 말합니다. 가정의 달
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좋은 자녀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연동교회목사
맛보아 알찌어다
시 34:1-8
김갑식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 하리로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
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1,7-8)
이 시의 편집자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기
록했습니다. 사무엘상 21:10 을 보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가드왕
아기스
에게로 갔으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봄으로 그 신분을 숨기려고 미치광이 시
늉을 하여 겨우 그 위기를 모면한 비참한 광경을 볼 수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은혜의 맛을 보았습니다. 본문의 간증
을 통하여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1. 찬송의 맛을 알았습니다.(1절)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찬송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항상 찬송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라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
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찬송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고 복을 주시며 위기의 상황에서 피
할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시 22:3) 누구보다 찬송을 좋아하던 다윗이었기에 하나님
의 사랑을 입게 되었습니다.
2. 기도의 맛을 알았습니다.(4.6절)
다윗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결코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
은 죄라고했습니다.(삼상12:23) 다윗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았던 것입니
다. 그래서 맛보아 알라고 했으며(8절),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0절)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외적 증거요, 동시에 신앙인의 특권인 것입니다.
3. 소망의 맛을 알았습니다.(5절)
다윗은 주를 앙망하므로 광채를 입었고 이로 인하여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확신했습니
다. 신앙생활은 은혜로 하는것이며, 또 하나님을 앙망하는데 있습니다. 이사야는 “오
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
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 라고 했습
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보고 들은 것을 말하라
행 4:19-20
김삼환
최근 광우병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에게만 광우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원치 아니하는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문화를 파괴하고, 인
간의 풍요로움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건강한 정신, 훌륭한 인격에도 이런 바이
러스가 침투하면 순식간에 사람이 잔인해지고 강퍅해지고 음란해집니다.
가정에도 침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막아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좋은 무기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어둠의 세
력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완전한 약이며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없도록 개발된 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 어두움의 세력이 많
고, 악한 세력이 많이 있지만 우리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깨어 기도하면 모든 어
두움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며 항상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믿음의 생활은 쉽습니다.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의 손이 가까이 와 계십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내 가까이 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축
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며 위대하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
다. 기도하는 사람 옆에는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기독교는 경험의 종교입니다. 보고 듣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보
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예배가 있는 것입니다. 경
험하지 않는 신앙은 힘이 없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으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
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날마다 보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경험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좇아낼 수 있습니
다. 사랑과 화평과 기쁨과 소망과 믿음이 넘치는 삶은 기도를 통하여 옵니다.
우리는 이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하면 결과가 참 좋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기도하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면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할 때에 가정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여 건강
한 가정이 되고, 이 나라가 힘있는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즐거움을 갖고 삽시다
시 21:1-4
김창인
1. 응답의 즐거움 (1-2)
이삭은 결혼 20년이 되었어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심각한 문제였고 자녀에 대한 소원이
간절했습니다. 이것은 기도할 문제라 생각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아내 리브가가 잉
태하였습니다. 기도응답의 결과였지만 그 이후에는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쌍둥이가 태
중에서 싸우고 있음을 아내 리브가가 기도했더니 작은 자가 장자의 축복을 받는다는 응
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기도응답의 결과는 즐거움입니다. 기도응답 이전에 소원을 먼
저 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2절) ‘그가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
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다윗에게 소원을 주셨고 다윗은 그 소원을 갖
고 간구한 결과 응답을 받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응답의 즐거움입니다.
2. 영접의 즐거움 (3-)
예수님의 탕자비유에서 둘째아들이 실패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사랑으
로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을 비난하며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접하여 잔치를 하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영접이 탕자에게는 더 없
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영접하사 왕으로 세워 주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부모도 그를 축에 끼워 주지 아니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영접하
사 왕으로 세웠습니다. 영접의 즐거움입니다.
3. 영생의 즐거움 (4-)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싫어하고 무서워합니다. 죽음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사람은 없습
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죄인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
다. 그러므로 이제는 죽음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긴 잠을 자는 것 뿐입니다. 주
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죽었던 육신이 잠자다가 깨는 것처럼 다시 살아 영생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영생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라고 하였
습니다. 영영한 장수는 영생을 의미합니다. 영생의 즐거움을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작은 전도자
왕하 5:1-10
김형기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
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전에 아람사람
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
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
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용사로서 왕의 신임을 받는 존귀한 자였다. 전에 아람인들
이 떼로 이스라엘 땅에 침입하여 한 여자아이를 사로잡아 갔다. 저들은 그 소녀를 나아
만 장군의 집에 보내어 그 아내의 몸종을 삼았다.
소녀가 나아만이 문둥병자인 것을 알고 나아만의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주인이 사마
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이 소녀로부터 들은 말을 아람 왕에게 고했다. 아람 왕은 많은 예물과 함께 편지
를 써서 이스포로로 잡혀간 한 이스라엘 소녀의 믿음의 말 한 마디, 곧 전도로 이루어
진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해 준다.
1. 하나님은 한 작은 여자아이를 통하여 큰 일을 은밀히 계획하고 준비하셨다. 그녀는
원수 나아만을 불쌍히 여겨서 그의 병이 낫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작은 전도자는
분노와 원한을 사랑으로 갚았던 것이다.
2. 소녀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음을 자랑했다.
종노릇하는 여자아이의 믿음의 말 한 마디가 용사 나아만과 아람 왕의 마음을 움직였
다. 주님이 은밀하게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이다.
3. 이방인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존
경하고 순종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시고, 두 나라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
졌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겉모양이 강하고 존귀해도 실상은 약하고 추하다. 하나님
을 믿는 사람은 겉모양이 작고 미천해 보여도 실상은 저보다 강하고 존귀하다. 주님의
손길은 섬세하다. 내가 심히 작을지라도 전도자가 되면 사랑으로 원수를 이기고, 모든
역경과 큰 환란도 능히 이길 수 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나를 통해서 뜻밖의 큰 일을
이루어 주신다. 성도 여러분, 작은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사랑
과 평화와 생명의 기적을 이루는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경주제일교회목사>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그 이후
시16:8-11, 요20:19-29, 고전15:1-11
손인웅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변하였으며, 부활의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놀
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고전15:1-11).
제일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요20:1-18). 참혹하게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절망과 슬픔으로 소망을 잃어버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
님을 만난 후에 기쁨과 소망에 넘치는 사람으로 놀랍게 변하였습니다.
둘째는 베드로를 비롯한 열 제자들의 변화였습니다(요20:19-23). 제자들은 부끄럽게도
십자가 앞에서 모두가 실패를 경험하고 실의에 빠진 채 좌절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평안할지어다’하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의심 많던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확신에 넘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요20:24-29).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인도지역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했다고 합
니다.
넷째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발걸음을 돌이켜 주셨습니다(눅24:13-35). 주께서 함
께 하심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다시 예수살렘으로 돌아와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전
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인생의 방향을 그리스도께
로 바꾸게 됩니다.
다섯째로는,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모이는 부활신앙 공동체로 교회가 탄생하
였습니다. 유대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사 만민의 주가 되게 하셨고, 만국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섯째로, 사울이라는 청년이 유대교에 심취하여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모이는 교회
를 박해하여 뿌리를 뽑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변화를 받았습니
다. 그래서 박해자 바울이 변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가장 유력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일곱째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안식일 집회를 안식 후 첫
날인 일요일을 주님의 부활의 날로 정하여서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차별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마다 변화를 받아서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의 주
님을 증거하다가 혹심한 박해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하지 아니하였다는 것과, 피로 물들
여진 순교의 역사가 바로 주님의 부활을 웅변으로 증거해 주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습니
다.
<덕수교회목사>
죽기 전에 구할 두 가지
잠 30:7-9, 약 3:13-18
이성희
만일에 지금 한 가지만 구하려면 무엇을 구할 것입니까? 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입
니다. 잠언서의 현자는 자신의 구할 것으로 현실적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내
가 살아있는 동안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인가로 내 자신을 평가받습니다. ‘여호와가 누구
냐’라는 질문은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내게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같은 뜻입니다.
바른 것을 구하여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괴테는 “내가 하나님께 구
할 2대 소원은 청순한 마음과 위대한 사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하소서.
현인의 첫째 소원은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 해달라는 것입니다. 허탄과 거짓말이란 허무
함과 거짓말, 거짓과 거짓말하는 것, 악함과 거짓말 등으로 해석되는 말입니다. 즉 진실
한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
는 사람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자신의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해 달라고 합
니다.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은 허탄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들의 부어만든 우상은 바
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답니다. 보통 거짓말과 못
된 거짓말과 그리고 통계 숫자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허탄한 것과 거짓된 것이 너무 많
이 있습니다. 이런 때에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이어야 합니
다.
2.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소서.
현인의 둘째 소원은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일수
록 일용할 양식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
식을 주옵시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매일의 양식을 달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40년 동안 주신 것은 일용할 양식인 만나였습니다. 만나는 하루의 양식이었고
욕심으로 많이 거둔 자는 벌레가 생겨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직한 방법으로 얻어
진 수입으로 적당하게 사용하면서 사는 생활에 만족하겠다는 것이 현인의 생각이었습니
다. 이러한 자세는 신앙생활의 진수입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합
니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하여 도적질한 사람들도 많
이 있습니다. 장발장이 그랬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실수를 피하려면 나의 소원은 무엇인
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매일 소원이 몰려 올 때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
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동교회목사>
누가 의롭습니까?
눅 18:9-14
김갑식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
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
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
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3-14)
본문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을 죄인 취급하였던 바리새인에게 주님이 들
려주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에는 세리보다 의롭게 살려고 했던
바리새인이 훨씬 더 의로운 것은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세리를 바
리새인 보다 더 의롭다고 하셨을까요? 주님이 의로 여기신 이유와 의의 기준을 본문에
서 살피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은 절대적인 의를 강조하십니다.(11절)
바리새인의 기도에 나타난 그의 의는 상대적인 의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
새인은 자기가 세리보다 의로우면,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
신이 처한 위치와 환경의 관점에 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적인 기준 속에서 의와 불의를 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은 결과 보다 동기를 보십니다.(13절)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말할 때에 십일조를 드린것과 이레에 두번 금식한 것을 강조하였
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행위의 결과 보다 그 동기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보이기 위한 의인가 아니면 마음 속에서 우러난 의인가에 주님의 관심은 있었습니다. 보
기에는 의로와도 동기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3. 주님은 용서받은 의를 강조하십니다.(14절)
우리가 의인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아 죄를 간과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
니다.(롬3:25)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의롭다고 주장할 육체는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롬3:10 롬3:23) 이런 점에서 오히려 자신이 죄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
로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있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입니다.(요일
1:8-10) 우리가 의로운 것은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엡2:8)
<백운제일교회목사>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가
고전 15:50-58
김삼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몇 가지 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신다”는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② 주님의 부활은 우리 인간에게 사망과 생명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사망이 왕 노릇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은 패배
하고 마귀는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전능한 왕
이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지금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를 믿고 그에
게로 가면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죽습니다. 사람들은
무덤을 넘을 길이 없습니다. 죽음을 극복할 어떤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살아
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때 그
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③ 주님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부활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
며 한 분의 부활만이 우리에게 소망이 있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바로 주
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④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저주와 어두움과 불의
에서 떠나서 주님과 함께 빛과 진리와 믿음의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사망이 지배하는 곳에서 나와 활짝 핀 새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 신앙으
로 이 세상을 살 때 우리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의의 승리요,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
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기시었습니다. 진리가 이기며 말씀이 이기었습니다. 인간의 어
떤 힘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정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
람들을 핍박하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예수 그
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
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부활하시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과 함께 승
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
일평생 여호와 앞에
왕상 15:9-15
김창인
1. 정직한 생활(9-12)
성경은 다윗의 정직한 생활을 간단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이 헷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
니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5:5). 성경이 말하는 정직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또
는 바른 관계를 의미하는데 그 정직의 본보기가 다윗입니다. 세상에 정직하다는 사람은
많아도 결코 똑같지는 아니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정직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본문에 보면 “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여”라고 기록하였습니
다. 아사왕은 여호와 앞에 정직함 때문에 남색하는 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을 소탕하였습니
다. 그 정직함은 다윗을 본받은 정직이었습니다. 일평생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하겠습니
다.
2. 정리의 생활(13-)
예수께서 어느 날 가버나움 세관 앞을 지나가시다가 마태를 보고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
습니다. 마태는 자기 집에서 잔치를 차리고 세리와 죄인들을 초청했습니다. 청하지도 아
니한 바리새인들도 참석했습니다. 마태의 잔치는 그 날로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주변을
정리하는 잔치였습니다. 직장을 버리고 친구들과 결별하는 주변정리의 자리였습니다. 우
리는 항상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
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습니다. 아사는 아버지와는 달리 신앙을
정립하면서 주변을 정리하였습니다. 주변정리가 우선 입니다.
3. 성별의 생활(14-15)
하나님께서는 에덴을 만드시고 그 한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었습니다. 모든
과실은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
역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은 먼저 구별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일주일에 엿새동안
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하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완성이 오늘의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일주일 중에서 주일을 성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얻는 것의 십일조는 하나님이 자기의 것이라고 하셨기에 성별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사왕은 이처럼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성별의 생활을 하
였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예수 만찬
마 26:26-30
류철랑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알아차
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심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있을 가롯유다의 배신
과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몸을 떡으로, 피를 음료로 내 놓아야 하
는 고통의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 떡, 예수의 몸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26절)고 하
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요6:48)라고 하십니다. 초대 교회는 떡을 나
누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떡을 떼며 기도에 힘썼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행2:42, 46-47). 교회는 예수님의 몸을 먹고사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
은 그의 몸을 먹으며 삽니다.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를 양식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양식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2. 잔, 예수의 피
예수님은 잔을 주시며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
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7,28절). 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
원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버려 피를 흘리셨습니다. 어린양이 피 흘려 죽임을 당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에 장자의 죽음이 비켜간 것처럼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
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4,55)라고 하셨습니다. 피
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그 잔을 받아 마시는 것입니다. 참
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 피의 잔을 마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사람들입니다(계7:14).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만이 구원의 반열
에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
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생명의 떡이요, 피이신 예수
를 먹고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천동광교회목사>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에4:13-17, 요19:28-30, 고전15:50-58
손인웅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 나가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싸움의 대상과
방법과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싸움의 대상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① 성경은 사탄(악령)을 가장 중요한 대적자(主敵)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창3:1-2. 마
4:1-11. 엡6:12. 계12:9, 20:1-3, 7-10).
②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입니다. 이들은 사탄의 사주를 받든지, 사탄의 종노릇하는 사람
이나 집단을 말합니다(마16:23. 눅22:3. 엡6:12).
③ 자기자신입니다. 사람이 싸워야 할 대상 중에 가장 어려운 상대가 자기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심각한 갈등 속에서 내적 투쟁을 하였으며(롬7:21-25), 자기자신을 쳐서 그
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고전9:27),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하고 있
습니다.
④ 사망권세입니다. 다윗왕의 고백대로 죽음의 길은 모든 사람이 필연적으로 가야할 길
임에 틀림없습니다(왕상2:1-2. 히9:27. 롬5:14, 21).
둘째로, 어떻게 싸워야만 이길 수 있겠습니까?
① 악령과의 싸움은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마4:1-11. 엡
5:18).
②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엡6:17. 시119:165. 히4:12).
③ 쉬지 않고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엡6:18).
④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26:42. 빌
2:5-11).
⑤ 예수께서는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
면 찾으리라(마16:24-25)’
셋째로, 그리스도의 승리가 인류와 창조세계에 어떤 결과로 나타났습니까?
① 인류의 구원이 가능해 졌습니다. (롬5:8-17).
②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습니다. (빌2:8-11. 계7:12).
③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일5:4. 계22:5).
<덕수교회목사>
경건한 사람의 네 가지 습관
신 14:22-23, 행 10:1-8
이성희
에베소서 4장15절에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자신의 영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자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이 성장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가진 그리스
도인이 자랍니다.
1. 기도하는 습관입니다.
성경은 기도의 습관을 강조합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다고 했으며, 예수님
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하였으며,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하였으며, 무
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시작이 있지만
끝이 없는 것입니다. 루터는 너무 일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2. 공부하는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배우라고 권합니다. 바울도 모든 사람에게 배우게 하라고 하였고, 배운 바를
행하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유
대인들은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리처드
포스터의 말대로 학습하여야 할 두 가지 교과서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말이 있는 교과
서이고 다른 하나는 말이 없는 교과서입니다.
3. 헌금하는 습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
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
며 약속한 대로 미리 준비하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고린도교회는 환난이 있을 때에 극
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습관
이 되고 정성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연보가 될 수 있습니다.
4. 친교하는 습관입니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
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
아 서로 교제하였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습니다. 신약
의 교제는 단순한 사귐 이상의 참여의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가
장 중요한 친교입니다. 이러한 습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성장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입
니다.
부활의 주를 만납시다
눅 24:13-32
김갑식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
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
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
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1:30-32)
오늘은 우리 문화권에서는 아직 미약하지만 세계의 3대 명절인 부활절입니다. 그런데 명
절의 분위기에 적합하게 부활의 주님을 믿는 신앙은 어떠할까요? 서방의 신학에서는 부
활의 주님을 잘 논하지만 잘 믿지는 않습니다. 부활을 아는 것은 쉬워도 믿는 것은 쉽
지 않습니다. 부활이 어떻게 인식되고 믿어지는가를 본문을 통해서 조명코자 합니다.
1. 육신의 감각으로는 만나지 못합니다.
본문은 엠마오로 가는 글로바와 한사람이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처음부터 그들과 동행하였
고(15절), 여인들이 부활의 증거를 제시했고(22절), 제자들이 확인했으며(24절), 미리
주님이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마16:21), 천사들이 증거하기까지 했습니다.(23절) 그러
나 부활은 육신의 감각으로는 알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주님을 인식한 것은 주님이 자세히 설명했고(27절), 성경을 해
석하여 주셨을 때에 깨닫게 되었습니다.(32절)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
로 된 책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딤후3:15) 또한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
기 때문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롬10:17절) 이런 점에서 해석된 말씀인 설교는 중요합니다.
3. 성령의 역사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본문에서 두 제자들도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로 예루살렘으로 돌
아가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교육과 일반교육은 다른 것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이 되라고”하지 않고,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다리
라고 하셨으며, 성령이 임하시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한 사람이 주신 선물
롬 5:14-15
김삼환
지난 4월 5일 2001년 프로 야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이번 개막경기에는 애
덤 킹이라고 하는 9살 난 소년이 시구를 하였습니다. 이 소년은 1995년 미국으로 입양되
어 간 아이인데 태어날 때부터 열 손가락이 붙어서 손가락을 펼 수 없었고, 다리가 썩
고 뼈가 굳어지는 병에 걸렸습니다.
부모가 고아원에 버렸는데 로버트 킹이라고 하는 미국의 젊은 부부가 이 아이를 입양하
였습니다. 몇 번의 수술을 거쳐 손가락을 분리하는데 성공을 했고 다리도 절단을 하고
더 이상 썩지 않게 하였으며 장애인들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 일반 학교를 보내었습니
다. 이 아이가 밝게 자라났고 하루에 두 시간씩 의족을 끼고 양아버지에게 코치를 받으
면서 야구를 했습니다. 이것도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
서 아무 소망 없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 죄악으로 가득 찬 우리 인간을 위
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밝고 건강하고 희망이 넘치고 기쁨으로 살
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죄인입니다. 시편 51편은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죄악된 길에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고 변화시켜 거룩한 길, 믿음의 길, 신령한 길
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은 온전히 주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
셔서 세상의 어떤 재물이나 부귀가 아니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 우리 인간에게 생명이요 힘이요 능력이 되는 줄 믿습니다.
백여 년 전 우리 나라는 우상숭배와 온갖 미신이 가득하였고, 무지하였고 말할 수 없는
가난 가운데 살아가던 절망의 땅이었고 저주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
님의 종들을 이 땅 위에 보내 주셨습니다. 선교사들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는 아
침해가 떠올랐습니다. 저주와 불행이 떠나갔습니다. 지하자원이나 많은 농토를 가지고
여러가지 좋은 조건을 가진 나라들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선물 받
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민족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
음 위에 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샘물처럼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명성교회목사>
부활의 복음
눅 24:34-35
김창인
1. 구원의 복음(34상-. 요20:1-18)
요한복음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은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녀
는 재산이 많았으나 일곱 귀신이 들려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했던 여자였습니다. 모든 사
람의 구경거리요 조롱거리였으나 때 마침 예수님을 만나 온전히 예수로 인하여 고침을
받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었는데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부활하신 날 아침에 누구도 안
찾는 무덤을 찾았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은 구원의 완성인지라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은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이 복음을 온 세상에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2. 변화의 복음(34하-)
베드로는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세례요한의 제자로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동
생 안드레의 인도로 예수를 만났고 갈릴리바다에서 예수님께 은혜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
다. 그가 주님을 따르면 따를수록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 항상 앞장을 섰고 열심히 특심하였으나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로 하여금 옛날
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가야바의 궁전 뜰에서 실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절망 중에 저지른 것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사
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본문에서는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씀이 바로 그 말입
니다. 부활은 베드로에게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변화의 복음이었습니다.
3. 재기의 복음(35-)
엠마오로 내려 가던 글로바는 12제자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글로바는 마리아의
남편인데(요 19:25) 마가복음에는 마리아의 남편이 알패오입니다(막 3:18). 마태복음에
는 그 마리아가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입니다(마 27:56). 그렇다면 글로바와 알패오는 같
은 인물입니다.
결국 온 집안이 함께 예수님을 따르다가 아내와 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데 글로바는 낙심 중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모양으로 나
타나셔서 성경을 풀어 줄 때에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그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다가 저녁
식탁에서 기도하신 다음에야 주님의 부활을 깨닫고 본문에 의하면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
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그들로 다시 일어나게 하는 재기의 복음이었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충만케 하소서
롬15:13
김형기
우리 주 예수에 대하여 세례 요한이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
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넘쳐흘러서 그의 몸 된 교회와 주의 모든 종들에게 전이 됩
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일심으로 기도하더니 성령충만, 말씀충만, 은혜충만, 능력충만
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도 주의 교회에 충성하더니 믿음과 성령과 지혜
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를 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과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뒤늦게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도 변화된 후에 온갖 신령
한 선물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1. 주여, 나를 충만케 하소서.
이 기도가 우리의 첫 번째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옵니다. 내가 그 아들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생각
하고, 사모할 때에 심령과 생활이 정결해지고 새로워지며 충만해 집니다. 내가 주님께
구하면 여러 가지 신령한 은사를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2. 우리 모두를 충만케 하소서.
나 혼자서만 충만해 하는 것으로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
들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다 함께 누려야 할 신령한 보화들입니다. 우리가 다 바울 같
지는 못할지라도 구하고 또 구하면 여러 부분에서, 여러 모양으로 충만히 받아서 함께
더불어 누릴 수 있습니다.
3. 예수 안에서 모든 충만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믿음 충만, 성령 충만, 은혜 충만, 기쁨 충만, 사랑 충만, 능력 충만, 평강 충만, 소망
충만, 지혜 충만, 감사 충만, 진리 충만, 정의 충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간절히 구한 바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
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주의 이름이 온 땅에 편만함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치고, 주의 오른손에
는 정의가 충만합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눕
니다.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 각 사람의 심령이 정결해 지고 새로와져서, 오직 그리스
도의 모든 충만함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경주제일교회목사>
너는 나와 상관없다
류철랑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귀신들린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 들어가셨는데 무덤 사이에서 귀신 들린자 두 사람이 예수님 앞
에 나타났습니다. 귀신들린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 소리 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8-29) 우리가 예수님을 원치 않으면 예수님이 아무리 우리를 원해도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둘째, 예수의 배반자들입니다.
배신자들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의 열두 제자중 한사람으로 3년
동안 예수를 따라 다녔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은30에 팔아 넘겼습니다. 그후 예수께서 정죄 되는 것을 보고 뉘우치고
은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갖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라
고 하니 저희가 말하기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마27:3-4)
고 했습니다. 배신자에 대한 뼈아픈 배신 선언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이 있다는 것은 그분과 영적으로 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상관이고 붙어있지 않는 것이 상관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도 교회와 상관없고, 주님과 상관없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씻겨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
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씻겨주셨습니다.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하시자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기
지 못하시리이다”(5,6절)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
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 하시니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라고 합니다(9절). 예수님은 물로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를 깨끗게 하시는 주이십니다. 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 할 수 없습
니다. 깨끗해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됩니다(딤후2:21).
씻지 않고도 깨끗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쓰임을 받으려면 먼저 씻겨 주심을 받아
야 합니다.
<부천동광교회목사>
부활의 세 가지 의미
민21:7-9, 롬6:3-5
이성희
부활이란 ‘일어남’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경적 의미의 부활이란 낱말은 죽은 사람
의 몸과 영을 되살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뜻합니다. 구약은 죽은 자가 어떻게 다
시 살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특별히 부활이란 단어는 죽은 자의 부활이란 표현이 대부
분입니다. 부활은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1. 영원히 사는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시며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떡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며 생명이시며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에녹이나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하셨습니다. 죽
지 않는 법도 있지만 죽은 자를 위한 또 다른 법도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살 수
만 있다면 죽는 것도 괜찮습니다. 사람은 다 죽을 것입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또 죽
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사는 부활의 은총을 받습니다. 이것이 약속입니다.
2.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우리의 죽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수 없는 죽음이며
우리는 죽을 수 없는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죽음이며 우리는 죄의 대가인 죽음
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죽음입니다. 그 이
상으로 예수님은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역사적 증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라”라고 어떤 프랑스의 회의주의자가 말했습니다.
3. 우리가 다시 살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잠잘 것이 아니오 마
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사셨으므
로 우리도 다시 살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
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죄 사함이 없으면 몸이 다시 사
는 것이 없고 몸의 부활이 없으면 영원히 사는 것은 없습니다. 부활절 선물은 부활의 능
력에 대한 해답이요 살려주시는 은혜입니다.
<연동교회목사>
주님이 타신 나귀
막 11:1-11
김갑식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
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11:9-11)
주님께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승리의
함성이 울리어 퍼지고 종려가지를 꺽어 주님을 환영하는 인파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
이 오
로지 힘에 겨워 주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의 모습에서 종려주일을 맞는 우리의 신앙적 자
세를 조명코자 합니다.
1. 주님이 타신 나귀는 어린 나귀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나귀를 타셨고 또는 겸손하시어 어
린 나귀를 타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 없이 어린 나귀는 너무나 힘에 겨울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주님을 모시기에 힘겨워하는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어린 나귀는 힘에는 겨웠으나 결코 쓰러진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때
에 충분히 아시고 능력을 주어 쓰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2. 주님이 타신 나귀는 순결한 나귀입니다.
주님이 어린 나귀 즉 사람이 한번도 타지 않았던 나귀를 타신 것은 순결한 나귀이기 때
문입니다. 순결하신 주님은 순결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순결한 사람들이 주님
을 태워 다니기를 원하십니다.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순결한 사람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
니다. 비록 주님을 태우고 가는 길은 힘들찌라도, 주님을 태우는 일은 주님이 순결성을
인정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기뻐해야할 것입니다.
3. 주님이 타신 나귀는 주님의 나귀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의 원전의 뜻은 “그의 주인이 쓰시겠다 하라”입니다. 이 말씀
은 주님의 것을 주님이 쓰신다는 뜻입니다. 이런점에서 주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증거를 얻은 것입니다. 나귀가 메어 있던 벳바게는 “익지 않은 무화
과 나무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직 익지도 않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완전히 익은 자 같
이 쓰심을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사역의 은혜
마 21:12-17
김창인
1. 갱신의 은혜(12-13)
오늘의 본문을 보면 종려 주일에 성전에서 되어진 사건입니다. 즉 성전 안에서 소와 양
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을 전부 내어쫓았습니다. 그리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전부 둘
러엎으시고 쏟아버리셨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사장들과 결탁하여 강도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종교행위를 여지없이 짓밟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성전이 되게 하셨고 예배로 예배가 되게 하는 갱신의 은혜였습니다.
2. 치유의 은혜(14-15상)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
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바울은 말했습니
다(롬1:16). 사람 차별은 없다는 뜻인데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고쳐야 할 정서적으로
큰 병중의 병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
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교권주의자
들은 장애인들의 성전 출입을 제한하였습니다. 즉 차별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
은 그들을 고쳐 주셨고 차별병 역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부터 베푸신 내적 외적 치유의 은혜였습니다.
3. 말씀의 은혜(15하-17)
신앙생활에서는 말씀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해석을 잘못할 때 문제가 되곤 합니다. 사이
비 이단이 여기서 나오고 교황무오설과 같은 엄청난 오류를 지금까지 범하고 있는 것입
니다.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는 교리는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을 모르
면 허튼 소리를 한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성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찬미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노를 나타내며 예수님께 대들었습니다. 예수는 메시아
가 아니오 찬미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성경을 가지고 어린애기
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라는 말씀으로 깨우쳐 주셨습니
다.
즉 말씀을 바로 깨우쳐 주시는 말씀의 은혜였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 18:41-46
류철랑
인간의 공통적인 실패 원인은 인내와 끈기의 부족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로 성취한 성공을 보여줍니다. 그가 기도하면서 말했던 “일곱 번까지 다
시 가라”는 말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1. 기도의 연상
엘리야의 기도는 상상하고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지면에 비를 내려 주
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절). 엘리야는 비가 온다고 하신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습니
다.
엘리야가 상상하고 있는 것은 비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계
속되고 있습니다. 마를 대로 말라버린 대지 위에 비가 쏟아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름 한 점 없이 쨍쨍 가무는 맑은 날에 무슨 빗소리가 나겠습니까? 그러나 엘리
야의 귀에는 빗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것을 말하게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
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연상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끈기
엘리야의 기도는 끈기 있는 기도입니다. 끈기가 목표를 달성하게 하고 vision을 이루게
합니다. 그는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
도했습니다(4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의와 겸손 그리고 열렬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는 기도한 후에 사환에게 말합니다.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올라가 보고 온 사환의 대답은 “아무것도 없나이다”라
고 말합니다(43절). 그러나 엘리야는 또 다시 기도합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기도해도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일곱 번째 또 기도합니다. 지면에 비를 내리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
기 때문입니다.
3. 기도의 성공
엘리야의 기도는 성공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일곱 번째 성공했습니다. 여섯 번이나 그토록 애타는 기도를 했지만 응
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기도하고 나니까 구름 한 점이 떠올랐습니다. 그 작은 구름이 큰비의
전조였습니다. 성공은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최상의 포상입니다. 성공하기를 바라십니
까? 기도하십시오. 곤고함을 견디십시오.
<부천동광교회목사>
인생고의 의미
욥38:1-7, 42:1-6, 요9:1-12, 히12:7-11
손인웅
욥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의 고통’을 인과응보라는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인생고에는 많은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욥이 당
한 총체적인 고통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경제적 손실에서 오는 고통이요, 둘째는 자녀들이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요, 셋째
는 자신의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 넷째는 아내의 몰이해로 인한 고통, 다섯째는 친
구들의 비난과 곤경으로 인한 고통, 여섯째는 ‘하나님께서도 나를 버리시는가?’하는
영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죄인의 고통은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쉽게 생각되지만, ‘의인의 고통’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쉽게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욥의 고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
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 친구와 엘리후와 욥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들의 그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욥에게 질문하시
고 욥이 응답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들의 근본적인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을 것입
니다(욥38:1-7, 42:1-6).
욥기를 통해서 얻는 교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②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기에
③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시초를 인간이 다 알 수 없습니다.
④ 그리고 인간의 고통은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
조성에 근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고통은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고, 그 고통의 정도
와 종류와 성격이 다를 뿐입니다. 대부분의 고통은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히 의인의 고통은 많은 교육적인 의미가 있고(요9:1-12), 대속적인 효력이 있어서
세상의 모든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의인의 고통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까지도 발휘하게 됩니다(히12:7-11).
<덕수교회목사>
여호와의 네가지 벌
겔 14:21-23, 눅 21:10-13
이성희
죄의 결과는 벌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죄의 결과인 벌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 인간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벌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
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당시에 백성들에게 내리시려고 하신
네 가지 벌을 말합니다. 이 벌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내리시는 벌입니다.
1. 칼의 벌을 내립니다.
칼은 벌의 상징이며, 칼은 고통의 상징이며, 칼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구약에는 칼이란
단어가 381번 나오지만 신약은 10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은 벌을 강조하지만 신약
은 용서를 강조합니다. 예수님도 칼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칼의 위협
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칼의 고통을 피합니다.
2. 기근의 벌을 내립니다.
기근은 이스라엘에 큰 벌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기근이 많은 지역입니다. 아브라함에
게 기근의 벌을 내리신 것은 양식을 의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양식을 의존하면 기근의 벌
을 내리시고, 돈을 의존하면 가난의 벌을 내리시고, 건강을 의존하면 건강의 벌을 내리
십니다. 세상을 의존하면 세상의 것으로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사나운 짐승의 벌을 내립니다.
사나운 짐승은 하나님의 벌입니다. 구약 성경은 사나운 짐승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
다. 또 사나운 짐승을 제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연
을 훼손할 때에 짐승들이 사나와지고 사람에게 공격적이 됩니다. 칠레작가 루이스 세풀
베다의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의 내용도 아마존의 짐승이 인간을 공격하는 환경소설
입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인간에게 벌을 내리시는 수단으로 사용하십니다.
4. 온역의 벌을 내립니다.
구약에는 온역의 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온 몸에 온역이 나게
하였습니다.
최근에 우리 주위에 나타나고 있는 갖가지 병들은 환경 파괴에 대한 하나님의 벌입니
다. O157, 광우병, 구제역 등 모든 병들이 하나님이 이 땅에 내리시는 벌입니다.
신약에서는 온역이란 말이 한번 나오는데 마지막 때가 되면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
역이 있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기근때
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우리를 구속하실 것입니다.
<연동교회목사>
다 받는 기도
마 21:18∼22
장성규
이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의 둘째 날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여집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환영을 받으면서 예루살
렘성에 입성하신 날이 유월절후 첫날 오늘날로 말하면 주일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
발하셔서 식사를 못해서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혹 요기라도 할까해서 저 멀리 있는 무화
과 나무에 가까이 가 보니까 잎만 무성할 뿐 열매는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아
직 열매가 있을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무화과 나무를
향해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 하셨습니다. 그러자
무화과 나무는 곧 말라 죽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의 사건이었지만 놀란 제자들이 “무
화과 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라고 물으니까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
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
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는 3가지입니다.
1.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과일 나무의 생명은 열매입니
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과일나무는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천국의 과일나무입
니다.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적(성령의) 열매이든지 외적(전도의) 열
매이든지 열매를 맺어야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고 주님께 붙어있
을 가치가 있습니다.
2.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능력자라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은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말씀 한마디로
이렇게 푸르고 싱싱한 가지를 가지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행하실 수
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다만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길이 이것밖에 없어서 죽어 주
시는 것뿐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3. 믿음과 기도의 힘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먼저는 믿음의 능력입니다. 다음은 기
도의 힘입니다. 믿음이 믿음되게 하고 힘이 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힘이라고 하여도 기도 없이는 그 힘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 중에도 “다 받는 기
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순종을 전제로 하는 기도입니
다. 주실 때까지 하는 기도입니다.